“위기의 금속노조, 돌파구로 가는 ‘길’을 닦겠다”

노동사회

“위기의 금속노조, 돌파구로 가는 ‘길’을 닦겠다”

admin 0 2,507 2013.04.15 01:23

이주환: 박유기 위원장님은 ‘산별만능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산별노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실천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쓴 글(월간 <말> 1992년 12월호, “자가용 타는 노동자는 투쟁을 회피하는가”)을 보니 당시에는 산별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어떤 경험과 과정을 거쳐 산별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까?

박유기: 1992년에 <말>지에 기고한 글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 때는 노동운동 초기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자기 이론을 갖고 운동을 하진 않았죠. 그런데 저와 동료들이 1992년에 수배를 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그 기간에 이것저것 책들을 많이 챙겨보고, 또 수배자들끼리 토론을 많이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후 1993년에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소위 민주파가 분열되면서 패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별노조의 한계와 노동운동의 전망, 전노협 결성 시부터 화두였던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그런 문제의식이 1998년 정리해고투쟁을 통해 근본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고투쟁 이전까지는 노동운동이라는 게 공세적으로 먼저 요구하는 형태만 있었는데, 1998년 하반기에는 회사로부터 임금이나 복지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처음으로 받았고, 36일의 파업에도 결국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를 절감한 거죠. 이를 뛰어넘는 조직형태로 전환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자기역할, 즉 세상을 바꾸는 토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도발적 상상력 부족이 아쉬웠던 ‘15만 산별노조’의 첫 임단투

이주환: 1998년 현대자동차노조 정리해고투쟁은 위원장님에게 어떤 경험이었습니까? 

박유기: 기업 내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실제 목적은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보다는 정규직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워서 인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경우가 많죠. 1998년 정리해고싸움에서 저는 투쟁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는, 상대적으로 강한 입장이었습니다. 만약 천 명이 정리해고가 되면 그 천 명 대오가 끝까지 투쟁해서 돌파구를 낼 수 있지 않겠냐,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그런 판단을 했던 거죠. 

당시는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감행된 경험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현대차싸움은 어차피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때문에 노동이나 자본이나 선택지가 별로 없었죠. 결국 노조는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해고자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잠정합의안에 서명을 하든지, 아니면 농성장에 공권력이 쳐들어올 때까지 투쟁을 하든지 양단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후자의 입장에 가까웠고 집행부는 전자를 선택했죠.

어쨌거나 이런 경험들은 2001년 대우자동차에서나 지난해 쌍용자동차에서도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반복되는데요. 이러한 각각의 경험들은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조합 조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각 사례들의 결과는 조금씩 달랐죠. 저는 지금이라도 그 사례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제 자본의 구조조정 압박에 어떻게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실질적인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주환: 박유기 위원장님은 2006년 당시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으로서 대공장들의 산별 조직형태 전환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15만 금속노조’에서 중앙과 새로 가입한 대공장들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는데요. 이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유기: 저는 처음부터 15만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답게 교섭 및 조직체계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 조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고, 때문에 통합대의원대회에서 새로 가입한 대기업노조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업지부 형태로 2년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15만 금속노조를 정갑득 위원장이 집행할 당시에는 제가 일산 구치소에 있던 터라 실제적으로 금속노조 사업에 결합했던 것은 아니었죠. 다만 밖에서 보면서 크게 인식됐던 부분은, 산별노조를 만들어가려면 대단히 도발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는 거였습니다. 가능성을 보면서 도전하고 만들어가야지, 현실적인 조건을 보고 판단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를 테면 15만 금속노조의 1년차였던 2007년에는 조합원들에게, 야 우리 산별노조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걸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산별노조 중앙이 교섭권을 틀어쥐고서 ‘중앙교섭의 문제’(대공장 사측을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시키는 문제)를 파업을 벌여서라도 첫 해에 바로 돌파했어야 했죠. 그 때 대기업 사측의 교섭 해태에 따른 ‘산별파업’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금속노조 조직 운영이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여러 이유들 때문에 기업지부 집행부와 본조 집행부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또 예상치 못했던 ‘한미 FTA 파업’이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되어 이른바 ‘불법파업’으로 진행되면서 지도부의 운신 폭이 좁았다는 어려운 조건이 있긴 했죠. 그렇지만 15만 금속노조가 2007년 임단협에서 산별노조답게 파업을 조직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조합원들이 아 우리가 파업하니까 한국 사회가 흔들리는구나 하고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면,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집중된 조직의 힘과 중앙교섭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면, 돌파구가 좀 더 쉽게 열렸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2007년 중앙교섭은 대기업 사측에게 ‘산별교섭 참여 확약서’를 받아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죠. 저도 구치소 안에서 그 확약서라는 것을 받아서 꼼꼼히 봤는데, 제 실무교섭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확약서’는 사측에게 2008년에도 중앙교섭 불참을 허용하는 ‘허가서’에 가깝더라고요. 사측의 꼼수에 말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2008년에도 중앙교섭은 더 보완된 확약서 합의에 그치고 말았죠. 이렇게 중앙교섭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중앙과 기업지부가 산별노조의 상과 전망을 서로 맞춰가지 못한 부분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앙과 기업지부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전체적으로 금속노조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이주환: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도 현대자동차지부가 금속노조의 방침과 어긋나는 행동을 보였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유기: 이경훈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이 처음에는 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 받겠다고까지 조합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제 입장은 그게 규약과 노동조합 운영의 원칙상 가능하지 않다는 거였고, 이런 부분은 이제 이경훈 지부장도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올해 현대자동차지부가 임금을 동결하고 합의서에 ‘무쟁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때문에 중앙의 미승인 상태에서 임단협을 타결한 것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달리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는 임금 동결 또는 하락을 인정하는 타협, 무쟁의나 무파업 등의 용어가 들어간 합의서에는 승인을 안 해주는 절차와 원칙을 갖고 있는데요. 그런데 제가 자료를 보니까 2008년 금속노조 전체 15만 명 중 약 11만 2천 명이 소속된 사업장들에서 미승인 상태로 임단협을 끝냈더라고요. 2009년도 비슷한 상황일 테고요.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가 계속해서 어기는 승인 절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거죠.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2009년 교섭에서 현대자동차지부가 의도적으로 승인 절차를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경훈 지부장이 당선되기 전에는 윤해모 전 지부장이 교섭 중간에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올해 교섭에서 현대자동차가 먼저 무너져버리면서 금속노조 전체의 임단협 전선에 악영향을 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고, 대단히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중앙교섭이 성사되지 않고 있는 이상, 지금 조건에서는 현대?기아가 돌파구를 뚫지 못하면 상당수 사업장들에서 임단협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현대가 동결하는데 너희들이 어떻게 올리려고 하냐, 사용자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현대?기아가 더 적극적으로 돌파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임기 중반인 2011년 10월에 조직발전전망 명확히 정리할 것

이주환: 선거에 입후보하면 자연스레 전임 집행부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그런 평가는 차분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날이 서 있거나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이기 쉬운데요. 선거 때 내렸던 평가 중 당선 후 사업계획을 세우고 집행의 틀을 잡기 위한 과정을 거치면서 달리 생각됐거나 더욱 확신이 든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interview_02.jpg박유기: “무기력과 혼란을 끝장내고”라고 출사표를 던졌으니 저는 전임 지도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무기력하고 혼란스럽냐? 우선 당시 지역지부는 선거를 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지부는 (2007년 통합대의원대회에서 정한 기업지부 존립 유예 기간이 2009년 10월1일부로 지났음에도) 규약에 근거도 없는 선거를 통해 지부장을 선출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조직체계가 굉장히 혼란스러웠죠. 또 얼마 전 대의원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금속노조에 대한 신뢰도가 7%로 나왔는데, 이런 게 단적으로 현재의 무기력을 드러낸다고 봐야죠.

그런데 제가 위원장이 되기 전에는 지역지부로의 재편을 원칙적으로 주장하다가 지금은 왜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기업지부를 이해하려고 하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2009년 7월(금속노조 24차 임시대의원대회)로 돌아간다면 그 때와 똑같은 주장을 그대로 할 겁니다. 그 때 대의원대회에서 기업지부 해소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서 그대로 진행됐다면 오히려 혼란이 덜했을 거라고 봐요. 물론 기업지부가 해소되고 지역지부로 재편된 초기에는 무척 혼란스럽겠지만, 조직이라는 게 굴러가는 과정에서 자기 질서를 갖게 되잖아요. 충분히 적응할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주어진 현실과 결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제가 작년 9월 중앙에 와서 회의를 하려고 보니까, 중앙집행위원회 성원 중 지역지부장들은 모두 이미 임기가 끝난 상태(에서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 못해 남아 있는 사람들이)고, (2009년 10월1일부로 지역지부로 재편되기로 계획됐던) 기업지부의 대표들은 자기들이 지금 중앙집행위원회 성원이 맞는지 아닌지를 저한테 묻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필요한 건 원칙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대의원대회를 열어서 의견을 모아 규약을 현실에 맞게 바꾸고, 조직발전 전망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내고, 또 치르지 못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죠. 골간 체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그래서 위원장 된 지 한 달 보름 만에 준비를 해서 대의원대회를 열었고, 제출된 안건들을 통과시켰죠. 대의원대회에서 모인 의견은 기업지부를 2년 더 유예시키되, 1년 후 2011년 10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교섭체계와 조직운영 방침을 정리하자는 거였습니다. 2012년에 제 임기가 끝날 때쯤 방침을 정하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또 무기력하게 혼란만 되풀이할 테니, 임기 중반인 2011년 10월에 방침을 정해서 차기 집행부가 원활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게 제가 할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맥락에서 지금은 금속노조 운영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올해 10월 논의할 발전방안을 제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담당할 조직발전특별위원회(조발특위)는 제가 직접 맡고 있죠.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전술적 수단들은 대단히 다양하게 준비하려 합니다. 

한편, 제가 중앙에 와서 보니 사무처 동지들하고도 부딪치는 부분들도 조금 있었어요. 최근에도 미승인 문제 다루면서 느꼈는데, 금속노조의 원칙이라는 게 굳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기존 형식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이전에는 비효율적이라고 실장 회의로 대체하고 사무처 전체 회의를 잘 안했대요. 그런데 금속노조가 잘 안 돌아가는 원인으로 소통 부재, 정파 간의 갈등, 현장조합원과 동떨어진 사업방식, 책임지지 않는 자세 등이 지적되잖아요. 사업이라는 게 유기적으로 조율될 수 있을 때 잘 돌아가는 건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일 겁니다. 해서 수련회 가서 제가,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전체 회의를 합시다, 사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열어놓고 함께 토론합시다, 저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분들도 많은데 공간을 열어 놓을 테니까 끼리끼리만 이야기하지 말고 함께 만들어갑시다, 그랬어요. 그런 민주적인 소통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조직발전방안도 실질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겠죠.  

산별노조의 고용문제 대응, 각 단계별 매뉴얼 준비 중

이주환: 이제 2009년 금속노조의 활동과 투쟁에 대한 평가를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쌍용차투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유기: 쌍용차투쟁은 기업의 존속 가능성 문제가 걸려 있어서 1998년 현대차투쟁과도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1998년에는 현대차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아무도 없었는데, 쌍용차투쟁은, 야 기업이 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다 보니까 어려운 부분이 많았죠. 어쨌건 투쟁 초기에 제가 현장에 들어가 한상균 쌍용차지부장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현대자동차투쟁 경험을 되살려서, 절대 혼자 있지 마십시오(지부장 혼자서만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투쟁 마무리는 함께 싸운 조합원 동지들과 하십시오, 책임지는 훈수자라는 건 없으니까 지부장께서 명확하게 상황 판단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1998년 현대차투쟁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괴리 같은 게 크게 없었어요. 그 때 제가 기획실장으로 있었습니다만, 1998년에는 정리해고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에 투쟁 전에 조합원들에게 절대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걸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가족들을 끝까지 결합시키는 것과 대국민 선전을 활발히 하는 걸 굉장히 중요시 여기면서 사전 준비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쌍용차투쟁 상황을 볼 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노동조합 중심으로 대응하기 위한 내부 준비가 조금 미흡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제가 쌍용차현장에 방문했을 때는 투쟁 초기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몇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떤 간부를 병원에서 면회를 했더니 싸늘한 분위기 때문에 농성장에 다시 들어가기가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노-노 싸움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쨌건 이런 흐름들에 대해서 한 마디로 평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싸움에 참여한 동지들이 목숨을 내건 상황까지 가면서 극한의 투쟁을 했던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역사적 평가가 있어야 할 테지만, 이걸 쌍용차만의 투쟁으로 한정지었던 것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뼈아픈 반성과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조합원들이 잦은 투쟁에 피로를 보인다는 식의) ‘조합원 정서’는 핑곗거리가 되지 않죠. 제가 선거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가장 따갑게 들었던 비판이 쌍용차투쟁에서 당신들이 한 게 뭐냐는 거였거든요. 누구 책임이냐를 떠나서 쌍용차투쟁이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였지만 결국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쌍용차지부 조직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무차별 구속과 손배?가압류가 진행되고 있고, 또 전체적으로 패배주의적인 관점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제가 위원장으로 들어오자마자 한 게 쌍용차대책팀을 꾸리는 거였습니다. 부위원장 중심으로 쌍용차지부 직무대행과 쟁대위와 계속 대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체들의 판단이 중요한 거니까요. 구속돼 있는 동지들이 나왔을 때 좀 더 제대로 된, 패배주의를 넘어서는 풍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주환: 대공장노조 조합원들에게 산별노조 전환을 설득할 때는 ‘산업정책 강화를 통한 산별 차원의 고용문제 해결’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쌍용차투쟁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박유기: 고용문제 관련해서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 문제를 정책실에다 과제로 준 상탠데요. 근로계약 체결, 고용 유지, 해고 상황 등 각각의 단계에서 고용과 관련해 노동조합이 실제 할 수 있는 게 뭐냐를 매뉴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테면 평상시에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뭐냐, 그리고 해고 위기에 몰렸을 때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혹은 해고를 피할 수 없다면 재취업을 위해서 필요한 거는 뭐냐 등등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구체적인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니까 현대차, 대우차, 쌍용차 가릴 것 없이 모든 정리해고투쟁에서 결국에는 패배적인 평가가 나오고 당시 집행부가 도마에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쌍용차투쟁이 여기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하겠죠.    

지역지부 재편, 기업단위 노사관계 대응 막는 거 아니다 

이주환: 2009년 11월 대의원대회에서 기업지부 해소를 또 다시 2년 유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역지부로의 재편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준비된 산별노조 위원장”으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예기간 2년 동안 지역지부 재편을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박유기: 기업별 노동조합체계 20년 역사를 겪으면서 조합원들에게 ‘우리 노조’란 ‘우리 회사’에 있는 거란 생각이 강해요. 이런 걸 깨려면 연대란 무엇이고 노동조합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고 설명을 해야겠죠. 저는 지역지부로 전환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금속노조를 실질적으로 해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지역 중심의 사업이나 중앙교섭을 하지 못한다면, 기업별 노조로 회귀해서 노사협력하면서 고용 지키고 복지 늘리는 게 낫지 않냐 하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어쨌든 제 생각은 기본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조금씩 풀어가자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부풀려지는 것이, 지역지부로 가면 고용이 불안해지고 기업지부로 묶여 있으면 고용이 안정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횡횡하는데, 그건 거짓말이죠. 쌍용차가 지역지부로 재편해서 구조조정 들어갔습니까? 사실 완성차대공장들을 들여다보면 생산직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지역지부 전환에 대해서 불안이 별로 없어요. 연구소에 있는 직원들은 생산직 중심의 노조가 어떻게 자신들을 보호해줄 거냐 하고 불안해하는 부분이 일부 있겠죠. 가장 큰 문제는 전국적으로 분산돼 있는 판매직들과 정비직들이 지역지부로 가면 자신들의 보호막이 없어지고 쪼개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상황인데요. 

그렇지만 기존에 제출된 계획안만 봐도, 사업장별 단체협약이 지역지부로 간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유지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기업 소속 위원회?지회들의 대표자인) 대표지회장을 중심으로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공동 대응을 하고 교섭도 그 틀에서 조정하게 되고요. 지역지부로 가는 것은, 여기다가 지역의 문제에 연대하는 것을 ‘플러스 알파’로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업지부 조합원들의 불안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내용들이 일부 악선동과 부풀려진 불안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간부들 사이에서 백날 논쟁한다고 진전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업계획 확정된 다음에 제가 우리 임원들 8명을 각 지역으로 보내서 4일 동안 조합원들 만나면서 설명하고 오라고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그런 폭넓은 소통구조를 만들어서 설득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원래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은 잘하고 좋아합니다. 조발특위에서 구체적인 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담당자들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의견을 모을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 불만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들, 금속노조가 너무 중앙집중적인 것 아니냐, 이를 테면 교섭 의제에 따라서 교섭권을 지부?지회에서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또 지금 출장비도 중앙에서 관리하는데 재정도 지부에서 집행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쪽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보완해가야죠. 

중앙교섭문제 돌파 위한 업종·의제별 교섭구조 강화

이주환:
 2009년에도 결국 완성차대기업으로의 중앙교섭 외연 확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후보로 나설 때부터 업종별 교섭의 강화를 내세웠는데, 이는 ‘중앙교섭-지부집단교섭-지회보충교섭’이라는 기존 금속노조의 교섭 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기 때문입니까? 

박유기: 중앙교섭이 답보상태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결국 중요한 것은 전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집중할 수 있는 요구안을 제출하는 것일 텐데요. 문제는 하루아침에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 중앙교섭은 약 3만 명가량에게 적용되고 있고, 나머지 12만 명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당장 올해 중앙교섭을 힘으로 돌파할 수 있는 묘책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중앙교섭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교섭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교섭구조를 업종별로, 의제별로 다각화하자는 거죠. 

예를 들어, 완성사들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있다면 금속노조가 완성사들을 중심으로 교섭단을 꾸려서 자동차공업협회하고 교섭을 하는 거죠. 교섭하자고 하면 사측이 처음부터 나서지는 않을 테니까 노사 공통의제나 정부정책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안일 테고요. 마찬가지로 자동차 부품사들은 자동차협동조합하고 그렇게 논의를 하면 되고요. 또 의제별로 한다면 주간 연속 2교대제나 월급제 같은 문제에 해당되는 사업장들이 교섭단을 꾸리면 됩니다. 저는 교섭구조와 노사 간의 소통구조는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처럼 힘으로 중앙교섭을 힘으로 관철시켜 볼만한 조건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다양한 과정들의 누적 없이 한 방에 중앙교섭을 성사시키기란 어렵다고 보는 거죠. 

물론 이는 전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된 중앙교섭의 요구를 현장과의 소통 속에서 만들어가는 과정과 맞물려서 가야겠죠. 그런 맥락에서 지금 정책실에서 소속 사업장 단체협약들을 비교 분석해서 금속노조 통일단체협약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거시적으로 보고 차근차근 나아가는 전략들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주환: 금속노조의 80%가량이 자동차산업에 속하는데, 업종별 교섭 틀 강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조직적 불균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업종별 교섭이 기업별노조 잔재를 온존시킬 거라는 지적도 있던데요.

박유기: 지금 금속노조에 자동차업종에 속하는 사업장들이 많으니까 사업의 중심이 쏠리고 그런 우려를 할 수도 있는데요. 지금 금속노조 사업장들 중에서 조선업종 사업장들이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거든요. 한편, 철강 같은 경우는 워낙 금속노조에 속한 사업장 수가 적으니까 업종사업이 활발하기 어렵습니다. 어쨌건 업종이 다르더라도 교섭의제는 상당부분 비슷하니까요. 불균형이나 불평등 문제가 발생할 우려는 적다고 봅니다. 또 업종 교섭 자체에 머물러 버리면 기업별 의식을 합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업종 교섭 틀을 강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우선 기업을 넘어서는 실천이고, 또 금속노조는 거기에 머물 생각도 없으니까요.  
   
내가 할 일은 조직발전전망 청사진 제시하고 바닥을 닦는 것

이주환: 2010년 사업계획을 보면 조직발전특별위원회와 단체교섭위원회의 역할이 가장 눈에 띕니다. 이는 ‘조직 구조’와 ‘교섭 틀’이라는 합의되지 못한 쟁점들을 사업화하는 데 있어, 조직 내에서 보다 폭넓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위원회 틀을 강화하는 것이 중앙의 집행력을 약화시킬 우려는 없을까요? 

박유기: 조발특위와 교섭위원회가 분리돼 있기보다는 실질적으로는 조발특위 안에서 교섭위원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어쨌든 저는 이런 구조가 본조의 집행력을 약화시키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조발특위의 구성을 보면, 본조에서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처장, 정책실장, 기획실장이 들어가고 전체 회의에서는 각 지부들의 지부장들도 참여를 합니다. 이렇게 구성한 건 특위에서 책임 있게 논의를 하기 위해서죠. 또 조발특위 내부에 의제별로 조직 방침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원회를 꾸리는데, 거기에는 연구소라든지 지부?지회가 다양하게 참여하게 될 겁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본조 집행력과 충돌하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위원회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지역에서부터 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조직의 힘이 더 커지리라 기대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조발특위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인데요. 7월 순회토론 전까지 조직발전계획 초안을 제출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10월에는 방침을 정해야 합니다.

이주환: 2010년 조직발전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박유기: 금속노조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어떤 조직체계와 집행체계 및 예산체계를 가지고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단체교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또 어떻게 조직을 강화할 것인가 등과 관련한 총체적인 계획안을 조발특위가 만들어내야죠. 거기에 따라서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개정할 것이고요. 이미 다른 자리에서 여러 번 얘기를 했지만 제 집행기간에 특별히 욕심을 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생각 없습니다. 금속노조가 다시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금속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다수가 금속노조가 자신의 노조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어떤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바닥을 다지는 것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청사진의 구체적인 내용은 7월 전에 만들어야죠.

전임자 임금 관련 2월 특단협, 요구 근거 충분하다

이주환: 복수노조-전임자 관련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됐습니다. 이에 따라 2010년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맞춰, 2월 특별단체교섭 요구, 3~4월 반MB 총력투쟁, 5~6월 임단협과 및 지방선거 결합 등의 투쟁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임자 문제를 사회적 투쟁 연결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과 설득 논리를 갖고 있습니까?

박유기: 전임자 문제가 조합원들의 관심을 모으거나 사회적 요구와 연결짓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이건 대응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간부들 월급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반이명박 전선’의 일부로서 제시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라는 게 아예 노동조합을 없애려는 거고 전임자 문제는 그 일환이다, 지금 유급으로 인정하는 노조 활동을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노동안전, 고충처리, 노조 유지?관리 등으로 한정한다는데 이건 기존의 대외협력사업이나 정치사업, 교육사업을 인정 않는 거다, 그런 노조가 파업을 할 수 있겠냐, 그리고 파업권을 행사할 수 없는 노조가 당신들의 고용문제를 지켜낼 수 있겠냐, 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조합원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노동조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의 조합원들이 동의하는 거니까요. 또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활동가를 채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들이 조합비 더 낼 거냐 하는 맥락에서 접근한다면, 조합원들의 이해와도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임자 문제 관련해서는 특별단협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습니다.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 만도 등의 단체협약에는 전임자 관련해서 법령이 개정될 시 보충교섭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임태희 장관이 ‘불법’이라고 악선전을 해대고 있지만, 우리는 정당하게 요구할 겁니다. 만약 사용자들이 교섭에 안 나오면 나오라고 집회 등을 통해서 압박을 할 거고, 그래도 안 되면 4월 초에는 민주노총 전국의 사업장들이 일제히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서 파업권을 확보할 겁니다. 파업에 실제로 돌입할지 말지와는 상관없이 파업을 상정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거죠. 그런 흐름은 이후 임단협 전선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회적 요구들과 결합해서, 노동운동이 고립되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겠죠.   

끊임없는 소통으로 만들어내는 신뢰의 리더십

이주환: 이명박 정부 들어 반노동적 분위기가 더욱 강화된 가운데 최근 조합원들과 집행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금속노조도 예외가 아니어서 과거보다 구심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갖고 있습니까? 

박유기: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거리를 좁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요. 그렇지만 위원장이 매일 현장조합원들만 만나고 있을 수는 없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씀 드린 사업계획들이 현장까지 소통되어서 힘을 받는 거겠죠. 지난번에도 임시대의원대회 전에 우리 임원들이 사업계획을 들고 지역으로 내려가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듣고 왔는데요. 대의원대회 끝나고 연초에 지역 순회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제 정파들 관계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다 열어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것들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주환: 조직 내외적으로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 난관을 맞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흔들림 없이 위기를 뚫고 조직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유기: 어떤 사람들은 저를 ‘모사꾼’이라고 하기도 하던데요. 어쨌든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능하면 다 열고 이야기합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신뢰에서부터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조활동에서 신뢰라는 것은 충분히 상대방 의견을 듣고 내 이야기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잘 전달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걸 겁니다. 물론 너무 정파적인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이야기해도 안 믿을 거예요. 다행스러운 것은 제가 투쟁을 회피한다거나 기회주의적이라는 평가는 안 받는 편이라 오해를 조금은 덜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회의 진행 하나는 잘한다는 소릴 듣거든요. 회의나 간담회에서 충분히 다양하게 이야기하되 질질 끌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는데 어려울수록 내부 소통에 집중하는 것, 책임있게 이야기하고 신중하게 듣는 것, 그런 속에서 리더십이 만들어지리라고 봅니다.

이주환: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