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참여교육과 현장토론 사례

노동사회

조합원 참여교육과 현장토론 사례

편집국 0 3,515 2013.05.17 08:45

하이트맥주 노조는 1946년 조선맥주로 시작하여 현재는 한국노총 화학노련 산하에 있다. 전체 조합원은 1,040명이고, 본부노조와 강원, 마산, 전주 지부로 나뉘어져 있다. 강원지부는 강원도 홍천에 있으며, 195명 조합원에 지부장, 사무장 두 명의 상근간부를 두고 있다. 강원지부는 2004년 10월부터 현장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하루 8시간 노동조합 참여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현안을 중심으로 대의원의 현장토론도 활발하게 시도하고 있다. 

load1917_01.jpg참여교육을 통한 공동체 의식 배양

조합원 참여교육은 ‘파업세대와 비파업세대와의 갈등 해소’를 주제로 전체 195명의 조합원을 10개조로 나눠 ,한 번에 15명씩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2004년 12월 현재 70명이 수료하였고, 조합원 모두가 수료할 때까지 매주 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1991년 부분파업, 1992년 총파업을 벌였던 노조는 이후 10년 동안 회사의 계속적인 흑자에 안주하여 별다른 조합활동 없이 세월을 보냈다. 1992년 이전 입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파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현실에 안주하려했고, 이후 입사한 젊은 노조원들은 회사가 잘 나갈 때 한번 붙어보자는 의식이 만연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차이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노동조합이 10년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자의 것이 아니게 된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공동체 교육을 준비하던 주체들이 가장 힘들었던 점 역시 조합원 스스로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교육 준비하면서 조합 내에서도 반대가 있었고요, 회사에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다른 공장은 안 하는데 왜 우리 공장만 하려고 하느냐, 노동조합에서 하면 다 사상교육이고 의식화교육 아니냐? 이런 반대들이 교육내용을 보면서 많이 없어지더라구요.” 노동조합 교육을 준비했던 박승준 사무장의 이야기다.

멍석만 깔아주면 알아서한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조합원 참여교육은 오전 시간에는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한 노래배우기, 공동체 놀이, 개인 소개와 이웃자랑, 이름 외우기 등 게임이 배치 되었고, 오후에는 작업장과 노동조합의 문제를 분임토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노조에 관심도 안 가졌던 사람들도 분임토의를 통해 말문을 열게 되었다. 같은 공장의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던 현실에서, 이름 외우기 같은 게임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관심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분임토의는 조합 간부들조차 놀랄 정도로 조합원들의 ‘말빨’이 튀어나왔다. 간혹 토론 자체가 안되어 공장에서 맥주를 가져다 먹어가며 토론을 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현장에서 할 말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나이 드신 선배들은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젊은 층들은 선배들을 더 이해하는 과정의 시간이 되었다. 

오전엔 자기소개하고 토론내용 발표할 때는 다들 꺼려해도 오후엔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교육이니까 뒷전에 있던 사람들까지 발언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되었다. 그냥 토론하는 것보다 자기 의견을 게시판에 붙이면서 토론함으로써 공유가 쉬워지고, 진행의 어려움도 해소된다고 했다. 박사무장은 아직은 교육에 참여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더 많아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교육의 효과가 사업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조합에서 이제까지 이런 교육이 없었거든요. 교육받고 가신 분들은 현장에서 내가 뭔가 해야 된다. 조합과 대의원들, 상집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죠. 그런데 교육 안 받은 사람하고는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해해요. 근무 끝나고 오는 거니까 야근하신 분들도 있고, 비번인데 나오는 분들도 있잖아요. 피곤하니까 잘 안 오려고 해요. 그래도 교육받고 간 사람들이 홍보를 많이 해주고 있어서 희망을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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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하이트맥주 조합원들   - 출처: 하이트맥주 노동조합 ]

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의식들

최근 하이트노조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어, 임단협을 1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그래서 대의원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현장토론을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하고 있다.  첫 현장토론 주제였던 ‘2005년 단협 개정안에 대한 조합원의 의견수렴’은 처음이라 미숙할 수 있기 때문에 노조에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범을 보였다. 조합원 10명당 대의원 1명을 배정하여, 대의원들이 조합원 한 명 한 명을 만나면서 조합의 입장을 설명하고 의견서를 직접 받아오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현장토론은 토론주제인 ‘지원부서 아웃소싱 문제’에 대해 대의원들끼리 역할극을 하며 준비를 했다. 한 번의 경험이 생긴 대의원들은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진행했고 토론한 내용은 모아서 조합에 보고서로 제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젠 조합원 스스로가 현장을 방문한 조합간부들에게 구조조정이니, 아웃소싱이니 질문도 하고, 의견을 먼저 내놓기도 한다. 어떤 대의원은 비협조적인 조합원을 세 번이나 만나서 결국 의견서를 받아 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힘들지만 교육을 재밌게 받은 후 현장내 시급한 현안이 발생하자 노동조합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조합원이든 대의원이든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는 의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말문을 트이게 하는 것 자체가 조합원 교육과 현장토론의 큰 성과이다. 덕분에 그냥 넘어갈 뻔했던 조합원 징계, 회사 구조조정 문제도 한 단계 막아놓은 상태다.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없어요. 이제까지 자판기 노조로 떠먹여주는 일만 했으니 쉽게 변하진 않을거에요. 하지만 교육받은 사람들, 대의원들이 조합에 관심을 가져줍니다. 얼마 전에 대의원·상집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도 처음으로 교육을 했거든요. 토론하면서 나온 게 우리 노조의 핵심문제가 조합원의 신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가 고민이죠. 조합이 신뢰만 받으면 순탄하게 잘 갈 것 같아요”.

조합원과 떨어져있는 조합이 조합원에게 다시 신뢰를 얻게 되기까지는, 또 조합원이 주인으로 서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이트맥주 노조 강원지부는 이제 그 시작의 발걸음을 뗀 것이다. 조합원으로부터 현장 동력을 만드는 것, 어떤 문제든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것, 바로 노동조합의 기초이며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이다. 그 희망을 엮어나가는 하이트맥주 노조의 건승을 빌어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