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야지예"

노동사회

"끝까지 가야지예"

admin 0 3,531 2013.05.08 11:55

노사 대리전으로 치닫는 장기파업 

1998년 2월 산별노조로 전환한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임단투에서 조직력과 교섭력이 커져왔고, 이를 불안하게 여긴 병원사용자들이 집단적으로 장기파업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대리전이라예. 병원협회에서 공권력 투입까지 요청했어요. 사측에 격려금도 전하고요." 한마디 한마디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난다. 

yoon_01_2.jpg8월8일 현재 강남성모병원을 비롯해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소속 병원 3개, 경희대의료원, 제주 한라병원, 목포가톨릭병원, 제천정신병원 등 보건의료노조 산하 7개 병원이 파업을 하고 있다. 강남성모병원과 경희대의료원은 파업 78일째를 맞았고, 다른 병원들도 한 두 달을 넘긴지 오래다. 차 위원장은 강남성모병원에 지지방문차 들렀다가 마침 체포영장이 떨어져 여기서 발이 묶였다.
 
"병원이 고의로 노조를 무력화시키려고 칼을 갈았다고 봐요. 가톨릭의료원은 교섭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인 파업 전야제는 물론 파업 이후에도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어요. 거기다 명색이 신부라는 사람이 공권력 투입까지 요청했습니다. 아예 사제를 그만두고 사용자로 나서던지, 어떻게 하느님의 종이라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파업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요구안 쟁취가 아니라 '민주노조 사수'가 요구가 되었다. 사측은 무노동 무임금 적용, 손해배상 청구, 지도부 고소고발, 관련자 징계·해고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노조한테 백기를 들라는 얘기다. "사측의 의도가 노조의 존립 자체를 없애려는 것인 한, 깨질 때 깨지더라도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를 풀려면 기본 노동권을 인정해야 하는데, 병원측은 이번 기회에 노조를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여보겠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성모병원의 경우 12명이 해고되고, 징계위원회에 191명이 회부되었으며, 57명에게 경찰의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파업 조합원들의 임금은 두 달째 지급되지 않았고, 노조 간부와 대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와 임금가압류가 이뤄진 상태다. 

"노동부 장관은 물러나야 합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즈음, 노동부는 '병원 사용자들이 불법파업을 고발하면 처벌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파업이 비번자와 간부들만 참가해 큰 위력이 없을 것이라고 여론 플레이를 했다. 보건의료노조 소속 7개 병원을 비롯해 장기파업 사업장이 늘어나는 데도 불법파업 엄단 방침만 되뇌면서 사태를 방치해왔다. 

"정부가 조정 역할은 하지 않고 노동자만 몰아붙이고 있어요." 체포영장이 발부된 보건의료노조 간부만 22명이고, 2명은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되는 병원에서의 파업은 단체행동권을 사전에 봉쇄한 직권중재제도 때문에 늘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에게 파업권을 주면 일은 하지 않고 늘 파업만 하지 않겠냐'는 불순한 발상이 직권중재제도의 배경에 깔려 있다. 

"이런 와중에 경찰은 전화를 걸어 공권력을 투입하느니, 농성장을 칠 대책을 다 마련해 두었다느니 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요."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에 정작 나서야할 노동부는 온데 간데 없고, 경찰만 들락거리는 형국이다. 서초경찰서 형사들이 강남성모병원 징계위원회 장소까지 나타나 기웃거렸다. 실제 월드컵 4강전이 열리던 날 경찰 수백 명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노사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인데, 유독 노동자에게만 소환장, 체포영장, 구속 처벌이 남발되는 현실 앞에서 노동자들은 가슴속에 무엇을 느낄까? 

"어제 합동대의원대회를 열었어요. 휴가 기간인 데도 5백 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참가해 두 가지를 결의했죠. 8월21일 이후 간부상경투쟁을 벌이고, 국정감사를 전후해 총파업을 조직하기로요." 

경희대의료원에서는 병원의 실질적 사용자인 경희대총장을 면담하러 간 노동자들이 대학직원들로부터 소화기 가루를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자기 직원이 면담을 하자는 데, 이를 피하려고 문을 쇠사슬로 묶고 교직원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사용자들이 노조 무력화를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병원 구조조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인 노조를 미리 손봐둘 필요가 있는 것이죠." 

산별노조의 시험대 

보건의료노조는 올 임단투에서 4대 요구를 내걸었다. 산별교섭 쟁취, 직권중재 철폐,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 의료의 공공성 확보가 그것이다. 네 가지 요구 모두 기업별노조의 투쟁이었다면 내걸기조차 어려웠을 것들이다. 노조는 4대 핵심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양보교섭을 하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체적으로 성과가 많습니다. 병원노조 15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100개 사업장이 본조의 지도에 따라 한꺼번에 쟁의조정신청을 냈고, 그 가운데 90개가 원만하게 타결됐어요. 4만 조합원 가운데 3만 명이 참여한 것이죠." 서울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50개 사업장에서 산별교섭 합의를 이끌어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을 이뤄낸 사업장도 다수다. 그리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위원회 참여를 통해 의료정책에 개입할 여지도 확보했다. 4년차를 맞는 산별노조의 위력을 톡톡히 보여준 셈이다. 

"지금 산별노조가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앞으로 병원들이 섣불리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산별노조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데도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이야기가 없냐고 물었다. "8월말에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는 내셔날 센터의 위상에 걸맞게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기 바래요. 보건의료노조가 내건 4대 요구는 사실 노총 중앙이 내걸 요구이기도 해요. 특히 직권중재 철폐는 민주노총이 나서 해당 사업장들을 묶어 공동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내셔날 센터에 걸맞은 정치적 역할과 조정력이 아쉽습니다."

8월8일은 병원 측이 못박은 최종 복귀시한 날이었지만, 두 달을 훨씬 넘긴 성모병원의 파업대오는 8백 명을 웃돌았다. 기사에 나갈 얼굴 사진을 찍는데 차 위원장은 다른 사진을 찾아보자고 한다. "얼굴이 퉁퉁 부었어예"라며 씩 웃는다. "그게 더 나은데요"라고 얼버무리면서 모른 척 셔터를 눌렀다.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는 외박 78일째를 맞고 있었다. 

노벨상에 걸맞은 노동 현실을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한겨레』 신문을 읽는데, 최성민 여론매체부장이 쓴 '데스크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평생 국빈 대접 … 아들 비리 욕보따리에 노벨평화상 수상을 싸잡아 버린다면 … 월드컵 4강에 환호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학행위"라고 썼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다스리고 '월드컵 4강'까지 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자의 90%가 노조의 보호망 밖에 있고 비정규직이 60%에 육박하는 우리 노동현실을 감안할 때, 성모병원 노동자들처럼 파업을 하면서도 그나마 웅크리고 앉아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농성장이 있는 노동자가 행복한 축에 속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그는 어떻게 볼까? 그런 나라에 사는 국민들이 자기가 뽑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는 관심 없고 아들들의 비리에 열불 터뜨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 아닐까? 그 분노의 한가운데 노동자들이 서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