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의 의미와 향후 전망

노동사회

6.13 지방선거의 의미와 향후 전망

admin 0 3,503 2013.05.08 11:52

'사상 최악'의 선거 

선거전 자체만 놓고 보면, 6·13 지방선거는 사상 최악의 선거였다. 48.9%라는 최저 투표율에 지역주의 조장, 인신비방, 금품살포 등 최고의 혼탁 선거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적발된 선거법 위반 행위는 1천6백 건이 넘어 지난 1998년 지방선거에 비해 4백 건이 늘었다. 검찰에 입건된 불법선거사범도 1998년 선거 당시의 2배, 구속자수는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 결과 당선된 광역단체장 가운데 7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6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50여명의 기초 자치단체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대선을 앞두고 치른 6·13 지방선거에서 각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저조하자 조직 동원에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펼쳤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겨 오히려 투표율을 하락시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 사이에 네거티브 캠페인이 극심했던 인천시의 투표율이 가장 낮은 것은 이를 반영한 결과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선거가 이렇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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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은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에서 11곳을 석권, 전국적으로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대약진을 거뒀다. 사진은 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한나라당 지도부   ▷ 출처: 오마이뉴스 ]

민주당 참패, 자민력 몰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민의의 표출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지방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 압승, 민주당 참패, 민주노동당 약진, 자민련 몰락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번 선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에 앞서 선거 결과를 살펴보자면 한나라당은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에서 11곳을 석권, 전국적으로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대약진을 거뒀다. 반면 민주당은 전통적 강세지역인 수도권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해 졸지에 '호남당'으로 전락했다. 텃밭인 충청지역에만 사활을 건 자민련도 충남 1곳만 당선돼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한나라당은 232개 시장·군수·구청장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140석을 차지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84석)과 자민련(29석)이 113석을 자치하고, 한나라당은 74개 지역에서 승리한 것과 비교할 때 상황이 역전됐다. 특히 한나라당은 서울 25곳 중 22곳, 경기도 29곳 중 24곳, 인천 10곳 중 8곳을 차지, 수도권에서도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정당투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중앙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는 유효득표수 16,473,486표 가운데 한나라당이 과반수인 8,591,299표(52.2%)를 얻어 4,792,675표(29.1%)를 얻은 민주당을 380만표 차로 이겼다. 역대 선거 사상 1, 2위 정당간 최대 득표차다. 민주노동당은 1,339,726표(8.1%)로 3위, 자민련은 1,072,429표(6.5%)에 그쳤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9명의 광역비례대표를 포함, 전국적으로 11명의 광역의원을 당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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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은 전통적 강세지역인 수도권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해 졸지에 '호남당' 으로 전락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민주당 지도부  ▷ 출처: 오마이뉴스 ]

'부패정권 심판' 

한나라당 압승은 각종 언론에서 제시된 바대로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등 권력형 비리 덕택이다. '부패정권 심판하자'는 구호만으로 한나라당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에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원조부패론', '부패인물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대통령의 아들 관련 비리의혹과 잇따라 불거진 각종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되돌리진 못했다. 외형적으론 김대중 대통령이 탈당을 했지만 대통령 아들 비리 의혹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함에 따라 민주당은 사실상 여당으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한나라당 선호 유권자들로부터 거부감을 산 데다, 전통적인 지지자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

비리 문제가 위력을 더하게 된 데는 지역구도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민련과의 공조 붕괴 이후 '호남+충청' 고리가 끊어진 데다, 이인제 의원의 경선 사퇴 이후 충청 민심은 급속도로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이를 틈타 한나라당은 충청권 공략에 나서 성공했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로 조선·동아 등 일부 언론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민주당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민주당에 결코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몇몇 거대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48.9%라는 전국단위 선거상 가장 낮은 투표율도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곧 이삼십대 유권자들의 기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로 보수층과 40대 이상을 지지층으로 하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스스로 '노풍' 꺼뜨려 

그러나 이러한 외부 상황만이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요인이 참패를 가져온 측면도 크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 압승은 '한나라당이 잘 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못 해서' 이루어진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노무현-한화갑 대표' 체제를 구축, 구주류에서 신주류로 당의 중심이 이동, 각종 게이트 사건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패 고리를 잘라내기 보다는 극심한 지도력 부패 현상을 드러냈을 뿐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서청원 대표' 체제라는 당권-대권 분리체제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하게 지도력을 발휘했다. 특히 서 대표는 취임 직후 직접 대정부 공격의 선봉에서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흥행 성공작이라고 자부했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이 영향을 미쳤다. 애초 대선후보 경선에 너무 많은 후보가 나서면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들의 발목을 스스로 잡은 셈이 되었다. 수도권의 경우 경선 과정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정동영 서울시장, 김근태 경기지사' 등의 카드를 구사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또한 최초로 이뤄진 국민경선제, 그리고 '노풍'의 등장으로 인한 경선 구도의 급변 때문에 모든 관심이 대선후보 경선에만 집중되어 지방선거 후보경선은 그만큼 소홀해졌고, 그래서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한편 대선후보 경선구도가 급변하면서 경선후유증도 극심해졌다. 또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퇴한 한화갑 대표의 대표경선 참여로 인해 당 대표 경선 역시 후유증이 컸다. 

이러한 여러 최악의 조건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노풍' 하나만으로도 선거는 충분히 해볼만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노 후보는 '노풍'을 스스로 꺼뜨렸다. 비리 게이트 등으로 인해 '노풍'이 꺼졌다는 분석도 가능하긴 하지만 이것은 노 후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노풍'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식상함과 변화에 대한 바람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지난 과거가 그러한 변화와 도전을 상징했다. 그러나 후보 확정 이후 노 후보의 행보는 계속된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변화'의 실체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대신 현실정치 속에 갇혀 있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3김정치' 종언, 민주노동당 약진
 
결국 민주당의 참패는 지난 국민경선 과정에서 '노풍'을 통해 드러났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민심을 받아 안지 못한데 근본 원인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결국 부패한 기성 정치권을 심판한다는 민의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자민련과 민주당의 참패는 JP와 DJ의 몰락, 즉 '3김 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그 반사 이익을 톡톡히 챙긴 것뿐이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의 약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 보수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기대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노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광역의원 선거에서 8%대의 지지율을 확보해 자민련을 제치고 3당으로 올라섰다. 특히 민노당은 16개 시도 가운데 대구ㆍ경북과 충남 지역을 제외한 13개 시도에서 5% 이상의 고른 득표율을 기록, 9개 지역에서 광역의원을 배출했다. 전국 정당으로 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 할 수 있다. 민노당은 또 2004년 총선까지 22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게 돼 진보정치를 밀고 나갈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무소속 농민후보로 출마한 신정환 나주시장 당선 등 일부 지역에서 농민운동가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지방정치에 새로운 전형을 보여줄 것이 기대된다. 

반면 울산 광역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민노당 후보가 낙선, 진보정당 최초의 광역단체장이 탄생할 것이라던 기대가 이번에도 무너졌다. 낮은 투표율, 한나라당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 지역감정 등이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민노당은 밝혔다. 그러나 이번 선거 과정에서 상당수 유권자들이 아직까지 '노동자 정당'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한 대목은 민노당이 대중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다. 

이제 정치권은 8·8 재보선과 12월 대선을 맞아 다시 바쁘게 움직일 전망이다. 월드컵이 끝나는 마당에 터진 6·29 서해교전 사태는 향후 선거에 주요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12월 대선까지 정치권은 또 어떤 이슈로 요동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은 정치 변화와 개혁을 바란다는 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