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 단체교섭에 대한 단상

노동사회

산업별 단체교섭에 대한 단상

admin 0 3,288 2013.05.08 11:43

 


1. 산업별 단체교섭을 향한 비원(悲願)

거창하게 말하면 산업별 노동조합체계는 노동조합체계의 완성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2002년 6월 현재 산업별 노조는 23개로 전체 조합원의 41%인 25만 명을 조직하고 있다. 언뜻 보아 해방이후 대한노총이 설립된 이래 지배적인 조직형태를 유지하여왔던 기업별 노조 체계가 종언을 고하고 '완성된 형태'의 노조 시대가 개막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산업별 교섭이 이루어지는 조직이 산업별 노동조합이라고 한다면 결론은 '아직도 미완의 조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산업별 교섭을 이루려는, 아니면 적어도 기업별 교섭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노동조합의 비원(悲願)이라고 할 만큼 노동조합들은 집요하게 산업별 교섭을 추구하여 왔다.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은 물론이거니와 소산별노조(과학기술노조, 연구전문노조 등)의 집단교섭 추구, 교섭권의 연맹 위임, 그리고 공공부문 노조의 대정부 직접교섭 요구 등은 하나같이 기업별 교섭구조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의 표현들이었다. 그러면 오늘, 노동조합들은 왜 몸에 익은 기업별 교섭체제를 내던지고 산업별 교섭의 실현에 매달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노동조합의 노력은 어디까지 와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특히 산업별 단체교섭체제로의 이행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이상 민주노총), 그리고 금융산업노조(한국노총)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산업별 단체교섭, 어떻게 가능한가?

그럼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산업별 단체교섭을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일까? 먼저 많은 노동조합들이 산업별 교섭을 추구하는 이유는 기업별 교섭으로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기업별 교섭체계는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보면 인적·물적 자원의 분산을 가져올 뿐 아니라 임금 등 경제 문제에 매달리게 만듦으로써 노동조합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의 약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소규모 노사갈등의 빈발이나 교섭비용의 증대, 노조원-비노조원 간의 임금격차 확대 등이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이에 반해 산업별 교섭은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할 뿐 아니라, 산업별 표준협약을 통해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를 축소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산업별 노조는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 또한 단체교섭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종업원의 이해를 합법적으로 대변하는 '집단적인 전통의 담지자'(a bearer of collective tradition: Ferner and Hyman 1998: xvii)로서 역할할 수 있게 한다. 조세나 사회복지, 노동관계법의 개정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중요한 또 한가지는 돈의 문제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노동법에 자리잡고, 또한 새로운 노동탄압 수법으로서 손해배상 청구서가 조합원의 가정으로 날아드는 판국에 이제는 돈 없이는 파업도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산업별 노조는 바로 이러한 재정의 중앙집중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형태라는 점에서 이제는 선택의 차원을 넘어버렸다.1)

사용자에게 도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산업이나 업종차원에서 교섭이 이루어질 경우 사용자 간 에는 임금 경쟁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산업별 교섭은 교섭을 외부화 시킴으로써 작업장으로부터 노조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으며, 노동조합이 특정 회사를 악질사업장으로 찍어 '집중공격'하는 것(whipsawing)을 막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별 교섭을 수용할 경우에는 작업장에 대한 '자의적 통제'를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사용자로서는 "갈등보험에 들 것인가 아니면 자율권을 가질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비써, 1998: 28). 또한 전투적인 노사 문화에서 산업별 교섭은 정부가 노조의 투쟁에 '멍석을 깔아주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용자들은 적어도 노동조합의 힘이 충분히 강해져 사용자에게 산업별 교섭을 강제할 수 있지 않으면 '만만한 기업별 교섭체계'를 벗어나려 들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사용자단체는 노동조합이 강력해져 노동시장에서 단체행동에 대한 대응이 사용자 전략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가 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Traxler, 1998)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3. 산업별 단체교섭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산업별 교섭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섭당사자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측은 산업별 노동조합을 결성,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산업별 교섭에 임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고 할까, 이에 응할 사용자단체가 없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협회를, 금융산업노조는 은행연합회를 사용자단체로 간주하여 교섭석상에 끌어내려 노력하고 있으나, 이들은 생산물 시장에서의 동업자 조직(trade association)일 뿐 노동시장에서의 사용자 단체(employer organization)는 아니다라는 법원 판결만 손에 받아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는 노동조합이 비록 산업별 노조로 이행은 하였지만 산업별 단체교섭을 위한 준비는 덜 갖췄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산업별 교섭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련된 몇 가지 요건이 요구된다. 2) 

첫째는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산업별 교섭을 강제할 수 있는 파괴력이다. 이러한 파괴력은 단순히 파업으로 인한 업무의 정지와 이로 인한 경영상의 손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악질사용자에 대한 노동조합의 타격도 포함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파괴력이라는 것은 노조와 맞잡이 질을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영상의 손실을 의미하지만, 다른 말로 이는 사용자측이 인식하는 두려움의 정도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과거의 경험(노조 투쟁)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용자(단체)에 대해 대표성을 주장할 수 있는 조직력이다. "노동조합이 생산물 시장의 다수를 조직할 경우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증대된다. 즉 노동조합이 임금을 경쟁으로부터 제외시키는 핵심적인 전략의 하나는 교섭구조를 시장의 범위와 일치시키는 것이다. 교섭구조에서 사용자의 집중성을 달성시키기 위해서도 노동조합은 먼저 생산물 시장의 대부분을 조직하는 것이 필수이다"(Katz et al., 2000). 이 역시 단순히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해 대표할 수 있는 해당산업 노동자의 비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되지 않은, 따라서 저임금 부문이 존재할 경우 사용자들은 이들 부분과의 경쟁을 의식하여 노조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유인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상층 차원에서의 합의를 하부 단위에 강제할 수 있는 통제력(compliance)이다. 상층차원에서의 합의가 현장에서 뒤집어질 경우 상층교섭을 지속할 유인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산업별 교섭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에 의해 도입된 우호적인 법률·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구속력 조항의 도입이나 동정파업 및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정치파업'의 합법성 문제, 규약을 위반한 채 지부차원에서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 등이 포함된다(자세한 것은 김기덕, 2002 참고).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요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산업별 단체교섭의 실현 정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4. 산업별 단체교섭, 어디까지 왔나?

현재 주요 산업별 노동조합의 차원에서 고전적인 의미에서 산업별 단체교섭, 즉 산업별 통일교섭이 이루어지는 곳은 없다. 다만 금융부문에서 집단교섭이 이루어지고 있고, 의료나 금속부문에서 부분적이나마 지역별 집단교섭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를 부문별로 간단히 살펴보자. 

1) 보건의료부문

보건의료노조는 약 4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8년 2월 산업별 노조로 전환한 이래 산업별 교섭을 본격 추진하여 왔다. 2000년의 전국동시 파업투쟁이나 2001년의 국립대병원 퇴직금 누진제 철폐 반대투쟁을 거쳐 올해에는 사업장별로 산업별 교섭에 응하겠다는 협약을 끌어내고 있다. 초기에 이러한 보건의료노조의 산업별 교섭은 '교섭권의 연맹 위임을 바탕으로 한 공동교섭-대각선 교섭의 추진'이라는 연맹 시대의 틀을 뛰어넘는 게 아니었다. 병원협회를 사용자단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추진된 병원협회 정관개정 요구안도 부결되었으며, 중앙노동위원회조차 병원협회는 사용자단체가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약 60개 노조가 대각선 교섭을 통해 "2003년부터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교섭을 요구할 시 응한다"라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여기에는 주요 대규모 병원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대규모 병원을 상대로 한 집단교섭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은 약 30만 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중 보건의료노조가 조직하고 있는 노동자는 4만 정도. 한국노총 산하 의료산업연맹은 약 8천을 조직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병원협회 가입병원 514개 사의 30% 정도인 150개 사에 노조가 조직되어 있다. 따라서 1사 1표의 의결구조에서 병원협회가 사용자 단체로 나서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사항은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대규모 병원노조의 경우, 대부분이 보건의료노조에 소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통제력이라는 측면은 규약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단체교섭과 관련하여 조합 내 모든 단체교섭의 대표자는 위원장이 된다. 단, 위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본부장, 지부장 또는 특정인을 지명하여 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다. 또한 조합의 쟁의행위는 조합원이 투표에 의해 결의하되 지역본부 쟁의행위는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그리고 기업지부는 지역본부 집행위원회의 동의와 위원장의 승인을 거친 후 지부 조합원의 투표에 의해 결의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의료부문의 경우 산업별 교섭으로 이행하기 위한 조건은 상당부분 갖추어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내년도에는 부분적이나마 집단교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바, 이 경우 문제는 다양한 사용자 집단을 어떻게 하나로 묶는가일 것이다.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 중소병원과 기타 정부산하병원으로 특성별 편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별 편차가 존재하기도 한다.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밖에 없다면, 다시금 지역우선인가 특성우선인가 하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특성별 부문에서 조직률(대표성)을 높이는 방안도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중소병·의원에 대한 조직확대뿐 아니라, 한국노총 산하 병원산업노동조합연맹과의 관계설정도 포함될 것이다.

2) 금속부문 

금속노조는 2001년 2월에 금속산업연맹 소속 100여 개 노동조합으로 출범하였으며, 현재 약 4만 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조직체계는 본부-지역본부-기업지부로 편제되어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조합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금속노조는 2001년 임단투에서 5대 요구를 내걸고, 150여 개 사업장을 상대로 지부별 교섭 및 투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경주지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각선 교섭으로 진행되었으나, 70여 개 사업장에서 2002년 집단교섭을 수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괄 조정신청서를 제출하거나 악질 사업장 집중타격투쟁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정합의 이전에 '지부운영위원회의 검토→ 위원장의 승인 → 조합원 투표 → 체결'이라는 원칙을 어기고 개별 타결하는 사례도 6건이나 발생하였다. 2002년의 경우에는 7대 요구를 중심으로 지부별 집단교섭을 추진하였다. 집단교섭을 합의하지 않았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대각선 교섭을 추진하여 7월 현재 123개 교섭 사업장 중 97개 사업장에서 기본협약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을 고리로 대규모 사업장과 일부 지회의 이탈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금속산업노조의 경우, 금속산업연맹의 전체조합원 16만9천명의 1/4 수준인 4만 명을 조직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 금속조합원은 한국노총의 금속노련과 나뉘어져 있다. 우리나라 금속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은 150만 명에 이른다.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의 대부분은 자동차 부품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동차 완성업체나 조선부문 등에서의 대규모노조는 아직도 기업별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금속노조에 합류할 전망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부분적으로 자동차 부품을 제외한 완성차나 조선부문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금속노조는 교섭구조의 틀에서 아직 초보적일 뿐 아니라 조직의 틀에서조차 미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노동조합은 지부별 교섭체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부품사업장이 주류를 이루는 한에서는 커다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조직범위가 확대되고 또한 연맹사업장이 산업별 노조로 변경할 경우 이러한 지부별 지역교섭체제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업종별(자동차 완성차업체, 자동차 부품업체, 전기전자, 철강, 조선 등), 규모별(대규모-중소규모), 그룹별(현대, 대우, 기아 등) 및 지역별 교섭체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과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가 현격할 뿐 아니라 결정 구조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 금융부문

금융노조는 2000년 3월 출범하였으며, 이후 정부의 일방적인 금융구조조정에 맞서 두 차례의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산별노조의 힘을 바탕으로 주5일 근무제에 합의함으로써 산별노조의 위력을 실감케 한 조직이다. 

금융노조는 산별노조체제인 1970년도에 이미 사용자와 중앙노사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여 전국은행의 단체교섭을 일원화시켰으며, 1980년대의 기업별 체제에서는 업종별 협의회(국책은행, 지방은행, 시중은행, 외국인 은행)별로 집단교섭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맹의 교섭방식은 1990년대에도 은행별 교섭과 혼용되며 유지되어왔으며, 이 경우에도 업종별 공동 동시교섭이 주류를 이루었다. 

금융노조가 설립된 이래 2000년 7월과 12월에는 금융산업 구조조정 저지 총파업투쟁이 있었으며, 10월에는 최초의 산업별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는 임금(5.5%±α) 및 근로조건(육아휴직 등)뿐 아니라 103개 조항의 기본협약과 11개 조항의 고용안정협약, 그리고 회사발전협의회에 관한 협약 7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1년도의 보강교섭에 이어 2002년 5월에는 국책은행 가이드라인을 돌파하는 임금 6.5%±α와 더불어 업계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데 합의하였다. 

금융노조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교섭 형태가 비록 집단교섭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어느 노조보다도 산업별 교섭형태에 접근하여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먼저 대표자 교섭이라고 하여 노사양측 지부의 대표자와 산별노조위원장이 참석하는 형태의 교섭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임단협 협상이 시작되고 종료될 뿐 아니라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교섭위원의 수가 많아 비효율적이고 실질적인 교섭이 어려워 대표단 교섭이 가동되고 있다. 여기에는 기관별 특성을 감안하여 시중은행, 국책은행, 지방은행, 국책기관 등 특성별 대표를 선출하여 노사대표자로 협상을 진행한다. 간사은행과 더불어 대표단이 실질적인 사용자단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사실상 산업별 교섭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현재 금융노조는 한국은행(민주노총 사무금융노련에 소속)을 제외한 모든 은행을 조직하고 있으며, 2000년도 투쟁에서 보듯 상당한 투쟁력을 보이고 있다. 한편 모든 단체교섭에서는 위원장이 대표자가 되며 지부에 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부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자 할 경우에는 위원장의 사전승인을 필요로 하며 지부의 조정신청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쟁의 행위의 결의는 조합원의 투표에 의하도록 되어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부보충교섭의 과정에 대한 중앙의 통제와 개입의 문제가 있다할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금융노조가 상대적으로 앞설 수 있었던 요인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조직력과 파괴력, 그리고 통제력이 갖춰졌을 뿐 아니라 과거 산별노조의 경험과 더불어 업종별 집단교섭의 경험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소수의 대규모 사업장일 뿐 아니라 경쟁적인 노동시장 조건에서 근로조건이 유사했다는 점도 사용자들이 집단교섭에 상대적으로 쉽게 응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인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산업별 교섭으로의 진척이 대표적으로 전투적인 노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거나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행한 노조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금융이나 보건의료, 그리고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집단교섭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들 부문에서 조직된 노조가 파괴력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대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조직률의 제고(미조직 노동자의 조직 및 경쟁노조와의 관계), 정부의 우호적인 지원(법률의 개정 및 행정지도 등), 향후의 교섭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대안모색, 그리고 현장과의 결합력 제고와 이를 통한 파괴력의 극대화 등이다. 특히 조직률과 관련해서는 지금 당장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을 논의할 계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산업별 대표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동종 산업으로서 다른 총연맹에 소속된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가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금속노조의 경우에는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보다 완전한 이행 역시 관건이 될 것이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사용자 단체의 법적인 강제는 앞에서 다루었지만, 이외에도 산업별 노조본부의 승인 없는 하부단위에 의한 단체협약의 체결이나 단체행동의 돌입, 그리고 동정파업의 정당성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반적 구속력 조항의 도입은 저임금 비조직 부문으로부터의 경쟁을 제거함으로써 사용자들로 하여금 노조에 대한 저항유인을 줄이는 의미를 지닌다.3) 

이는 해당노조가 개별적으로 산업별 교섭을 이루기 위한 노력뿐 아니라 공동 사항에 대한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2000년도에 조직된 "전국산별중앙교섭대책위원회"(금융노조, 대학노조, 보건의료노조, 전교조, 한교조 등)를 확대·강화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산업별 노조 및 교섭에 대해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이를 주도하고 나아가 여건 조성에 나서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임금격차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고임금 고근로조건의 노조가 기득권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노동조합이 최소한 연대임금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기대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서 고도의 조직률을 갖춘 총연맹 차원에서 전국교섭기구를 통해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일 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 등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단위산업이나 산업별 노조에서 추진할 성격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현재 산업별 교섭은 기존의 임금격차를 인정한 가운데 이를 축소시키려는 노력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제한적인 사항에 대한 온건한 요구의 제출'과 '파업을 회피하기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을 노동조합의 파괴력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도 전술적 판단을 요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중교섭의 문제는 금융노조에서 보듯이 중요한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외양적으로는 이중교섭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기준인상률에 유연성을 둔 것으로서 오히려 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6. 산업별 교섭은 만병통치약인가?

단체교섭의 중앙집중화는 기업별 교섭이 갖는 분산성과 이로 인한 교섭력의 약화, 산업별 차원에서 사회개혁 문제에 대한 침묵, 나아가 사업장 간의 격차 확대 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산업별 교섭은 교섭의 중심이 위로 이동함으로 인해 자칫 관료화의 위험과 더불어 현장 공동화의 우려를 낳기도 한다. 특히 임금교섭이 상향 이동될 경우, 지금까지 기업별 노조차원에서 임금교섭이 조합원 동원의 중심 축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노동조합의 내부 권력은 단체교섭이 이루어지는 수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산업별 교섭은 노조의 중앙으로 권력을 집중하고, 지역 및 작업장 교섭은 노조의 권력을 분산시킨다. 집중성과 민주성이라는 고전적인 모순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실상, 현장은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참여할 뿐 아니라 조합원을 동원하는 지점이다. 또한 현장은 상급조직이 안고 있는 관료주의를 불식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하다. 즉 관료주의와 그 대안으로서의 참여가 발생할 수 있는 조직적 위상이 바로 현장조직인 것이다. 특히 단체교섭 과정에서 현장조직은 조합원의 직접적인 관심을 단체교섭 안건에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참여와 동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지구화 시대에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생산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개별 경영자에 대한 대응전략의 구축은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산별 중앙교섭구조와 더불어 하부(지역 및 기업) 차원의 교섭구조를 어떻게 배치하며, 이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노조의 관심사항이 된다.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교섭·체결권이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 노조로 이동하면서 단체교섭에 대한 … 지부의 무관심이 커지는 반면 개별사업장의 문제를 본조가 해결해 주기 바라는 주문이 늘고 있다"(공광규, 2002: 44). 즉 교섭의 중심이 기업별에서 산업별로 옮아감에 따라 지부의 관심은 줄어드는 반면, 본조의 중심성이 강화되고 자원이 본조로 집중됨에 따라 본조에 대한 의존성은 증대된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산업별 교섭으로의 이행은 이에 걸맞은 본조와 지부 사이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조정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 상호결합적 노동조합 조직구조를 주장한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박태주, 2001 참고).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과 중앙을 대립과 제로섬(zero sum)의 관점에서 파악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장 강화와 중앙 강화가 동시병행으로 진행할 방안을 모색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7. 결론

서구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단체교섭구조가 광범위하게 분권화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우리나라에서는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추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노조의 약화와 더불어 교섭의 분권화를 선호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별 교섭체제가 인이 박힐 만큼 노조활동을 지배해왔으며, 그 결과 임금격차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가로막을 만큼 심각한 실정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 교섭 및 쟁의권이 기득권으로 바뀌면서 특히 거대 노조를 중심으로 교섭구조의 무게중심이 변화하는 데 저항력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정부 및 사용자 등 여타의 사회적 행위자들이 산업별 교섭구조에 대한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산업별 교섭은 엄격히 말하면 하부(지역 및 기업)차원의 교섭구조를 인정하면서 전국중앙교섭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권화된 집중화'(decentralized centralization)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서구의 단체교섭 구조가 분권화 되면서 파편화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부분 중앙의 통제와 조정 하에서 이루어지는 '집중화된 분권화'(centralized decentralization)의 과정을 밟는다는 점에서 커다란 편차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서로 반대편의 출발점에서 중앙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교섭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중앙-지부사이의 통제와 조정을 통해 '하나의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주요 역할의 하나가 단체교섭이고 기존의 기업별 교섭구조가 노동조합의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많은 제약조건을 드러내고 있다면 결국 산업별 교섭을 실현하기 위한 전선의 형성이야말로 현단계 노동운동의 전술적 중심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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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