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이후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

노동사회

19세기 중반 이후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

admin 0 7,976 2013.05.08 11:30

 


sooya_01%20%281%29.jpg1848~1849년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이 패배하자,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정치적 반동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력 발전을 기초로 성장세를 과시했죠. 한편, 여러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 수준이 달랐지만, 1850~1860년대 들어 세계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여러 나라들의 경제가 서로 연관되고 규정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단일 체계로 바뀐 것이죠. 

산업혁명이 영국에서는 1840년대에 완료되었으나,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는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들어와서야 큰 진전을 보입니다. 또 미국의 경우, 1860년대 들어 산업혁명이 절정 국면을 맞았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러시아에서도 산업혁명이 급속하게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점차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고요.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금은 유럽 노동자의 해외 이주를 한층 더 자극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한 나라 안에서 진행되는 주민이동은 물론 해외 이주를 촉진하여 노동인구의 지역적?민족적 폐쇄성을 허물어뜨렸습니다. 

1850~1860년대에 걸쳐 자본주의의 발전과 계급구조의 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부르주아지는 이전에 자신들의 적대자였던 반봉건 귀족, 절대주의 관료, 그리고 군벌과 더불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여 지난날의 동맹자였던 민중세력을 적대시 했습니다. 

한편, 산업 성장과 농업부문에서 진행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양적 증대를 가져왔고, 이런 상황에서 산업노동자 계층은 매우 급속히 증가했죠. 더욱이 새로운 산업부문에 세워진 대기업들은 노동자계급의 집중과 결합을 촉진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바탕으로 1848~1849년 유럽혁명 패배 결과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무력감은 1850년대 중반 들어 노동자계급의 사회적?정치적 적극성이 고양됨에 따라 극복되어 갑니다. 1850~1860년대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은 노동자들을 자립적인 세력으로 이끌었으며, 노동자계급의 경제상태와 생활조건은 노동자들이 공통적인 이익을 지니고 일국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공통의 운명과 투쟁을 갖게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었죠. 그리하여 1850년대 말부터 고양되기 시작한 민주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성장?발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1.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부활
 
sooya_02%20%281%29.jpg차티즘 운동 실패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나,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상태 악화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고양을 촉진했습니다. 차티즘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185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1853년에 일어난 프레스톤 파업을 비롯해 파업투쟁이 산발적으로 지속되었어요.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력적이지 못했는데, 1857년부터 임금인하 반대와 노동일 단축을 요구하는 파업 투쟁이 고조되면서 노동운동이 다시 고양되죠. 그 대표적인 투쟁이 9시간 노동일을 요구한 건축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1858년 6월∼1859년 7월)입니다. 건축 노동자들의 파업은 1861년 봄에도 결행되었는데, 동일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치된 행동과 연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죠.

노동자 투쟁이 고양되면서 노동조합도 확대되고, 강화됩니다. 1860년대 초 조직 노동자 수는 60만 이었는데, 1867년에는 80만으로 증가했죠. 또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이 나타났습니다. 1851년에 결성된 '합동기계공 노동조합'이 그 전형이었죠. 당시 차티즘 운동의 주축이었던 수공업 직인들은 점점 몰락하고, 그 자리에 새롭게 등장한 근대 공업의 숙련노동자들이 소규모 지방 클럽이나 불안정한 초기의 업종별 노조 대신, 전국 규모의 강고한 직업별 노조(craft union)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이 가진 특징은 종래의 업종별 노조형태와 달리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조합으로, 노조가 보험공제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한 것이었죠. 이것은 직업보호 단체 기능과 보험사 기능을 합쳐 재정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은 사회 질서의 변혁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긍정하면서 특정 직종의 노동력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임금·노동조건의 개선을 꾀하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숙련공으로 제한하여 고액의 조합비를 거두고 직업적인 상근 간부를 배치했으며, 파업 투쟁보다는 조합원들에 대한 공제활동에 주력했죠. 합동기계공노조의 규약은 새로이 조직된 노조들의 모델이 되었고, 전부터 있었던 조직들 역시 새 노조의 특징을 차츰 수용했어요.

한편, 1850년대 말과 1860년대 초에는 대도시들에서 노동조합 지역연합이 출현했는데, 1860년 7월에 '런던 노동조합회의'(London Trades Council)의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처음에는 건축, 의류, 신발제조 노조가 결합했고, 나중에는 기계공과 다른 노동자의 노조들을 묶어 런던 노동자의 공통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868년에는 노동조합 전국중앙조직인 영국노동조합회의(British Trades Union Congress)가 결성되었습니다. 이 조직은 1834년 결성된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이 1850년 해체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전국중앙조직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시기 영국 노동조합운동은 경제적 조합주의를 채택하여 개량주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어요. 1860년대 중반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의 확대로 영국 자본주의가 번영의 절정기를 맞게된 상황에서, 영국 노동조합운동이 차티즘 운동 실패에 따른 여러 가지 불리한 영향들 때문에 우경화되기 시작했죠. 봉기와 혁명의 전망은 사라지고, 계급 협조의 관념이 그것을 대신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오랜 슬로건이었던 '공정한 노동일에 대한 공정한 임금'은 자본주의를 온순하게 받아들이는 상징이 되었고, 그리하여 영국 노동운동의 휴지기(休止期)가 시작되었습니다. 1860년대 노동조합운동의 특징은 숙련 노동자 중심의 폐쇄성을 띤 직능노조 형태를 취했으며, '준타'(Junta)로 불린 직업별 노조 지도자들이 노조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 초기 프랑스 노동조합운동

프랑스 노동자계급운동의 새로운 고양은 파업투쟁의 격화와 노동자 조직의 증대,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과 폐쇄성의 극복으로 나타납니다. 1857∼1858년의 공황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죠. 단결금지법이 시행되었는데도 임금 삭감에 반대한 파업의 물결이 세차게 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862년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호의를 보이려고 런던에서 개최하는 세계박람회에 55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대표단은 런던노동조합회의를 방문하고 폴란드 혁명을 지지하기 위해 1863년 7월22일 합동시위를 벌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영국 노동운동을 둘러 본 대표단은 귀국해서 노동조합 결성의 중요성을 선전하는 한편, 노조 조직화를 시도했어요.

1864년에는 '60인 선언'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활동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같은 해 나폴레옹 3세는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1701년에 제정된 르 샤프리에 법을 완화했으며, 이를 계기로 '묵인은 되었지만 합법화되지 않은' 노조들의 활동이 계속 발전했습니다.

1860년대 하반기 들어 여러 직종에 걸친 노동조합이 지역별로 조직되었어요. 1867년 파리에서 고급가구 제조공 노조, 신발제조공 노조, 인쇄공 노조, 금은세공 노조 등이 결성되었고, 1868년 기계공 노조, 피혁제조공 노조가 조직되었죠. 1869년에는 제빵공 노조, 건축도장공 노조, 사무노동자 노조 등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노조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조직된 직종별 또는 직능별 노조였고, 당시까지는 금속산업이나 광산업, 그리고 화학산업 등에서는 노조가 결성되지 않았습니다.

지역별로 조직된 직능 형태의 노조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노조운동의 통일과 연합을 추진했는데, 그 하나가 직업별 노조의 '전국연맹' 형성이었습니다. 1870년에 결성된 '프랑스 모자 제조공 노동조합'이 그런 사례였죠. 다른 하나는 동일 지역에 있는 여러 노조들 사이의 연합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직종' 노동자를 결합한 것인데, 1868년에 결성된 '파리 노동조합연합 협의회'가 좋은 예입니다. 이것은 노동자의 직업적 연대를 넘어선 계급적 연대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노동조합운동이 설정한 궁극 목표는 '임금제도가 철폐된 새로운 사회질서 형성으로 노동자의 전면 해방을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

3. 산업자본주의의 전개와 독일 노동운동의 고양

sooya_03%20%281%29.jpg1848년 혁명의 패배와 그에 따른 반동기가 도래하면서, 노동운동의 발전은 주춤거리게 되었죠. 프로이센과 독일 연방 국가들의 융커를 비롯한 반동지배층은 노동자들의 모든 이익대표기관과 조직을 엄격히 통제·금지하는 법률을 잇따라 공포했습니다. 융커란 근대 독일, 특히 동프로이센의 보수적인 토지 귀족층을 말합니다. 이들은 토지 소유에 따른 특권(노비 조례, 단결금지령에 관한 권리, 귀족 세습 재산제도에 대한 권리 등)을 유지했고, 영주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농업 경영자, 사관, 관료가 되었으며, 의회에서 우세한 세력을 형성하여 프로이센 행정기구의 중추를 이루는 중요 직책을 독점했죠.

1854년 7월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는 특별결의로서 독일연방에 속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노조 조직 해산 명령을 내리도록 하는 의무를 지웠습니다. 이에 따라 1848년 9월 설립된 '전독일 노동자 우애회'를 비롯한 노동자 조직이 해산되었습니다. '전독일 노동자 우애회'는 슈테판 보른(1824∼1898)이 주도한 노동자 조직으로 1850년에 250개 지방조직을 설치해 공제조합, 노동조합, 정치단체로서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조직의 구체적 목표는 보통선거 실시에 바탕을 둔 의회민주국가, 노동자 단결권 보장, 생산과 소비를 위한 협동조합 설치, 취업 소개, 진보적 건강관리기구 설치, 환자 보조금과 사망자 보조금을 위한 기구의 확산 등이었죠. 

독일 영주국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러 형태의 조직 활동과 파업투쟁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1857년 공황기에는 여러 지방에서 파업이 일어났죠. 광부, 직물공, 라사공, 인쇄공, 철도원 및 항만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요구들을 내걸었지만, 실제상 이 파업들은 반노동자 법률에 대한 투쟁이었죠. 

1850년대 말 독일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중화학공업이 자리를 잡게 되고, 철도망이 급속하게 연장되었어요. 드디어 독일은 봉건적 농업국가에서 탈피하여 자본주의 공업국가로 발돋움합니다. 정치권력은 융커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우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죠. 

노동자계급 또한 급속히 증대했어요. 지금까지 노동자계급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수공업 직인과 가내공업 노동자 대신,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수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핵심층이 됩니다. 노동자계급의 증대와 그 구성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노동·생활조건은 개선되지 않았고, 착취와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의 지위 향상과 권리 확대를 위한 조직화와 투쟁을 추진했고, 그 결과 1862년 라이프치히 인쇄공 노조, 1863년에는 베를린 인쇄공 노조와 기계공 노조 등이 결성됩니다. 

1863년 5월에는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지도 아래 정치단체인 '전(全)독일노동자협회'(ADAV)가 조직됩니다. 라살레는 국가 지원을 받는 경제적 협동조합을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노동자가 선거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협회는 정관에서 조직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보통·평등·직접 선거를 통해 독일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충분히 대변하고, 사회에서 계급 대립을 진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독일노동자연맹'을 창설하며, 독일 연방국에 하나의 연합을 이룩한다. 조직의 목표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특히 직접·보통·평등 선거를 회복함으로써 이뤄진다. 

라살레는 자본주의제도 하에서는 '임금 철칙'이 작용하여 노동조합운동은 불가피하게 임금을 생존수준 이하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임금 철칙' 이란 임금이 상승하면 생활이 개선되어 노동자 수는 증대하지만, 임금 기금은 일정하기 때문에 노동자수의 증대에 비례하여 임금은 저하되어 결국 임금은 노동자가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노조나 파업은 무익하며, 시간과 정력 낭비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에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라살레는 1868년 사망했고, 같은 해 9월 라살레 파는 베를린에서 노동자대회를 소집하여 노조의 성격을 띤 '노동자동맹'을 결성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조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권위를 획득하지는 못했어요. 

한편, 맑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은 1867년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계급투쟁의 학교'로 발전시키려 했으며, 1869년 사회민주노동당을 결성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정치가인 힐슈와 듄커도 자유주의적 '진보당' 계열의 노동조합 결성에 착수했죠. 이들 노동조직들은 1875년 이후 통합을 추진합니다. 

4. 미국,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초기 노동조합운동

sooya_04%20%281%29.jpg미국 자본주의는 영국 식민지 지배 하에서 시작되어 1861∼1865년에 걸친 남북전쟁을 치른 뒤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도 노예반란, 농민과 노동자의 저항과 파업이 발생했으나, 독립전쟁 이후 산업 발전과 함께 본격적인 투쟁이 전개되었죠. 1785년 뉴욕 제화공 파업, 1786년 필라델피아 인쇄공 파업 등이 주목되는 사례이며, 1790년대 초에 일정한 형식을 갖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1830년대 들어 조직활동과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836년까지 지방 노동평의회가 13개 결성되었고, 1833∼1837년에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173건 발생했습니다. 1835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최초의 총파업이 일어났어요.

노동조합은 1854년과 1857년 경제공황으로 크게 위축된 가운데 전쟁을 맞이했고, 그런 가운데서도 노동·생활조건의 악화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계속 되었습니다. 1866년에는 최초의 전국적 노동조직인 '전국노동연맹'이 결성되었고, 1869년에는 재단사 출신인 우리아 스티븐스의 주도로 노동조합원에 대한 고용주의 탄압을 피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결합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체, '노동기사단'이 조직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진행시켰던 독일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국가로 분열된 채,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1848∼1849년에 일어난 유럽 혁명은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끼쳐, 이탈리아 반도가 반란으로 휩싸였죠. 1870년 이후 이탈리아는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도 하에 독립 국가를 수립합니다. 

노동자계급은 아직 독자적인 정치 역량과 조직, 그리고 지도성을 갖지 못했고, 소부르주아적 급진파인 가리발디나 마치니를 추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동자계급은 조직화와 투쟁을 추진했죠. 1848년 인쇄공 노조를 시발로 노조와 상호부조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노동자들의 결사를 막기 위해 1859년 단결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고, 이 법률은 1890년에야 폐지됩니다. 

단결 금지가 제도적으로 시행되던 1853년 지방 노동자회의가 열렸고, 1861년에는 전국 노동자회의가 개최되기도 했으며, 1860년대 이후 연평균 30여 건의 파업이 발생했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1840년대 중반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파업이 발생했으나, 1848년 혁명 실패 후 반동의 지배가 도래하면서 노동운동은 정체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1867년과 1870년 오스트리아 노동법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노조 결성을 인정했고, 그 후 30년 동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산업 중심지에 분산되어 노동자조직이 결성되어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스페인과 벨기에 등에서는 1840년대 초반 노동자조직이 결성되었고,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는 노동자 상호부조단체가 조직되었고 파업도 가끔 발생했지만, 1864년까지는 본격적인 노조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음호에 계속).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