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1년을 돌아본다

노동사회

산별노조 1년을 돌아본다

admin 0 3,087 2013.05.08 11:27

민주노총 최대 조직인 금속산업연맹의 산별 전환 실험은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우선 연맹에 잔류한 노동조합이 산별노조로 합류할 가능성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둘째 금속노조의 활동이 '이전에' 제기되었던 비판과 우려에 얼마나 충실하게 응답하고 있는가, 또 '이전과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산별노조 건설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 간다는 점에서 연맹에 잔류하고 있는 대공장 노조의 합류 가능성은 시기 문제라 해도 좋을 것이다.1)(주1 : 민주노총 출범 당시 2개 노조(전교조, 강사노조) 1만 명에 불과했던 '산별노조' 조합원은 2001년 12월 기준 40%로 증가했다. 대공장 노조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줄어들 수 있으나, 조직형태 변경의 추세로 보면 분명히 의미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별 교섭을 넘거나 보완하는 교섭 형태에 대한 검토가 폭넓게 이뤄지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노조가 올 안으로 조직형태 변경을 위한 총회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산별 전환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금속노조 사업에 대한 평가와 이에 기초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결된다.2)(주2: 이 전망은 금속노조가 확대되면서 적지 않게 변화할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지회 규모와 자동차·조선 등 전략사업장 노조 규모의 차이, 비슷한 규모라 하더라도 조직력과 투쟁력의 차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현장조직'의 입장과 태도 등이 어떤 형태로든 확대된 금속노조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각 지회별 조직·투쟁력의 차이로 인한 방침 이행에서의 편차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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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교섭단이 사용자 대표단과 공동교섭을 하고 있다.   ▷ 출처:금속노조 ]

실망스런 출발, 그러나…

금속노조 창립 초기만 해도 '중소사업장 노조의 모임체인 단일 노조'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17만 명 중 3만 명 결의, 자동차·조선 등 핵심 사업장 노7조 미참여, 창립대회 전날까지도 구성 못한 임원진 등 민주노총 최대 산별연맹의 대의원대회 결의에 따라 출범하는 '산별노조'의 창립대회라 하기에는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이것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산별노조의 상과 연맹 내부의 정파들간의 '비타협적' 주장이 겹치면서 증폭된 소모적인 논쟁3)(주3: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산별노조 건설은 정답 또는 원칙의 문제로 접근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것만이 원칙이라고 재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기업별 노조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 한 산별노조를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의 당연한 결과였다. 기대감과 우려가 뒤섞인 채, 논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의원'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고, 그로 인한 '오기'가 교차하면서 금속노조는 출범했다. 

그러나 창립대회 후 조직이 채 정비되기도 전인 2월16일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통보로 촉발된 민주노총 2·28 총파업 지침은 향후 금속노조의 활동을 규정짓는 기본 틀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2·28 투쟁에는 총 119개 (사업장) 지회 중 파업 38개, 총회 2개, 교육 13개, 기타 37개로 90개 지회가 참여했다. 이에 대한 중앙집행위원회(2001. 3. 16)의 평가는 '파업투쟁에 대한 참여가 충분하지 못했으며, 그 원인으로 충분한 내부 논의 없이 연맹의 긴급지침을 수행했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4시간 파업 방침을 수행하지 못한 지회는 사유서를 제출한다'는 결정이었다. 파업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사유서를 제출하라? 기업별 노조체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결정된 방침은 반드시 수행한다는 원칙이 금속노조 활동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금속노조의 변화는 '사유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조직과 질적으로 달라진 금속노조의 변화는 교섭·투쟁과 조직운영·제도 등 크게 2개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강화된 교섭력과 투쟁력 

먼저 교섭과 투쟁의 측면은 2001년과 2002년 임단투의 변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규약상 교섭체결권은 위원장에게 있고, 필요시 교섭 단위를 구성해 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이다. 규약에 따라 지회의 교섭 결과는 지부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원장 승인으로 조합원 찬반투표에 회부하며, 교섭대표 권한은 지부임원까지만 위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형식상 지회장에게는 교섭 권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총회 회부 승인권을 본조가 갖게 되었다. 이는 상반기 투쟁을 지부 중심으로 진행하고, 지역별로 편제된 조직체계를 투쟁 과정에서 빠르게 집중하고,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교섭 방침과 함께 핵심 요구로 제출한 ▲ 단체협약 전문에 금속노조 명기, ▲ 2002년 집단교섭 합의, ▲ 조합창립일 수정(2월 8일), 단협 유효기간 수정(2003년 3월) 중에서 최소한 앞의 2가지가 합의되지 않으면 조합원 찬반투표에 회부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러한 방침은 엄격하게 지켜져 임금은 제시되었으나, 전문과 집단교섭의 내용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결이 늦어진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그리고 3월 준비기, 4월 교섭기를 거쳐 6월12일 총파업 일정을 정점으로 입안된 투쟁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 어떤 사용자는 어차피 금속노조는 6월12일 '무조건' 파업할 것 아니냐면서 그때까지 회사안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할 정도였다. 다만 지부별로 집단교섭을 추진키로 한 방침은 준비의 미비로 경주지부를 전략 지부로 선정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4)(주4: 경주지부는 금속노조 출범 전에 이미 집단교섭을 진행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상반기 투쟁의 성과는 무엇보다도 '투쟁을 통해' 일사불란한 방침 수행과 지부의 중심성이 강화되었다는 점과 함께 조합원의 자신감 획득이었다. 조합원들의 상반기 투쟁 평가는 한마디로 '산별노조다운 투쟁을 했다'는 것이었다. 

2001년 투쟁 성과를 받아 2002년은 사업장 협약을 넘어 산별협약의 토대가 될 '기본협약' 요구를 제출하고 교섭단위를 지부로 나눠 집단교섭을 추진하며, 기본협약 타결 후 임금교섭에 돌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2002년 집단교섭을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한 곳은 대략 75개로 집계되었다). 10여 차례의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교섭 자체를 거부하던 사용자들도 교섭석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기본협약을 전면 수용하는 사용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수정안을 제출하는 사용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교섭권 위임 전술 운용과 2001년 교섭형태와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5)(주5: 그러나 집단교섭의 진행과정과 성사요인에 대해서는 세심한 평가를 필요로 한다. 대체로 중소사업장, 동일지역, 동일업종의 경우 집단교섭에 응하는 경향이 크고, 지역 또는 업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업장의 경우 집단교섭을 거부하는 정도가 높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조직구성이 현 상태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공장 노조의 합류가 예상되는 상태에서 향후 교섭형태에 대한 전망 또한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동위원회의 조정이 교섭단위 또는 기본협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례가 있다던가, 쟁의행위 투표를 지회가 아닌 교섭단위별로 실시함에 따라 작게는 전술운용의 확대, 넓게는 노사관계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6)

(주6: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조직 내부의 문제를 제외하고 노사가 대치하는 교섭과 투쟁의 영역에서는 기업별 체제가 존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섭주체, 협약적용, 쟁의행위투표 등이 사업장의 테두리로 제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섭단위의 확대는 각 영역에서 집단성을 확대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집단교섭을 할 경우 교섭군 별로 투개표를 하고 행정관청 신고 시에도 사업장(지회)별 결과를 첨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투쟁과 관련해서는 2·28 투쟁에서도 언급했지만, 투쟁 때마다 결정된 방침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노력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민주노총이나 연맹의 방침으로 결정된 투쟁은 물론 경주 세광공업 위장폐업과 정리해고시 6개월 동안 조합원 1인당 1만원 모금지원, 충남 세원테크 용역깡패 투입시 충남지부 2000여 조합원 파업 등 지역별로 공동투쟁의 모범이 세워지고 있다. 교섭과 투쟁에서의 집중성 강화야말로 과거와는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조직운영 및 제도의 발전

교섭과 투쟁 영역의 변화 못지 않게 금속노조가 가진 단일조직의 성격을 강화시킨 영역이 바로 조직운영과 관련된 제도 영역이었다. 간단하게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예산과 사업의 집중. 조합비는 통상임금의 1%를 본조로 직접 납부한다.7)(주7: 현재 60여 개 사업장이 본조 통장으로 직접 납부하고 있다. 조합비가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아 통상임금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따로 산정해야 하는 문제와 몇 가지 기술적 문제 때문에 아직 그 비율은 낮지만, 빠른 시일 안에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본조는 여기서 10%의 투쟁기금을 제하고 본조-지부-지회에 3:2:5로 배분해 '교부'한다. 지회 입장에서는 과거와 비교할 때 45%의 조합비만 갖고 사업해야 한다.8)(주8: 5,000명 미만의 지회는 대체로 통상임금 1% 이상의 조합비를 공제하고 있었고, 규약 부칙에는 기존의 조합비를 낮추지 안 돼, 상회하는 부분은 해당 지부 또는 지회의 의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따라서 실제 지회의 가용 예산은 이 비율보다는 높다.) 

따라서 조합 전체적으로 예산의 집중과 배분 비율에 따른 사업 내용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래서 조직 내부의 토론을 거쳐 예산수립지침을 마련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천차만별이던 조합비 집행을 통일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집중과 효율적 배분이 이루어지는 대표적 영역이 투쟁기금 집행과 교육 조사사업이다. 지회가 일정기간 파업을 할 경우, 노조의 방침으로 상경투쟁을 할 경우 지회에 일정금액 또는 실비로 투쟁기금에서 지원이 된다. 이에 따라 중소규모 지회의 집회 참가율이 증가했고, 특정 지회에 대한 투쟁 지원도 전국 범위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광양의 삼화산업, 구미의 두산전자 지원투쟁시 평일에 전국 각 지부에서 오육백 간부들이 참가한 것이 좋은 사례다. 조사사업 중 특히 요구안 마련과 평가를 위한 조사사업은 본조가 주관해 전조합원을 대상으로 일괄 실시한다. 교육은 정해진 주제에 따라 기획교육을 실시하고, 전 간부를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의무교육은 불참할 경우 보충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2002년에는 9월까지 전 간부를 대상으로 8개 강좌를 묶어 제1기 금속노동자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진행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본조 예산으로 충당된다. 

또 한편으로는 조직운영과 제도의 중앙집중화가 이루어졌다. 기존 기업별 노조의 규약은 규칙으로 변경해 금속노조 규약과 각종 규정 다음으로 적용순위가 바뀌었으며, 본조와 지부 임원은 조합원 직선에 의해 선출되었다. 물론 선거관리는 중앙선관위의 책임 하에 지부 선관위가 집행한다. 또한 지회에 있던 징계권은 지부 운영위원회로 이관해 상향 이동했다.

이처럼 권한과 예산의 집중은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자리잡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금속노조의 활동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구성원들의 적극적 수행의지가 없는 경우 형식적 제도적 집중의 장점은 발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직발전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금속노조 출범 이후 중앙집행위원회가 유회된 적이 두 번 있다. 회의 시간 30분이 경과했는데 성원이 안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회 선언을 하고 10분이 지나서 성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 회의시간이 유난히 길어졌다. 결정하면 집행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돌아봐야 할 것도 따져야 할 것도 많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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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포항지부가 창립 1주년 행사를 열고 있다.   ▷ 출처:금속노조 ]

기업별 분열을 극복할 가능성

금속노조 1년이 남긴 긍정적 성과는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쟁점에 대한 해답이 금속노조의 활동 과정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과 기업별 노조의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형식상 갖춰진 집중성과 함께 이러한 것을 함께 지켜나가고자 하는 금속노조 간부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금속노조 출범 이전에 많이 제기되었던 관료화, 현장공동화, 권한집중의 폐해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본조, 지부임원의 직접선거를 실시하고 있으며, 한번의 참여로 그치기 쉬운 선거제도의 단점을 극복하고 조합원 중심의 사업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본조 임원과 지부 임원이 정기적으로 현장순회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매월 지부대의원 회의(간담회)를 개최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이것만으로 제기되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으며 해소를 넘어 오히려 적극적 대안의 마련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부역량의 강화와 집중화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금속노조의 방침은 어느 정도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연맹-산하 노조 사이에 형성되는 것과는 달리 금속노조의 전선이 단일전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130여 개 지회, 15개 지부의 전선이 전체 전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부를 책임지고 있으면서 전체 방침 결정에 참여하는 지부장(지부간부)의 역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9) 

(주9: 이 때문에 금속노조 방침을 둘러싼 논쟁은 본조-지부를 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본조 집행부와 지부 집행부의 상황인식은 전국을 중심으로 보는가, 아니면 지부를 중심으로 보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하나로 되기 때문에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와 같은 정도의 역량으로는 단일한 방침의 결정과정에 개입하고, 방침을 설득하는 한편 조직화하는 사업이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간부역량 강화·자원 집중 절실

또한 하나의 현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업별 노조와는 달리 전국 범위의 조직이 되면서 본조-지부-지회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상반기 평가와 관련해 금속노조 사업 중 잘한 것과 못한 것 두 가지를 지적하라는 물음에 조합원들은 잘한 것 1순위부터 3순위까지를 '투쟁 항목'으로 꼽고 있다. 반면 요구와 방침, 각종 결정사항, 본조와 각 지부의 활동이나 투쟁소식 등을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사업을 가장 못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2001년 상반기 투쟁평가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보고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 전 중앙간부들이 잘한 영역 1순위로 꼽은 것은 교육선전 사업이었다. 예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업을 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하나의 조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합원의 직접선거 참여, 본조와 지부임원의 현장순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선전 또한 정보전달에서 일방적 성격을 쉽게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방침의 '경직성'은 잘못하면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이해 또는 변질되기 쉽다. 따라서 제기되는 우려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간부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활동 영역이 전국 단위로 확대되는 산별노조에서는 기왕에 있어서 배치하고 활용하는 역량이 아니라 '만들어야 가능한' 역량을 요구한다. 그것도 지금까지보다는 질적으로 한 단계 우수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본조와 현장을 연결하는 지부와 지회 간부들의 '오기, 의지, 열의, 헌신성'이 없었으면 금속노조가 이렇게 빨리 안정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부 역량의 집중이야말로 지난 1년 동안 금속노조의 자원동원과 집중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이며, 아울러 금속노조의 전망을 좌우할 핵심적 요소이기도 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