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를 돌아본다

노동사회

세계화를 돌아본다

admin 0 2,397 2013.05.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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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폴 스트리트(Paul Street)가 『ZET Magazine』에 2000년 2월 쓴 「Capitalism and Democracy “Don??t Mix Very Well??」을 번역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병존하기 어려운데, 세계화가 이런 모순을 더 부추긴다는 내용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미국 정치를 일종의 “금권정치”로 보는 필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쉽게 양립하기 어려우며 세계화는 이런 긴장을 강화한다고 본다. -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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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매들린 올브라이트, 토니 블레어, 뉴욕타임스 외교정책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만, 그리고 아무도 뽑아주지 않은 세계무역기구의 관리들은 세계화가 역사의 동전의 양면, 곧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고전적인 냉전 체제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 섞인 현상들 사이의 기본 차이와 근본 갈등을 인정하기 위해서 굳이 맑스주의자나 여러 형태의 급진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자유주의 경제학자 레스터 써로의 말을 듣기만 해도 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민주주와 자본주의는 권력의 적절한 분배에 대한 매우 다른 신념체계를 갖고 있다. 한쪽은 정치적 권력의 완전히 평등한 분배, 곧 '1인 1표'를 신봉한다. 반면 다른 한쪽은 부적합한 자를 퇴출해 절멸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적합한 자의 의무라고 믿는다. '적자생존'과 구매력의 불균등은 자본주의적 효율성의 모든 것이다. 개별 이윤이 먼저고 기업들이 효율적이면 부자가 된다. 이를 가장 엄격하게 표현한다면, 자본주의는 노예제와 완벽히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

비슷한 어조로, 시카고트리뷴의 경제기자 R.C. 롱워스(그 역시 급진주의가 아니다)는 "민주주와 자본주의의 투쟁"이 "글로벌 경제에 대한 논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한다. 롱워스는 주장한다. "이론적으로 양자는 정말 분리되지 않고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가치는 법 앞에 평등, 시민이 자신과 자기 인생을 결정할 권리, 공정과 평등에 바탕한 문명의 창조이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가치는 불평등, 자본 공급자를 위한 이윤,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 순이익이다."

'달러 민주주의' 

street_01.jpg이 문제에 대한 써로와 롱워스의 포괄적인 공식화에는 급진적 시각에서 볼 때 비판할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쿠바를 "제외하곤", 남미의 모든 나라들이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클린턴 행정부가 선언할 때는 아니라는 측면에서 써로와 롱워스는 솔직하고 올바르다. 존경할 만한 우익 연구소인 '프리덤하우스'조차 (멕시코·브라질·엘살바도르·과테말라·아이티·파라과이·콜롬비아·페루·에콰도르를 포함해) 많은 남미 국가들을 단지 자본주의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로 지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는 칠레에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데, 이곳에서도 많은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와 병행하는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서구식 결합은 유럽 봉건제의 위기와 17세기와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부르주아 대혁명에서 기원했다. 그것은 냉전과 함께 그 정점에 도달했다. 냉전 당시 미국은,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자유 세계" 자본주의와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공산주의적" 전체주의 사이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세계적 분할과 투쟁을 선전했다. 냉전 독트린은 세계의 수많은 친자본주의적/친세계화 성향의 독재정권들에 대한 미국의 후원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호했다. 또한 제1세계 국가들의 진정한 본질 역시 은폐시켰다. 겉으로 드러난 민주적 정치과정과 전반적으로 강력한 시민적 자유의 밑바닥에서, 이 국가들은 집중화한 위계적 기업 권력과 거대한 금전적 부의 명령에 근본적으로 종속돼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탈냉전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지속성은 (냉전시대 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민주적 가치들"의 전국적 고향이라고 하는 곳에서 특히 분명하다.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국제 공동체"(곧 세계의 주요 산업국가)가 1999년 4월 세르비아와 이라크와 같은 "악당" 국가들의 내부 문제에 기꺼이 "개입"했던 이유를 설명하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소수의 통치에 기반한 정권은 정당성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블레어는 그의 형님 격인 상대방인 미국을 "소수의" 통치에 기반한 "정권"으로 묘사하는 것은 꿈 꿔보지 못했을 테지만, 미국의 개혁주의자들은 미국 선거를 사실상의 "돈판"(wealth primaries)으로 묘사하며 대중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상당한 재정이 없거나, 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미국 후보들은 돈과 미디어가 지배하는 선거 캠페인에서 제대로 알려지는 것을 대체로 포기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보는 것처럼, "1인 1표"의 민주적 이상은 "달러 민주주의"라는 냉혹한 현실에 의해 부정된다. 후보 선택과 정책결정 과정은 우선적으로 미국 부의 73.2%를 소유하는 상위 10%에 속한다.

지난해 7월 주류언론의 지식인인 윌리엄 파프가 예외적으로 솔직하게 인정했듯이, 이것은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신경을 끄는 것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파프는 시카고트리뷴에 이렇게 썼다. "미국은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차라리 금권정치의 나라가 돼 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돈이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변형은 아마도 역전 불가능하다." 미국 정치생활의 이런 실상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은, 10개미만의 거대 기업들이 전자·인쇄 미디어의 50% 이상을 통제하는 체제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미국의 개혁주의자들이 2000년 미국 대선이 "공개적인 정치과정"이 될 수 있도록 국제적 검사와 검증을 해줄 것을 UN에 호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자본

이 모든 것들로도 모자란 듯, 세계로 확장돼 가는 자본주의와 관련해 미국 엘리트들이 사용하는 "민주적"이라는 용어에는 사악한 점이 묻어 있다. 동시대 자본주의의 이런저런 면들 가운데 정확히 세계화 추세보다 덜 민주적인 것은 거의 없다. 에드워드 S. 허먼이 주목하듯이,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세계화는 세계 민중들의 민주적 선택이 아니었다. 이 과정은 기업의 목적을 위해, 기업의 전략과 전술에 의해, 기업이 추동해 온 것이다." 연관된 "기업 목적" 목록의 맨 위에는 국민 주권의 약화가 있다. 자본은 세계화를 통해 대중적 규제 및 정부 규제를 회피·파괴·배제하고, 노동의 힘에 대한 반격을 추구한다.

이 현상은 탈냉전 시대의 주류 언론에서도 분명히 인정되고 있는 바다. 겉으로 드러난 반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적들이 없는 탈냉전 시대는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솔직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1987년 초 시카고트리뷴 기자인 윌리엄 니어커크는 한 증권회사 수석경제학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조용히 보도했다. "날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세계적인 자본 무리가 존재한다. 이것은 정부 정책에 대해 날마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큰 나라조차 길들이며 이 나라들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향하도록 강제한다."

니어커크의 같은 회사 동료인 R. C. 롱워스는 이듬해 똑같은 솔직함을 보였다. "이제 사용자는 뒤에 남는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 일자리를 아시아로 옮길 필요가 없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사용자가 그렇게(일자리를 해외로 옮기는 것 - 역자)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능성이 현실을 창조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체 방크의 수석경제학자인) 노르베르트 발터는 이렇게 말했다. 슈튜트가르트에서 다임러 벤츠 매니저의 한 명인 위르겐 뮐러는, 다임러가 미국 앨러배마주 투스칼루사 공장을 포함해 해외에 여러 공장을 연 뒤에, 그가 관할하는 노동자들이 이전에는 금기시하던 변화를 얼마나 신속히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나에게 얘기했다. '당신은 앨라배마주 투스칼루사 공장의 예가 우리 노동자들과 토론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믿지 못할 것이다'고 그가 말했다."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마컨드에 따르면, "세계화라는 수사는 이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 왜 탈규제인가? 글로벌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왜 세금은 낮아야 하고 공적 서비스는 허약해야 하나? 금융시장의 글로벌화가 세금 인상을 배제시키기 때문이다. 왜 실질임금이 저하하고 사회 보호가 축소돼야 하나? 더 적은 임금에라도 일할 수 있다면 행복해하는 수백 만 명의 굶주린 아시아인들과 우리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현재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세계자본주의 핵심 국가들의 노동자와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까지 구조적 위협이나 새로운 위협을 낳고 있느냐를 둘러싸고 급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진지한 좌파 분석가라면 엘리트적인 자본계급 분파들의 손아귀에서 세계화 담론이 강력한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게 구조-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느냐는 문제를 넘어, 광범위하게 퍼진 세계화에 대한 잇따른 찬양과 숙명론적 예찬은 한때 냉전이 수행했던, 일국에서 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일국에서 불평등과 억압을 지속시키고 강화시키는 국제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경영자들이 독재자를 좋아하는 이유

street_02.jpg이 모든 것들은, "탈냉전 시대"의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민주주의, 무역, 투자, 임금 결정, 미국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매력적인 연구 성과들을 이해하기 위한 훌륭한 배경을 제공한다. 세계화의 영향을 측정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연관을 맺고 있는 연구소인 '신경제정보서비스'(NEIS)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자본은 독재국가가 통제하는 지구상의 영토에 돌아다니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의 세계무역과 투자에 관한 통계와, (우익 연구소인 - 역자) 프리덤하우스가 전세계 국민국가들을 "자유", "부분 자유", "비자유"로 비교 등급 매긴 것을 교차 분석한 결과, "개발도상"(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미국 제조업 투자의 72%가 "비자유" 국가들에 이뤄진다는 점을 NEIS가 최근 발견했다. 동시에 "비자유" 국가들로부터 미국의 수입이 "개발도상"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프리덤하우스의 "자유" 등급을 만족시키는 제3세계 국가들의 수가 늘어났음에도 냉전이 끝난 이후 전체 절반 미만에서 거의 2/3으로 늘어났다. 물론 "개발도상" 국가들과의 무역의 상당부분은 생산물이란 자산 항목(대차대조표 상으로 보면, 제3세계에서 생산된 생산물은 애초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자산 항목에 속한다는 뜻 - 역자)이 제3세계로부터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미국 지점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민주적" 세계 자본주의를 가정하는 미국과 세계무역기구의 독트린에 어긋나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롱워스는 "민주국가보다 독재국가에서 임금이 더 낮은 추세를 보인다. 이는 해외수출에서 독재국가의 기업에게 이점을 제공한다. 투자의 문제는 조금 복잡하다"고 아주 솔직하게 강조한다. 이어 롱워스는 "그러나 NIES의 보고서는 독재국가에 강점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의 복합, 곧 낮은 임금, 느슨한 환경법, 노동조합 결성 금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썼다.

독재와 저임금의 상관관계

street_03.jpg급진주의자들에게도 논란의 대상이 거의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런 분석은 비즈니스 위크가 사실을 근거로 보도한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해 강하게 뒷받침된다. 하버드대 교수인 대니 로드릭(그 역시 프리덤하우스의 기준을 사용해 정치체제를 기술했는데)에 따르면, 민주국가들은 독재국가들보다 노동자들에게 상당히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93개국에 대한 로드릭의 연구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제조업 생산성을 일정하게 전제했을 때, "자유" 국가들의 노동자는 "부분 자유" 국가들의 노동자보다 30%이상, "비자유" 국가들의 노동자보다 60%이상을 더 번다. 임금이 세계화된 "자유시장"에 의해서만 단순히 결정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신화라고 그의 연구는 제시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는 지역 및 국제 자본에 상당한 특별이윤(profit dividend)을 지급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최소한의 억압이 있는 국가에서 살만큼 운이 좋은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한 특별임금(wage dividend)을 나눠준다.

상대적으로 상당히 대조적인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거대 개발도상국인 중국과 인도에 대한 로드릭의 비교는 특히 설득력이 있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인도에서 1990년과 1994년 사이에 제조업 노동자 1인당 연평균 생산은 3118달러였고, 인도 공장 노동자들은 1192달러의 연평균 임금을 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중국의 경우 노동자 1인당 연평균 생산 수준은 인도와 비슷한 2885달러였으나, 같은 기간 동안 공장 노동자들에게 연간 498달러밖에 지급하지 못했다. 이 차이는 왜 미국이 미래 및 현재 투자와 "무역"을 위해 인도보다 중국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발견보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설명을 심화시키면서 미국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진의 순이익에 대한 고려 및 권위주의적 가치, 그리고 제3세계 파시즘 사이의 상승 작용을 인정하는 롱워스의 솔직함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독재자들은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목표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으며, 반대를 찍어누를 수 있는 강한 지도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질은 많은 기업 지도자들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들 스스로 비민주적 구조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솔직한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롱워스는 국제투자회사의 통화전문가인 론 레번으로부터 얻어낸 뛰어낸 인용을 덧붙인다. 1999년 인도네시아가 미국이 후원하던 독재가 수하르토를 몰아내고 있을 때, 레번은 뜻깊은 언급을 했는데,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정부 형태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장 효율적인 정부 형태는 아니다." 곧 미국노총(AFL-CIO) 정책 담당자인 토머스 팰리가 말했듯이, "이윤과 도덕은 그리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 시애틀 각료회담에서 결코 적지 않은 수만 명의 노동자, 환경운동가, 좌파와 세계의 깨어있는 시민들이 대중적 항의시위를 벌인 이유가! 세계무역기구(WTO)는 제3세계 파시즘이 주는 이윤 특혜를 이용하기 위해 자본의 무제한적 자유를 옹호하는 기록을 갖고 있는 독재적인 기구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간격

효율성이란 단어는 미국 기업과 지식인 "엘리트들"이 사용하는 보통의 용법 속에서 보수 이데올로기의 함의를 내포한 흥미로운 단어다. 사전에 나오는 뜻은 '같은 양 또는 더 적은 양으로 더 많은 생산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와 선전의 대가들이 사용하는 이 단어의 실질적인 용법은 다르다. 대부분의 자본가와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특정 형태의 효율성은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곧 더 적은 또는 같은 양의 투입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다(마르크스가 M-C-M'의 끊임없는 추구로 표현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시각에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은 반대한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단순히 이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바람직하고 고귀한 "산출" 또는 그 자체 본래적이고 자연스러운 정책 산물로 간주한다. 이런 견해를 취함으로써, 이들은 냉전, 권위주의, 자본의 이기주의적 계산을 넘어서는 도덕적 보편성을 감싸안는다. 아마도 1999년 11월 말과 12월 초 시애틀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품었던 것은 바로 이 보편성이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