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선택, 진보적·민중적 개혁으로

노동사회

베네수엘라의 선택, 진보적·민중적 개혁으로

admin 0 3,140 2013.05.08 11:20

베네수엘라는 바나나-석유 공화국과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차베스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4월11일 쿠데타로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강력한 의지에 굴복하는 또 하나의 나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을 가졌다. 하지만, 4월14일 역(逆)쿠데타의 성공은 차베스를 복권시켰으며, 베네수엘라는 쿠데타 입안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여문 과자(tougher cookie)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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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현황

국명은 베네수엘라 공화국으로, 면적은 남한의 10배, 인구는 2,100만명, 수도는 카라카스(343만 명)이다. 인종은 67% 메스티조, 21% 유럽인 후손, 10% 아프리카인 후손, 2% 인디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4위의 석유수출국이지만(수출량의 59%가 미국으로 가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대단히 높다), 빈부격차는 날로 악화되어 왔다. 베네수엘라 사람 절반 이상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경제활동인구의 1/4가 실업자며, 직업이 있는 사람의 1/3이 밤에 부업을 해서 먹고산다. 또 20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구걸로 생계를 잇고 있다. 우고 차베스(Hugo Chavez)는 군인 출신으로 1992년 쿠데타를 기도했으며, 1998년 12월 45살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뽑혔다. 대통령이 된 다음, 그는 좌파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혁명'에 착수했고, 이 때문에 기득권층과 미국 등 외세의 압력에 시달려왔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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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pert_01.jpg쿠데타 진영의 두 가지 오산

차베스 대통령에 반대했던 쿠데타 지도자들은 두 가지 오산을 했다. 첫째, 이들은 쿠데타 지지가 너무 완벽해서 쿠데타에 협력한 다른 세력을 간단하게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를 차베스 반대운동의 핵심으로 여겼던 노조총연맹 CTV를 비롯해 온건 야당들은 새로운 '민주 통일' 내각에서 배제되었다.임시 내각은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세력으로 구성되었다. 새 내각은 의회, 대법원, 검찰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산시킨 다음, 구(舊)헌법에서 마련된 절차에 따라 제헌의회가 만들고 국민투표로 마련된 1999년 헌법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차베스 정부 인사에 대한 마녀사냥을 강도 높게 진행했다. 임시대통령은 내년 선거가 소집될 때까지 포고령으로 지배할 것이었다. 대체로 이런 유형의 정권은 교과서 개념으로 독재에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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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노동운동
베네수엘라 노동운동은 차베스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다. 차베스 반대세력은 주요 노총인 CTV를 장악하고 있다. 최근 부정선거 의혹 속에 CTV 지도부가 새로 뽑혔는데, 투표용지마저 사라져 재검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차베스는 CTV 지도부를 정통성을 가진 협상 상대로 인정하길 거부했다. 쿠데타 이후 차베스는 CTV 지도부와 협상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차베스는 자신을 지지하는 노조운동을 갖고 있다. 볼리바르 노동연맹(the Bolivarian Labor Federation)이 그것이다. CTV를 비롯해 반(反) 차베스 노동조합들은 주요 야당 가운데 하나인 민주행동당(AD)이 장악하고 있다. 민주행동당은 차베스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이전에 누리던 권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하지만, 노조운동 안에서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이번에 전면파업으로 차베스 정권을 위기로 몰았던 국영석유회사 PDVSA 노조도 대표적인 수구파 노조로 알려졌다. 차베스 집권 이후 기존 노조는 보수정치권 및 기득권층과 결탁해 반(反)차베스 운동을 선동해왔고, 이 때문에 기존 노조가 개혁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한 차베스는 친정부 노총인 볼리바르 노동연맹 (the Bolivar Labor Federation)을 후원하는 한편, 2000년 11월 국민투표를 통해 주요 노총과 9천 개에 달하는 산하 노조위원장들의 자격을 박탈하는 강경책을 실행한 바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노조운동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서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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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부 장군들이 새 정권에 반대해 시위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행동은 아마도 야당 세력 가운데 소외된 분파들의 압력이나, 아니면 자신들의 때늦은 후회에서 촉발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장군들의 행동은 새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는 아니었지만, 어쨌던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임시민주정부'의 포고령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 결과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 회장인 임시 대통령 페드로 카르모나는 즉시 국회의 복원을 비롯해 장군들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동의했다. 두번째 오산은 차베스가 일반 국민과 군부에 인기가 전혀 없고, 쿠바와 콜롬비아 게릴라인 FARC를 빼고는 누구도 차베스의 실권에 대해 유감스러워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처음에는 쿠데타가 차베스 지지자들에게 충격과 혼란을 주었지만, 곧 카라카스 시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민가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실제로 4월13일과 14일 카라카스 곳곳에서 자발적인 시위가 조직되었다. 경찰은 바로 진압에 나섰고, 이 충돌에서 10∼40명이 죽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일찍 순전히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이동전화를 통해 차베스 지지 집회가 마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베네수엘라의 이동전화 보유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후 6시 경, 10만 명이 대통령궁 주위에 모여들었다. 거의 동시에 공수부대가 차베스에 충성한다고 결의했다. 이 부대는 한때 차베스가 속했던 데다. 차베스 지지가 확산되자, 내무부 소속 부대들이 차베스 편에 서기 시작했다. 

반동의 '2일 천하'와 차베스의 복권 

wilpert_02.jpg결국, 군부 안에서 임시정부 지지는 물거품이 되었고, 카르모나 임시대통령은 유혈 방지를 명목으로 사임했다. 대담해진 차베스 지지자들은 TV 방송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방송국들은 봉기와 시위에 대해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4월14일 자정, 차베스가 석방되고, 그가 대통령직을 다시 인수한다고 선언되었다. 대통령궁 주변에 모인 군중은 열광했다. 

쿠데타가 그렇게 빠르게 역전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차베스가 오전 4시 전국에 상영되는 TV에 나왔다. 그는 돌아올 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지는 몰랐고, 때문에 자신이 열렬히 바랬던 휴식을 취하거나 시를 쓸 시간조차 없었다고 농담했다. 

이런 사태가 어떻게 벌어졌을까?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계획되고 평탄하게 실행된 쿠데타가 정확히 48시간만에 뒤집힐 수 있었을까?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오산과는 별도로, 군부의 핵심이 쿠데타 계획을 전폭 지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극우세력이 쿠데타를 주도했고, 차베스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지지를 누린 것은 분명하지만, 군부의 주요 세력이 쿠데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이것이 군부의 쿠데타 지지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데타의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유혈사태를 피하는 것이었고, 베네수엘라 군부가 총구를 국민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차베스 지지자들이 더욱 대담하게 거리로 나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데타 음모가들이 자신들의 선전, 즉 차베스는 아주 인기 없는 지도자라고 믿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이 잊었던 것은 차베스가 단지 정치적 혼란을 활용해 운으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차베스의 운동은 베네수엘라 지역사회와 좌파 조직의 오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많은 국민들이 그가 약속한 개혁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데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미디어와 야당은 차베스가 완전히 고립되었고,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만들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TV 방송국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으며, 시간대마다 차베스 반대 시위를 보도하고, 차베스 지지 시위는 완전히 무시했다. 방송 채널은 차베스 지지자들이 기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에 지지 시위를 취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수 엘리트층에 장악된 언론

베네수엘라의 거의 모든 언론기관은 소수 엘리트가 소유·운영하고 있다. 중립적인 논조의 신문은 한 개뿐이며, 친(親) 차베스 입장의 방송은 국영 TV가 유일하다. 쿠데타 기간 동안 국영방송국은 방송을 내보내지 못했고, 다른 언론사들은 쿠데타 주도세력의 입장을 반복했다. 주류 언론들은 차베스가 사임하고, 직접 내각을 해산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시위의 희생자들은 '시민사회의 순교자'라고 떠벌렸다. 하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차베스 지지자라는 점은 전하지 않았다. 언론은 차베스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차베스를 반대하는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차베스 내각의 장관들이 대통령 사임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실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또한, 언론은 총을 맞은 사람들의 명단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 사상자들이 차베스 지지 시위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비디오에 찍힌 발포 장면을 편집해 차베스 지지자들의 발포 장면만 보여주고, 건물 안에 숨어서 이들에게 총을 쏘았던 경찰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또한, 언론은 차베스 지지 군중이 근처 건물의 옥상에서 총을 쏘는 저격수를 가리키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언론의 왜곡은 언론이 또 다른 현실을 조작하는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를 보여주었다. 시위를 하면서 사건을 목격한 차베스 지지자들은 무엇보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시위대가 8개 방송국 가운데 4개를 장악하고 군부와 국민의 차베스 지지 움직임을 보도하도록 한 것은 차베스 복귀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베스의 강점과 단점

차베스의 권력 장악 과정은 베네수엘라에서 자주 망각된다. 사실 역대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비교하면, 실제 차베스는 가장 덜 독재적이었다. 차베스가 많은 단점을 가진, 결함투성이의 대통령임은 분명하며, 그가 독재자 스타일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카를로스-안드레스 페레즈(1989-1993)를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의 집권 시절에는 시위대 사망 사건이 거의 매달 벌어졌고 철저한 신문 검열이 자행되었다. 하지만, 차베스 집권기에는 이런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차베스 대통령은 그에 대한 지지나 반대에 상관없이 국민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그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그림은 그가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향상을 위해 일하며, 국제연대를 믿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는 카리스마와 재능 있는 연설가며, 이는 자연스럽게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단점도 인정해야 한다. 베네수엘라 헌법의 민주적 개정에서 보여지듯 차베스가 참여민주주의를 진심으로 믿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가 가진 독재자적 성격을 부인할 순 없다. 그는 기존의 시민사회 조직을 무시했고,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동시에 혁명을 방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볼리바르 협회'(Bolivarian Circles)를 조직해 시민사회를 통제하려 했다. 야당은 별 어려움 없이 볼라바르 협회를 차베스 당을 위한 SS(나치 친위대)로 낙인찍을 수 있었다. 다른 결정적 실수는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인력 풀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가 임명한 장관들과 부처장들은 미숙한 조직 운영과 업무 처리에 시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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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르 혁명이란?
볼라바르는 사람 이름이다. 시몬 볼리바르(Simon Bilivar, 1783∼1830)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독립영웅이다. 그는 스페인으로부터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해방시켰다. 볼리바르는 미합중국을 본뜬 라틴아메리카 연방을 꿈꿨지만, 인종과 지역의 분열, 통일된 라틴아메리카의 등장을 바라지 않았던 미국과 영국의 분열 정책으로 그 꿈은 무산됐다.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화폐, 국제공항, 도시 이름으로 두루 쓰이는 등 역사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며, 차베스는 볼리바르를 자신이 이끄는 정치운동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집권 초기 차베스는 자신이 주도하는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경제위기를 빼고도 베네수엘라는 무엇보다 지배층의 사회 인식 부족 때문에 도덕적·윤리적 위기를 겪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특히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평등의 문제이다. 볼리바르 혁명의 목표가 있다. 나는 가난한 이들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다른 혁명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혁명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목표를 배반했거나, 아니면 추구하기는 하되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말살시켰다. … 우리는 시장과 국가와 사회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국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동시에 경제체제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 경제체제는 가능한 한 시장을 확대하면서도 꼭 그 만큼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 우리가 하려는 것은 대리 민주주의를 벗어나서 참여 민주주의로 향하려는 것이다. 물론 대리제가 필연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참여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권력구조의 어떤 수준에도 충분히 개입해 더 효과적으로 인권 침해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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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언급할 결점은 그의 불같은 성격이다. 차베스가 부유층과 빈민층의 간격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하면서 베네수엘라 사회를 분열시켰다는 비난은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차베스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도 베네수엘라 사회는 빈부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베스가 부유층을 '비열한 놈들'이라고 욕하면서부터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차베스 지지파와 반대파가 동시에 던진 중요한 질문은 차베스가 이번 쿠데타를 통해 성숙했느냐다. 그는 반대파로부터 풀려난 다음 발표한 첫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역시 많이 반성해야 하며, 갇힌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돌아보았다. 나는 나 자신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으로선 이 말이 지켜져 그가 베네수엘라를 위해 더 많은 업적을 이뤄낼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국제 진보진영에 주는 교훈

물론 차베스가 이룩한 많은 진보적인 성과들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의 실패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가 실패한 부분은 다른 나라의 진보세력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교훈은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일상적인 권력 갈등에 발목 잡혀 허우적거렸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차베스가 원래의 공약, 즉 부패를 척결하고 베네수엘라를 보다 평등한 사회로 만든다는 계획을 기억하고 있기나 한지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평등을 이루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차베스의 계획이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 때가 이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는 경제개발 6개년 계획(2001∼2007)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일부를 실행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부패와의 싸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교훈은, 바람직한 변화를 문화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을 무시하는 행위는 반대파가 상황을 역전시켜 정책 집행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의 자생적 기반, 즉 진보적·대중적 시민사회를 끌어들이지 않음으로써 차베스는 보수적인 시민사회, 보수적인 노조, 재계, 교회, 언론으로 하여금 그가 주도한 '볼리바르 혁명'에 관한 담론을 결정짓도록 만들었다.

세 번째 교훈은 강력하고 능숙한 집행 수단 없이 좋은 강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멋진 계획을 갖고 있긴 했지만, 격렬한 연설을 통해서만 대중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고, 실제 계획을 대중들에게 선전하거나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줄이는 방안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정책 집행 라인을 단순화하는 것은 쉽지만, 이런 식의 일 처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배타적인 문화를 만들게 된다. 배타적인 이데올로기 문화는 최선의 계획들이라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다양한 도전들에 대한 대응 능력을 잃게 만든다. 차베스는 자기 그룹 안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제거해왔고, 이 때문에 그의 권력 기반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협소한 권력 기반은 반대파들이 쿠데타를 쉽사리 조직하게 만들었다. 

차베스와 그의 반대파 모두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는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베네수엘라 사회가 깊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갈등의 핵심은 계급 갈등이다. 물론 차베스 반대파의 일부가 하층 계급 출신이고, 지지자 일부가 상층 계급 출신이지만, 차베스 지지자의 다수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하층 계급이며, 반대자의 다수가 밝은 피부색을 가진 상층 계급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회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 베네수엘라가 필요로 하는 건 계급 타협이다. 사회 평화는 베네수엘라가 가진 엄청난 부를 더욱 공정하게 분배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화된 세상은 한 나라에서의 계급 타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유시장 경쟁이 국민 차원의 해결책을 세계적 차원의 압력에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석유 자원 때문에 특별 사례가 될 여지를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경우도 최근의 쿠데타 시도 같은 권력 투쟁이 종결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미국의 개입과 앞으로의 도전 

이번 쿠데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는 미국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했는가의 문제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가 썼듯이, 미국 정부가 야당 세력을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조언자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의 보수운동을 지원해온 '전국 민주주의 기부 협회'는 2001년 차베스 반대세력에게 1백만 달러를 지원했고, 2002년에도 1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전 국가안보위원회 첩보담당인 웨인 매드슨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미 해군은 군부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해안에 함정을 배치했다. 쿠데타가 세부사항까지 주의 깊게 계획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직적이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반 차베스 운동의 배후에서 조정과 통합의 역할을 중심적으로 맡은 세력이 있다고 보인다. 미국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했는지 여부와 어느 정도 연루되었는 지는 비밀문서가 해제되는 십년 후까지는 제대로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과 과거에 니카라과, 칠레, 쿠바에서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면, 정치운동이 한 나라가 가진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를 활용할 경우, 적어도 국내 경제의 도전, 국제 경제의 도전, 국제 정치의 도전이라는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국내 정치의 도전은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경우 선거라는 수단을 통해 정리되었고, 쿠바와 니카라과는 봉기라는 수단을 통해 정리되었다). 

진보 세력이 일국 차원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게 가능할 지라도(다음 차례는 브라질이 될 걸로 보인다), 나머지 세 가지 도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차베스는 주로 대결과 대립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뤄왔다. 이런 접근법은 재계의 파업, 일련의 쿠데타, 경제조건의 악화라는 측면에서 유효하지 못하다. 국내의 정치세력만으로는 국제정치(미국)와 국내경제·국제경제의 반대세력을 제압하기가 충분치 않다. 이러한 도전 세력들에 어떻게 맞설지가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