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인터내셔널의 창립과 활동

노동사회

제1인터내셔널의 창립과 활동

admin 0 7,251 2013.05.08 11:16

 

 

국경을 넘어 성장하는 노동운동

19세기 중엽 유럽 혁명의 패배로 대부분 나라에서 반동세력의 지배가 강화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지치지 않는 생산력을 과시하면서, 날로 상승하고 발전했어요. 부르주아지는 경제 영역에서 구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지만, 지난날의 적대자였던 반(半)봉건 귀족, 절대주의 관료, 군벌과 동맹해 블록을 만들어 민중에 대항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사회적 발전이 침체되고, 노동자 해방의 꿈은 빛을 잃게 됩니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는 산업 발달에 힘입어 세계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됩니다. 나라마다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는 달랐지만, 각국의 경제는 서로 연관되고 규정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단일 체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산업 성장과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규모를 증가시켰죠. 특히 산업노동자군이 급증했으며, 이들이 노동자계급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대기업이 늘어났고,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집적과 결합이 촉진됩니다. 기계제 생산의 발달과 단일한 자본주의 시장의 출현은 노동자의 지위와 생활수준을 저하시켰습니다. 도시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주택 위기가 격화됩니다. 또 사회 한쪽으로 부와 사치가 집중되면서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노동자의 분배 몫이 줄어들었죠. 

영국에서는 아일랜드나 유럽대륙에서 값싼 노동력이 많이 수입되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저하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기업가들에게 추가 이윤을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파업 파괴자 구실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죠. 이로부터 노동자들은 연대와 공동투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1857∼1859년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세계공황이 일어납니다. 이 사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죠. 

1850년대와 1860년대의 정치 정세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노동자 조직의 확대, 파업투쟁의 격화, 정치의식의 성장, 노동조합의 확산은 노동운동의 지평을 일국적(national) 차원에서 국제적 차원으로 넓혔습니다. 노동자들의 경제 상태와 생활 조건, 노동자계급의 일상적인 이익, 운명, 투쟁의 공통성에 대한 이해가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유럽대륙으로 점차 확산됩니다. 

제1인터내셔널의 창립

sooya_01_7.jpg노동자계급 최초의 국제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는 1864년 9월28일 영국 런던 세인트 마틴즈 홀(St. Martin's Hall)에서 창립되었습니다. 이 조직은 제1인터내셔널로 불리게 되죠. 제1인터내셔널은 세계 노동자계급운동의 진보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국제 조직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갈망과 노력의 절정이었던 것이죠.  

인터내셔널 창립은 프랑스 노동자대표가 1862년 런던 산업박람회에 참석한 길에 영국 노조 간부들과 만나 국제조직 설립을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뒤 1863년 7월 '런던노동조합회의'의 제안으로 영국 노동자대표와 프랑스 노동자대표단이 회담했으며, 여기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조직 창설을 결정했던 것이죠. 이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새로 생기는 조직의 목적과 임무를 규정하는 문서를 준비했습니다. 준비위원회는 런던에 있던 망명자단체와 접촉했으며, 다른 나라 대표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런 조직들 가운데 마치니 그룹의 '이탈리아 노동자 상호진보협회'가 있었고, 폴란드인 망명자와 프랑스의 민주주의 망명자단체, 그리고 런던에 있던 '독일인 공산주의 노동자 교육협회' 등이 있었습니다.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는 여러 나라 대표들이 참가했어요. 영국과 프랑스 대표들을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헝가리 등의 노동자 대표들이 중심을 이뤘죠. 마르크스도 이 역사적인 회합에 참석했습니다. 창립 대회에서는 '영국 노동자들이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라는 연설문이 낭독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영국 그밖에 인류의 행복을 위해 힘을 합치려는 의지를 가진 모든 나라의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우리들의 의회를 만듭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든 나라 국민들의 평화와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문제를 의논합시다."

그 회답인 '프랑스 노동자들이 영국의 형제들에게'라는 연설문도 그 자리에서 낭독되었죠. 

sooya_02_7.jpg"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형제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는 민족적 편견을 이용하여 약탈전쟁을 일으키고, 이에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우리 형제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자 해방의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대서양 건너편의 노예제도를 영속시키고, 또 이를 전파하기 위한 치욕적인 십자군 원정에 무턱대고 뛰어들지 못하도록 서유럽을 구해낸 것은 지배계급의 현명함이 아니라 그들의 범죄적 행위에 대한 영국 노동자계급의 영웅적인 저항이었습니다. 

유럽 상류계급들이 파렴치한 동조, 위선적인 동정, 또는 천치 같은 무관심으로 위장한 채, 러시아가 코카서스 산악지대의 성채들을 점령하고 영웅적인 폴란드 인민들의 독립 요구를 잔인하게 진압하는 광경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저 야만적인 강국인 러시아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대규모 약탈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노동자계급에게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의 국제정책 비밀을 폭로하고, 그것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정부가 취하고 있는 외교활동을 감시하고, 또 이를 막을 수 없는 경우에는 단결된 힘으로 즉각 이를 비난하며, 전세계 민중들에게 지배계급의 대외정책을 폭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프랑스 노동자들은 영국 노동자계급이 보여준 영웅적 투쟁을 본받아 함께 싸워 나갈 것입니다.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전세계 민중들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단결합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힘찬 진군을 계속합시다." 

노동계급 해방은 노동계급이

인터내셔널 창립 총회는 규약과 규칙을 작성할 권한을 가진, 30인 이상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선출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초안을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작업소위원회에 소속되었죠. 기본 문서를 작성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뒤따랐어요. 마르크스가 마지막으로 마무리지은 인터내셔널 창립선언과 임시규약은 11월1일 총(중앙)평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으며, 1866년 제네바 대회에서 승인되었죠. 마르크스가 작성한 문서가 승인된 것은 이 새로운 조직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강령을 부여하려는 기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었고, 인터내셔널이 출발점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적·계급적 성격을 설정했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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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의회 지도부 명단과 대표 산업부문
건 축 Karl Marx, Peter Fox
재단사 Eccarius, Lessner, Maurice, Milner, Stainsby
목 수 Applegarth, Cremer, Lochner, Weston
직물공 Bradnick, J. Hales, Mottershead
제화공 Morgan, Odger, Serraillier
가구공 Dell, Lucraft
시계공 Jung
벽돌공 Howell
악기공 Dupont
이발사 Lassa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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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창립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발기문'은 "노동자 여러분! 1848∼1864년의 기간 동안 근로대중의 빈곤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은 공업 및 상업의 진보라는 면에서 보면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로 시작합니다. 발기문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만 국한된 부와 그 힘의 놀랄만한 증대'와 노동자계급의 처참한 상태를 대비해 분석하면서,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정치적 반동을 고발했죠. 또 발기문은 "정치권력을 전취하는 것은 따라서 이제 노동자계급의 커다란 임무"라면서 "성공의 한 요소를 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수(數)입니다. 그러나 수는 결합이 그들을 단결시키고 지식이 그들을 지도할 때에만 무게를 지닙니다. 형제적 유대가 서로 다른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결합시켜야 하고, 또 해방을 위한 그들의 모든 투쟁에서 굳게 함께 있도록 그들을 고무해야 합니다"고 강조하면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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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적 지식인들과 만나고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

국제노동자협회의 임시규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전취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적 특권과 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 및 의무와 모든 계급지배의 폐지를 위한 투쟁을 뜻한다. 노동하는 인간이 노동수단, 즉 생활원천의 독점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 모든 노예상태의 근저에 놓여있다―모든 사회적 빈곤, 정신적 피폐, 정치적 종속의 근저에 놓여 있다.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해방은 따라서 모든 정치적 운동이 하나의 수단으로 종속되어야 할 위대한 목적이다. 
이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모든 노력은 지금까지 각국의 다양한 노동부문 사이의 연대 부족으로,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들의 노동자계급들 사이의 형제적 유대의 부재로 실패해 왔다. 노동의 해방은 국지적이거나 일국적(一國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로서, 그것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는 것이며, 그 해결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의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협조에 달려 있다. 유럽의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전개되는 노동자계급의 부흥은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편, 과거의 오류에 다시 빠져드는 것과 관련하여 엄숙히 경고하고 있으며, 여전히 연결되어 있지 못한 운동들의 즉각적인 결합을 요청하고 있다." 

규약은 조직형태와 지도원칙들을 정했습니다. 최고기구는 연 1회 개최하는 일반대회로서 '중앙평의회'를 선출하는 기능을 지녔죠. 규약을 실행하는 데서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총(중앙)평의회를 조직의 계급적·대중적 성격을 갖는 지도기구로 전환시키는 것이었어요. 총평의회는 실천적인 기관이었죠. 많은 나라들에서 진행되는 노동자 활동을 주시하고, 그런 투쟁에 적극 참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총평의회는 파업과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문제, 반동세력의 음모와 그에 대한 대항을 조직하는 문제, 노동자신문 발간, 새로운 지부 창설, 지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 불일치와 분쟁 조정, 운동에서 제기되는 이론 문제, 다양한 투쟁에서 요구되는 전술 수립 문제 등에 관심을 쏟았죠.

제1인터내셔널과 노동자 대중조직의 확산

sooya_04_5.jpg제1인터내셔널은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바꾸고 통일시키며, 동시에 행동과 조직 형태를 발전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습니다. 인터내셔널의 구조는 매우 유연했죠. 인터내셔널은 한편에서는 지부망으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은 여러 지역에서 선전활동과 조직활동의 거점 구실을 하면서 총평의회와 직접 결합되거나 또는 지방 및 전국 연합을 통하여 결합되었어요. 가입 형식은 개인 가입을 바탕으로 한 체계와 단체 가입 방식이 채택되었죠. 이 원칙은 애초부터 인터내셔널에 대중적 기반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내셔널 최대의 조직과제는 뭐니뭐니해도 노동자 조직의 포섭이었어요. 영국,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런 과제가 초기단계에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죠. 조직형태 발전의 문제는 두고두고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덴마크 등의 나라들에서는 대중적 노동자 조직의 조직화 과제가 실천으로 제기된 것은 인터내셔널 활동의 후기 몇 년 동안이었습니다.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는 출발부터 영국 노동조합들을 조직에 참가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했어요. 1864년 11월 총평의회는 이들 조직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고, 노조들에 대표를 파견했죠. 인터내셔널은 영국 노조들의 가입형태에서 단체회원의 권리를 갖고 총평의회에 가입하고, 그 지부가 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1866년 말까지 약 2만5천 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포괄한 노조들이 인터내셔널에 가입했어요. 가입 노조들은 주요 공업부문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들이 아니라 봉제공, 건축 노동자, 제화공 노조였죠. 숙련노동자를 많이 포용했던 큰 규모 노조들은, 인터내셔널이 정치활동에 열중하고 있으며 미숙련 노동자들의 가입을 인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가입을 꺼려했습니다. 1867년에는 약 5만 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30개 이상의 노조들이 인터내셔널에 가입했고, 1868년에는 다시 10개의 노조가 가입했어요. 그러나 이들 노조들은 전체 노조운동에서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죠.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

sooya_05_4.jpg프랑스에서는 제1인터내셔널이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1864년 12월 약 30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지부가 결성되었습니다. 이 지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프랑스 인터내셔널의 중심이 됩니다. 이 단체는 지도부의 노력과 독일 망명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협회의 사상을 널리 선전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파리와 지방에 새로운 지부가 생겨났으나, 회원은 소수였습니다. 당시의 법률제도가 20인 이상 모이는 회합을 금지한 것도 조직 확대를 가로막은 요인이었죠. 1870년 3월 파리의 14개 지부들이 연합을 구성하여 연합평의회를 창설했습니다. 1870년 당시 파리에는 연합에 들지 않은 지부들까지 합쳐 25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었죠. 지부 구성원들은 노동자 대중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폈습니다. 이런 지부 활동은 사실상 합법적인 성격을 띠었죠.

스위스에서는 1868년 이후 대체로 인터내셔널 회원들의 노력으로 노조들이 결성되었습니다. 대개 이 노조들은 바로 공개적으로 인터내셔널의 직업별 지부를 구성했고, 1869년에는 제네바에 23개, 바젤에 11개, 로잔에 8개, 쮜리히에 5개 존재했습니다.
독일에서는 1865년에서 1866년 사이에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를 비롯하여 마르크스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공산주의자동맹' 옛 회원들의 영향 아래 인터내셔널 지부들이 결성되죠. 지부들은 졸링겐에서 시작하여 쾰른, 라이프찌히, 마인쯔, 비스바덴, 드레스덴 등에서 잇따라 결성됩니다. 이 지부들은 튀빙겐, 빌레펠트, 슐레지엔 지방의 여러 도시들에서도 활동했죠. 지부들에는 독일노동자협회연맹과 전독일노동자협회 회원들도 가입했습니다. 독일에 있었던 인터내셔널 지부들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독일사회민주노동당 창립 준비에 큰 역할을 하죠. 

벨기에의 경우, 1865년 7월 최초의 인터내셔널 지부가 브뤼셀에서 결성되었습니다. 그 뒤로 여러 도시에서 지부들이 조직됩니다. 1867년 4월에는 지부들이 중심이 되어 벨기에연합의 창설을 선언하죠. 연합에는 1868년 말까지 60개 이상의 지부가 참가했으며, 그 가운데 몇몇 지부는 수천 명의 회원을 포괄했습니다. 1870년에 벨기에연합은 최대 연합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지부와 관련 단체는 수만 명을 포괄했습니다. 

미국 노동조합들은 인터내셔널에 공식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전국노동연맹'은 애초부터 총평의회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했습니다. 이 통로를 통해 미국과 유럽 노동운동이 연결되었던 거죠. 1867년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노동연맹 제2차 대회는 국제노동자협회를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1860년대 말 들어 총평의회와 유지해 온 접촉관계가 점점 약화되었으며, 미국 노동조합운동은 결국 국내 문제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 밖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덴마크 등 유럽대륙 나라에서는 1860년대 후반에 노동조합운동이 고양되었는데, 당시의 노동조합운동은 많은 경우 인터내셔널 활동의 영향을 받아 결성되고 발전했습니다. 특히 인터내셔널에는 노동조합말고도 여러 나라에 존재했던 교육단체와 협동조합들이 참가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죠.

근대노동운동의 토대 마련

sooya_06_4.jpg제1인터내셔널은 정치 조직이었습니다. 인터내셔널의 목적은 각국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모아 자본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데 있었습니다. 인터내셔널은 전쟁에 반대했고, 사멸해 가는 봉건제에 대항해 투쟁했어요. 또 미국의 흑인 노예제 폐지를 위해 투쟁했고, 폴란드와 아일랜드의 독립과 노동자의 선거권 획득, 그리고 사회입법을 위해 투쟁했죠. 이런 투쟁과 더불어 대중 속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인터내셔널은 노동조합 인터내셔널로서 노조의 특유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지지했으며, 어린이와 여성노동자 보호와 차별 반대를 위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8시간 노동제 시행을 위해 강력하고도 끈질긴 노력을 쏟았죠. 말하자면 인터내셔널은 근대 노동운동의 토대가 되는 기초 강령을 확립했던 것이죠. 

1866년 9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대회에서 인터내셔널은 마르크스가 기초한 결의를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기본 방향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그 결의는 「노동조합, 그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과거' 부분에서 "자본은 집적된 사회적 힘인데 반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약은 결코 공정한 조건으로 맺어질 수 없다"면서 "노동조합은 본래, 적어도 노예보다는 조금 나은 계약조건을 따내기 위해 그러한 경쟁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제한하려는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시도로부터 생겨났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당면 목표는 일상적인 필요에만, 자본의 끊임없는 침해를 저지하는 방편에만, 한마디로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에만 한정되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활동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도 하다"고 주장했죠.

또 '현재'에서 "자본과의 국지적이고 즉각적인 투쟁에만 지나치게 열중해 왔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임금 노예제도 자체에 대항하는 행동에서 자신의 힘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일반적인 사회·정치 운동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진 채 있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에서는 "본래의 목적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은 이제 완전 해방이라는 폭넓은 이해관계에 있는 노동자계급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방향을 향하는 모든 사회·정치적 운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실천 방침에 따라, 인터내셔널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발생한 노동자계급의 파업투쟁을 지지하는 공동행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어요. 특히 유럽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5∼6년 동안 고립적이고 분산적인 파업에서, 인터내셔널의 깃발 아래 결집된 노동자 부대가 부르주아 국가의 군사력에 의존한 자본의 전면적인 힘과 대결하는 계급 전투로 발전했죠. 이 시기 노동자의 경제투쟁을 특징 지웠던 계급의식의 급속한 성장과 폭넓은 국제연대 정신은 각국 선진 노동자들과 인터내셔널 총평의회가 조직적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66년 3∼4월에 임금인상을 목표로 한 런던 봉제노동자들의 대(大)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총평의회는 담당자들을 통해 유럽 대륙에 있는 지부들에 널리 홍보하는 한편, 지역 노동자들이 영국에서 취업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특별 호소를 지부들의 기관지에 게재하도록 했습니다. 기업주들은 굴복했고, 이 최초의 승리는 인터내셔널의 권위와 영향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1867년 봄에 발생한 프랑스 파리 청동업 노동자 파업은 유럽 노동자계급 투쟁사에서 빛나는 한 페이지를 기록했죠. 이 파업은 애초 고정노임율(固定勞賃率)을 요구한 투쟁과정에서 일어났지만, 파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조합권을 지키기 위한 강고한 투쟁으로 발전했어요. 파업 노동자들은 인터내셔널 파리 지부 대표들을 영국 런던으로 파견해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지지를 호소했죠. 지원활동은 벨기에와 스위스의 인터내셔널에서도 행해졌어요. 파업은 단일임금률(單一賃金率) 도입을 성취함으로써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밖에도 1867년 3월 프랑스 파리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1867년 영국 봉제노동자들이 벌인 장기파업에서도 인터내셔널의 지원과 국제연대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처럼 국제연대의 실천 운동이 발전해 가는 가운데, 마르크스가 1866년 9월3일 제1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를 위해 마련한 '임시 중앙 평의회 대의원을 위한 개별 문제에 대한 지시'는 노동자들의 사회·경제 투쟁의 강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시'는 「노동조합, 그 과거, 현재, 미래」를 비롯하여 노동일(勞動日), 즉 노동시간의 제한, 연소자와 아동노동의 제한과 보호, 협동조합 노동, 직접세와 간접세, 노동과 자본 사이의 투쟁에서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대를 강조했습니다. 

내부 노선 투쟁과 해산

sooya_07_1.jpg제1인터내셔널이 창설되어 국제연대와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내부에 이념과 노선을 둘러싸고 여러 갈래의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상호부조조합'을 통한 협동조합운동을 주장한 프루동주의, '임금철칙설'을 내세운 라살레주의, 무장봉기를 중시한 블랑키주의, 국가 파괴로 무정부주의 실현을 주창한 바쿠닌주의와 마르크스 진영 사이의 노선 투쟁이 그것입니다. 1869년 9월에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4차 대회 이후 진행된 바쿠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노선 투쟁은 인터내셔널의 해산으로 이어집니다. 

바쿠닌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는 우선 총평의회의 권한에서 입장이 달랐습니다. 바쿠닌주의자들은 총평의회가 통신연락을 위한 사무소와 통계자료의 수집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총평의회가 인터내셔널을 정치적으로 지도하고 대회 결의를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반대했죠.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통일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려면 국제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며, 또 대회의 결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견해 대립을 두고 인터내셔널 대회가 토의를 벌인 결과 총평의회는 대회의 결정사항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죠. 

sooya_08.jpg이들은 정치활동 방침에서도 입장이 달랐습니다. 바쿠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유일한 무기는 '거리의 바리케이드'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이 정당을 조직하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과 똑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정당 조직에 반대했습니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당 조직은 정치권력의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바쿠닌의 무정부주의는 정치권력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습니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가 만들어 낸 이제까지의 어떠한 정당과도 구별되며, 또 그것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조직하는 경우에만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이와 같이 정당으로 자신을 조직하는 것은 사회혁명의 승리와 그 궁극적 목표 - 계급의 폐지 - 를 달성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내셔널 본부의 소재지에 관한 사항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터내셔널 본부를 미국 뉴욕으로 옮기자고 제안하였고, 대회는 이 제안을 채택했습니다. 본부 이전을 둘러싼 주장은 인터내셔널이 바쿠닌주의자들에게 장악되어 그들의 분파적 사업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었죠. 그러나 그 결정은 인터내셔널의 해산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1875년 7월15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7차 대회는 제1인터내셔널의 마지막 대회가 되었습니다. 대회의 안건은 인터내셔널의 해산 결의였습니다. 대회가 결의한 성명 내용은 이러합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필라델피아의 국제대회는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를 폐지했다. 협회의 외적 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내셔널은 죽었다.'―만국의 부르주아지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그리고 비웃음과 기쁨으로, 본 대회의 의사록이야말로 세계노동운동의 패배를 증명하는 문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이 제멋대로 외치는 소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유럽의 현재 정치 정세로부터 생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인터내셔널 조직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인터내셔널의 원칙이 문명 세계 전체의 진보적 노동자에 의해 인정되고 또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럽 노동자들에게 각자의 나라에서 운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잠시 동안의 시간을 주려한다. 여러분은 확실히 여러분과 세계 여러 나라 노동자 사이의 장벽을 허물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은 인터내셔널의 원칙을 진심으로,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받들어 왔다. 비록 조직은 없어도 여러분은 이 원칙의 신봉자들을 늘리는 길을 발견할 것이다. 미국 동지는 여러분께 약속한다, 인터내셔널이 이 나라에서 완수한 업적을 충실히 지키고 보호·발전시킬 것임을. 보다 유리한 조건이 생겨 만국의 노동자가 다시 한 번 이전보다 더 높이 다음과 같은 외침을 울려 퍼지게 하는 날이 올 때까지.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다음호에 계속)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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