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선과 민주노동당의 과제

노동사회

12월 대선과 민주노동당의 과제

admin 0 3,452 2013.05.08 10:58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줄기차게 시도되었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의 출범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싸고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흐름과 비합법전위정당 흐름이 영향력을 떨쳐왔으나, 우경과 좌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대중정당으로 자리잡았다.

jungjinkim_01.jpg
[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줄기차게 시도되었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의 출범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출처: 진보정치 ]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노동운동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목표로 하며, 정치투쟁의 본령은 정당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출범과 활동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뜻한다. 그리고 정당 활동의 꽃은 선거라는 점에서 2000년 4월 총선에서 시작된 민주노동당의 선거 참여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말고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민주주의적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가장 활동적인 정당원을 갖고 있으며, 한국 역사상 유일한 "정상적인 정당"을 만들어냈다. 

민주노동당의 발생은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해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한 "테프베일" 판결과 산업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에 따른 반(反)노동조합 공세가 영국 노동운동을 노동자 독자정당으로 급속히 나아가게 했다. 한국 노동운동 역시 IMF 경제위기로 대표되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정치세력화를 추진했으며, '국민승리 21'을 발판으로 민주노동당을 출범시켰다. 

민주노동당의 성과는 미약하지만, 한 걸음씩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 국회에 의석 하나 없지만, 2000년 총선에서 21개 선거구에 출마하여 평균 13.1%를 득표했고(1992년 민중당은 51개 선거구에 출마하여 평균 6.5%를 득표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8.1%를 득표했다.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은 처음 도입된 정당투표제의 위력이 컸다. 

하지만, 득표율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며, 이제 군소정당의 수준을 넘어 전국적 대중정당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일관된 조직적 지지와 더불어 97년 대선 이후 진보정당의 깃발을 끝까지 부여잡고 한길로 내달려온 지도부와 당 상근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결집한 3만 당원이 함께 이루어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위상을 키워나가고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대표적이다. 한정된 자원과 부족한 인력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당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민주노동당이 길거리에만 있는 정당이 아님을 국민들과 정치권에 분명히 보여주었다. 

jungjinkim_02.jpg
[ 12월 대선은 2004년 총선을 위한 전초전이자 연습장이다. 사진은 당원과 함께 한 권영길 대표  ▷ 출처: 진보정치 ]

2004년 총선의 전초전

6월 지방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존 언론이 정당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 민주노동당을 포함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전국 8%대 득표의 정치적 효과다. 2002년 들어 민주노동당은 '운동권들'의 군소정당에서 국민들에게 파고드는 전국적 대중정당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3만 명을 돌파했으며, 잠재적 지지자 층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12월 대선이야말로 2004년 총선을 위한 전초전이자 연습장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반드시 원내진출을 이뤄야 하며, 국회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정한 정치정당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운동권 단체'가 아닌 책임감 있는 정치 세력임을 국민에게 증명할 의무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고민하는 양심 세력에게 정치적 대안으로 떠올라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중립 세력은 우호 세력으로, 적대 세력은 중립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공약으로 부유세를 내세우는데, 4천6백만 국민 중에 부유세에 반대할 사람은 한줌 밖에 안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일반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은 대선 공약으로 정치 민주화 실현, 노동자 권리 향상, 사회보장제도 확충,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큰 방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몇 표를 얻는가도 중요하지만, 97년 대선의 30만 표 수준이든, 아니면 이를 훨씬 뛰어넘은 100만 표든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2004년까지 '고난의 행군'을 멈추지 않겠다는 조직적 결의와 단결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성, 책임성, 의제설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한국 사회의 미래

좌파에 대한 주요한 사회적 통념은 "좌파는 무능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가장 주요한 의미는 그 사회를 주도할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부패하고 무능한 우익들이 넘치지만, 그래도 일부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동북아 중심지인 물류국가의 건설' 등의 구상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가 처한 조건과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다. 지배층의 나팔수들은 여러 가지 감언이설로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품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 좌파의 대표주자인 민주노동당은 어떠한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전국적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국민 대중을 향해 문호를 개방하고, 그들의 창조성과 역동성을 받아 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은 국민 대중이라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나가기보다는 '운동권의 좁은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백일도 남기지 않은 지금에도 민주노동당 안팎에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정파 경쟁'에 몰두하는 분파주의적 흐름이 존재한다. 당 밖의 일부 진영은 동호회 수준으로 자기 조직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전국적 대중정당이라는 당연한 발전경로를 '사민주의', '개량주의'로 몰아 부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조선일보처럼 정당국고보조금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를 외면한 채 구태의연한 도그마에 사로잡힌 일부 세력의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극복하면서 민주노동당은 12월 대선과 2004년 총선을 향한 진군을 시작한 지 오래며,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도도한 진군은 이제 그 누구도 가로막지 못할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다음해 농사에 쓸 종자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종자를 먹는다면 농사꾼은 아무런 미래가 없다. 민주노동당은 굶주리더라도 한국 사회의 비전을 위한 종자를 쌓아둘 각오를 하고 있는가? 운동권의 좁은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국민 대중 속으로 파고들 각오와 결의, 감각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고 미래를 개척할 상상력과 창의력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나아갈 결의와 의지가 있는가? 

민주노동당에게 12월 대선은 이를 시험할 시험대가 될 것이며, 민주노동당의 성패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의 수준을 결정짓는 역사적 잣대가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