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독자정당 창당의 조건과 전망

노동사회

한국노총 독자정당 창당의 조건과 전망

admin 0 3,168 2013.05.08 10:56

 


1. 문제제기

이 글은 한국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한국노총 독자창당의 대내외 조건과 그 발전 전망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IMF위기는 한국사회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확연히 구분하는 역사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노동시장은 과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하였고, 정치사회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의 격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조건 속에서 한국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독자창당을 선언하고 나섰다. 한국노총의 독자창당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는다면 그것은 노총 50년 역사상 최대 사건이라고 평가할만한 대사건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논의는 왜 한국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하고 있는가, 왜 한국에는 의회 안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것들이 중요한 주제를 구성해왔다. 그러나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고, 한국노총이 독자창당에 나섬으로써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본격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의 독자창당은 기존 정당들과의 등거리 외교노선으로부터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치사회는 물론 한국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사회세력의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창당의 배경과 성공가능성 등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독자정당 창당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노총의 독자정당 창당의 필요성과 조건은 무엇인가? 둘째, 한국노총 독자창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역사적 과제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한국노총의 독자정당은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노동당 또는 제도권의 개혁세력과 연대하여 새로운 정당으로 외연을 확대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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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산하조직 가운데 금융노조는 창당부터 민주노동당 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사진은 금융노조 지도부  ▷ 출처:금융노조 ]

2. 한국노총 독자창당의 대외적 조건

1) 노동시장의 변화
 

IMF 경제위기 이후 5년 동안 한국의 노동시장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제위기 초기에 실업률은 급속히 증가하여 1999년 1/4분기에 8.4%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2002년 1/4분기에는 3%대로까지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에 접어들었으나, 이 같은 실업률 하락은 파트타임, 임시직 등 비정규직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고용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비정규직은 1996년 43.4%에 달하던 것이 2001년 8월 현재 55.7%로까지 폭증한 상태다.

상위 20%에 대비한 하위 20%의 소득배율은 1997년 4.49에서 2001년 5.36으로 약 20%가 증가하는 등 소득분배 구조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IMF 위기를 통해 고도성장기 동안 급성장한 중산층의 약 60%가 하층으로 분해되고, 2000년 현재 하층의 빈곤층은 대략 700∼1000만의 규모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중산층 붕괴는 사회구조를 '다이아몬드형 사회'에서 '모래시계형 사회' 또는 '10대 90의 사회'로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람 자르기식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의 고통받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의 질 저하로 강력한 불만을 제기함으로써 노동시장은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이다.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구조개혁은 시장만능주의적 신자유주의 논리에 기반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인간과 자연의 피폐, 고용과 소득불안의 극대화, 국가·개인간 소득격차의 확대, 세계적 경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강화 등 노동자들의 생존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는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에 근거하여 노조나 복지제도, 민주주의까지도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의 해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조직률은 12%로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을 교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정부와 재계가 노동자의 이익에 반대하고 정치권이 노동자의 이익대변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업별로 파편화된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주5일제, 비정규직 보호, 공무원노조 등 노동자의 이익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시장 중심의 노동운동이 갖는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정치영역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2) 정치시장의 변화

IMF위기 이후 5년 동안 정치시장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불어닥친 노풍, 월드컵에서 지연과 학연을 넘어선 히딩크식 리더십에 대한 폭발적인 성원,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 등은 모두 정치시장의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시장 변화의 저변에는 '문화이동'(culture shift)이라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사회 경제 정치 기술적 환경변화로 인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경험의 차별화가 심화되고, 이 같은 차별성이 정치영역에서 새로운 인물, 새로운 주장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이동은 가치와 태도에서의 '세대간 변화'라고 부를 수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형성된 새로운 세대들은 엘리트들이 대중을 동원하는 과거세대의 '엘리트 주도' 방식의 정치참여와 달리 대중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엘리트 도전적' 정치참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특권층 대 노동자, 서민 등 새로운 정치균열 라인이 형성되고 있으며, 지역주의에서 이익정치로의 전환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부분적 성공은 새로운 이익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태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당들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지역·세대간 통합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득권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이 이용되어 왔다. 즉, 정당이 정치발전과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기관차로 역할하기보다는 그 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지역엘리트들이 오히려 지역균열을 확대재생산,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는 도구이자 기득 엘리트들의 파당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당들의 카르텔 정당 경향은 국고보조금을 매개로 기존정당들간의 담합을 강화시킴으로써 정당체계상의 내부자-외부자 체계를 형성시켰다. 그리하여 새로운 제3의 정당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을 강화시킴으로써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경쟁 틀을 재생산하고 있다. 

최근 1인1표 비례대표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등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다소 낮아진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정당간 경쟁은 기존의 제도권 정당들이 모두 지역에 의존함으로써 정치시장에서 지역이 여전히 직접적인 경쟁무기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사회 수준에서의 다양한 요구들이 정치 수준에서 승화되어 제도화되지 못하고 지역주의에 흡수되고 있으며, 모든 제도권 정당은 지역정당의 이미지가 고착되고 있다. 

이 같은 퇴영적인 지역정치를 종식시키고 노동자 서민대중의 변화욕구를 현실화시키는 데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외의 대안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초 현대 민주주의의 원형을 확립했던 서구에서도 대중정치시대의 개막은 19세기말 광범위하게 등장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그 기본동력으로 삼았다. 한국노총의 독자창당은 문화이동을 통해 지역일변도의 기존 정치지형이 변화하고 새로운 정치공간이 형성되는 이 같은 정치사회의 변화에 부응하는 것으로 한국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3. 한국노총 독자창당의 내적 조건

전통적으로 한국노총의 대선 전략은 '승자편승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97년 대선 이전까지 한국노총은 대선에서 집권정당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노총이 대선에서 집권당을 지지하는 대가로 노총은 노동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 국가조합주의적 노조-정당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1963년 1월초에는 광산노조 위원장 등 8명의 산별 위원장들이 중심이 되어 (가칭) 민주노동당 결성을 시도하는 등 집권여당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한국노총의 정치적 독립시도는 박정희 정권의 회유와 협박으로 무산되고 그 이후 노총의 정치활동은 소극적인 정책건의 및 청원활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노총과 집권세력 사이의 국가조합주의 관계는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계기로 본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한국노총은 당시 집권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날치기안을 통과시키자 50년 만에 최초로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날치기 노동법 무효화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노총은 기존의 집권여당 편향의 정치활동을 수정하고 야당과의 정책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활동을 실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분요구 또는 정책 맞교환 방식의 정치활동은 노동자 서민이 함께 하는 정당창당 등 정치세력화의 주체로서의 정치활동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을 주체로, 노총을 객체로 상정한 수동적 정치활동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IMF 위기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의 노동정책이 신자유주의로 경도되면서 정책연합은 실패하고, 이에 따라 노총의 정치적 위상도 대폭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노총은 국가조합주의에서 정책연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활동방식을 시도해왔으나 조합원들의 정치세력화 요구를 수렴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기존정당과의 정책연합이나 지분확보 방식은 노총 전체의 정치세력화 또는 조합원의 민주적 참여 하의 정치진출을 보장하지 못하였다. 각 지역본부별 지역정당 편향의 정치활동은 중앙수준에서의 통합적이고 일관된 정치활동 실천을 가로막음으로써 노총 중앙의 정치 리더십을 약화시켜왔다. 또한 기존정당에 의존하는, 비례대표 획득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은 조합원들의 적극성을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노총의 정치적 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기존 정치활동 평가에 덧붙여 노총이 독자창당에 나서게된 또 다른 내적 조건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독자정당 선호 표출이다. 민주화 이행 이후 지속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노총 조합원의 과반수는 일관되게 독자정당 창당 선호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새로운 정당 또는 독자정당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시기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으나 대체로 60%이상이 지속해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합원들의 선호를 반영하여 한국노총은 1998년 2월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1997년을 '지역정치 타파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년'으로 규정짓고,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독자정당 건설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21세기 정치활동 PLAN'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안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독자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2004년 총선 이전에 독자정당을 창당해 총선에 임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노총은 금년 5월7일 28개 산별연맹 위원장과 16개 광역시도 지역본부의장, 그리고 노총임원 4명 등 총 49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위원회를 통해 정당결성을 결의함으로써 독자창당의 의지를 구체화하였다. 동 회의에서는 '올 12월 대선 정치활동의 전략 기조를 노총과 사회 제 개혁세력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참여로 하고',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에 관한 광범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고 적극 참여한다'고 결정했다. 

이 같은 결의에 근거하여 노총은 지난 7월초 대선기획팀을 구성하여 독자정당 창당 검토안을 마련하고 8월초 노총 사무총국 내부의 합의 형성을 위한 논의를 거쳐 8, 7일 산별대표자 회의를 통해 독자창당 방침을 재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앞으로 독자창당 방침이 확정되어 창당작업이 본격 추진되려면 9월11일의 중앙정치위원회와 10월 초의 전국임시대의원대회에서 최종 결의를 다지는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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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조합원 다수는 지속적으로 노동자 독자 정당 건설을 지지해 왔다. 사진은 주5일제를 요구하는 한국노총 조합원들  ▷ 출처:매일노동뉴스 ]

4. 한국노총 독자정당의 발전전망과 과제

2002년 대선정국을 맞이해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신당론, 정몽준 신당론, 개혁신당론 등 신당창당과 이합집산이 어지럽게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사회의 통합과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선거정국에 대응해서 권력확보의 수단으로 신당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치개혁의 요체가 엘리트 중심 정치에서 대중 중심 정치로의 변화라고 할 때, 현 정치권의 개혁은 국민대중의 개혁 열망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노총이 추구하는 정당은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고 하는 역사적 대의에 기초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총 독자정당은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반부패·반특권·반지역주의를 기치로 내세워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창당하고자 하는 독자정당은 어떠한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인가? 먼저, 노총의 창당 이념은 경제위기 이후 노총이 운동방향으로 설정해왔고, 그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아온 민주주의, 복지사회, 인간중심의 3대 이념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이 같은 이념은 사회민주주의로 표상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상 민주당 좌측, 민주노동당 우측의 중도노선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기반해야 한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념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 이념이다. 민주주의 이념은 1원1표의 불평등을 원리로 하는 시장과 달리 1인1표의 평등성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둘째, 서구의 노동정당들이 추구해온 바와 같이 노총이 추진하는 정당은 복지국가를 표방해 나가야 한다. 저소득 생활자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지원과 효과적인 직업교육훈련의 실시, 괜찮은 일자리 창출 및 소득분배구조의 개선, 국민을 위한 일반적 복지 등은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성의 원리에 의해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시장이 아닌 정책적 수단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한 실효성 있는 복지정책은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 신자유주의가 파생시키는 시장에의 인간종속, 노동자의 소외, 인간적 가치의 무력화, 환경 파괴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이념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장제일주의가 악화시키는 반사회·반인간·반환경 결과물로부터 인류와 인간적 가치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총의 독자정당은 앞으로 어떠한 발전경로를 밟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 경로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첫째, 노총만의 독자정당을 유지하는 방안은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성장하는 데 따른 막대한 비용소요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노총의 정치력을 강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조합원들내에서 노총만의 독자정당 지지도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조직률이 12%에 불과한 상태에서 동일한 노동계의 기반을 민주노동당과 나누어 가져야 하고, 결과적으로 노동계의 정치적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둘째, 제도권내 개혁세력과의 연대 방안은 한국노총 내부의 정치적 정체성과 조직적 단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노총 안에는 기존정당 지지흐름이 매우 강력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기존정당의 일부와 동맹할 경우, 여기서 배제된 세력의 조직적 반발과 분열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제도권 개혁세력의 경우 한국노총을 지지세력 이상의 동맹세력으로 상정하지도 않는 상태다.

셋째,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계 단일정당을 창당하는 방안은 현 단계에서 실현 가능한 가장 용이한 방안이다. 2001년 8월에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 대선 방침과 관련 한국노총 조합원의 10.4%가 노총만의 독자정당을 선호하는 데 반해, 41.8%는 노동자·시민의 독자정당 창당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추진하는 정당과 민주노동당은 상호보완 관계이므로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노총 안의 제도권 정당 지지흐름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한국노총 독자정당 창당이후 발전경로는 창당과 동시에 개혁적이고 신뢰할만한 세력과 공동창당 또는 합당 수순을 밟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과의 결합은 노동계 단일정당 창당이라는 당위에 부합한다. 이러한 노동계 단일정당 창당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 농민·학생·시민단체 등과의 연대를 통해 집권이 가능한 개혁적 국민정당으로의 외연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5. 결론

노동자는 정당으로 조직되어야만 비로소 사회 계급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시기의 정치활동을 통해 정치영역에서 정당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독자적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왔다.

'개표는 기나긴 과정의 마지막 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투자 없이 선거를 맞이할 경우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독자정당 창당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기존정당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선거정국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의 존립기반 자체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노동운동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노총의 독자창당 과정은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극복해야만 하는 '고난의 행군'으로 비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창당이 일부 상층간부의 정계진출 수단이 될 것이라는 불신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조합원들의 신뢰를 통해 힘있는 창당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창당의 주체가 조합원, 당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창당 과정 자체가 노총의 기존 이미지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만 한다. 검증된 리더십을 확보하는 문제도 창당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강력한 노동운동 없이 민주주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노총의 독자창당은 강한 노동운동을 만들기 위한 역사적 실험이다. 과거의 권위주의 시기와 달리 현재 노총의 창당을 가로막는 외부 요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제 더 이상 기존정당에 구걸하는 방식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독자창당이라는 새로운 시도의 성패 여부는 우리 모두의 결의 수준과 선택에 달려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