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장 짓밟는 법원 판례

노동사회

고용보장 짓밟는 법원 판례

admin 0 4,401 2013.05.08 10:56

삼미특수강근로자들의 고용승계투쟁은 유례 없는 장기간 노숙투쟁으로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삼미특수강 사건은 IMF 관리체제의 한국 경제와 근로자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건의 발단이 무리한 차입경영과 과도한 부동산보유 등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삼미특수강 사건은 한국 경제의 전형적인 폐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는 원인 제공자인 사용가가 아니라 근로자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고용승계를 거부한 자산매매 계약

사건의 발단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만한 경영 때문에 5년이나 적자에 빠져 있던 삼미특수강은 도산을 피하기 위하여 1996년 말 봉강 및 강관부문을 포항제철에 매각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포항제철은 인수를 위해 1997년 2월14일 창원특수강이라는 자회사를 새로 설립했고, 1997년 2월17일 창원특수강과 삼미특수강은 봉강 및 강관부문과 관련된 자산의 대부분을 인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자산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계약서에 근로자의 고용승계를 일체 부정하는 조항을 두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창원특수강은 계약서에 근거하여 기존 삼미특수강 근로자의 일부만을 신규 채용 형식으로 다시 채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채용에 응하기는 했으나 신규채용에서 탈락한 근로자와, 전원고용승계를 주장하면서 채용전형 자체를 거부한 근로자는 재채용에서 배제되었다. 근로자들은 고용승계를 주장하면서 단식농성과 천막농성 등 실력행사를 전개하는 한편,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회사(양도인) 자산의 대부분을 다른 회사(양수인)에 매각했을 때, 그 계약에서 근로자의 고용승계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이 부당해고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의 자산매매가 영업양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영업양도가 이루어질 경우 근로관계는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는 법리가 확립되어 있다. 만약 영업양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근로자를 고용승계대상에서 제외하면 그것은 부당해고가 된다. 그런데, 이 법리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영업양도에서 근로관계의 포괄적 승계라는 법리는 논리적으로 볼 때 고용이 승계되기 위해서는 우선 영업양도에 해당한다는 것이 먼저 인정되어야 한다. 영업양도에 해당한다면, 근로관계는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승계되지만, 영업양도가 아니라 자산매매에 불과하다면 근로관계는 승계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논리 구조는 사용자가 영업양도에서 고용승계를 회피할 수 있는 틈새를 제공한다. 

인원감축을 노리는 사용자는 영업양도 대신, 다른 계약 형식을 이용함으로써 영업양도의 효과를 얻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근로자만을 선별하여 재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미특수강의 경우에는 이 점이 쟁점이 되었다.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고등법원은 형식적으로는 자산매매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업양도라고 보아 고용승계를 인정했으나, 대법원 판결(2001.7.27)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실질적인 해고나 다름없어 

근로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변동은 주로 합병이나 영업양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합병의 경우에는 법에 포괄승계 및 당연승계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근로관계가 승계된다. 그러나 영업양도에서는 그 법률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명문 규정도 없기 때문에 판례에 의해서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업양도에서 고용승계와 관련한 판례의 입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양도계약 당사자, 즉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 고용승계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있는 경우다. 이 때는, 당연하지만, 판례는 근로관계의 승계를 인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양도계약 당사자 사이에 고용승계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없는 경우다. 판례는 이 경우에도 영업양도가 인정된다면 근로관계의 승계는 묵시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양도계약 당사자가 일부 근로자를 승계에서 배제한다고 명시적으로 합의하는 경우다. 

판례는 "영업이 포괄적으로 승계되면, 반대의 특약(特約)이 없는 한, 양도인과 근로자간의 근로관계도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에 근로관계의 일부를 승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근로관계의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러한 특약은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이 없으므로, 근로기준법 제27조(현행법 제30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업양도에서 실제 문제되는 상황은 고용승계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특약을 한 경우인데, 판례는 이를 원칙적으로는 유효하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해고의 정당성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고용승계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는 영업양도 그 자체를 해고 사유로 인정한다면 근로자 보호에 결함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고제한 법리와의 상관관계에 따라 제한하겠다는 취지이다. 이상과 같은 판례 법리는 영업양도에서 근로관계의 처리에 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는 고용승계를 통한 근로자보호 측면에서 타당한 입장으로 보인다. 

불구가 된 정리해고 법적 규제

영업양도에서의 고용승계를 해고 제한 법리와의 상관관계에 따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판례 입장이라면, 영업양도의 개념에 대한 파악 역시 고용승계를 부정하려는 사용자의 자의적 의사를 통제하는 매개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삼미특수강 사건에서는 지금까지 영업양도와 관련하여 법원이 공들여 쌓아온 노력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지금까지의 판례는 영업양도의 개념에 대하여 일관되게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업체 즉 물적·인적 조직을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으로서, "여기서 영업의 동일성 여부는 일반 사회관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사실 인정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행위(양도계약관계)가 영업의 양도로 인정되느냐 안 되느냐는 단지 어떠한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되어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는 되지 않는 반면에 그 일부를 유보한 채 영업시설을 양도했어도 그 양도한 부분만으로도 종래의 조직이 유지되어 있다고 사회관념상 인정되면 그것을 영업의 양도라 볼 것"이라고 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근로관계가 승계될 수 있는 영업양도는 계약의 형식적인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념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실질적인 내용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업양도인지의 여부는 양도계약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를 배제하고 그 영업 자체가 영업양도 이전이나 이후에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삼미특수강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상의 내용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결론에서는 사용자측의 의도를 중요한 근거로 하여 영업양도 해당성, 즉 고용승계를 부정하고 있다. 

삼미특수강과 창원특수강이 양도계약에서 근로관계의 승계를 명시적으로 배제한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삼미특수강의 입장에서는 "공장의 자산과 함께 인적 조직인 종업원들을 포괄하여 양도하는 방식으로는 양수희망자가 없어 봉강·강관 부문의 사업정리가 불가능하였으므로 결국 이 사건 공장의 자산만을 양도하기로 하고, 그에 따라 이 사건 자산매매계약의 체결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한편 포항제철측, 즉 창원특수강측에서는 "자산 이외에 인적 조직인 종업원들의 대부분을 함께 인수하는 영업양수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생산기술을 향상시키고 경영환경을 개선하더라도 건전한 기업으로 육성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요컨대 대법원도 삼미특수강 사건에서 양도계약당사자인 삼미특수강과 창원특수강이 이 사건 매매를 계기로 하여 인원정리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법원이 이러한 사용자의 의도를 영업양도로서의 성격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대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사용자가 영업양도가 아니라 고용승계가 되지 않는 '자산매각'의 계약형태를 취하였다면 사실상 언제나 영업양도로서의 성격을 부정받게 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사용자가 영업양도에서 근로관계의 '일부'를 배제하는 경우에는 부당해고로서 무효가 되지만, 삼미특수강사건과 같이 영업양도를 근로관계의 '전부'를 배제하려는 경우에는 영업양도가 아니라 '자산양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허용된다는 이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판례 태도는 나아가 정리해고에 대한 법적 규제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까다로운 법적 규제가 적용되는 정리해고와는 달리 자산매각은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굳이 복잡한 정리해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법에서 보장 못받는 고용보장 

그렇다면 근로자가 기업변동 상황에서 고용을 보장받는 방법은 없는가. 결론만 말하면, 지금과 같은 판례로는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회사에 영업양도나 자산매각의 움직임이 보이는 경우에 사전에 양도인 또는 양수인에 대해 적극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판례에 따르면 그것 또한 거의 불가능하다. 매각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양수인으로 될 가능성이 많은 자에 대해 단체교섭을 신청할 경우, 미래의 사용자가 될 수 있는 양수인으로 되는 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한다면 현재의 판례로서는 구제 방법이 없다.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용자에 대해 영업양도나 자산매각에 관해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가. 역시 불가능하다. 판례에 따르면 "영업양도는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하여 취해진 조치로서 경영 주체의 경영의사 결정에 의한 경영조직의 변경에 해당하고"(대법원 2001.5.8 선고 99도4659 판결), 이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그 실시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쟁의행위에 나아간다면, 비록 그 실시로 인하여 근로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하더라도 그 쟁의 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대법원 2002.2.26 선고 99도5380 판결). 결국 근로자가 고용보장을 법에 호소하는 길은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과연 이러한 법제도 밑에서 근로자의 협력을 전제로 한 순조로운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불가능하다. 어느 누가 해고가 눈앞에 있는데, 그것에 협력하려고 할 것인가. 법원이 기업변동에서 고용보장을 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고용보장에 관한 법을 제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과연 국회는 그것을 할 것인가 또는 할 수 있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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