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을 떠올릴 때다

노동사회

물음을 떠올릴 때다

admin 0 2,177 2013.05.08 10:46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평온과 확신의 때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논쟁과 도전의 때에 어디에 서 있는가에 달려 있다." - 마르틴 루터 킹

한국의 노동운동이 혼돈과 미망 속에서 헤매다 못해 추락하고 있다면 너무 가혹한 표현일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4월2일 발전노조 합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은 어렵고 힘겨운 노동운동의 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노동운동의 진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정작 노동운동 자신은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의 도전은 거세지는 데 반해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냉철한 인식과 철저한 대응은 이뤄지지 못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자존심은 구겨지고, 노동운동의 주체 역량은 정체되고 위기 국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좌절과 희망의 교차점에 선 노동운동 

먼저 노동운동의 정체와 혼돈은 크게 보아 외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취약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세계화, 신자유주의, 자본의 신경영전략 등 거대 도전에 대한 노동의 주체적 대응은 소극적·수세적이었으며,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요구 확대와 다양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 게 사실이다. 위기 국면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예고되는 바, 시대의 도전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 노동운동의 잠재 역량은 건재하며, 이는 운동 주체의 자기개혁과 노동운동의 권위 회복,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자존심 복원이 이뤄진다면 현재의 위기 국면을 운동 발전의 원동력으로 바꿔낼 수 있는 토대가 존재함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토대를 현실로 만들어낼 운동 진영의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양대 노총이 밝힌 2002년 노동운동의 방향을 보더라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은 크게 강조되고 있는 반면, 운동 주체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목이 없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까닭에 4월2일 발전노조 합의를 둘러싸고 일고 있는 민주노총 내부의 혼미는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 당연한 사태의 귀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전략목표도 뚜렷한 형태로 정립되어 있지 못하고, 당면 과제들에 대한 대응방책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계기로 반전시키기 위해 운동 전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시급한 것은 성실한 물음부터 떠올리는 일이다. 작금의 상황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그 해법을 빨리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떠올려 보는 일이다. 쉽고 섣부른 해답을 찾기보다 사태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급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버리고, 이번 사태를 노동운동이 부딪힌 도전과 과제를 고민하고, 토의하고, 학습하는 계기로 만들려는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상태로는 노동운동의 자기 발전을 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자각하고, 간부와 조합원의 고민을 모으고, 함께 토의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얼음처럼 굳어진 사고와 행동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운동을 이끌어가기 힘들다는 점을 명심하고, 창의적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려면 낡은 사고와 굳어진 행동방식을 극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상황 진단과 더불어, 실질적인 현장 토의를 광범위하게 조직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풍토를 바꾸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노동자계급의 품성과 기품, 도덕을 살리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노동자로서의 자존심과 동료애·동지애를 저버린 삭막한 풍토에서는 생명력 있는 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동료애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현장조직을 통한 일상적인 만남, 토의 그리고 노조 활동에 대한 참여, 조직 사이의 깊은 연대 등을 매개로 하여 넓어지고 깊어진다. 노동운동의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이 위기 국면에 놓이게 되면, 타협주의와 경제주의가 합리화되기도 하고 반대로 모험주의와 극좌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면서 분파주의가 고개를 쳐든다. 분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통일 단결을 깨뜨리는 해악적인 경향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 주체의 원칙을 살리고 대중적 포용력을 발휘하며, 특히 현장 토론을 통한 민주집중의 원칙을 관철해야 할 것이다. 패배주의도 안 되지만, 투쟁주의와 맹동주의도 안 된다는 점을 바로 인식하고, 노동운동 발전에서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인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조직적 통일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터이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조직적 통일을 위해 

지금 노동운동을 둘러싼 안팎의 정황은 도무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4월2일 발전노조 합의를 둘러싼 사태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좌절과 희망'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노동운동이 부딪힌 좌절을 희망으로 바꿔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과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도전이 거대하고 과제가 막중하면, 자칫 노동운동의 나아갈 길이 막막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물음을 다듬어 떠올리는 일이다. 진지한 물음은 해답을 얻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성실한 고민과 광범한 토의 그리고 집중된 학습 활동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패배주의를 이겨냄과 동시에 근거 없는, 그야말로 맹목적인 낙관주의의 허상도 깰 수 있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