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파업의 경과와 과제

노동사회

발전노조 파업의 경과와 과제

admin 0 3,317 2013.05.08 10:44

발전노조 파업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한달 이상 지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4월2일 합의안은 '법과 원칙 준수', '노사 화합', '민영화 관련 교섭의 논의대상 제외',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의 적정한 수준 해결', '노조 파업 중단 및 즉각 회사 복귀' 등 그 내용에서 합의라기보다는 정부측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었다. 당연히 발전노조는 합의안에 반발했고, 조직 안팎의 비판이 잇따르자 민주노총은 4월3일 오전 10시 투쟁본부회의를 열고, 4월2일 잠정합의안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날 교섭단이었던 이홍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원 전체가 사퇴함으로써 발전노조 합의 이후 민주노총은 조직적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한편, 정부는 파업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원칙을 밝히는 동시에 민주노총에 교섭권을 위임한 만큼 발전노조의 반발은 "큰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면서 발전소를 비롯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발전소 매각을 둘러싸고 한달 넘게 전개되었던 노정간의 공방은 정부 방침을 철회시키지 못한 가운데 발전노조의 파업 '중단'으로 막을 내렸다. 

민영화를 둘러싼 노정 정면 충돌

지난 2월25일 철도·가스노조와 함께 시작되었던 발전산업노조의 파업은 조합원의 95%가 넘는 5300여명이 참여하는 등 애초의 예상을 뛰어넘는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발전 노사간 쟁점은 △ 발전소 매각 중단, △ 전임자수 규모, △ 조합원 신분변동 때 사전 통보 및 노사합의 여부, △ 고용안정위원회 구성 및 운용 등이었고, 이 중 핵심은 정부의 일방적 민영화 조치에 따른 발전소 매각 문제였다. '발전소 매각 방침 철회'를 주장하는 노조의 입장과 '민영화 정책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노정간 정면 충돌로 치달았다. 

파업이 진행되었던 3월 한달 동안 정부와 사측은 노동조합에 엄청난 공세를 퍼부었다. 5개 발전회사 사측은 노조의 거듭되는 교섭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노사협상을 거부하고, 파업 주동자와 참가자에 대한 고소·고발·징계를 남발했다(4월2일까지 발전노조 조합원 896명이 사측에 의해 고발되었고, 노조 지도부 25명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불법파업 엄단'과 '민영화 정책 강행' 천명에 힘입은 정부는 파업 지도부와 핵심 노조활동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 위협, 3월24일 연세대 노조원 집회 강제 해산, 노조원 가택 불법 수색 등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또한 경제5단체를 비롯한 사용자단체와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은 정부의 강경 대응과 공권력 투입을 촉구하면서 반노동자적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민주노총의 엄호 투쟁과 각계의 호응 

민주노총은 조합원 10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2월26일 총파업을 조직하고, 수 차례의 기자회견과 항의농성, 전국단위노조대표자대회를 비롯한 각종 집회와 시위 조직, 3월26일 임시대의원대회의 4월2일 2차 총파업 결의 등 발전노조 파업을 지원·엄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3월29일 발표된 투쟁 일정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전교조(9만여 조합원 조퇴투쟁), 금속산업연맹(현대·기아·쌍용 등 완성차 3사 및 한국중공업 파업 돌입), 공공연맹(사회보험노조, LG 파워, 한국고속철도공단, 하이텔노조 등 파업 돌입), 화학섬유연맹(한국합섬, 코오롱 등 파업 돌입), 보건의료노조(4월2일 4시간 파업, 4월3일 전면파업 돌입), 택시연맹, 화물연맹 등이 4월2일 총파업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한편, 발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민영화 정책의 일방적 추진을 중지하고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요구가 터져 나왔다. 3월7일 강원룡 목사 등 사회원로 988인 국민 토론 촉구 선언을 시작으로, 4월 초까지 발전소 매각 유보와 국민적 논의를 촉구하는 선언이 여야의원, 학계, 법조계, 문화계, 시민사회단체에서 잇달았다. 특히 3월18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안영근 의원 등 여야의원 25명은 '발전산업 정상화를 위한 권고안'에 공동서명하고, 이를 노조와 정부에 전달했다. 그 내용은 △ 발전소 매각과 관련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에 노사정은 인식을 같이 하며, △ 국회는 발전소 매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개최하고, △ 정부는 이와 같은 국회의 의사수렴 과정을 존중하며, △ 이를 전제로 노조는 즉각 파업을 종결하고 현업에 복귀하며, △ 사용자는 업무에 복귀한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 및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 등이었다. 국회의원 권고안에 대해 발전노조는 긍정적으로 검토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불법파업에 대한 법치국가의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수용을 거부했다. 

노정 합의와 민주노총의 조직적 혼란 

4월2일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이 가까워지면서 발전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민주노총과 정부간의 교섭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4월1일 오후 7시 노동부 김원배 기획관리실장 등 정부측 3명과 이홍우 민주노총 사무총장 등 노동계 대표 3명이 롯데호텔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정부측은 "민영화 문제가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민영화 문제를 향후 논의에서 완전히 제외키로 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넣을 것을 요구했고, 노조측은 "노사가 민영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선에서 협상을 타결짓자고 제안했다. 협상은 정회를 거듭하는 가운데 4월2일 오전3시 정부측 대표는 "민영화는 비교섭 대상임을 명시하자"는 안을 노조측이 수용하지 않으면 타결은 없다며 협상장을 빠져나갔다. 

4월2일 오전 11시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갖고 5개 연맹 393개 사업장에서 14만 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측에 교섭재개를 요구했고, 그 결과 4월2일 오전 11시쯤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민주노총 협상단은 정부 안에서 '향후'라는 말을 빼고 "발전소 민영화 문제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최종안을 정부측에 제시했고, 이를 검토한 방용석 노동부 장관은 관계부처의 의견조율을 거친 뒤 오후 1시 민주노총 교섭단과 합의문을 교환했다. 이에 따라 12시50분 산하 조직에 파업 대기 지침을 내렸던 민주노총은 2차 총파업 철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원래 노조가 요구했던 사안 가운데 하나도 얻어내지 못하고 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관철된 합의안에 대해 발전노조는 거부 의사를 밝혔고, 산하 조직과 조합원들에게 합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다. 특히 총파업 유보 및 철회 결정은 파업과 집회를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산하연맹과 단위노조에 큰 혼란을 초래했고, 이 때문에 민주노총에 대한 조직 안팎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4월2일 합의안을 둘러싸고 민주노총의 조직적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열린 4월3일 민주노총 투쟁본부대표자회의는 합의안 폐기와 민주노총 임원진의 전원 사퇴를 결의했다. 같은 날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발전노조 집행부는 '파업 중단 및 현장 복귀 명령'을 내렸고, 다음날인 4월4일 민주노총 상집은 '조합원 동지들에게 드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합의를 둘러싼 사태의 파장은 더욱 증폭되었다. 

4월8일 민주노총은 중앙위원회를 열어 이홍우 사무총장으로부터 교섭과정에 대한 해명을 듣고,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비대위 구성 등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이홍우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산하 조직의 투쟁 동력과 발전노조의 조직력이 총파업 돌입·유지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이런 이유로 타결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와 문제 

민주노총은 오는 4월2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비대위 구성을 완료하고 향후 투쟁 계획과 과제를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번 사태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월8일 중앙위원회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번 사건은 협상에 참가한 몇몇 간부들의 잘못을 넘어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이 안고 있던 조직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를 4월8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나온 논의를 갖고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의 미정립, 현장 조합원과 지도부의 의사소통 단절, 각급 단위간의 조직적 괴리, 투쟁과 교섭의 원칙 부재, 교섭의 원칙과 절차 부재, 대정부 교섭의 성격과 위상을 둘러싼 혼란, 총연맹과 산하조직간의 상황 인식 차이, 소수가 독점하는 의사 결정 구조, 민주적 절차와 의사수렴 구조의 부재, 동력을 무시한 무리한 투쟁 일정, 정세 분석과 상황 판단의 미숙함, 전략·전술의 부재, 솔직하지 못한 조직 풍토, 조직 관리와 운영의 부실함, 장기 전망과 정책의 부재 등. 

한달 넘게 지속되었던 발전노조의 파업은 4월2일 '노정 합의'를 둘러싼 혼란 속에 '중단'되었고, IMF 관리 체제 이후 위기 징후를 보여왔던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고민을 던져주었다. 

참고자료1 

발전파업 노정 합의서

노사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국민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드리며, 앞으로 이와같은 불행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발전산업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노조는 2002.3.8일자 중앙노동위원회 중재 재정을 존중하여,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 

2.회사는 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가 적정한 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 이를 관계당국에 건의한다. 

3.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즉각 회사에 복귀한다. 

2002. 4. 2 


참고자료2 

전력노조 파업중단 및 현장복귀 명령

자랑스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동지여러분! 

38일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소매각철회에 대한 우리의 외침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졌고, 비로소 국민들은 졸속적인 전력산업 매각정책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장 승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피맺힌 절규와 처절했던 투쟁은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또한 동지들은 자랑스런 공공부문 노동자로, 역사를 새로 쓴 자랑스런 발전노동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정부와 사측의 무자비한 파업파괴공작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전개한 동지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이제 현장복귀명령을 내리고자 합니다.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으로 피를 토하며 주장했던 우리의 투쟁은 여전히 정당합니다. 찬란했던 우리 투쟁의 정당성과 향후의 많은 부담과 과제를 화두처럼 안고 현장복귀후의 새로운 투쟁을 시작합시다. 우리에게는 투쟁의 정당성이 살아있고, 역사의 물꼬를 바꾼 투쟁 의지가 살아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조합원 동지들은 자신감에 넘치고 당당합니다.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해고자를 원직복직시키고, 형사처벌을 받는 동지들을 동지적 애정으로 보호하고, 현장탄압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투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자랑스런 발전노동자들이 이제껏 보여준 투쟁의지라면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우리가, 파업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우리가, 동지간의 굳건한 믿음 하나로 파업을 시작했고, 38일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땅의 수많은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우리의 투쟁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을 온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5600동지들의 뜨거운 동지애와 상호신뢰가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싸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현장으로 돌아가서 투쟁합시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서로를 격려하며 힘차게 현장으로 돌아갑시다. 동지들이 현장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명동성당 지도부는 당분간 이곳에서 동지 여러분의 투쟁을 지원하며 함께 싸울 것입니다.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투쟁!!! 

2002년 4월 3일(파업 38일차)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이호동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