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 평가와 전망

노동사회

노사정위원회, 평가와 전망

admin 0 5,143 2013.05.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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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1998년 1월15일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한국 노사관계에서 최초의 노사정 협약으로 기록될 '2·6 사회협약'을 맺었으며, 1999년 5월부터는 법률적인 위상을 갖는 상설 사회협의기구로 자리매김했다. 

대립성과 분산성을 기본 성격으로 하는 한국 노사관계에서 중앙 차원의 포괄적 협약이 체결되고 그 체제가 제도화된 데는 무엇보다도 미증유의 경제위기 상황이 가져다 준 위기감과 더불어 타개책에 대한 주체의 전략적 고민들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노사정협의체를 구상했던 노동조합운동 진영은 경제 위기와 힘 관계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에서 대응책을 대중 동원과 결합한 사회협약 전략에서 찾았으며, 새 정부는 의회와 노동운동을 포괄하는 사회협약을 통해 순조로운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했다. 

민주노조운동의 강해진 저항력, 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재벌들의 영향력 후퇴, 소수파 정권이지만 집권 초기의 권력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던 김대중 정부의 전향적인 노사관계 및 재벌개혁에 대한 태도 등이 일정한 힘 균형을 이룸으로써 이 협약의 체결에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사회협약의 탄생에는 1990년대에 시도되었던 합의주의 실험의 역사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도들은 민주노조운동을 배제한 채 '국가 합의주의'(state corporatism)적 성격을 벗지 못하여 거의 실패했지만, 또 그 때문에 '사회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의 외관이 강화되는 효과도 가져왔으며, 김영삼 정부 당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경우에는 양 노총이 모두 참가하여 협의에 임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이 사회협약 체결로 이어지는 데 얼마간 기능했음은 분명하다. 

'2·6사회협약'과 노사정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정치적 교환에 의해 노동운동의 동의를 이끌어낸 최초의 역사적 실험이고 서구적 의미의 사회 합의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노동자를 사회적 합의라는 허위 의식에 사로잡히게 하고 실질적으로는 노사관계 유연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합의주의'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 일각에서는 '시장 기능에 왜곡을 초래할 우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엇갈린 평가는 향후 발전 방향을 둘러싸고도 여러 논의를 낳고 있다. 

노조운동 내에서는 현재의 노사정위원회가 극복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해체하고 명실상부한 사회협약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노사정위원회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체계를 정비하자는 '확대강화론'도 있다. 한편 사용자단체와 정부 일각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노동 측의 요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기능 약화내지 폐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대통령 선거 이후에 등장할 차기 정부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논의 지형에서 노사정위원회의 그간 활동을 간략히 평가해 보고 노사정위원회의 유효성을 간략히 지적한 후 활성화의 조건과 과제를 몇 가지 제안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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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른쪽부터 방용석 노동부장관,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 장영철 노사정위원장 ]

2. 노사정위원회 평가

1) 의의와 역할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의의 및 역할, 조직 운영 등의 측면에서 해볼 수 있다. 사회협약의 의의와 노사정위원회 역할에 대해서는, 첫째로 노사정위원회가 제도적 위상을 지니게 된 원천으로서 2·6 노사정협약이 한국 노사관계 최초의 사회협약이라는 역사적 자리를 가진다는 점부터 지적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협약은 분산성과 대립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갖고 있는 한국 노사관계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이라는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협약과 관련한 최초 발의자가 민주노조진영이었고, 이들이 참가한 가운데 협약이 체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전의 사회적 합의 발의가 국가주도에 의한 것이었고, 민주노조진영이 배제되었거나 참가했더라도 합의 형성에 실패한 것에 비하면 뚜렷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협약은 사회적 대립이 가장 극단적일 수 있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시장 일변도 문제 해결과는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문제해결 방식의 등장은 노동운동의 성장을 포함한 민주역량의 성숙을 반영하는 것이며, 수십 년에 걸쳐 권위주의와 노동배제로 일관한 국가 노동정책 기조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세 번째로 노사관계의 집중성과 참여적 성격의 진전을 예상해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는 사회협약에서 출발한 중앙 노사정협의체제가 우여곡절 속에서도 4년여 동안 유지되고 있고,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의 노동 및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협의를 제한적으로나마 가능케 하는 구조를 가지며, 또 민주노총 합법화와 일련의 노동기본권 신장, 산업별노조 건설의 가속화 등 집중성과 관련된 노조측 변화 요인들이 생겨난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협약은 사회합의주의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전의 사회합의주의 논의가 사회적 합의 형성 및 유지에 있어서 강력한 친노동정당과 집중적 노사관계 구조, 그리고 케인즈주의 경제운용 등을 중요 설명요인으로 제시한 데 반해 한국의 노사정협약은 이러한 조건이 결여된 상태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노사정 주체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맺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협약은 위에서 언급한 구조적 설명 요인들이 결여된 상태에서도 체결되었던 1990년대 각국 사회협약들과 궤를 같이 한다. 

한편 노사정위원회는 1999년 5월 입법을 통해 상설적 정책협의기구로 법제화되었다. 이로 인해 노사정위원회는 제도적으로 안정성을 갖게되었으며, 제도적 틀 또한 쉽게 폄하할 수 없는 내용을 지니게 되었다. 우선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애매한 위상을 지니지만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노사정간 포괄적 정책협의기구라는 법률적 위상은 이전에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노사정위원회의 협의 대상범위가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노동정책 및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 및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등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노조측에게는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설 통로가 제공된 셈이다. 이로 인해 노조측은 노동문제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다루기 힘들었던 사회·경제·산업정책에 대한 관여의 권리를 일정하게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노동조합의 정책참가권 신장에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또 정부측 노사정 위원으로 재정경제부장관과 노동부장관을 비롯한 경제장관들을 명시하고, 협의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의 출석과 자료제출, 설명을 요구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성실한 합의이행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 여부에 관한 사후 조치를 명시한 점 등은 정책협의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규정한 것으로 이후 보완 입법 등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정부에 상당히 강력한 구속력을 강제할 수 있다. 아직 다듬어져야 할 사항들은 있지만 이러한 제도적 특징들은 유럽의 코포라티즘적 3자기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위상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한계와 문제점

한계와 문제점 역시 뚜렷하다. 이는 주로 협약체제의 구조적 환경, 협약의 내용, 협약 이행, 구조조정 정책과의 관련, 제도적 틀의 취약성, 조직운영 등에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사회협약을 둘러싼 구조적 제약성이 가져다 준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경제위기가 노사정 주체들의 전략적 합치를 가져다 주긴 했지만, 거시경제가 IMF의 관리 하에 놓이면서 정부의 정책 자율성에 큰 제약이 가해짐으로써 노동에 대한 정부의 양보 범위가 좁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다른 제약은 정부의 성격인데, 김대중 정부는 과거와는 구별되는 전향적 노동정책 기조를 가지고 사회협약 체결까지 이루어내긴 했으나, 자유시장경제를 명확히 표명했던 만큼 친노동정당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한계는 구조조정 국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노사관계 구조의 특성에서도 제약 요인이 컸다. 노사 및 노정간의 대립과 갈등, 기업별 노사관계 등이 지배적인 조건에서 등장한 사회협약은 협약에 대한 동의와 집행의 수직적 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대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회협약 재교섭운동이 벌어진 점이나 협약 체결 이후 사업장 별로 부당노동행위와 수량적 고용조정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도 노사관계 구조의 이런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점이 있다. 사실 이런 제약들은 모두 기존의 사회합의주의 형성과 안정화의 구조적 여건에 해당되는 것들로써, 이는 결국 당사자의 전략적 선택이 사회적 합의 형성에 견인차가 되지만, 구조적 환경 역시 지속적인 제약을 가함으로써 협약체제의 안정성에 위협을 가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협약 내용에 관련된 것으로, 제1기 사회협약은 재벌개혁, 물가안정, 노동시장 유연화, 실업대책, 사회보장, 노동시장정책, 노동기본권 신장 등 10개 의제 105개의 합의사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핵심은 노동기본권과 노동시장 유연화의 교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시장 안정화 대책과 교환되지 않고 노동기본권과 교환된 것은 한국 노동현실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운동뿐 아니라 정부조차 노동시장의 급속한 재편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점과 무관치 않다. 

협약 이행 문제는 노조측이 협약 체결 이후 내내 불만을 표시했던 사항이었으며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의 주요한 배경의 하나였다. 노사정위원회에 의하면 제1기 합의사항 90건 중 2002년 3월말 현재까지 77건이 완전이행, 11건은 일부 이행되어 약 90%의 이행율을 보였으며, 제2기 합의 10건 중 완전이행이 9건, 3기 합의 19건 중 14건이 완전이행 내지 일부 이행되는 등 매우 높은 이행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 합법화와 파견근로제 단 두 건의 제도 시행이 미친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건수 위주 이행 평가가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 공무원노조 인정, 실업자 산별노조 가입 인정, 노동시간 단축 등 구조조정을 헤쳐나갈 노동조합 측의 무기가 될 중요 사안들이 이행되지 않았으며, 토지·상속·증여세 및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의 세제개혁이나 부패방지법, 자금세탁방지법 등 정치개혁 관련법률의 이행도 부진하였다.

이행 시기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는 협약 체결 직후에 입법 시행되었지만, 실업대책은 초고금리 및 재정긴축으로 도산이 속출하여 실업수준이 7%대를 넘어선 1998년 하반기가 되어서야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고,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애초에 구조조정기 고용대책으로 합의된 것이었으나 구조조정기가 일단락된 현재에서야 정부 단독으로 입법안이 마련되었다. 또한 원칙적 합의와 세부 합의간의 간극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우가 많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으로 보아 협약 이행 수준이 반드시 부진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구조조정기 노동보호에 적절해야 할 정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했다. 

사회협약체제로써 노사정위원회의 한계가 가장 뚜렷해 진 것은 구조조정 문제에 맞닥뜨리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노사정위원회의 대응논리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이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 계획 등에 대한 당사자간 협의를 중시했으며, 금융 및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실상의 사용자인 관계로 노사정위원회 내에 특위를 두어 다루었다. 또한 일부 기업 구조조정에는 노사정위원회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노사간 조정과 중재를 수행함으로써 대량 해고와 극한 대립을 해소하는 데 역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노사정위원회 활동은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급진적 구조조정 집행을 흡입해 내지 못한 채 주변화되었다. 예를 들어 공공특위와 금융특위의 경우 활동이 권고·건의 등에 그쳤을 뿐이며, 정부 계획에 대한 비판 또는 정부로부터의 해명을 듣는 것 외에 아무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또 재벌구조조정의 경우 노사정위원회 논의 자체가 포기되었다. 노사정위원회의 이러한 무기력은 정부의 일방적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 논의 자체를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생각하여 협의에 소극적이었으며, 법에 규정된 협의 대상도 가능한 한 협소하게 해석하려 했다. 심지어 노사정위원회가 중재한 노정간 합의도 수 차례 파기하곤 했다. 이러한 구조조정 협의의 난맥이야말로 민주노총 탈퇴 등 노조진영이 노사정위원회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 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상설 노사정 협의기구로 제도화되었지만, 그 능력은 노사정 관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노동 및 사회경제정책을 협의대상으로 삼았지만, 구체적인 협의대상은 노정간의 논란거리였다. 예를 들어 최근의 경제특구 논란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둘째, 다른 정부 소속 위원회 예를 들어 규제개혁위원회와의 관계가 애매하다고 할 수 있었다. 셋째, 정부측 이행을 감시할 적절한 감독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조직운영에서도 다양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독립성이 약하고 조직에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운영국은 파견공무원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정부의 입김이 조직 내부로 흘러들고 있다. 또 논의를 밑받침해야 할 전문위원의 위상과 역할은 주변적인데 머무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정과 인력의 독립성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의제 설정과 의사 결정에서의 비효율성이 적지 않다. 의제가 지나치게 현안 중심적이고 많다는 평가가 대두되어 있으며, 조직구조를 통하여 걸러지는 기능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다. 의사결정에서는 협의과정의 불충실함과 세부합의를 위한 협의의 소모성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3. 사회적 합의 활성화를 위한 전제와 개선방향

1) 사회적 합의틀의 중요성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합의기구에 대한 관심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우선 사회합의기구는 지속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사관계 제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경제적 불안정성은 무매개적으로가 아니라 제도적 노사관계를 경유하여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바람직한 노사관계 제도는 불안정의 발현을 억제하고 노사간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제와 노사관계 전반에서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초래되는 현재 조건에서 노사관계 제도에 대한 관심은 심화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두 번째로 노조운동이 해체를 주장하지만, 노사정위원회의 틀 자체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거나 노조 행동을 구체적으로 구속하는 점은 특별히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보수야당과 행정부, 사용자 단체가 하나같이 '비상설화, 기능 약화, 폐지' 등을 외치게 하리만큼 관련 제도와 틀이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제도적 틀이 가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노사정위원회에서 구속력 있는 정책협의가 이루어지거나, 합의 이행이 보장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힘의 한계에서 비롯된 제도적 한계이지,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할 만큼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얼마만큼이나 활용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능력에 맞게 참여하고 능력을 키우는 데 활용하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회적 합의주의의 껍데기'라고 비판만 하는 주장은 노동운동의 정책과 전략 부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노조운동이 중장기 전략 과제의 하나로 사회적 합의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합의 공간은 친노동정당을 통한 국가정치에의 참여와는 별개로 사회운동과의 하층연대와 함께 노동조합 정치의 중요한 장이라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또 사회적 합의 모델 자체는 거시경제와 노동시장 영역에서 교섭을 통한 조정을 통해 시장의 무정부성과 불안정성을 완화하고 노동을 보호하는 데서 시장지상주의 모델에 비해 뛰어난 효과를 지닌다. 나아가 계획적인 거시경제 조절이 가능할 정도로 제도를 심화시킬 경우 소유의 사회화와 더불어 경제에 대한 사회적 조절의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노조운동이 전략적 과제로 추구할 만한 사회적 합의 모델과 현재의 노사정위원회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과 같은 것이 아니라 주체의 노력에 의해 좁혀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조성된 환경과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여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2) 개선방향

4년여의 경험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와 이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점들이 드러난 현재, 무비판적으로 정상화나 재활성화를 검토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즉, 환경과 문제점의 개선 전망이 마련되어야 노사정위원회 문제에 대한 재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 우선 노조진영의 참여를 위한 조건들이 일정 정도 만족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협의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조건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주5일제, 공무원노조 인정, 실업자 초기업노조 가입 등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 자체가 거부되거나 내용이 왜곡되어 있는 현안들의 전향적 해결은 사회적 협의 재활성화의 중요 전제 조건이다. 이는 제1기 사회협약 체제의 성공적 마감 여부를 가늠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적 협의에 대한 태도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 사용자와 정부가 노동배제적 태도에서 탈피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협의 재활성화의 근본 조건이다. 한국의 노사정 관계는 어느 한 시기도 노동에 대한 억압과 배제가 청산된 적이 없으며, 노사정위원회라는 혁신적 형식에 지속적인 균열이 생긴 데에도 이러한 역사적 유산이 작용해 왔다. 특히 정부가 노동 측에 대해 수평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협의의 활성화는 다시 바라기 힘들다. 

셋째, 노사단체의 대표성과 집중성의 증진은 사회적 협의 재활성화의 중요한 구조적 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대한 열쇠는 노조가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노조 측면에서 보면 이는 조직 역량의 개선이라는 문제에 다름 아니며, 사용자단체의 대표성과 집중성은 기본적으로는 노조의 그것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대표성과 집중성 개선에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중앙 노사정기구가 적잖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분산적 노사관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 즉 산업별 노조와 그 교섭구조의 형성을 위한 지원 방안이 중앙 노사관계 틀에서 추진된다면 사회적 협의 자체와 그 환경의 개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 대표성은 계급 대표성, 즉 노동자 전체와 사용자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대표성은 직접적으로는 노사단체에의 가입 수준에 의해 측정되지만, 가입율이 낮더라도 노사단체 이해대변 기능의 포괄성과 통합성에 의해 보완 가능하다. 한편 집중성은 노사 조직 내에서 하부 단위가 상부 단위의 결정에 순응하는 정도와 관련된 조직적 집중성과 노사관계의 집중성을 의미한다. 전자가 리더십과 제도화된 집중적 의사결정구조의 함수라면 후자는 조직적 집중성 및 단체교섭구조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3) 몇 가지 제안

위의 전제들이 얼마간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사회적 합의기구 발전방향에 대해 제도 개선과제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노사정위원회 위상 및 역할과 관련하여 사회협약기구, 정책협의기구, 노사관계 개혁의 추진체라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즉 노사정위원회는 노동 및 사회경제정책에 대한 합의 도출을 자신의 활동 목적으로 삼아야 하며, 노동부 및 경제관련 부처의 입법안이나 정책을 검토할 권리와 협의할 기능을 수행하고, 향후 부각될 노사관계의 개혁을 위한 중앙 노사정 주체의 추진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방향 규정에 의거하여 몇 가지 개선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정책협의 기능을 순조롭게 수행하도록 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협의 대상이 되는 노동 및 사회·경제정책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그 정책 및 입법안에 대해 '의회 제출 내지 정책 실행 전에 노사정위원회가 검토'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부처들의 의도적인 협의 불이행을 방지하고, 사전협의 기능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으로 대통령 및 노사정대표로 구성하는 연례 사회정상회담(social summit) 개최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상징적 조치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노사정위원회 및 그 합의에 대한 책임을 드러냄으로써 행정부처들의 충실한 협의와 이행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로 사회협약 사항의 이행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해서 노사정위원장이 주기적으로 이행 실태를 평가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행이 부진한 사안에 대해 시정조치를 건의할 권한을 갖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문위원 중심으로 수행하는 이행 점검반 체제를 해당 부처가 직접 참여하는 이행 감독 체제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이행 문제에 대한 정부측의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재정, 인력, 조직 등을 독립시켜 독자적으로 예산 편성, 인력 충원, 조직발전 계획 입안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일차 과제가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 및 사회ㆍ경제 문제에 관한 지속적인 조사ㆍ분석과 관련 정책 및 입법에 대한 평가와 연구가 상시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 사회협약 체결과 정책협의 수행, 노사관계 개혁을 추진하는데 밑받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위원의 역할을 조사·연구 중심으로 재조정하고, 그에 필요한 충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는 하위 구조로 업종별 노사정협의체의 형성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지역별 노사정협의체와의 지원관계를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업종별 노사정협의회는 기업별 교섭구조를 넘어선 중위적(meso) 교섭구조의 촉진제 역할을 수행하여 노사조직의 집중성과 대표성을 개선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주의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 한편 지역별 노사정협의체에 대해 수평적 연계를 맺고 그 운영에 대한 자문과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차원의 협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기능도 가능하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의 개선을 위해서 내실 있는 협의에 바탕한 원칙과 방향 중심의 합의, 전원합의제 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내실 있는 원칙과 방향 중심의 합의는 의회나 정부가 아니면서도 세부 합의까지 담당함으로써 합의 과정을 소모적이게 만듦은 물론 합의가 부진할 경우 활동이 침체·마비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결정 방식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합의제 방식을 2/3 다수결제로 전환하자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현재 노사정 관계의 취약성을 고려하면 당장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비효율적인 합의 과정을 보다 원활하고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공익위원의 조정·중재능력이 강화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익위원 선정에서 전문성과 함께 중재나 조정 능력이 선정기준으로써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며, 중립성에 대한 참여 주체의 불만도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선정 방식으로 공익위원 풀(pool)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노사가 취사선택하는 방안은 검토해 볼 만 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