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부터는 독점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운동을 살펴보려 합니다. 이 시기는 1871년부터 1904년까지 입니다. 독점 이전의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 또는 제국주의로 이행한 기간이었고, 선진 국가들의 부르주아지가 진보적인 계급에서 반동적인 계급으로 전화한 시대와 맞물립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세력을 갖추어 서서히 힘을 결집해 가는 시대죠.
자본은 이윤을 쫓아 다른 나라에 진출했으며, 후진국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기업과 은행은 식민지를 누비며 풍부한 지하자원과 인력을 착취했으며, 이는 독점대기업 출현의 토대가 됩니다. 이들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여 블록으로 결합되고 서로 충돌하는가 하면 더욱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날 경우 결합하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은 성장하고 성숙했으며, 큰 이윤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부르주아지의 기생적 지배로부터 해방을 이룩해야 할 사명을 지닌 노동자계급도 성장하고 성숙했으며, 갈수록 의식화되고 조직화되었습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방식의 변화
프랑스 경제사학자 미셸 보는 "자본주의는 어떤 인격이나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원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산양식을 통하여 작용하는 논리, 즉 맹목적이고 집요한 축적의 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870년대에서 20세기 초두를 특징짓는 것은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종횡 무진한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는데, 이를테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민족통일과 국민국가 형성, 러시아에서 추진된 농노제 철폐, 미국에서 시행된 노예제 폐지, 일본에서 실행된 명치유신 등이 그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생산력의 발전도 매우 급속하게 진행되었어요. 1870∼1890년대에는 세계공업 생산고가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공업 생산의 구성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죠. 종래의 산업구조 특징이 경공업, 특히 섬유공업 중심이었던 데 비해, 1870년대부터는 주도적 역할이 중공업부문, 즉 철강과 기계제조업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산업이 융성했고 생산기술 공정이 재편되었죠.
이런 급속한 공업발전은 과학기술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추진되었습니다. 기술혁신과 진보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일대 혁신을 이끌었죠. 산업의 에너지 기반이 전환되고, 대규모 기계제 산업이 확산되었습니다. 주요 에너지는 석탄이었으므로 석탄 소비가 크게 증가했으며, 동시에 석유 채취도 증가하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석유가 조명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내연발동기가 보급되면서 석유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1870년의 경우 80만 톤에 지나지 않았던 세계 원유 산출고가 1900년에는 무려 1,950만 톤에 이르게 되었죠.
공업 발달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이 철강업의 발전입니다. 철강의 대량 생산은 기계제조업의 급성장을 위한 기초가 되었어요. 이에 따라 자본주의는 '철'의 세기에서 '강'의 세기로 이행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강력한 압연기의 사용으로 강판·강관·레일이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이는 철도와 항운의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전력 이용은 금속 가공의 새로운 방법을 가져왔고, 새로운 공업부문을 창출했죠.
농촌에 파고든 자본주의
19세기 말에 급속하게 진행된 기술 진보가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난 건 아닙니다. 각국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경제발전 불균등은 이전 보다 훨씬 더 심해졌습니다.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에서도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했으나, 세계 공업생산에서 차지하는 이들 나라의 비중은 극히 적었죠.
19세기 말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농업 분야로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지주적 토지소유나 농민에 대한 반(半)농노적 착취형태 등의 봉건적 잔재가 우세했던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두드러졌죠. 영국의 경우 소농 경영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농업부문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확립되어 있었죠. 프랑스는 소농민적 토지소유가 우세했고, 폴란드, 독일 동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남부, 러시아, 루마니아는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이 지주적 토지 소유와 각종 반(半)봉건적 제도가 잔존한 가운데 이루어졌죠.
유럽 국가들의 농업은 1875년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과잉생산 공황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농업생산의 발전은 둔화되었죠. 농업공황은 농민의 계층분화를 촉진시켰습니다. 무거운 부채를 안게 된 영세 토지소유 농민은 토지를 잃게 되었고, 그 토지는 부농이나 경영주의 손으로 넘어갔어요. 농민들의 공산품 구매력이 저하되었고, 이러한 소비 감소는 공업 공황을 초래하게 되었죠.
자본의 집적과 집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기술진보는 기업설비를 위한 막대한 액수의 지출을 필요로 했습니다. 용광로나 압연기, 화학산업 설비 등의 생산수단을 설치하는 데 거액의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최신 기술 도입은 경제적으로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능력 면에서 고도의 집적(集積)을 수행한 기업 쪽에 최대의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마르크스는 "모든 축적은 새로운 축적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는데, "자본으로 기능하는 부의 양이 증대됨에 따라 축적은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부의 축적을 증대시키며, 그리하여 대규모 생산의 토대와 진정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토대를 확대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높은 이윤율과 거액의 이윤을 성취한 대기업은 격심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대기업은 낡은 기술을 유지한 소규모 자본들을 몰락의 운명으로 몰아넣었죠. 물론 개별 기업의 자본 축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자본 축적을 위해 기업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다른 기업과의 인수합병을 통한 자본 축적, 즉 자본 집중이 그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집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집중은 산업자본가들에게 그들의 사업규모를 확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축적을 보완한다. 이 사업규모의 확대가 축적의 결과이든 집중의 결과이든, 또는 집중이 합병이라는 폭력적 방법으로 수행되든 (이 경우에는 어떤 자본이 다른 자본들에 대하여 우세한 흡수의 중심이 되어 다른 자본들의 개별적 응집을 파괴하고 그 다음에 산산이 분산된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또는 이미 형성되었거나 형성과정에 있는 다수 자본들의 융합이 주식회사의 설립이라는 보다 원활한 방법으로 진행되든, 그 경제적 효과는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기업체들의 규모 확장은 많은 사람들의 집단노동을 보다 포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되며, 또 그들의 물질적 추진력을 보다 광범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출발점으로 된다." "집중은 이와 같이 축적의 작용을 강화하고 촉진함과 동시에,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혁 (이것은 자본의 가변부분을 희생시키면서 불변부분을 증대시키며, 따라서 노동에 대한 수요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킨다)을 확대하고 촉진한다".
주식회사는 1870년대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각지에 보급되었는데, 그것은 자본가에게 자기 자본을 훨씬 초과하는 자본을 수중에 장악할 수 있는 권리를 안겨주었죠. 주식형태를 취한 자본주의적 소유는 독점 형성을 크게 촉진했으며, 이 과정의 중요한 원동력은 기업의 대형화였습니다. 독점 형성은 거대 기업이 이룩한 높은 이윤, 경쟁체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한 우월한 처지, 상품판매에서 갖는 유리한 조건 등으로 촉진되었죠.
자본의 집중과 집적은 자본 축적의 발전과정에서 상호 밀접히 관련하면서 작용했습니다. 자본의 집중은 언제나 일정한 자본의 집적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생산규모의 비약적 확대를 통하여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의 더 큰 집적을 촉진했습니다. 이 같은 상호 작용의 발전과정에서 전개되는 개별자본 차원의 자본규모·생산규모 확대가 추진되고,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집적이 진행됨으로써 생산력의 발전이 촉진되었죠.
[ 독점자본주의 시대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에 대한 지배로 특징 지워진다. 사진은 아메리카유니온 은행 ]
독점자본의 등장
산업에서 진행되는 자본의 집적·집중과 생산의 독점화 과정은 은행업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낳았습니다. 산업에서 진행되는 자본 축적은 은행으로 예금유입을 증가시키고, 그에 따라 은행 거래 규모를 늘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규모 금융기관은 중소규모 금융기관을 종속시킴으로써 강력한 금융 중심으로서 거대은행이 만들어졌죠. 은행 업무가 발전하고 소수의 수중으로 집적됨에 따라 은행은 중개자라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거의 모든 자본가와 소경영주의 화폐자본 및 한 나라 혹은 여러 나라의 생산수단과 원료자원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강력한 독점체로 성장합니다. 소극적 중개자로부터 극소수 독점체로의 이런 전화야말로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성장하는 기본 과정의 하나죠.
산업과 은행업의 독점화 과정은 상호 작용을 통해 가속화되었습니다. 은행은 공업, 운수, 상업, 서비스 분야에 침투해 공동소유자가 되어 초과이윤을 가져갔습니다. 또 그들은 새로운 주식회사 설립에 참가함으로써 '창업자 이득'을 챙길 수 있었죠. 한편으로 대산업 독점체도 가능한 최대 이윤을 확보할 목적으로 자신의 금융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은행과 기업의 밀접한 결합으로 형성된 자본의 새로운 형태, 즉 금융자본이 등장하게 되죠. 생산의 집적, 이로부터 성장하는 독점체, 은행과 산업의 합병과 유착, 이런 과정이 바로 금융자본의 발생사입니다. 금융자본은 산업 독점체가 소유한 자본과 결합된 독점적인 소수 거대 은행의 은행자본을 말하고, 거대 산업과 거대 은행이 이룩한 극소수 그룹들이 금융과두제로 나타납니다.
자본주의가 독점단계로 이행한다는 것은 '낡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로, 자본 일반의 지배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적 소유에 기초한 상품사회와 자본주의 본래의 속성인 자유경쟁은 불가피하게 독점을 낳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단 독점이 형성되어 지배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독점 그 자체가 자유경쟁을 깨뜨리거나 제한합니다.
미국에서는 1898년에서 1903년까지 5년 동안 형성된 대규모 트러스트가 그 이전 50년 동안 창설된 것 보다 2.5배나 많았습니다. 1901년에 설립된 철강 트러스트는 거대 독점의 하나로서 모건 그룹에 속해 있었죠. 설립 당초부터 이 트러스트는 선철 생산 2/5이상, 강재(鋼材) 1/2, 조강생산 2/3를 장악했습니다. 미국 독점자본의 큰 지주(支柱)였던 화약 트러스트 '뒤퐁 드 누모르'(Du Pont de Nemours)와 자동차회사 '포드'(Ford)는 1903년에 설립되었죠.
경제독점화의 비율은 미국에 비해 독일이 훨씬 높았어요. 1903년 라인-베스트팔렌 석탄 신디케이트가 재편되었을 때, 당시까지 독립적이었던 100개 기업이 여기에 참가했죠. 독점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1903년은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었어요. 철강 생산의 90%를 지배한 '제강연합'이 출현했는데,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거대 은행들이었습니다. 같은 해 전기공업에서도 합병이 진행된 결과, 이 부문 생산 3/4을 AEG와 지멘스-슈켈트 2개 신디케이트가 장악하게 되었죠.
영국에서는 독점 형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보다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20세기 들어 집적 과정이 눈에 띄게 가속화됩니다. 이런 과정이 가장 먼저 이뤄진 부문은 군수공업이었는데, 오래 전부터 영국은 수십 개 국가에 무기를 수출해 왔던 터여서, 영국 자본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산업부문으로 인정받았던 군수공업에서 1900∼1904년에 기업합병이 추진된 결과, 암스트롱(Amstrong)과 빅커스(Vickers)라는 2개 거대기업이 매우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제국주의의 출현
독점 확대와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는 1873년의 '대불황'을 낳았고, 그것은 다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각국이 과잉 자본과 과잉 노동력을 안은 채 세계시장에서 경쟁했던 것은 한편으로 보호관세의 도입이나 통상권의 형성을 재촉했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수출이나 식민지 지배에서 새로운 방식들을 만들어냈어요. 그 결과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대립이 격화하여 심각한 양상이 초래되었죠.
독점의 지배는 불가피하게 한 나라의 범위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확대되었고, 자본수출은 주요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1870년대 이후 상품수출과 더불어 자본수출이 점점 확대되었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이윤 극대화를 노린 '과잉 자본'이 땅값이 높지 않고 원료가 값싸고 임금이 낮은 국가들로 밀려들어 갔어요. 1875년부터 1900년까지 해외 투자에서 영국 자본은 100%, 프랑스 자본은 125%, 독일 자본은 650% 증가했죠. 미국도 자본축적이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캐나다, 하와이 군도, 쿠바, 라틴아메리카에 자본 수출이 이뤄졌습니다. 그리하여 독점자본주의 단계, 즉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자본주의 경제, 즉 소수 제국주의 열강의 금융자본 또는 금융과두제가 대다수 세계 주민을 억압·착취·지배하는 세계체제로 굳어진 것이 이 시기였죠. 철도와 해운업이 광범하게 발전하고 새로운 국제분업이 출현함과 동시에 경제생활의 국제화가 급진전되어 세계 인민들의 경제적 결합이 진전되었고 민족적 고립성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죠. 이에 따라 노동의 새로운 국제적 분할이 나타났고, 경제생활의 국제화가 제국주의적인 억압과 노예화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제·영토 분할이 완료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확립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국제적 독점동맹의 창설은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전화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죠. 외국시장의 독점은 확실한 판매시장과 원료산지 구실을 하는 식민지를 탈취하는 데 매우 중요했습니다. 1870∼90년대에 걸쳐 세계 영토분할을 둘러싼 투쟁이 매우 격렬했던 사실이 이를 반증하죠.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탈취한 것은 이 시기였습니다. 1876년에는 아프리카 영토의 10.8%만이 유럽 열강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1900년에는 이미 전체 영토의 90.4%가 유럽 국가들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이와 똑같은 운명이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태평양에 위치한 섬들을 엄습했습니다.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정책을 펼친 결과로써 지구상의 미점령 영토에 대한 점거가 완료되었죠. 이 시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봉건적·반봉건적 후진국가들에 대한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여 봉건적 유재(遺在)나 전자본주의적 착취형태를 온존시켰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