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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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

admin 0 4,418 2013.05.08 10:32

지난 1월31일부터 2월4일까지 5일 동안 세계 경제와 정치권의 파워 엘리트 3천 여명이 뉴욕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이하 WEF)에 참가했다. 해마다 스위스의 다보스(Davos)라는 스키 휴양도시에서 열리던 WEF는 올해엔 9·11 참사에 대한 위로와 연대의 표시를 명목으로 뉴욕으로 그 개최지를 옮겼다.

파워 엘리트들의 칵테일 파티 

WEF는 한마디로 세계 거대 기업과 경제 엘리트들의 사교 칵테일 파티라고 얘기된다. WEF는 1971년 유럽 기업 엘리트들의 모임인 '유럽경영자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EMF는 '세계로 나가자'(global reach)는 기치아래 WEF로 확대 개편되었다. 아메리카 에어라인, 보잉, 코카콜라, 컴팩, IBM, 메릴 린치, 펩시콜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다국적 거대 기업들이 WEF의 주요 멤버들이다. 

WEF는 세계 자본가들의 연례 모임이다. 공식적으로 WEF는 정책 결정 권한이 없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계급 이해에 따라 세계 정책을 논하고, 정책 입안에 입김을 넣는 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모임은 우루과이 라운드나 나프타(NAFTA) 같은 주요 국제무역 협상의 탄생에 직간접으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WEF는 '자본가들의 인터내셔널'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WEF는 신자유주의 정책 확산에 중심 역할을 했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심화된 자본 축적의 위기에 대응해서 제시되었다. 자유시장 확대와 자본의 세계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 축적의 위기 극복과 세계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선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IMF 주도의 구조 조정과 특히 최근에 일어난 아르헨티나 위기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사상 초유의 세계적 부의 불평등, 금융 불안정, 환경 위기,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다. 다국적 기업의 세계적 팽창은 세계적 차원의 환경 파괴, 노동착취, 인권 탄압을 초래했다. 또한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소비자 문화 창달은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반자본주의 운동 또는 반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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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 ]

밑으로부터의 저항

반세계화 운동 중심의 WEF 반대 세력들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라는 기치 아래 대규모 WEF 반대 시위와 다양한 행사를 조직했다. 노동운동 진영은 세계노동자포럼(Global Workers Forum)을 조직하여 세계화 경제 속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었다. 이들은 또한 뉴욕 상류층의 쇼핑 중심지인 5번가에 위치한 갭(Gap) 매장 앞에서 갭의 제3세계 노역장(sweatshop) 운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갭이나 나이키로 대변되는 다국적 의류, 신발 메이커들은 제3세계 여성노동자들과 아동들이 하루 16시간씩 일주일 내내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속에서 최소한의 임금을 받으며 생산해 내는 상품들을 선진국의 쇼핑몰과 백화점에서 비싼 가격에 팔아왔다. 

학생운동조직인 '세계정의를 위한 학생들'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이틀 동안 반(反)WEF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약 1천5백 명이 참가한 이 행사에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반전, 9·11 이후 이민자 권리에 대한 정부의 공격, 팔레스타인 문제,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었다. 

닷새 동안 열린 반 WEF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월2일 대규모 거리 시위였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9월11일 이후 얼어버린 정치적 기류에도 불구하고 3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참여하였다. 센트랄 파크 남쪽에 집결한 시위대는 간단한 집회 후 WEF 회의가 진행중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는 반 WEF 구호 뿐 아니라 전쟁 반대, 엔론 사태로 드러난 부시 정권의 부패와 정경 유착 비판,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반대 등 다양한 슬로건을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최근 벌어진 아르헨티나 민중투쟁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프라이팬과 냄비를 들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전통적으로 남미에선 거리 시위에 프라이팬과 냄비를 들고 나와 두들긴다고 한다). 비록 경찰의 저지로 대회장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앞 진입엔 실패했지만, 9월11일 이후 뉴욕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희생적인 영웅으로 비춰지고 어떤 종류의 저항 행위도 테러리즘이라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3만 명에 가까운 시위대의 출현은 놀라운 것이었다. 

세계사회포럼, 민중의 축제 

한편, 브라질의 포토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는 WEF가 열리던 같은 기간동안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 이하 WSF)이 열렸다. WSF는 WEF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작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WEF가 세계 자본과 정치 엘리트들의 칵테일 파티라면, WSF는 한마디로 세계 진보 진영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5일 동안 진행된 WSF에 올해는 세계 131개국에서 5만 명이 넘는 인원이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구호 아래 참가하였다. 실제로 포토 알레그레에 온 사람들 외에도 행사 기간 동안 WSF 웹사이트엔 하루 평균 오십만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작년의 참가인원이 만 명이었던 것에 비춰볼 때 올해의 WSF는 지난 일년 동안 세계 진보운동, 특히 반자본세계화 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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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의 포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가 포럼의 슬로건이었다. ]

 WSF 본회의는 '부의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 '부의 이용과 지속적 발전', '시민사회와 공공 무대', '정치파워와 새 사회의 도덕'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치러졌다. 본회의 말고도 각종 회의, 워크숍, 세미나, 토론회, 집회, 행진, 영화, 음악, 문화 행사 등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특히 올해의 WSF는 비판적 대안 마련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 작년과 달리 단순히 어떻게 WTO, 세계은행, 국제 거대 기업 등에 맞서 싸울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경제·정치·문화적 대안체제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기업의 권력에 대한 한 회의에서는 민주적인 경제체제를 위해선 기업과 국가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즉, 마치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민주정부 수립에 필수적인 것처럼 기업과 국가의 분리는 민주적인 경제체제 구축의 기본이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들의 타당성을 떠나서 새로운 대안들이 논의되었다는 자체가 WSF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한 비판에 만족하지 않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를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사회포럼이 자본가들의 잔치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세계 진보진영의 반격이라면 그 개최지로 포토 알레그레만한 도시가 없을 것이다. WSF가 열린 포토 알레그레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브라질 진보정치운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시는 지방자치를 통한 권력 분산과 보통 시민의 주요 정책 결정 참여를 실험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영향력 하에 포토 알레그레 시정부는 '참여 예산제'를 도입했다. 참여 예산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시의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결정한다. 예를 들면,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어디에 도로를 놓을 것이며 어느 지역에 의료센터를 건설할 지를 결정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공혜택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정책들은 WEF 주도세력의 모토인 신자유주의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다. 

WEF의 개혁은 가능한가 

새로운 저항과 비판에 맞서 WEF는 자신들이 여전히 변화하는 세계 정세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걸 보임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전에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소외되었던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판적 NGO세력들을 포괄하며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걸 역설하고 있다. 

올해 WEF 연례 회의에선 특히 미국 등 선진국 중심의 경제 정책에 대한 내부 비판이 많이 흘러 나왔다. 예를 들면, 미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이 세계 경제를 자국만의 이해 도모에 이용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미국이 세계 빈곤과 질병의 방지, 그리고 여권신장 등에 기여해야 함을 역설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회장인 빌 게이츠의 발언이다. 그는 주요 국제 통상안들이 지나치게 부유한 선진국들만의 이해에 맞게 쓰여졌다며 "나는 지금 이 시간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부유한 나라들이 세계 경제에 제 몫을 돌려주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NGO들은 내부로부터의 WEF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미국 노총(AFL-CIO) 존 스위니 위원장은 "세계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따라서 노조들은 이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국적 기업 엘리트들이 주도하고 세계 자본가들의 이해를 추구하는 WEF가 과연 세계 인구 모두의 미래를 제시하고 결정할 자격이 있는가다. 진정한 변화의 추진력은 뉴욕과 포토 알레그레에 모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 이들의 구호처럼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