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건의료, 공공성을 강화해야

노동사회

한국의 보건의료, 공공성을 강화해야

admin 0 3,168 2013.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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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6월 지방선거, 12월 대선 등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지을 '권력재편기'며, 이런 정세는 사회개혁 투쟁의 깃발을 다시 세울 것을 노동운동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호부터 사회개혁투쟁의 주요 의제들을 살펴본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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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마감을 앞두고 이런 저런 평가가 있지만, 보건의료에 있어서는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이 다른 모든 문제를 압도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특히 의약분업은 그것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든, 결코 작지 않은 사회적 파장과 그림자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도 정책 자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흔히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간주되고 있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은 장기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가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될 것이 틀림없다. 건강보험 통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말썽 많은 의약분업도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가 '정상적인' 궤도로 들어가는 초입의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단기간의 갈등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건강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문제는 다음 정부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으로 해석하자. 물론 다음 정부의 유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문제의 압도적인 비중 때문에 현 정부는 다른 보건의료 문제를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시도도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의료문제는 유감스럽게도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새 정부가 물려받아야 할 의료정책의 '유산'은 빈약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상식적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여기에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므로 간단히 요약한다.

첫째, 국가 수준에서 기조와 철학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장기 목표가 뚜렷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정책결정의 기본적인 이념도 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공의료가 단적인 예다. 공공의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철학이 허약하기 때문에 지방공사 의료원을 강화해야 할지 효율성 논리를 적용하여 민간위탁을 해야 할지 종잡지 못하고 있다. 보건지소도 마찬가지다. 줄인다고 하다가 갑자기 도시 보건지소를 늘리겠다고 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 정책담당자 사이에서도 이런 혼란은 마찬가지다.

둘째, 정부(혹은 국가)의 책임회피가 관성화되어 있다. 취약지나 취약계층에 대한 보완적 역할 이외에는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 내에서는 특히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등의 경제부처와 행자부의 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보건의료의 공공성보다는 '시장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셋째, 정부의 정책역량이 심각한 수준 미달 상태에 있다. 이해 당사자 사이의 갈등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나 이를 조정할 지도력이 없고, 정부 내 다른 부처와는 물론이고 한 부처 내에서도 정책을 조율하고 조정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정책 담당자들의 역량부족과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보건의료정책의 결과는 명확하다. 우선 누구도 현재의 보건의료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의료의 낮은 질과 의료공급자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과도한 경제적 부담에, 의료공급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경제적 보상과 경영의 어려움에, 그리고 정부는 급증하는 재정부담과 국민의 불만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보건의료의 심각한 왜곡과 비효율성이다. 보건의료의 왜곡과 비효율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어 광범위하고 깊게 퍼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과다한 의료소비와 비정상적인 의료행위, 그러면서도 여전히 열악한 건강수준은 이것의 한 단면일 뿐이다.

무정부적 낭비구조

유산이 빈약해도 과제는 명확하다. 주체세력의 역량 문제를 빼고 본다면 의료의 구조개혁은 더 미룰 수 없다. 1990년대 내내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을 단 작업이 있었으나 그 결과는 지극히 실망스럽다. 많은 과제와 아이디어를 열거하기는 했지만 현실화된 것은 극히 적은 숫자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이해당사자의 반발과 정책의지 부족으로 용두사미격이 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그것은 한국의 보건의료가 몇 가지 새로운 정책대안으로 문제를 풀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은 한국의 보건의료가 '무정부적 낭비구조'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상적으로 보고 있는 모든 보건의료 문제는 이러한 한국 보건의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우선 무정부적 낭비구조의 출발은 의료공급자와 이들의 존재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공급자가 양적으로 팽창하면 이에 따라 진료비가 증가하는 것은 상식적인 사항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압도적인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진료비 지불체계조차 행위별 수가제를 가지고 있어, 일단 배출된 의료인력과 설립된 기관은 서비스 양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이에 따른 보건의료 재정의 급속한 증가는 불가피하다.

의료공급의 무정부적 팽창은 곧 국가 보건의료재정의 팽창과 개별 의료공급자의 위기로 이어진다. 의료재정의 증가가 의료서비스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개별 의료기관의 경영 악화는 필연적이다. 기관 자체의 몰락은 문제가 아니나 이는 의료 내용의 왜곡을 포함한 '비용 발생형' 의료서비스 공급을 가속화시킨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위기는 '개인부담형 보건의료'라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우리의 보건의료는 국가와 사회보다는 개별적으로 부담을 지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출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한 몫은 매년 거의 41.6∼53.0%에 이르러 다른 OECD 국가에 비하면 2∼10배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화와 경쟁력을 빌미로 그나마 기업이 부담하고 있던 보건의료 비용도 개인부담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고, 의료비 원가 상승이라는 요인도 고스란히 개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다. 개인이나 가계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경제적 부담으로 연결될 뿐 아니라 보건의료 자체의 건전성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부담 증가에 따른 접근성의 저하, 그리고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 저하는 필연적인 것이다. 경제적 능력의 격차에 따른 의료 서비스의 양적, 질적 불평등은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의 발상전환이 중요하다

보건의료분야에서 구조개혁이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구조개혁을 위한 '정치적'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치적 의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요구가 없는 한 정부가 구조개혁에 나설 리 만무하다. 소위 '정보의 불균형'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대중의 참여 없이는 어떤 종류의 정치적 의지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역시 (동어반복이기는 하나) 정부의 발상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이 시기에 경험하고 있듯이 더 이상 보건복지는 경제성장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건복지가 즉각적인 결과와 명확한 지표로 나타나지 않을 뿐, '사회적 인프라'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집권을 기대하는 정치세력들의 발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한, 다음 단계 한국이 맞게 될 위기는 명백하게 복지위기가 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고, 또 선진국의 경험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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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6월 23일 건강보험 공대위 소속 참가자들이 국회 앞에서 진행한 항의시위  ▷출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건강보험의 구조를 고쳐야

현재 시점에서 구조개혁의 핵심은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다. 유산으로서의 왜곡된 의료구조의 중심에 과도한 민간위주의 의료체계와 빈약한 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건강보험의 문제를 따져보자. 현재의 건강보험을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으로 이해하는 한, 건강보험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의한 수단을 확보하기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료공급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보험진료비 상승의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으며, 건강보험의 재정 기전을 활용하지 않고 의료공급자의 질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기도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건강보험 구조의 개편은 통합 논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수가체계와 급여도 개편되지 않으면 안된다. 구체적인 논의는 그만 두더라도 개편의 방향은 명확하다. 의료보장 제도가 현재 우리의 보건의료 공급구조 개편에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 건강보험 구조의 개편 방향은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치료 중심의 서비스에서 보다 포괄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고, 각 직종 사이와 직종 안에서 기능이 조화롭게 분담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구조 개혁을 위한 토대로서 진료비 지불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행 행위별 수가제는 어떤 형태로든 개편되어야 한다. 행위별 진료수가제는 현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보건의료 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일 뿐 아니라, 보건의료 구조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효율성, 질, 효과 등 구조 개혁의 어떤 목표도 행위별 수가제의 개선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경쟁 전략조차도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는 현재 일부 사업이 진행 중인 DRG(질병 그룹별 정액수가제)를 이용한 포괄수가제가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 전반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공공 보건의료의 강화

건강보험과 함께 또 다른 구조가 공공 보건의료다. 모든 국민은 지리적 여건과 경제적 부담 능력, 직업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의학적·보건학적 '필요'에 따라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의료보장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지리적 접근성과 경제적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사실상 동일한 경우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공보건의료의 강화를 통해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선 최근 보건의료인력과 시설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분포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농어촌 등의 취약지역 인구가 가진 구매력이 미흡하고, 사회문화적 악조건 때문에 이들 지역과 인구집단이 보건의료인력과 시설에 대한 흡인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민간부문이 이와 같은 취약지역에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적고, 설사 진입한다 하더라도 이 지역의 주민이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이 심해질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공공의 역할은 현재의 공중보건 의사제도나 보건진료원, 보건소 설치 등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혹은 정부의 자금지원 및 융자정책인 농특(농어촌특별세관리회계)·재특(재정융자특별회계)과 같은 민간부문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이 중에서 공공보건 의료체계를 통한 모든 국민의 건강보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공공보건 의료체계를 이용한 방문보건사업의 확대는 지리적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적 접근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도시지역 등에서도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애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방문보건 등의 지역사회 서비스, 장기요양 서비스 등은 지역사회에서 특히 빈곤층에 광범위하게 필요하다. 따라서 공공의료체계의 강화는 국민 모두가 이런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