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중 ‘추위에로 떠는 외국인 노동자

노동사회

이삼중 ‘추위에로 떠는 외국인 노동자

admin 0 4,066 2013.05.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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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성당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연수생제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 출처: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

손가락 잘린 케사르

오늘 케사르가 또 왔다. 보름 전에 처음 상담소를 찾은 이후 벌써 다섯 번째다. 그는 지난 8월 김포 소방기구 제작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어 들어가 오른손 손가락 세 개 모두 둘째 마디까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케사르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처음 찾아왔었다. 

첫 방문한 다음날 연락도 없이 갑자기 들어서는 그에게 왜 왔느냐고 물으니 다친 손가락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사고 후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그는 여전히 통증을 느끼고 다 나은 것 같지 않은데 병원에서 퇴원을 종용하여 할 수 없이 퇴원을 하였다고 했다. 병원에 알아보니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치료비 때문이었다는 짐작이 들었다. 입원해 있을 당시 산재보험처리가 안 되어 치료비가 걱정이 된 병원에서는 최소한의 치료만 마치고 퇴원을 시켰던 것이다. 케사르가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우리 단체에서 보증을 설 테니 치료가 더 필요하면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병원 담당자는 케사르를 병원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그는 다음날 또 찾아왔다. 연 삼일째 찾아온 것이다. 수중에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같은 나라 친구가 일하고 있는 공장 기숙사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그 공장 사장이 나가라고 하니 어디 있을 곳을 알려 달라고 했다. 쉼터가 있는 지원단체를 연결해 주고 나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니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며칠 후, 쉼터에 있는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찾아왔다. 김포의 다른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다며 진행과정을 물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진정서를 보내놓았으니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보상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두 달 이상은 걸릴 거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 나갈 줄 알았던 그가 그대로 머뭇거렸다. 일그러진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잠깐 눈자위가 붉어지는 듯했다. 지금 차비가 없으니 얼마간 돈을 빌려주면 보상금을 받으면 갚겠다고 했다. 우리 단체가 돈으로 지원하는 곳은 아니지만 붉어진 눈자위를 외면할 수 없어 약간의 돈을 봉투에 넣어 들려주었다.

통장도 만들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

진정서를 보내놓았던 근로복지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케사르가 일하던 사업장은 실제 사주와 명의상의 사주가 다르며, 상시 고용근로자가 1인 이하여서 산재보상보험법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01년에 타인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그 동안 한국인 근로자는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으며, 2002년부터 외국인 근로자만 간헐적으로 2~3명씩 고용했으므로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사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 사업주는 세금납부 기록이 전혀 없으며 재산도 없는 상태이니 산재보험 처리를 하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벌금과 산재보험 미가입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된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보태었다.

기가 막혔다. 2002년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2~3명씩 고용했는데 상시근로자 1인 이하 사업장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는 사람도 아니란 말인가. 사업주가 불법으로 타인의 명의로 사업을 하면서 탈세한 것이 왜 애꿎은 외국인 노동자가 적법한 보상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산재보험 처리가 안되고 사업주로부터도 치료비를 받을 길이 막연하자 완치되지도 않은 환자를 퇴원시키는 병원의 처사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케사르가 사업장 안에서 작업 중에 사고가 난 사실을 확인시키고 출석하여 사실 조사를 마친 후 요양신청서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이후 있을 휴업급여 청구와 장해보상 청구에 필요한 은행통장 사본을 가져오라고 케사르에게 연락하였다. 통화가 끝나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그가 불쑥 사무실로 들어섰다. 통장을 만들 수 없었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은행을 다섯 군데나 갔었다고 했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려 임시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통장은 만들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면 그가 통장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에게 은행들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서 돌려보낸 것이었다. 결국 케사르와 함께 은행에 가서 상황설명을 하고 여권번호와 이름만으로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사이 그는 또 다시 수원 친구 기숙사로 거처를 옮겨 있었다.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데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친 손이 시리다고 했다.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손으로는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보상금을 받기까지 두 달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는 이 한 겨울에 몇 번이나 또 옮겨다니며 불안하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사업주의 산재보상보험법 기피 현상

이와 같은, 아니 이보다 더 심각한 산재 피해 사례는 무수히 많다. 얼마 전 우리 단체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 실태조사를 한 바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5%가 입사 3개월 안에 산재를 당하였고, 1주일 안에 산재를 당하는 비율도 13.7%나 되었다. 이는 한국어에 서툰 상태에서 작업에 대한 충분한 안전교육 없이 곧바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케사르의 경우도 입사 후 불과 3일 만에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산재를 당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보상과 관련해서 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가히 총체적이라 할 만하다. 당면한 병원치료에서부터 보상금을 지급 받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산을 넘어야만 한다. 사업주가 다행히 산재보험으로 처리를 하면 병원 치료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휴업급여, 장해보상금 등이 그나마 최소한도에서 지급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치료비를 월급에서 공제하거나 치료비 전부를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입원 기간 동안 간병인 하나 없이 홀로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산재보험이 된다해도 요양기간 동안 지급되는 월임금의 70%인 휴업급여로는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은 고사하고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기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사업주가 산재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치료만 마친 상태에서 재고용을 거부할 경우 장애가 남은 채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2년 전의 사고에 대해서 보상을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사업주가 치료만 겨우 마치고 재고용을 거부하여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상담소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처럼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재보상보험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불법체류자의 신분인 점을 악용한 사업주들이 산재보험 처리를 꺼리고 최소한의 치료와 합의금으로 사고처리를 해버리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사람’ 취급 못 받는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의 경우는 그 유형에 있어서 산재사고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고 복잡하다. 몽골 사람 10명과 필리핀 사람 8명을 고용했던 용인의 한 사업주는 체불임금 2천만 원과 몽골 사람의 사글세방 보증금, 이들에게 빌린 돈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차례로 우리 상담소를 찾아왔다. 이 사업주는 외국인들만 고용하면서 2~3개월씩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을 일삼았으며, 자신의 집 2층에 이들을 거주하게 하면서 애초에는 먹을거리를 제공하기로 했으나 2개월 후부터는 쌀 등을 공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돈을 빌리고 나중에 준다고 미루면서 노동력을 붙잡아두는 방편으로 삼았다. 상

담을 진행하면서 사업주들과 접촉하다보면 오히려 적반하장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사업주의 경우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전화했을 때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들이 고의로 불량을 내어서 손해가 3천만 원 가량 발생했다는 둥의 소리를 해대었다. 자신이 임금을 체불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책도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있지도 않은 ‘죄상’을 나열하기에 바쁘다. 회사의 물건을 갖고 나갔다는 둥, 갑자기 도망가버렸다는 둥, 대부분 사실 확인을 해보면 사업주들이 임금체불에 대한 면피의 핑계로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들이다.

퇴직금의 경우에 있어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예 ‘사람’이 아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외국인에게 무슨 퇴직금이냐, 불법체류자도 퇴직금을 주느냐’이다. 심지어 노동부의 일부 근로감독관까지 이런 발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을 볼 때, 사업주들은 오히려 몰라서 그렇다고 이해가 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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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을 받지못한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출처: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인권의 문제

이미 한국에는 33만 여 명의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들이 한국인이 기피하는 힘든 작업을 감내하며 한국 경제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근래에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는 극심한 인권침해 사례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얼마간 확산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정작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의 모든 원인을 제공하는 제도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긍정적인 답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수많은 인권유린 사태와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외국인 산업연수제도를 오히려 확대하려는 소위 ‘외국인 인력정책 개선안’(국무조정실, 7월15일 발표)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가을도 없이 갑자기 쳐들어온 한파에 오늘도 이중삼중의 추위에 떨고 있을 외국인 노동자들의 겨울을 생각하니, 그들을 상담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상황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 같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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