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동사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admin 0 4,183 2013.05.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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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쓴 두 편의 학술논문을 축약한 것으로 이들 논문의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것이다. 지면 관계상 학술논문 형식의 각주나 참고문헌 및 논거 등의 기술을 생략한다. 「한미관계사: 38선에서 IMF까지」 강치원 엮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미관계의 역사와 우리 안의 미국주의』, 백의, 2000년. 「주한미군의 反 평화성과 反 통일성」, 『진보평론』 통권 9호 200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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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 전쟁위협을 계기로 이 곳 남녘 땅 여기 저기서 전쟁반대, 부시방한 반대운동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무려 600여 개의 사회단체들이 거족적으로 참여했고, 수많은 개인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잇달아 동계올림픽대회에서 한국선수 김동성의 금메달이 '강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백만의 한국네티즌이 미국을 향해 집중포화를 터뜨렸다. 

unikorea_01.jpg"1919년 3월1일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그 날입니다. 2002년 3월1일은 미국에 의해 실추돼버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날로 만듭시다"라면서 미국에 대한 제2의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바람이 독립운동가 조문기 옹에서부터 십대 후반의 젊은이에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록 한줌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참전경찰전우회 등은 참석자들에게 돈 봉투까지 돌리면서 부시 환영대회를 벌였고, 경제단체들은 신문에 큼직한 광고라는 돈 덩어리로 환영을 표시했다.

우리 사회에서 반미(反美) 바람이 1980년 광주학살 이후 6월 항쟁까지 거세게 일어나다 세계화 국면에서 멈칫하더니 21세기 초입을 맞아 재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비록 일부 지배세력과 그들의 행동대였던 군과 경찰의 퇴물 인사들이 전쟁광 부시를 환영하는 것도 우리 현대사의 오염된 부문이 밖으로 드러난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외세는 결코 남녘 땅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다. 또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단막 배우도 아니다. 그래서 남과 북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의 실체와 현대사 전반에 걸쳐 있는 미국의 그림자를 규명하는 작업과 더불어 한미관계를 새로이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한반도 속의 미국 

미국이라는 외세는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인 굽이굽이마다 핵심적인 결정권자와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마자 조선사람 어느 누구와도 상의 한번 없이 자기들 멋대로 조선을 38도선에서 양쪽으로 두 동강을 내는 지리적 분단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2년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는 이 시점까지 줄곧 남의 나라에서 마치 그들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해 왔다. 이 땅에 놓여 있는 미국이라는 외세의 발자취를 미국사람의 눈과 미국화 되어버린 친미사대주의라는 남의 눈으로가 아니라 민족 중심적인 눈, 곧 우리 자신들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현대사의 첫 출발인 해방공간을 보자.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과제는 첫째,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에 구축된 식민지 잔재와 친일파의 청산이었다. 둘째는 미국의 주도로 두 동강난 분단을 해소하여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인의 염원과 과제는 미군정에 의해 철저히 분쇄되고, 결국 친일파 중의 친일파인 박정희가 대통령까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6·25라는 민족상잔까지 겪는 참화 속에 빠졌고,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과 적대가 남북 사이에 가로놓이게 되었다.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그 후과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만 보더라도 1980년의 5·18항쟁에서 전두환 정치군부 지원, 1987년 6월 항쟁에서 당시 신민당 당수 이민우 구상에서부터 6·29선언에 이르는 예방(수동)혁명의 추진, 걸프전쟁 이후의 '제2의 한국전쟁' 시나리오, 1994년 6월 전쟁일보 직전까지 치닫게 하였던 북한 영변 핵위기, 1997년의 IMF경제신탁통치, 1998∼1999년의 '3∼4월 위기설'로 일컬어지는 금창리 핵위기 등에까지 이른다. 그러다 부시라는 전쟁광이 집권하자마자 '악의 축' 전쟁 위협으로 우리 민족 전체를 공멸시킬 전쟁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골라 보면서 미국이라는 실체에 접근해 보자. 

5·18항쟁과 미국

unikorea_03.jpg1979년 10월 영구독재체제를 구축한 듯한 박정희가 술판과 난봉판을 벌이다 피살됨으로써 남한은 근 20년 만에 '서울의 봄'을 맞아 민주체제로 나아가는 듯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당면 과제는 '서울의 봄'이라는 상징어가 말하듯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5·18항쟁은 바로 이러한 민족사적 과제를 구현하기 위한 민중 중심의 민주항쟁이었다. 그러나 이 민주항쟁은 광주학살이라는 엄청난 비극으로 귀결되었고, 이 피흘림의 과정을 딛고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재등장하여 배반의 역사를 강요했다.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부가 12·12쿠데타, 5·17비상계엄과 내란, 5·18광주학살로 민주화 이행을 무산시키고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버금가는 신군부 독재체제를 출범시켰지만, 미국은 이들 유신잔당의 광주학살에 대하여는 주로 명시적인 지원을, 정권 찬탈기도에 대하여는 묵시적인 지원과 명시적인 지원을 병행하였고, 군부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1981년 2월에는 곧바로 전두환을 미국으로 초대하여 축복을 내리는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를 자행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적인 책임마저도 부인했다. 1980년대 내내 비등하던 미국책임론과 반미주의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어떠한 법적 및 외교적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도덕적 책임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주장은 1996년 팀 셔록 기자가 정보공개법에 의해 입수한 비밀문서를 통해 대부분 거짓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미국의 반민주적인 실체에도 불구하고 광주항쟁 당시 일부는 미국을 전두환 일당을 견제해 민주화를 지원할 우군과 민주세력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반공과 숭미에 매몰된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6월 항쟁과 미국

6월 항쟁은 5·18 광주의 비극 속에서 잉태되고 발전될 수밖에 없었다. 반미노선의 격화와 더불어 투쟁노선에서 볼 때, 제헌의회 소집에서부터 호헌 조치에 이르는 극우반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이후 가장 넓은 이념적 지평이 열린 상황이었다. 이러한 반미투쟁과 급진적 이념의 연속선상에서 진행된 6월 항쟁은 1987년 6·29선언으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되어 연인원 사오백 만의 6월 항쟁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쇠잔 국면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6·29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8개 항목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일종의 분할지배전략이고 수동(예방)혁명이었다. 곧, 제한된 민주주의의 허용을 통해 집권세력인 군부의 지속적 지배를 꾀하고, 저항세력의 내부분열, 곧 기층민중과 중간층을 분리시키고, 제도권인 야당과 민중세력의 분리를 유인하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분할지배전략은 그대로 적중하여 중간계급은 7∼9월의 노동자대투쟁에서 이탈하고 탈(脫)정치화했고, 야당은 성급한 타협으로 정치 사회에 복귀했다. 재야사회운동세력은 연대세력을 잃어 약화되었고, 드디어 대선 후보 단일화마저 실패하면서 민주정부 수립은 좌절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한국사회의 출발을 기한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정책과 수동혁명전략은 미국이 주된 연출자였고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연기자에 불과했다. 『월간조선』에서는 6·29선언을 마치 '위대한 결단'이고 '대전환'의 용단인 것처럼 성격 규정하면서 마치 전두환이 연출자였고 노태우가 연기자인 것처럼 묘사하여 끝까지 군부독재를 찬양했으나 사실은 정반대다. 전두환은 이민우 구상인 이원집정제인 내각제가 불가능해지자 4·13 호헌 조치를 취했고, 6월10일에는 노태우를 정식으로 후계자로 선출하여 '평화적 정권교체론'을 제시했고, 이때 릴리 미국대사는 민정당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노태우 선출을 축하하고 있었다. 같은 날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에 24만의 민중이 모이면서 6월 항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6월18일 부산대회에서 30여만의 시민이 참여하여 통제불가상황이 전개되자, 6월19일 오후쯤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 

그러나 6월 항쟁은 더 이상 5·18항쟁과 같이 광주에만 고립된 현상은 아니었다. 민족자주와 민주화를 추구하는 민주세력의 급진성과 엄청난 힘에 겁을 집어먹은 미국은 이원집정제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형식으로 군부독재를 유지하려던 노골적인 속임수로는 약효가 없다고 판단하고 6·29 직선제를 들고 나왔다. 이후 미국은 노태우를 초청하여 그를 미국의 선택아로 부상시켰고, 선거이후 부정선거 시비가 일 것을 예견하여 미리 시비를 차단하려는 듯 12월10일 시거 차관보는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결과를 무시하면 비난받을 것이고 누가 되든 국민의 대통령이다"라면서 마치 최종 재판관과 식민지총독 행세를 자행했다. 예견된 대로 노태우가 당선되자 백악관은 "한국 선거는 비교적 공정했다. 뚜렷한 부정선거는 없었다. 노태우 당선을 적극 환영한다"라는 논평을 내어 각본대로 나타난 군부정권의 세습을 마무리지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6·29는 미국이 연출을 담당하고 전두환·노태우 등이 연기한 속임수의 수동혁명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6·29가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민주화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 이 역사적 성과물은 미국이나 전두환 등의 자비로운 시혜물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원내각제나 현행헌법에 의한 단순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형식을 통하여 군부권력 세습제에서 직선제를 통한 군부권력 세습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한 것은 역시 우리 민주세력의 폭발적인 항쟁력 때문이었다. 

우리는 5·18항쟁에서의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군부지원과 6월 항쟁에서의 제한적 군부지원과 6·29선언 연출이라는 미국의 행위 유형에서 그 극명한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성은 바로 우리 민주세력의 힘에 대부분 기인했다는 사실을, 앞으로 한반도 전쟁방지, 민족자주 위업의 완수, 평화적 조국통일 등의 민족사적 과제를 구현하는 데 훌륭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 전쟁위기와 미국

한반도 속의 미국은 냉전기의 큰 민족사적 계기였던 해방공간, 5·18항쟁, 6월 항쟁 등에서 어김없이 냉전 전사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후의 세계사는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이라는 대전환을 맞았다. 이에 따라 동서냉전에 의해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강요당했던 이 곳 한반도에서도 탈냉전기인 1990년대 이후에는 응당 탈냉전의 역사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한반도 냉전의 주범이었던 미국의 행위가 탈냉전으로 나아가기를 말이다.

그러나 탈냉전의 시점에서도 한반도 속의 미국은 오히려 더 사악한 냉전 전사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걸프전쟁 직후 기고만장한 미국은 당시 파월 합참의장이 한 "이제 다음 차례는 김일성과 카스트로다"라는 말처럼 120일 전투 시나리오 등으로 전쟁위협을 자행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전쟁 획책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 수준에서 탈냉전이 되었다고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속 냉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unikorea_02_0.jpg뭐니뭐니 해도 인간의 기본권 가운데 기본권은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이다. 그런데 이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을 멀리는 6·25 확대전쟁 당시 맥아더와 같은 전쟁미치광이가 무려 26개의 원자탄을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쳤던 시점에서부터 외세인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 우리 모두는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 1960년대의 미국 간첩선 푸에블로호 포획사건, 미국 첩보기 EC 121기 격침사건, 판문점 미루나무 절단사건에서부터 1994년 6월 영변 핵위기로 인한 전쟁일보 직전까지의 아슬아슬한 순간, 금창리 핵위기 조장사건, 또 최근의 '악의 축' 전쟁위협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그야말로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남한사람은 자기의 죽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경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의 결정권이 거의 미국에 달려 있고, 이에 관한 정보가 우리에게는 철두철미하게 차단되어 실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9년 5월24일 『한겨레』신문과의 대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전쟁 일보 직전 상황에 대한 회고에서 "하루는 보고를 받으니 내일 … 대사관 직원 가족들의 철수를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전쟁 직전에 취하는 조처다. … 남북에서 … 천만 명에서 2천만 명이 죽을 것이다. … 그 날 저녁 클린턴하고 32분 동안 통화했는데 대판 싸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한반도전쟁에서 남과 북은 운명공동체라는 것과, 또 전쟁국면에 들어가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우리의 대통령마저도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기막힌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전쟁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의 전쟁 위기를 분석한 논문과 책 어느 한편도 김대통령이 반대했기 때문에 전쟁을 막았다는 분석은 없다. 

2001년 6월 제주도 평화포럼에 참석한 당시 국방장관이던 페리는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승리하겠지만, 한국군·미군·한국 국민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 … 주한미군을 수 만 명 증원하는 계획을 입안했고, 주한 미대사관에 민간인 철수계획을 준비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전쟁 개시를 승인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우리는 … 김일성의 전언을 받아 협상에 나선 것이다."이러한 전쟁위기를 맞아 이 땅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은 응당 일치 단결하여 전쟁 막기에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이 절박한 전쟁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의 주류 정치계와 주류 언론은 전쟁을 막기보다 오히려 미국의 주류처럼 전쟁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에게는 남과 북의 수천만이 전쟁으로 죽게 되는 상황일랑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 정부나 친미주의자들은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막가파식 전쟁광인 부시의 방한에서 그의 '악의 축' 전쟁위협에 급제동을 가한 것은 600여 개의 전쟁반대 평화사수 사회단체와 보통사람인 민중들과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학생들이었다. 이제 이 전쟁위기를 획책하는 물적 토대가 바로 주한미군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현주소를 살펴본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전쟁위기 

해방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냉전성역의 장막이 가로 쳐져, 이에 대해서는 무조건 표준정답만 이야기해야지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하면 때로는 목숨도 빼앗기고 옥살이도 해야하고 또 학교나 사회에서 축출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 좌익은 악의 화신이고, 우익은 선의 확신이며, 한국전쟁은 무조건 북한의 침략전쟁이지 통일전쟁도 아니고 내전도 아니다 등이다. 주한미군 또한 바로 이 냉전 성역이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고 심지어 통일이후까지 주둔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철칙으로 되어 있다. 이 표준 정답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반미로 낙인찍히고, 반미=용공=친북=급진세력=불순세력=탄압대상(무조건)이라는 올가미가 덮어 씌어진다. 이래서 지난 반세기 넘게 근거 없는 신화나 종교적 맹신 속에 미국과 주한미군을 안치시키고 흠모와 동경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다. 이제는 종교적 믿음의 높은 자리에서 주한미군을 땅으로 끌어내려 구체적 사실에 의한 과학적 지식으로 진실을 밝혀야 할 시점이다. 곧 주한미군에 대한 냉전성역 허물기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미군 주둔의 불가피성은 무엇보다 군사안보를 근거로 하고 있고, 이는 또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한다. 하나는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높고, 둘째는 남한군 열세 때문에 전쟁 억지력을 주한미군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두 가지 전제는 허구에 불과하다. 

북한의 무력도발가능성을 보자. 이미 북한 군사력은 남한의 군사력에 비해 압도적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없더라도 북한의 무력도발은 그들에게는 자살행위일 따름이다. 또 앞에서 보았지만 탈냉전을 맞은 1990년대에 연속된 한반도 전쟁위기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조성했다. 걸프전쟁 이후의 제2의 한국전쟁 시나리오, 1994년의 전쟁발발 일보직전으로 치달았던 영변 핵위기, 1998∼1999년 금창리 핵위기, 2002년의 '악의 축' 전쟁위기 등이 그것이다. 이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에 의한 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북한의 무력 도발가능성보다는 미국의 전쟁도발 가능성이 '4:0'으로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또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끈질기게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해 왔지만, 미국은 전쟁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인 이 평화협정을 지속적으로 거절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침 야욕을 가지고 있다면 전쟁의 소지를 없애는 평화체제 구축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이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체제 구축에 벌써 응했어야 마땅하다. 

둘째 전제인 남한군사력 열세론은 육군 자체 분석에서도 부인되고 있다. 1999년에 만든 육군 정훈교재는 '북한군이 국군을 두려워하는 5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세 번째는 "북한군의 무기와 장비는 양적으로 국군보다 1.6배 많지만 육군 무기의 40%, 해군 함정의 70%, 공군전투기의 65%가 폐기처분 직전의 노후장비"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남북간 군사비 격차를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방백서도 밝혔지만, 북한의 군사비는 13.6억 달러에 불과하나, 남한은 스톡홀름평화연구소에 의하면 10배인 151억 달러이고, 1995∼1999년 외국무기 구입비는 60억 대 1.9억 달러이다.

실제로 군사안보 차원에서 주한미군은 전쟁을 억지하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남의 전쟁에 휘말릴 위험성을 더 높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호전적인 레이건 미국대통령 재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와인버거는 주한미군은 북한보다는 소련을 겨냥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만약 중동에서 소련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일본군, 미군, 한국군이 합동으로 북한을 침공하고는 이곳 한반도에서 소련에 대한 핵공격까지 벌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 그네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가 핵전쟁 대리전쟁터가 되어야 하며, 또 우리 민족이 공멸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혈맹으로 짝사랑하는 미국의 참모습이다. 

미국, 그들의 전쟁에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미국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은 지금도 계속된다. 특히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우리는 중국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오고, 이는 다시 남북간의 전쟁으로 직결될 것이다. 곧,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 중국은 이제까지 공공연히 주장한 것처럼 통일을 위해 대만을 침공할 것이고, 이 경우 미국과 일본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이 때 주한미군은 자동적으로 중국을 공격할 것이고 중국은 주한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지휘를 받고 작전권도 없는 한국군은 자동적으로 중국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정작 전쟁의 주체인 미국 땅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우리 땅에서는 주한미군 때문에 전쟁의 참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상상하기에도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주한미군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주한미군 철수의 당위성

이를 볼 때, 이 땅에 전쟁을 막아 우리의 생명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맹신해 왔던 주한미군의 불가피성에 의존할 게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을 철군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밖에도 주한미군 철군론은 불평등하고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대등한 한미관계로 바꾸자는 평등권, 서울시민의 식수인 한강에 독극물을 투하한 것에 대한 환경권과 생존권, 국제 폭격장이 되어버려 주민들의 삶이 원천적으로 파괴된 데 대한 생활권, 주한미군 범죄에 희생된 한국인의 인권, 외국군을 철군시켜 군사작전권을 되찾고 자주권을 높이자는 주권,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미군을 철군하자는 통일권, 주한미군이 전쟁 억지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갈 위협이 있다고 철군을 주장하는 평화권과 생명유지권, 주한미군의 존재 때문에 우리의 군사체제가 주한미군에 종속되어 자주국방이나 자주적 무기체계가 훼손된다는 군사기술적 자주권, 우리 땅을 되찾아 땅주인이 되겠다는 재산권 등의 차원에서도 당연히 주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수도인 서울의 심장부를 고려시대 원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래 조선조 말 청나라 군대, 식민지기간의 일본군, 해방과 더불어 미점령군이 독차지했고,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이라는 외세가 치외법권 지역을 설정해 우리나라 위의 상전 행세를 하고 있다. 이 망국적 민족사 가운데 56년이란 미군주둔만큼 오랜 기간 외국군이 주둔한 적이 없다. 여기에다 아파트까지 지어 영구주둔을 획책하고 있다. 

이 주한미군은 우리의 미시적 삶에서부터 거시적인 민족사 행로에까지 온갖 내정간섭과 지배자의 역할을 해왔다. 이 땅의 사대주의 분단기득권 세력은 이러한 민족의 질곡과 예속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기보다는 예속과 분단의 길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오고 있다. 이제 6·15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시대인 통일성취시대가 열렸다. 이제 통일시대의 민족사적 핵심과제인 평화와 통일을 쟁취하여야 할 시점이다. 우리 자신과 민족의 미래를 더 이상 이들 외세, 이 외세와 야합한 사대주의자, 분단기득권 세력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악의 축' 전쟁위협과 부시 방한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는 남의 나라 대통령인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삽시간에 전쟁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연두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중심 축'의 하나로 규정했고,  연이어 '북한 등에 모든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면서 기습 전쟁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잇달아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가공할 핵무기나 군사무기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 군사력을 후퇴시키라고 윽박지르면서 사실상 북한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소수자라기보다는 미국의 주류보다 더 주류로 행사하는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사정을 봐주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전쟁광적인 정책을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을 "누가 이를 악마가 아니라고 주장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미국정부의 의무는 공격이 취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공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습공격을 부추겼다. 의회를 비롯해 미국 국민의 80%가 넘게 우리의 고귀한 생명권을 짓밟아버릴 한반도 전쟁위협에 박수갈채를 보이면서 막가파식 부시에게 백지수표를 위임했다. 

북한이 테러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주한미국대사도 인정한 것처럼 전쟁빌미가 되지 않으니까, 13.6억불의 군사비를 쓰는 북한의 재래식무기를 250배가 넘는 3400억불의 군사비를 쓰는 미국 또 10배인 151억불을 쓰는 남한에 위협이 된다고 후방으로 배치하고 감축하라고 강압했다. 그러면서 남한에게는 F-15K 등 무려 100억불의 무기를 강매하고 MD체제에 편입시키려 한다. 무려 6천기의 전략핵무기와 온갖 대량살상무기를 독과점하고 있는 미국이 한 줌에 불과한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라고 길길이 뛰고 있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과 나라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1998∼1999년 미국은 금창리 핵개발 의혹을 빌미로 1990년대 세 번째의 한반도 전쟁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정작 사찰을 해 본 결과 사실무근임이 판명되었다. 단순한 미국의 의혹제기에 한반도가 전쟁 일보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몰리는 게 우리의 운명이란 말인가? 럼스펠드 보고서는 1998년 7월 북한이 5년 이내에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을 파괴한다고 했으나, 이는 조작임이 드러났다. 사실무근과 조작으로 미국은 불과 2∼3년 전에도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벌렸던 것이다. 

이러한 데도 작금의 황당무개한 대북한 전쟁위협 빌미를 사실인양 부화뇌동하는 이 땅의 주류 언론과 주류 정치인들은 과연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고 어느 나라 언론인가? 이들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은 물론 세계 제1의 미사일 수출국"이며, CIA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년에도 핵무기 기술을 확보하려 했고, 최소한 한두 개의 핵무기를 만들 만한 플루토늄을 생산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햇볕정책 때문에 한미간의 이견이 생겼으며, 올바른 길은 햇볕정책을 버리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르라는 것이다. 또, 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미국까지 가서 이들 전쟁광 앞에서 북한 핵에 대한 특별사찰을 받을 것을 주장하여 미국의 충실한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북미제네바협정 위배이고, 국제원자력기구 협정 위배다. 이런 것도 모르는 자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 

북한이 1억 불도 되지 않는 무기수출국인데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미사일 수출국'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정당이 과연 수권 능력이 있는 정당인가? 또한 1994년 이후 북미제네바협정에 의해 일체의 플루토늄 생산이 중단되어 있고 북한이 이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측도 인정하고 세계가 다 공인하는 사실인데 플루토늄을 생산해 왔다는 CIA주장만 금과옥조처럼 되풀이하는 이들의 지적 능력은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 아닌가?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미국과 북한간의 북·미 전쟁으로 끝날 수 없다. 전쟁은 주한미군이 중심이 되고 작전지휘권도 없는 한국군은 원하든 아니든 미군의 작전지휘를 받아 자동적으로 미국의 전쟁에 동원되어 우리 북한동포에 총 뿌리를 겨눠야 한다. 그 결과는 미국과 한반도 사이의 전쟁이며, 남이든 북이든 우리 민족은 대부분 처참한 죽음에 내몰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남북은 한반도 전쟁에 관한 한 운명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으며, 북쪽만 죽고 남쪽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망상에 불과하다. 

부시의 방한을 맞아 정부는 제대로 된 목소리하나 내지 못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앵무새처럼 외쳐댔다. 반세기 이상 줄기차게 한미동맹에 매달린 결과가 바로 전쟁공포라는 통탄할 현실 앞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주류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한미동맹을 읊조린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다운 이들 사대주의 무리들에게 전쟁위기를 막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직 600여 개의 사회단체, 민중, 그리고 젊은 학생들이 성남공항에서부터 도라산역까지 모든 역량을 전쟁방지에 집결하는 단호한 대처만이 이 막가파식 전쟁놀음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이번 부시 방한을 맞아 똑똑히 보여주었다.

탈미자존(脫美自存)의 길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민족사적인 통일시대를 맞아 우리의 당면과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반도 속의 미국을 탈냉전적 순응물로 만드는 것이다. 냉전 전사 미국의 철옹성 같은 모습도 6월 항쟁에서는 6·29선언이라는 수동혁명을 제안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영변 핵위기에서는 북한의 민족자주적 대응으로 수모를 당하는 꼴이 되었다. 금창리 핵위기에도 김대중 정권의 포용정책은 미국의 허를 찔러 민족 안보를 도모했다. 또 악의 화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전쟁의 광풍을 휘몰고 오려던 막가파 부시도 전쟁 반대와 미국반 대를 외치는 우리들의 단호하고 결집된 부라림에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슬쩍 내렸다.

이 땅에서 미국이라는 야만적 패권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우리가 우리일 것을 거부하는 자아소멸과 자아해체'를 단호히 배격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기 긍정, 곧 탈미자존(脫美 自存)으로 우리는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이럴 때만 미국의 야만성, 제국주의성, 반역사성, 일방주의, 황야의 무법자성 등이 이 곳 우리 땅에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