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7년 9월 15일(금) 오후 2시~6시
○장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20호
<진행순서>
▶1부. 기조발제
▪제목: 87년 노동자대투쟁 30년, 한국노동운동의 현주소
▪발표: 이원보_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2부. 발표 및 토론
▪사회 윤정향_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발표1: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지역 노동자 저항의 궤적과 노동운동의 분화, 유형근_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발표2: 1987년 노동운동과 2000년대 비정규 노동운동: 금속산업 대공장 내 사내하청 노동을 중심으로, 손정순_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
▪발표3: 노동조합의 조직화 활동 경과와 결과, 이주환_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토론 : 정병모_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제20대 위원장, 박점규_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김진억_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 사업국장, 김금숙_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 조성주_서울시청 노동협력관
○후원: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 사무소
○주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지난 9월 15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골리앗,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주제로 대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본 원고는 대토론회 당시, 다섯 명의 토론자의 발표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주체와 그 변화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정병모 : 저는 1987년도 현대 중공업에서 노조를 만든 발기인 중 한 명으로 이른바 노동운동 1세대입니다. 2013년에는 현대중공업 제20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2014년부터 이듬해 2015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저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노동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87년도 당시 저는 서른한 살 이었고, 올해 환갑이 지나 예순한 살이 되었습니다. 올해 저는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87년 현대중공업 노조의 결성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기 전, 저는 서울에서 섬유공장을 전전했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는데 그때 여러 노조를 경험했습니다. 여성 노동자 중심 사업장에서 남성 노동자가 구사대를 조직 하거나 방관자 역할을 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1982년도에 울산현대중공업에 취업했습니다. 입사 후, 1987년 노조가 만들어지기까지, 저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그룹이라 할 만한 현대 그룹 안에 노조가 없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저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룹 전체에 노조가 없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직선제가 되었는데 작업장 안의 민주화는 요원하기만 했습니다. 1987년 당시, 저는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그때 현대그룹 내 초대 노조위원장인 권영목과 저는 한 작업장에서 일했습니다. 권영목 동지가 매일 시위에 나가는 저를 보고 위험한데 왜 나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나가면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권영목 동지가 몸조심하라며 자신은 풍물을 배우고 있어서 가지 못한다고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그랬던 그분이 1987년 7월 5일 처음으로 현대그룹 안에서 노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는 권영목을 직접 만나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가늘어서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노조를 만들어 냈는지 저는 벅찬 감정을 느낍니다.
1987년 7월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속된말로 ‘공돌이’, ‘무지렁이’란 소리를 듣던 때였습니다. 현대중공업의 공장 노동자는 ‘조지나공장 노동자’라 불렸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구루마공장 노동자’라 불렸습니다. 그런 노동자가 스스로 노조를 조직하고 사회변혁 운동을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열심히 사회변혁과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제로 임금인상 투쟁이나 자기 밥그릇 지키기 투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 노동운동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87년 노동운동의 한계
1987년 7월 28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소수의 노동자 움직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움직임에서 합법적인 노조를 쟁취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열기와 결의도 중요했지만 87년 이후 노동운동 진영에 새롭게 나타난 젊은 남성 노동자의 결집과 진보적인 사회단체 및 학생들의 엄호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내 노조를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 현대중공업 노조는 노동운동의 본산지 또는 주력부대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87년 노동자 투쟁은 1990년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조직력을 확장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부와 자본이 드러내놓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노조를 이중적 태도로 대하기도 했고요. 특히,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도부가 대거 구속되면서 조직력을 보장하기에도 급급했던 때입니다. 1987년에 100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구속되면서 1990년까지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1994년까지 어떤 노조 집행부도 2년의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2개월 내지 3개월, 또는 7개월 만에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많은 노동자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거기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변질과 변절이 대중에게 실망감을 주면서 내부조직을 추스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임단협이 시작되면 자기 임기 내에 그때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 적이 없고, 비대위 측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차기 집행부가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2016년에 시작한 임금협상과 단체협상도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2017년도 임금협상을 임기가 채 2개월밖에 남지 않은 현재 집행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21대 지도부가 해결해야 할 지경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1987년 이후부터 계속 이어지면서 현대중공업에서는 제대로 된 대응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남한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하기도 합니다만 내부에서는 조직력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투쟁을 해왔기 때문에 대안도 찾지 못했고, 내부 역량도 키우지 못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1987년이 공세적인 투쟁이 이루어 진 시기라 한다면, 그 이후 제대로 된 공세적인 투쟁이 이뤄진 때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노동운동의 세대교체 실패와 교훈
올해로 현대중공업 노조도 3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1987년 세대가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1996년 이후 입사한 노동자가 새롭게 노동운동에 눈을 뜨는 중입니다. 세대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운동의 세대도 점차 전환되고 있는 중입니다. 1987년 세대와 1998년 세대라 표현하자면 1987년 세대와 1998년 세대가 서로 접근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노동자 집회나 투쟁을 하게 되면 1987년 세대는 토요일도 집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1987년 세대는 토요일 투쟁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면, 1998년 세대는 토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한편, 오늘날 노동운동은 지리멸렬합니다. 오늘 토론회의 제목처럼 골리앗 서른 잔치가 끝났다고 표현할 만큼 조직력이 훼손된 이유는 정규직 노동자가 같은 작업장 안에서 매일 함께 생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코웃음 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합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동해 키운 자식이 대학교육까지 마쳤지만, 비정규직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비로소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일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식으로는 변화가 요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조직화로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현대중공업 노조에서는 혼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비정규직과 일반직이 현대중공업 사내에서 ‘1사 4노조’로 있는 네 개 노조를 한 데 묶기 위한 규약개정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 노조에서는 이것만 제대로 이뤄도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사측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는 못한 형편입니다.
박점규 : 저는 금속노조에서 비정규직을 담당하며 현재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정규직이 노조결성을 이루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의 노동운동을 십여 년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비정규직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흥망이 어떤지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양극화부터 노동의 양극화 해결까지
노동의 양극화로 흔히들 표현하는 대로 대기업노조, 귀족노조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 노동운동 주류 담론이 되었습니다. ‘촛불 정국’ 때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제일 욕을 많이 먹는 대상이 1위가 박근혜, 2위가 민주노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저는 답답합니다. 우리나라 5대 재벌의 영업이익은 한국사회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해 영업이익 증가율도 높습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10대 그룹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2.1% 증가했다고까지 합니다. 여기에 문제는 대기업 비계열사에 행해지는 극심한 불공정거래인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십여 년 전부터 길게는 20여 년 가까이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자본의 양극화·기업의 양극화라 하는데 5대 재벌, 4대 재벌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부가 통제되거나 제어된 적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노동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정한 발전을 해왔다면 노동자만 양극화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양극화의 태동을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소수 재벌의 자본 집중을 어떻게 해결할지, 재벌이 3·4세까지 온갖 계열사를 하나씩은 가지고 커피전문점에까지 손을 뻗친 지금 재벌의 양극화가 노동의 양극화를 불러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최근, 노조 내부의 노동 양극화와 관련된 이슈를 살펴보면 대리점 판매노동자의 금속노조 가입이 1년 동안 거부되었습니다. 현대 자동차와 기아 자동차의 경우, 정규직 판매노동자가 대의원대회에서 반 협박 분위기를 만들면서 비정규직을 거부하거나 기아 자동차에서는 비정규직을 받아들였다가 파업 때문에 9년 만에 비정규직을 내쫓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전교조에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일괄전환을 반대하는 대의원대회를 결정 한 일도 있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건 정규직 노조의 각성이나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7년부터 ‘1사 1노조’ 운동을 금속노조에서 전국을 돌며 교육하고 있는데 비정규직이 거의 없는 곳에서는 가능하지만 비정규직이 많은 곳에서 규약개정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 안 한다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조선소 같은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난리가 납니다. 따라서 저는 정규직 노조의 각성으로 한국사회의 노조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회의와 연대, 공동투쟁의 필요
1987년에는 하청업체별로 노조를 만들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하청업체별로 노조를 만들지는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들 이름을 예를 들면,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이렇게 됩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 업체 이름으로 노조를 만들지 않고 원청의 사업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노조는 원청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이들은 기간제법이나 노동법 개악에 맞서 공동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연대, 법제도를 바꿔내기 위한 사회적 투쟁은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분명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한국사회 운동에 새로운 진영을 만들어 내거나 20년 넘게 정규직이 주도해 온 운동을 뚫고 나와 비정규직이 이것을 어떻게 이끌 수 있겠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정규직 동지의 독자적인 회의, 연대, 공동투쟁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파견법이나 기간제법은 실제로 논의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공유하면서도 정규직에게 이 법에 대한 이해관계는 없습니다. 따라서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법 제도 개선을 위해 공동투쟁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활동하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에서는 5개월간 한 가지 주제로 토론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노조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촛불 정국 이후 지난 5개월간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300인 이상 대기업 노조 조직률은 60.9%인데 100인 미만 기업은 노조 조직률은 2.7%에 불과합니다. 100인 미만 사업장이 관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00인 이상 조직에 대해서는 큰 과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는 2%의 조직률 밖에 안 되는 100인 미만 사업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됩니다. 이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굉장히 열악한 경영 조건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본의 양극화 문제로 이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촛불에서 나타난 시민의 권리의식이 어떻게 이들의 노조 결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다음 달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에서는 직장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운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령, ‘직장갑질 119’ 이런 가칭으로 정해뒀는데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으로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모아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를 공론화할 지입니다. 지금 계획은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다 만들자고 한 상태이지만 분명 다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이런 고민이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진억 : 저는 오늘 ‘촛불 세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촛불 세대를 만들어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촛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조직화를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촛불 세대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한국 노조의 조직화 특징
조직화의 몇 가지 특성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상대적으로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이 조직화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전 준비과정이 조직화의 성공과 규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초동 주체가 형성되고 이를 준비를 해나가며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특히 전국사업장의 경우 전국망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편, 조직화를 희망한다 할지라도 대부분 특정한 계기·동인에 의해서 빠르게 노조를 만들고 그 이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한 준비 없이 활동의 주체가 조급할 때가 많습니다. 때문에 저는 조직화의 준비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철저한 조직화 준비를 위해선 비공개 조직화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노조를 인정할 사용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사측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노조를 조직화하는 과정에 흐름과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이때 표출되는 불만과 분노가 어떻게 희망과 결합할 것인지가 저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상당수는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포괄적인 공감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포와 불안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경유가 많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여러 경로로 노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또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공포와 불안을 넘어 설 수 있는 조건과 환경, 희망과 전망이 없다면 다수 노조 가입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장의 힘과 사회적 힘의 연대가 필요
저는 노조 조직화를 확대하는 데 현장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은 작업장 투쟁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힘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 공공서비스 모델의 적용을 확대하는 데 저는 동의합니다. 저는 진정한 노동자의 힘은 현장의 힘에 사회적 힘이 함께할 때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현장의 힘을 만드는 것은 투쟁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힘을 형성하는 것은 연대 전략이 됩니다. 이것이 맞물리는 것이 조직과 투쟁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조직화할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쟁취하느냐는 요구 달성 여부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계급형성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과 조직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병아리가 세상으로 나올 때 안에서는 새끼가 밖에서는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잖아요. 안팎의 힘이 합쳐져 병아리가 세상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상호연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조직화 과정에서 연대임금 투쟁이 결합된다면 충분히 성과를 거두리라 봅니다. 연대임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총액을 원청에게 최대한 확보하고 이를 하후상박(下厚上薄) 방식으로 임금인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노조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큰 힘을 모아 모두의 권리를 확대하자. 같이하자, 함께하자’하면 저는 조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지금 현장 분위기라면 저는 공공부문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조직화와 투쟁연대의 결합이 노동자의 주체적인 노조 결성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금숙 : 오늘 저는 젠더적 관점에서 노동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 토론문의 제목은 ‘노동운동 내 여성주의는 작동하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회의적입니다.
노동운동 내 여성주의의 배제
노동운동의 전향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왜 바뀌지 않는가 하고 묻는다면, 변화에 대한 의사나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노동운동은 다른 운동에 대해서 배타적이거나 배제적입니다. 물론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노동운동이 다른 많은 운동과 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인식론이나 구체적인 투쟁 과정에 볼 때 노동운동 내 여성주의는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노동운동에서 볼 때 이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세력이 존재합니다. 1987년 6월 노동자 대투쟁 시기 사무직 노조가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앞서 1960년대부터 전교조, 사무직 노조들이 늘어났지만 그것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없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제조업 노조 말고도 노조가 많이 만들어졌지만, 제조업 노조 대비 사무직, 서비스, 보건 등 비제조업 노조에 대해서는 위계적이고도 배제적인 평가가 있어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동운동 역사를 보면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은 시기는 없었습니다. 특히 1970년 말, 어용노조 일색이던 시기에 여성노동자 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각성을 불러왔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은 우리 한국노동운동사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사에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 전체 노동운동사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운동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왜 노동운동 연구에서 여성운동이 늘 빠져 있는지 노동운동 지도부와 연구자들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노동운동의 배타성과 일방성에 대한 비판도 매우 많습니다. 내부에서는 말하지 못하지만 바깥으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노동운동 안에서는 가부장성을 비판할 기회와 공간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남성 중심성·가부장성에 대한 비판
저는 노동운동이 젠더적 관점에 대해 수용적이지 않은 이유는 매우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계속 아니라고 부정하니 논의가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성 노조 운동가가 비율적으로 낮고, 노조 조직률에 여성 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구성원상으로는 여성의 비율이 거의 50%에 육박합니다. 그 50%의 노동자를 포함하고 있지 못한 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획기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용시장 안에서 성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노조가 나서지 않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노조는 고용시장 내의 성차별이나 성별분업화에 대한 핵심이슈를 문제로 제기하지 않습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올해 민주노총을 비롯해 여러 여성단체가 연대해 성별임금 격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전체 중 부분으로서의 여성문제’라는 젠더적 위계구조 아래에서 협소하게 다뤄지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향후 노동자 조직화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다수는 여성인데 여성들이 노조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동운동 전략을 논의하는 토론회에서조차 젠더의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과연 노동세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노조 지도부 집행체계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학습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 지도자는 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성노동자를 대변하고 여성의제를 전체 운동에서 풀어가고자 하는 노동운동 지도자가 여성주의 인식론과 실천에 대해 무지하다면 과연 여성노동자를 포함하는 전체 노동자를 어떻게 대변하겠다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외국의 노동운동에서 젠더문제는 더 이상 부분이 아닙니다. 젠더문제는 운동의 보편적 과제입니다. 민주주의의 문제이고요. 이를 배제하는 어떠한 운동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갈 길이 멀다고 느끼지만 노동운동 안에 여성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의 적극적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제 발표를 마칩니다.
조성주 : 저는 서울시 노동협력관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드리는 말씀은 제 직책에 따른 발언은 아닙니다. 제 고민은 노동과 자본의 대결구도가 낡은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 데모크라시(Democracy)의 ‘크라시(Cracy)’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본과 대결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민주주의시스템을 통한 노동과 자본의 대결
앞서 여성주의 노동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노동도 젠더도 결국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통해 자본과 대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청년유니온>과 같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노조를 이끌 당시 내부 핵심 조합원 사이에서 ‘꼰대’라는 단어를 쓰지 말 것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난하지 말 것을 제안했습니다. 누군가는 왜 비난하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고, 저들은 미국에서 열심히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을 뿐이라고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결론은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을 30년 후 같은 세계의 일로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청년들은 30년 사이 완전히 분절된 과거와는 다른 노동시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민주노조 30주년, 노동운동 30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같이 평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는 앞서 든 비유대로 다른 나라, 다른 제도와 체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노조 개념의 재해석 필요
공공재에 참여할 권리라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에서는 1인1표를 행사하는 유권자, 즉 시민이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역설적으로는 공공재에 참여할 권리를 전투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시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노조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 규정을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지금 온라인에서 모인다면 그건 노조가 될 수 없는 건가요? 꼭 단체교섭이 있어야 노조인가요? <청년유니온>을 처음 만들고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단체교섭을 누구랑 하는지, 단체행동권은 행사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게 있어야만 노조인가 하는 질문이 <청년유니온> 조합원 사이에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이든 무엇으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자율적 결사체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 노조일 텐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권과 같은 것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을 가져야만 노조 설립신고가 가능하다고 해보세요. 저는 지금 근로기준법이 왜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사용자가 있어야만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미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인데, 그래서 노조가 필요한데 어떤 규정이 있어야 한다면 노동자의 권리 찾기는 어려워집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노동자의 권리 찾기를 위한 노조의 재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가 엉뚱하고 황당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어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헌법상의 결사의 권리인 단결권 그 자체가 더 중요한 권리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되어서나 지금 노동운동이 위기여서가 아니라 세상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지금은 그런 시기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노동조합법의 규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조의 조직화에 관해 많이 말씀하시는데 저는 조직화라는 의미도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조직화라 했을 때 그것을 보통 사람의 수로 생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조직화가 사람의 수, 그 규모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할 때 저는 꼭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한편, 노동운동에서 조합원을 단일한 시각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조합원의 연령에 따라, 기업의 규모에 따라, 고용 형태에 따라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고 이를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 또는 조합원을 너무 같은 세계로 한 데 규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를 비난하자고 드린 말씀은 아니지만 때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토론을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