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10년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사노동도 ‘노동’임을 세상에 알렸다. 이에 따라 가사노동도 노동기준이 적용되는 노동임이 중요한 의제로 떠올라, 2011년 6월16일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협약(C189)’을 채택했다. 2013년 ILO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117개국에서 약 5,260만 명의 가사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 숫자는 전체 여성 고용의 7.5%를 차지하는 규모로, 비공식으로 일하고 있는 가사노동자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수가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가사노동자 수는 약 6,700만 여명이고 이 중 80%가 여성이다. 또한 이 가운데 17.2%인 약 1,150만 명은 이주 가사노동자이다. 가사노동자 5명 중 1명은 이주가사노동자인 셈이다.
국내의 경우 가사노동이 비공식 노동인 탓에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대략 30만 여명의 가사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가사관리사, 산후관리사, 가정보육사 등 전문직업인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 환경과 가족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사노동자의 사회적 역할과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이 건강하고 보람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부재하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가사노동자가 제외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저임금과 4대 보험 등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가사노동자는 엄연히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노동자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우리 정부는 가사노동자협약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아직도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사노동자를 하층민으로 취급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가사노동자를 부르는 호칭(가정부, 식모, 파출부)에서부터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이로 인해 가사노동자들은 위축되어 있고 다른 이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한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가사노동자들이 2016년 6월16일 광화문 광장에서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가사노동, 가사노동자
가사 일은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여성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서 집안에서 살림하고 어린 자녀를 키우고 돌보거나, 아픈 집안 어르신을 돌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사 일은 돈을 주는 ‘유급’ 가사노동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가사서비스 전문 직업으로, 법적으로는 가사서비스 전문 직업에 종사하는 ‘가사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가사노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사람의 손으로 하는 육체노동으로 가사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완화할 적절한 휴게시간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사서비스 이용자(고객)와 약속한 시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일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가사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사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노동조건의 기준을 세우고 현실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급한 일이다. 동시에 가사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 또한 시급하다.
우리나라 가사노동자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식모’라고 불렸다. 사회적 인식은 전통적인 하녀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식모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한 집안의 가사노동과 관련한 모든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일했고, 그 노동을 통해 획득된 수입으로 자신들의 가족 생계를 해결했으며 수입은 오빠 혹은 남동생 학비로도 사용되면서 집안을 ‘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식모라고 불린 가사노동자는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기 위하여 열심히 일해 온 여성노동자였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는 시간제 노동 파출부로 불렸다. 파출부의 등장 배경은 첫째, 식모들의 저항으로 인해 종속적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었던 ‘주인집’에서 시간제 출장 가정부로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시작 되었다. 이러한 요구는 아파트로의 주거환경 변화 그리고 입주 식모를 두었을 때의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 때문이다. 둘째, 산업화로 인해 여성들이 집에서의 ‘살림’보다 사회적 활동을 선택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가사노동을 대리하거나 보조하는 이들이 필요했다. 셋째, 핵가족으로의 가족구조 변화이다. 대가족 구조에서 해결되었던 가사, 육아, 간병 등이 핵가족화에 따른 동거 가족 수의 감소로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점차 돌봄노동자들이 대신할 수 있는 공간, 즉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로 변화했다.
전문직업인으로 세분화 된 가사노동자
사회가 변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면서 그 동안 여성이 담당했던 가정의 가사 노동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 공백을 돌봄노동자들이 담당하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 해결되었던 육아, 가사, 시부모 모시기 등이 베이비시터, 영유아 보육사, 산후관리사, 가사관리사, 간병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돌봄 서비스노동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신자 및 고령화로 인한 독거노인 등이 증가하면서 역할 분담으로서의 돌봄 노동은 사회적 의미를 더 갖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사 노동의 경우, 과거 ‘주인집’으로 부르던 것이 현재는 ‘고객’으로 호칭이 바뀌었고 그렇게 ‘고객’으로 불리는 대상들은 ‘가사 노동’에 대한 역할을 돌봄 노동자들에게 분담함으로써, 고객은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변화를 얻게 되었고 가사노동자들은 경제적 수입의 증가라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가사노동자에게는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전 세계 가사노동자들의 권리 지킴이, IDWF
IDWF는 국제가사노동자단체로, 전 세계의 가사노동자가 겪는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고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증진시키며 가사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모으기 위해 활동해 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IDWF는 올해로 20회를 맞은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지난 3월1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된 시상식 수상을 위해 IDWF의 머틀 위트브이 위원장과 포브숙 가싱 아시아 집행위원장, 펭 아시아 지역 코디네이터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머틀 위원장은 수상의 기쁨을 나누며, 참석자들에게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이 각자 자리에서도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IDWF는 2006년 1회 가사노동자 국제회의에서 태동했다. 모든 가사노동자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으며, 3년 뒤인 2009년 제네바 국제노동회의에서 국제가사노동자네트워크(IDWN)를 출범시켰다. 2011년에는 ILO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협약’을 채택함으로써 모든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활발하게 가사노동자와 회원 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다시 2년 뒤인 2013년 10월 우르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지금의 IDWF가 출범했다. IDWF 창립총회에서 선출된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총장 및 각 지역(대륙) 대표는 총 13명으로 모두 여성이다. 2016년 기준으로 전 대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카리브해 지역)에 걸쳐 47개국에 58개 회원 단체가 있으며 약 50만 여명의 가사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는 인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한국 등지에 13개의 회원 단체가 있으며, 17만 여명의 가사노동자가 조직되어 있다. 초기 IDWN 일 때는 가사노동자 조직 및 지지단체, 관련 NGO 등이 함께 네트워크를 꾸렸으나, IDWF로 전환하면서 가사노동자 당사자 조직만 회원 단체로 인정했다. 회원 단체 가입조건은 가사노동자가 회원으로서 회비를 납부하고 가사노동자가 리더인 조직이어야 하며, 가사노동자가 의사결정을 하고 운영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국내에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회원 단체로 가입되어 있다.
IDWF 소속 회원 단체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가사노동자협약’이 비준되도록 꾸준히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2016년 기준으로 이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총 23개국으로 2012년 우르과이, 필리핀, 모리셔스, 2013년 이탈리아, 니카라과, 볼리비아,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이아나. 독일, 에콰도르, 2014년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아일랜드, 스위스, 2015년 핀란드, 도미니카, 칠레, 벨기에, 파나마, 포르투갈, 2016년 자메이카 등이다. 아시아의 경우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홍콩, 방글라데시, 인도 등 6개 국가 정도이지만, 이 외 훨씬 더 많은 국가들이 자국법으로 가사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한 상태이다. 실제 아르헨티나는 가사노동자들에게 1주(7일) 48시간 노동시간 제한, 초과노동 임금지급, 매년 휴가와 병가, 모성권을 보장하고 있다. 브라질은 초과노동 임금지급, 실업보험, 퇴직연금 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며, 스페인은 최저임금 보장, 매주 및 매년 휴가와 모성권을 보장한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1주 1일의 유급휴가와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있다.
홍콩 이주 가사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보호 운동
2013년 엠네스티의 보고서를 통해 홍콩의 한 이주 가사노동자의 충격적인 학대사건이 알려졌다. 이 노동자의 이름은 에르위아나 술리스탸닝시(Erwiana Sulistyaningsih)로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에르위아나는 홍콩에서 이주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8개월 동안 고용주 부부로부터 대걸레나 자, 건조대 등 살림 도구들로 폭행을 당했고,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과 폭언까지 들었다. 에르위아나가 실수를 하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가 부러지고 온몸에 중상을 입은 에르위아나는 자신을 학대한 고용주를 홍콩의 재판부와 사회에 고발했다. 에르위아나의 ‘용기 있는 고발’은 고용주로부터의 학대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억눌러 왔던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홍콩 시내에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제 인권단체와 아시아 노동단체들은 이주 가사노동자의 인권 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근절 촉구와 에르위아나의 고용주에 대한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 서명에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10만 3천여 명이 참여했다. 2016년 4월27일 IDWF와 제 단체들은 홍콩의 가사노동자들과 함께 홍콩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홍콩 재판부에 전달했다. 마침 홍콩에서 열린 ‘IDWF-COP 비전수립 워크숍’에 참석 중이던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의 윤현미 회장과 부산지부 지부장도 이 소식을 접하고는 워크숍 참석자들과 함께 홍콩 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쳤다. IDWF는 국제앰네스티와 홍콩노동조합총연맹, 워크프리(Walk Free)와 함께 매튜 청(Matthew Cheung Kin-chung) 홍콩 노동복지부 장관에게 이주 가사노동자 보호 강화를 위한 긴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홍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가사노동자 보호법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악덕 중개업체와 고용주들에게 착취를 당해 왔고, 표준이용계약서가 있음에도 고용주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임금을 속이거나, 과도한 수수료를 불법적으로 요구하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여권을 압수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모든 행위는 불법으로, 마치 현대판 노예제도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불법행위로 처벌받은 중개업체 또는 고용주는 찾기가 어렵다. 불법을 저질러도 약간의 벌금만 물면 되는 법 규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IDWF 소속 홍콩의 가사노동자 조합은 지난해 필리핀 출신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중개수수료 징수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조사결과를 홍콩 정부에 제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캠페인을 진행하며 부당한 불법 중개수수료 징수에 대한 문제점을 알려 나갔다. 그 결과 심각성을 깨달은 홍콩 정부는 불법 중개수수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중개업체들을 규제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규제 지침을 통해 이를 위반한 중개업체에 대한 면허취소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홍콩 정부로 하여금 벌금 상향 조정에 대한 법 개정 발표까지 이끌어 냈다.
가사노동자에게 공정한 일터를!! ‘마이 페어 홈’ 캠페인
‘마이 페어 홈(My Fair Home:공정한 일터)’ 캠페인은 2015년 국제노동기구와 IDWF 간의 협력으로 시작됐다. IDWF는 2016년 6월16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하며 이 캠페인을 국제 공동캠페인으로 확대했다. 마이 페어 홈 캠페인은 가사서비스 이용자(고객) 개개인이 가사노동자의 일터인 자신의 집에서 가사노동자협약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인식개선 확대 차원에서 잠재적 이용자인 일반인에게도 캠페인에 함께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국내 상황에 맞게 내용을 정리하여 ‘공정한 일터, 당신의 집과 사회에서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힌 ‘서명엽서’를 통해 가사서비스 이용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내 가사노동자들의 권리 지킴이, 전가협
전국가정관리사협회(NHMC: National House Manager's Cooperative, 이하 전가협)는 2004년 11월에 창립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부설조직으로 현재 전국에 11개 지부가 있으며 약 6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14년째 활동하고 있는 전가협은 핵심 활동으로 근로기준법 제11조 1항의 ‘가사사용인 적용제외’ 규정 삭제 요구, ILO의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 촉구, 가사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법제화를 위한 활동, 계약서 쓰기 실천 운동, 공정한 일터를 위한 사회인식 캠페인 등을 전개하고 있다.
전가협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가사일은 여자들이 하는 허드렛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가사노동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힘써 왔다. 가사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노동권과 인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차별이라는 점도 알렸다. 무엇보다 ‘파출부’ 대신 ‘가정관리사’라고 불러달라는 인식개선 운동을 통해 가사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2011년 ILP에서 ‘가사노동자협약’을 채택하는데도 기여했다. 또한 가사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가사노동자 건강을 말해요’ 소책자 발간, 가사노동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가사노동 직무분석 및 가사노동 매뉴얼 개발, ‘가사노동기준을 세우자! 계약서를 씁시다’ 소책자 발간과 계약서 쓰기 실천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리더십 발굴 프로그램과 역량강화훈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또한 11개 지부는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노동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함께 일하는 사회적 협동조합(Coop) 운영방식을 채택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 중 7개 지부는 인가 사회적협동조합을 운영 중이다.
전가협은 2013년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실시한 가사노동자들의 일과 건강 실태조사(가사노동자 319명 양적조사, 10명 심층조사)에도 참여했다. 이 조사를 통해 업무의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 노동 강도가 매우 높고 산업안전에 대한 표준조차 없어 가사노동자들이 건강을 위협받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표준 업무의 부재로 고객과 다툼의 소지가 많고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린 나머지 우울증상 주의군이 21.9%로 일반 여성보다 매우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가협은 2014년 가사노동자 당사자 주체와 연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사노동 업무매뉴얼’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가사노동 직무분석을 통해 가사노동의 범위와 이에 필요한 소요시간을 산출하여 ‘가사서비스 노동기준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가사노동자와 고객의 권리‧의무가 상호 보장되도록 가사서비스 이용약관 및 가사서비스 이용계약서 양식을 개발했다. 무엇보다 누구나 하는 허드렛일로 여겨지던 가사노동이 4시간 안에 7가지 영역에서 70가지 세부업무로 이루어지는 숙련이 필요한 노동임을 밝힌 매우 소중한 연구결과였다.
가사노동자 노동권‧건강권 보장 위한 법 제정을 위해
"우리 가사노동자들은 너무 힘이 듭니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숨 돌릴 틈도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일해도 변변히 어디 앉아서 점심밥 먹기도 힘듭니다. 화장실 천장을 청소하다 떨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가면, 석 달 동안 일도 못하고 치료비까지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어느 날 고객으로부터 ‘오늘부터 우리 집 오지 마세요’란 막무가내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합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물건이 없어졌다며 도둑년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고객의 집에 일하러 갔다가 고객의 남편이 자다 일어나서 속옷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는 민망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직장인들은 1년이 되면 연차유급휴가가 생기는데, 십년을 일해도 우리 가사노동자에게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 가사노동자들은 어디에도 하소연을 할 수가 없습니다!!"
2015년 초 정부는 ‘비공식부문 노동시장 공식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가사노동관련 법률 초안을 만들었음에도, 그해 노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노동개악에 집중해야 한다며 입법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런데 정부안은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탓에 가사노동자들은 당사자가 원하는 법을 만들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전가협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해 7월 양성평등주간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함께 ‘가사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입법 방향을 논의하는 쟁점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정부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사노동자와 돌봄노동 연구자, 그리고 법률 전문가로 구성한 TF팀을 구성하여 대안 입법안을 만들었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안’(대안 입법안)은 총 7장 33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근로자의 근로조건과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권익향상을 도모하고 일자리 창출 및 일자리 질 제고를 통하여 국민의 일과 가정양립, 삶의 질 개선에 이바지 하는 것(제1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7대 과제는 △근로기준법 11조 1항 ‘가사사용인 적용제외’ 조항 삭제, △주평균 15시간 이상 노동시간 보장, △가사서비스 이용자규정 및 가사노동자 근로조건 보호규정 마련, △한부모가정, 저소득 맞벌이 가정 등 지급 능력이 없는 가정의 가사서비스 지원, △제공기관에 대한 명확한 인증 및 관리감독규정 마련,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 지원책 마련, △산후관리 및 가정보육 등 돌봄서비스 영역 전체로 법 적용 범위 확대 등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2월4일 이인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근로기준법의 가사사용인 배제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과 함께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동시 발의했다. 그러나 19대 국회 종료로 인해 끝내 법 제정은 하지 못했다.
60여 년 넘게 그림자 노동(자)으로 간주되어 온 가사노동자들은 십여 년을 일터에서, 광장에서, 국회에서 노동자라고 외쳐 왔다. 가사노동자는 아무리 부당해도, 또 몸이 아파 기대고 싶어도 기댈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법적 지위 보장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법 제정뿐이다. 20대 국회는 2017년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