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의 노동 문제를 처음 부각시킨 『88만원 세대』가 출판된 지 딱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당시의 ‘88만원 세대’는 20대에서 30대가 되었고,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명칭은 ‘88만원 세대’에서 ‘3포 세대’, ‘N포 세대’, ‘민달팽이 세대’ 등으로 가짓수가 늘어갔다. 청년들의 현실도 나아지지 않았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고, 청년 실업률도 2년 연속 최악의 수준이다. 지표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최근 1년 동안 구의역 사고, LG유플러스 콜센터 사망사건,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이 있었다. 오만한 정부와 여당을 철저하게 심판한 지난 총선과 겨우내 광장을 따뜻하게 밝혔던 촛불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된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2004년에 제정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이라는 법률이 있다. 청년실업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이 법은 당초 그 시효가 2008년까지였지만, 세 차례 연장되어 2018년까지로 연장되었다.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청년이 겪는 사회 문제가 제도 정치에서 다루어진 지는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리고 마치 이 법률의 시효가 연장되듯이 문제 상황도 해결되지 않았다. 2017년 청년 일자리 예산은 2.6조 원에 이른다. 정책의 주된 내용은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 취업성공패키지와 일학습병행제, 고용창출장려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4년에는 1.4조 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급격히 예산을 늘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황은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되어도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 없이는 청년의 삶과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청년 고용 정책이나 노동 정책에 대한 시효 연장 혹은 기존에 취해 온 방식을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는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청년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년실업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정의할 필요가 있다.
청년실업 100만, 무엇이 문제인가
장기 저성장 체제로의 이행과 서비스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심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고용을 유발하지 않는 기술의 발전, 인구구조의 변화 등의 총체적인 결과가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이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가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거나 저임금의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숙련에 의한 직업능력 향상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에 소위 자기계발도 불가능하다. 청년들의 근로빈곤(Working Poor) 상태가 일반화되면서, 이를 거부하고자 하는 혹은 당장은 모면할 수 있는 청년들은 취업준비 혹은 장기 미취업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청년 니트(NEET)의 규모는 그 정의에 따라 이제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자취나 하숙 등의 단순히 대학생 및 사회초년생 시절에만 잠시 겪었을 1인 가구로 지내는 기간도 길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청년실업 문제를 단순히 학력 과잉으로 인한 미스매칭으로 인식하여 취업률을 지표로 한 대학 구조개혁이나 산학협력의 강화, 당장의 취업을 촉진시키는 방향이 기존에 지속되어 온 정책 방향이다. 그러한 결과,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저임금의 인턴‧단기 계약직이 넘쳐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청년의 노동인권 침해가 일상화 되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청년이 처한 노동시장에 대한 인식 없이 청년실업 문제를 일면적으로 파악한 것이며, 실업 상태를 단순히 해소되어야 할 무언가로만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2017 촛불대선청년유권자행동’은 4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각 정당 대선후보들에게 청년고용할당제 확대와 청년수당 전국화 등 청년정책 도입을 요구했다. ⓒ청년유니온)
새 정부 청년 정책, 근본적인 전환 필요해
새로운 정부의 청년 정책은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실마리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①단순히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을 넘어서 청년들이 이행기에 겪는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다. ②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의 규제보다는 주체의 권리 각성의 측면을 중심에 둔 정책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③청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의 질적 관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청년 정책의 방향전환에 의하면, 청년 니트는 독자적인 사회정책의 대상으로의 인식이 필요하고 근로빈곤 청년은 노동 현장의 주체로서의 권리 각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방향 전환이 효과적으로 관철되기 위한 협치 구조가 필요하다.
기존의 고용정책은 청년 니트의 ‘묻지 마 취업’을 조장해왔다. 현재의 청년 고용정책 중에 예산 규모가 가장 큰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를 살펴보면, 1년 후에도 고용이 유지되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고, 1년 반 후에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취업성공패키지의 경우에도 취업까지 성공한 경우, 1년 반 후에 고용 상태가 유지되는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또한 고용된 일자리의 경우에도 월급 150만 원 미만의 저임금 일자리가 태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다른 분야의 고용과 관련된 모든 정책 분야에서 나타난다. 교육부가 주관하고 있는 고교 현장실습에서는 사업장의 성격이나 전공과 진로의 매칭에 대한 고려 없이 실습생을 투입하고 있으며, 해당 취업률을 특성화고 평가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2015년 ‘청년수당’ 논쟁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드러난다. 구직 청년에게 6개월 동안 월 5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청년수당은 청년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구직 청년을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취업과 직접 관련되는 지원만 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100만 명에 이르는 청년 니트를 사회 정책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노동 시장 진입을 늦추고 있는 ‘비정상 상태’로 사고하는 것이다.
많은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일터에서의 인권침해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청년 체불임금이 1400억 원에 이르고, 포괄임금제로 대표되는 고용관행은 야근을 일상화하고 무제한적 무급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법으로는 임금 체불에 대한 지연이자는 연 20%에 이르고, 근로시간이 산정 가능하거나 노동자에게 불리한 포괄임금제는 무효이지만, 청년들에게 ‘법은 멀고 사장님은 가까이에’ 있다. 청년들은 일터에서의 권리가 단순한 글귀일 뿐,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언어일 뿐이며, 설령 그런 권리를 행사한다 하더라도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해야 함을 알고 있다. 일터에서의 권리 침해가 간혹 사회적 이슈가 되면 특별근로감독에 나서거나 법안 개정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한다. 하지만 노동법 위반을 무단횡단 하듯이 하는 노동인권에 대한 낮은 인식 위에서 국가기구의 행정력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법률이 제․개정되어도 일터 현장에서는, 특히 영세사업장에서는 쉽게 사문화되곤 한다. 위로부터의 강제는 노동에 대한 열악한 사회문화적 토대 위에서는 한계가 있다. 새 정부의 청년 노동정책은 개별 노동현장에서 청년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 인식 각성과 그러한 권리 행사의 보호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수면 아래에 있는 일터의 갈등을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기조 전환 하에서 당사자들이 실제로 정책의 효능을 느끼게 하려면 정책에 대한 질적 관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 기획과 설계 과정에서부터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흔히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연구용역 방식이나 해외 사례 검토에 치중하는 반면, 당사자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특히 제대로 된 직능단체나 당사자 집단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 청년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정책 시행과정에서의 질적 관리는 머나먼 일이다. 최근 예산을 급격히 늘려온 취업성공패키지가 정책의 설계 자체는 나쁘지 않음에도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세부적인 운영과 작동 방식에서 문제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 정책의 설계, 집행, 관리 과정에서 현재 단순 자문기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나, 미조직 청년 당사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 노사정위원회의 경우, 대대적인 개혁과 함께 여러 거버넌스 구조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청년 분야 우선순위 과제
이러한 방향 전환 위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시급한 과제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청년구직촉진수당의 도입과 실업급여로 대표되는 고용안전망의 확대, 고용관행의 개선이다.
취업성공패키지로 대표되는 중앙정부의 청년 니트 정책의 목표와 추진방식을 전면 개혁하고, 청년수당으로 대표되는 여러 지방정부의 정책 성과를 수용‧통합‧조정하여 통합적인 청년 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대학, 지방정부, 중앙정부 차원에서 난립하는 취업지원기관의 연계 운영과 정책 전달체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대다수 청년들은 고용보험과 실업급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수급자격을 얻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는 권고사직이나 계약기간 만료 후 갱신 거부 등에 한해서만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인정되고, 다변화된 고용형태에 맞춰 고용보험 가입대상이 확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발적 이직에 대한 제재 정도는 국제적으로도 엄격한 수준인데, 현실에서 이직의 자발성이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비현실적이다. 많은 청년들이 근로계약과의 불일치, 과도한 장시간 노동, 일터에서의 인권침해, 성차별 등을 다양한 수준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러한 일터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는 이유로 평소에 보험료를 납부해 온 고용보험의 혜택에서 청년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보험이 실제로 실업의 위험에 대한 청년의 안전망이 되도록 전면 개혁해야 한다. 자발적 이직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유예를 설정하여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30세 미만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기간 차별은 폐지하며, 프리랜서와 초단시간 노동자 등을 포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일터의 고용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고용계약은 임금을 대가로 삼는 노동력의 교환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고용계약을 사업주나 직장 상사에 대한 인격적 종속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불합리한 업무지시에 대한 무조건적 순응을 강요한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신입이니까’, ‘막내니까’, ‘젊으니까’라는 이유로 이러한 관행이 당연한 것으로 강요된다. 근로계약에서부터 초과근로수당을 고정급에 포함시키는 포괄임금제가 당연시 되어 무제한적 야근이 손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퇴근 후의 업무 지시에 반응하지 않을 권리와 최소한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실제로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고 문화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할 민간의 주체가 육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청년의 노조할 권리이다. 이는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에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방안에 대한 단초는 고민해볼 수 있다. 청년들이 쉽사리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없는 것은 대체로 사업장이 영세하고, 고용형태는 불안하며, 권리를 요구할 상대방인 고용주와의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이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적 문화는 청년을 근로계약의 동등한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과 제도적 공간 확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속한 구제 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의 노동3권 교육을 의무화하고,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작업장평의회(종업원평의회) 설치를 제도화 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청년을 사회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이제는 기존의 노동시장 이행 모형이 붕괴되어 있음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학업을 마친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기존의 ‘정규직-남성-4인 가족’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청년실업 문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직면하고 해결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무겁다. 그만큼 새 정부는 개혁 과정에서 더 많은 사회적 주체들을 호명하고, 논의하고, 합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청년 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과 함께, 새 정부가 청년 당사자들을 사회적 주체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청년의 삶을 바꿔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