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있었던 일을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을 내딛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 나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는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의 소리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찼던 것인지, 나중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근로기준법 화형식은 이루어졌다.>
사실 그날 전태일 분신 항거의 내용은 근로기준법을 불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일요일도 없이 하루 15시간이나 기계처럼 혹사당했던 어린 여공들에게, 근로의 정당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을 지키라는 뜨거운 외침이었습니다. 스스로 불꽃이 되어 허위와 모순, 불의로 가득한 사회를 불태워버리려 했던 피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래야 불탄 자리에서 새 움이 솟듯 새 세상이 열릴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7년 전과 다름없이 소외당하고 차별 받는 노동
47년이 지난 지금도 소외당하고 차별 받는 노동 현장은 그때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리해고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어 또 다시 하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우선 합의해서 만들어놓은 근로기준법이라도 지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에 맞는 정당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타올랐던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이 지켜지리라 기대합니다. 노동과 관련해서도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안이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요약하면 비정규직을 어떻게든 완화하여 차별을 줄이고, 노동기본권을 확대하여 노동운동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입니다. ‘기준’과 ‘기본’을 시대에 맞게 새롭고 분명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양극화 극복할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다 중요한 것은 접근 방법입니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선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일을 풀어가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최저임금 인상’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관철입니다. 노동의 질로 노동의 가치를 분명히 하며, 임금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의 양극화 현상입니다. 빈부 격차는 점점 심해져 그것으로 인한 부작용은 온갖 사회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확대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심화도, 동일노동임에도 차등 지급되는 임금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기업 노조의 귀족화나 산별노조 활동의 침체도 여기에서 생긴 부작용이며, 정규직 노조가 같은 기업 안의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토양에서 돋아난 독버섯입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그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인상되고, 사내유보금은 줄어들 것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임금 차이를 심하게 함으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을 분리 지배하여 자본의 잉여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의 논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정부의 실천 의지와 그에 따르는 법제화입니다. 그에 따라서 노동운동도 산별로 재편하고 산별교섭을 제도화함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력하게 관철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이를 통해 노동의 질을 높여 실질적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며, 노동시간 단축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할 때 더욱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가져올 효과
다음은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입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를 줄임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우리나라 경제를 내수 증대의 선순환을 이루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 재정을 통한 적절한 정부의 개입으로, 영세‧중소기업을 튼튼하게 하여 경쟁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기를 대비하여,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도 미리 연구하며, 국가복지 차원의 복지사회 건설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나가는 밑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노동계가 요구하는 시급 1만 원은 최저생활임금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빠른 시기에 이루어내어, 다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통해 우리 경제도 활기차게 하는, 결정적 시기를 앞당겼으면 좋겠습니다.
근로기준법‧노동기본권 바로 세우기
중요한 것은 ‘기준’과 ‘기본’입니다. 우리 노동과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과 ‘노동기본권’입니다. 예정된 헌법 개정을 준비하며,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헌법정신으로서의 근로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노동이 당당한 노동 존중이 우리 경제의 핵심이며, 돈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 사회를 만들어가는 요체임을 알고, 노동기본권이 인권의 가장 중심임을 확실하게 하는, 새 나라가 건설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