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지난 20여 년간 ‘서비스경제화’ 및 ‘서비스사회화’의 흐름 속에서 대기업 중심의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 아울렛과 같은 유통업은 시장 독과점 형태로 성장했다. 이에 발맞춰 유통업 해당 영역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상황과 형태(고용형태, 성별, 근무형태, 근로시간, 임금지급 형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 내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인 탓에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노동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은 물론이고 일과 삶의 균형, 감정노동, 작업장 안전, 건강과 같은 문제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한 대부분의 유통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다 보니 노동인권 역시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유통업 고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로계약 체결과 같은 기본적인 법률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한 노동자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Ⅱ.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실태
국내 유통업체의 고용구조는 직영사원(원청업체 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비직영사원(간접고용 비정규직, 입점협력업체 직원, 개인사업자 형태 전문판매 직원 등, 비율 약 75∼85%)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 등 주요 유통업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비정규직과 입점협력업체(수수료, 임대매장) 종사자로 이들의 수는 정규직보다 훨씬 많다.
또한 백화점, 면세점과 할인점의 서비스 판매직 종사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물론, 건강권 문제도 겪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비스 판매직의 노동 및 건강은 유통업체의 영업 및 운영방식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들의 노동조건은 유통업체의 영업일과 시간에 의해 좌우된다. IMF 구제금융 이후 유통업체들은 ‘1년 365일 운영’으로 영업구조를 전환했고, 일부 조직된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WLB)을 찾기 어렵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 유통업 종사자의 직장생활 만족도(12개 항목) 중 가장 만족도가 낮은 항목은 △임금수준(35.5점), △노동시간(36.9점), △노동강도(39.7점)였다. 유통업 노동자들은 지난 1년 사이 본인의 업무량이 증가(55.1%)했고, 따라서 해야 할 일의 종류가 증가(59.1%)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함께 일하는 노동자 수는 감소(38.6%)했다고 응답하여 노동강도가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유통업 종사자의 직간접적인 이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 1년 이내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33.3%) 중 다수는 이직 요인으로 직업 불만(40%)을 꼽았다.
유통업 판매 종사자 인적 특성
2014년 정부 통계자료 분석 결과,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는 남성(29만9천명, 32.9%)보다 여성(60만9천명, 67.1%)이 2배 이상 많고, 평균 연령은 36.3세이며, 학력은 고졸(66.2%)이 가장 많았다.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의 임금은 월평균 137만 원(100〜150만 원 미만 29%, 150〜200만 원 미만 27%, 50〜100만 원 미만 17%)이었으나, 2015년 인권위 조사 결과로는, 월평균 임금은 231만 원(시급 6,150원, 정규직 237만 원, 무기계약직 143만 원, 비정규직 147만 원)이었다. 또한 유통업 내 비정규직 중 직접고용 비정규직(기간제 155만 원/시급 5,550원, 시간제 105만 원/시급 7,742원)의 임금은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168만 원, 용역 170만 원)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시급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212만 원)와 남성 노동자(287만 원)의 단순 임금격차는 약 75만 원 정도다. 그런데 직접고용 기간제 및 시간제 노동자의 성별 임금격차(각 14.6, 27.3)보다 간접고용 파견 및 용역 노동자의 성별 임금격차(각 116.8, 117.1)가 훨씬 크다.
유통업 판매 노동자의 근속기간과 노동시간
2014년 정부 통계자료 분석 결과,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의 근속기간은 평균 2.7년(1년 미만 45%, 6개월 미만 31.3%, 6개월 이상 1년 미만 14.7%)이었고,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43.1시간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내내 영업하는 유통업의 특성에 비해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 이유는 입점협력업체(주6일, 1일 10시간 이상 근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2015년 인권위 설문조사에서는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46시간(1일 평균 9.2시간, 10시간 이상 14.9%)이었고, 평균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율도 17.7%(3,470명 중 588명)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2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일과 삶의 균형(WLB) 부조화 정도는 전체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13.5%)는 52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27.7%)에 비해 일과 삶의 균형에서 부조화를 더 경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나라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의 경영방식은 모두 ‘시장 친화적’ 방식으로, 일과 삶의 균형과 노동자 건강은 주요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백화점의 정기 휴점일은 IMF 이전 주 1회에서 현재 월 1회로 축소되었고, 백화점의 영세소규모 입점협력업체 종사자는 주6일 일하고 있다. 반면 유럽 주요 국가와 도시의 유통업체들은 유통산업 규제완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주말 영업이나 연장영업과 관련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 이들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유통업체들은 1년 내내 영업하는 탓에, 서비스 판매직 종사자들은 시간부족(73.3%,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 부족 25%), 여가활용 방해(근무환경 및 근무형태 불만 35.2%)는 물론, 가족 관계(가족과 보내는 시간 단절 경험 25.9%)와 사회적 관계(인간적, 사회적 관계와 모임의 단절 경험 44.2%)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항상 시간에 쫓겨 사는 것 같아요. 퇴근 후 집에 가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해요. 이 일(유통 판매직)을 하면서 일을 마치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취미생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어요. 개인 시간요? 가지고는 싶죠.(2015년 유통 판매직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
Ⅲ.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건강실태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의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정부 및 지자체에서도 감정노동 관련 정책이나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 유통업 종사자들이 지난 1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불쾌한 언행을 경험한 비율은 61%나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2명(17.2%)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사업장 내 관련 프로그램이나 교육 등은 거의 없다(96.6%). 특히 유통업 종사자들이 겪는 주된 문제가 고객으로부터의 폭언(39%)이나 직장 내 따돌림(17.2%)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객으로부터의 무리한 요구나 괴롭힘(공격적, 까다로운 고객 상대 86.7%)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산물인 감정노동 문제
유통업의 감정노동 문제는 단순히 고객으로부터의 불쾌한 언행만이 아니라, 기업과 조직의 적절한 대응 부재와 과도한 고객 서비스, 인사관리 정책이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특히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들은 매뉴얼과 규칙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조정하고 통제(직무요구 스트레스 고위험군 18%) 해야 하는 탓에 ‘감정적 부조화’로 인한 건강장애를 겪을 개연성이 높다.
유통업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노동자들은 △의식적 노력(96.1%), △기업에서 규정한 감정 표현(89.3%)을 하거나 △감정조절 필요(92.4%), △감정적 힘듦(83.8%)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정노동 수행에 있어 성별 격차가 심각한 상황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게는 30%p에서 많게는 40%p 정도 많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심각한 언어폭력을 하는 고객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그저 당하고 인내할 수밖에 없어요. 욕설을 듣고 인격 모독을 당하는 상황에서 정말 이대로 무시당하며 일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낍니다.
요즘 고객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회사 매뉴얼은 더 이상 고객을 상대하기엔 너무 뒤처진 듯한 느낌이에요. 무조건적 사과는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한 회사는 고객의 불만을 결국 직원 태도의 문제로 몰아가요.(이상 2015년 유통 판매직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
유통업 주요 3개 업태인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 모두 협력업체의 서비스 판매직원들에게 매출 압박(53.1∼65.7%)과 친절교육 참여 요구(37.9∼87.5%, 연간 횟수 백화점 4.3회, 면세점 1.2회, 할인점 1.4회)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쇼퍼’ 제도 시행(71.4∼77.5%, 연간 백화점 5.6회, 면세점 5.3회, 할인점 8.1회)이나 전화 및 대면 모니터링(35.7∼100%, 연간 횟수 백화점 5.9회, 면세점 5.3회, 할인점 7.3회)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사업장(롯데백화점, 이마트, 롯데면세점 등)은 감정노동과 직무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 꼽히는 서비스 통제방식인 ‘서비스 라인’이나 ‘스마일 존’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컴플레인’을 받은 직원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곳도 40∼57.1% 가량 된다.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의 건강권 실태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의 건강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업장의 영업시간은 물론, 작업 시설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015년 인권위 설문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업무상 다치거나 질병을 경험한 비율은 9% 정도였고, 근골격계 질환을 경험한 비율은 44.7%나 되었다. 유통업의 직업성 질병인 족저근막염(7.3%, 치료 경험 6.7%), 방광염(17.3%, 치료 경험 19.5%), 우울증(7%, 치료 경험 2.6%)을 겪는 비율도 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도의 우울증 증상을 겪는 비율은 26.4%(여성 28.6%, 남성 16.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 중 지난 1년 사이 몸이 아픈데도 출근한 비율(출결 53.1%, 기간 5.8일)과 몸이 아파 출근하지 못한 비율(병결 17.9%, 기간 6.8일)이 높았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용역 노동자(77.8%), 정규직과 동일업무를 수행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 여지가 있는 무기계약직(59%)의 경우 지난 1년 사이 몸이 아픈데도 출근한 비율이 높았다.
건강권 증진 위한 휴게공간 실태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의 노동 및 건강권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제도, 정책, 조직적 차원에서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업종 혹은 개별 기업차원에서 보면 유통업 내 휴게시설의 확보, 이용 그리고 편리한 공간의 제공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유통업체의 휴게공간이나 시설은 프랑스 등 유럽에 비해 열악하다. 백화점, 면세점, 할인점 내 휴게공간(114곳)을 조사한 결과, 입점협력업체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실이 대부분 존재하기는 하나,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015년 기준 주요 유통업체의 휴게실 수용 가능 인원은 백화점 21명, 면세점 47.2명, 할인점 23.8명 수준이며, 심지어 전체 직원 대비 휴게실 수용 가능 인원이 100분의 1 수준(롯데 및 신세계 백화점 본점, 인천공항 면세점)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Ⅳ. 맺음말 - 정책방향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의 장시간 노동체제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감정노동과 관련하여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중층적인 고용구조(입점협력업체, 간접고용)로 인해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유통업 노동자들의 노동 및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고용노동부의 지도 및 점검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곤 했다. 그나마 시민사회와 노동단체에서 유통 대기업의 노동 및 건강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결과,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조건이 일부 개선되기도 했다. 따라서 노동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법률 및 조례 제정, 캠페인, 정기적 실태조사 등 정부 차원의 노동시장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은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제도 개선 과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유통업 종사자들은 감정노동 법제화(83.5점)와 작업중지권(87.2점)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림3] 참고). 따라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유통업 감정노동자 건강 문제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간중심적 모델(humanistic model)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인간중심적 모델은 과도한 감정노동 규칙(노동과정, 책임성)들을 제거하고, 인간중심적 정책(가치인정, 보호체계 마련, 인격적 대우)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노동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감정노동 업무를 업종, 사업장, 직무 재설계를 통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직무’로 인식하도록 하고, 정부는 관련 법률 제정 및 정책(개선계획 수립, 이행 및 점검·모니터링)을 종합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끝으로 유통업 서비스 사업장의 안전과 산재, 시설문제 등 건강권과 관련해 지역 노동청 및 산업안전공단과 공동으로 실사를 벌이고 지도·감독할 필요가 있다. 유통업 내부 과제로는 △정부 및 지자체 그리고 주요 유통업 노사정 이해당사자 간 협약과 선언, △판매직 건강장애 예방과 실효적인 정책(지자체 산하 보건소의 입점협력업체 비정규직 대상 ‘찾아가는 건강·상담서비스’ 실시 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 보고서인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종사자의 건강권 실태조사』(2015)를 요약 및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