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과 노동자당 (PT)

노동사회

브라질 대선과 노동자당 (PT)

admin 0 3,567 2013.05.0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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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2. 10. 25(금)
·곳: 사무금융연맹 교육장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발표: 오삼교 위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토론: 정영태 인하대 정외과 교수

발제문은 10월25일 포럼 내용을 바탕으로 오삼교 교수가 다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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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이원보 소장, 오삼교 교수, 정영태 교수 ]

<발표>

1. PT 집권의 의의


브라질 노동자당 (PT)의 룰라는 지난 10월27일 자신의 생일날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유효투표의 61.27%를 얻어 38.73%를 얻은 현 집권당 후보인 조제 세하를 누르고 4번째의 도전에서 드디어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총 유효 투표 8,600만 표 중 1,900만표 이상의 차이가 나는 압도적 승리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선반공 출신 노조지도자였던 룰라가 미국 코넬대학 경제학 박사로 카르도소 정부에서 사회복지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세하를 물리치고 당선된 것이다. 사회적 배경만을 보면 브라질 최초로 빈곤지대인 북동부 출신의 하층민이 엘리트 기득권층의 두꺼운 벽을 뚫고 최고 권력의 자리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룰라의 승리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평가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브라질은 세계 9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지난 8년 간 비교적 모범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으며, 국제자본도 이에 호응하여 매년 200∼30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룰라의 당선은 브라질과 같이 신자유주의에 호응한 신흥거대시장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정면 도전하는 정권이 탄생하였다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룰라는 지금까지 인플레 안정화와 민영화를 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브라질 산업의 쇠퇴와 성장의 정체를 초래한 까르도소 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전면으로 바꿀 것을 약속하고 있다. 룰라의 발전 모델은 수출 산업 및 수입대체 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고용을 확대하는 경제성장 우선 전략으로 요약되며, 성장으로 인한 세수 증대를 기초로 교육과 건강 등 분배와 복지정책에 투자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룰라 당선의 또 다른 의미는 브라질 최초의 좌파 정권이 탄생하였다는 데 있다. PT의 집권은 물론 구시대 좌파의 폭력혁명이나 국가계획경제, 혹은 국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PT는 민주주의와 다양성, 참여를 중시하는 새로운 좌파 정당이라는 점에서 탈냉전 시대 좌파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물론 신자유주의 하의 국제경제체제 속에서 좌파정부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의구심과 동시에 제기되고 있으나 바로 이 때문에 룰라와 PT의 실용주의적 선택과 전략이 브라질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룰라 집권의 또 다른 의의는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는 PT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는 점인데 룰라의 성공은 남미 전역에 전파될 것이며, 이는 다시 세계로 확산되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가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고용을 감소시켜 국내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보다 부담이 되어왔음은 전부터 지적되어 온 바 있다. 룰라의 실험이 성공하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부각되면서 개도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새로운 발전모델이 유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2. PT의 성장과 발전

PT 창당의 계기는 1978년부터 브라질에 불어닥친 노동자 대동원이었다. 1978년 5월 사웅파울로 근교 브라질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ABC지역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이 시작되었으며 이 파업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사웅베르나르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파업을 지도한 룰라와 그의 동료들, 민주화를 위해 싸운 정치인, 학생, 지식인, 60년대의 좌익활동가, 그리고 카톨릭을 비롯한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은 국가와 정치권에 의지하지 않는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하였으며, 이는 1980년 2월 PT 창당으로 나타났다.

당시 군사정부는 야당의 분열을 목적으로 다당제를 골자로 한 새로운 정당법을 통과시키면서 정당 결성 자체를 어렵게 하는 여러 조건을 창당의 법적 요건으로 내세웠으나, PT는 결국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1981년 9월 브라질리아에서 전국대회를 열어 정당 등록에 성공한다. 

일단 창당에 성공한 PT는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기의 약세를 딛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1982년의 첫 선거에서는 워낙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로 룰라를 비롯한 지도부가 다시 노동운동에 복귀할 정도였다. 그러나 룰라가 1986년 사웅파울로 주에서 전국최다득표 하원으로 당선되고, 1988년 빈민운동가 출신의 여걸인 에룬디나가 브라질 최대 도시인 사웅파울로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PT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다. 1989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6%의 작은 차이로 패배하기는 하였으나, 룰라가 좌파와 진보파의 대표로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에 진출함으로써 룰라와 PT는 브라질 정치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원의원 진출은 1982년 이후 초기에는 매 4년마다 거의 두 배씩 증가하였다. 1994년과 1998년 선거에서 정체되는 느낌이 있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91명이나 당선시켜 하원에서 제1당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원 513명의 하원에서, 더구나 다당제 하에서 PT 독자적으로 브라질 정치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변정당으로 인식되던 PT가 제1당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변화임에 틀림없다.

1990년 총선부터는 임기 8년의 상원의원을 배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올해 총선에서는 모두 10명을 당선시켜 4년 후 선거에 임하는 아직 임기가 4년 남은 4명의 상원의원을 합하면 상원에서도 3당으로 등장하였다. 주지사는 1994년부터 배출하여 올해에도 3명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올해에는 각주에서 룰라의 지지를 최대화하기 위해 여러 주에서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져(즉, 각주의 실력자들이 대선에서는 룰라를 지지하는 대가로 주지사 선거에서는 PT가 양보할 것을 요구) 오히려 PT 출신 주지사 후보가 불리한 가운데서도 3명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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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T의 정체성과 이념의 변화

PT의 핵심세력은 노동자, 특히 ABC 지역의 금속노조와 금융노조였으며 80년대 초기에는 PT가 노동자 중심정당이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1980년 1월 선출된 전국임시위원회 11명중 10명이 노조 지도자였으며, 1981년 8월 사웅파울로 예비전당대회에서는 전국상임위원의 40%를 노조지도자로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노동자 중심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 중심성은 90년대 들어오면서 조금씩 약화되고 전문가와 지식인들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80년대 말에는 중간계급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1988년 PT의 전국집행위원회 20명(후보 6명 포함)중 4명만이 노조 출신이다. 이 때문에 PT 지도부에 지식인과 자유전문직이 더 많다는 이유로 PT를 "임노동 중간계급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PT는 창당 당시부터 다양한 세력이 참여하였으며, 이 때문에 PT 내에는 다양한 정파가 공존하고 있다. 1982년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에는 트로츠키파 등 좌파 조직의 압력이 커졌으나 룰라와 노조 지도자들을 핵으로 하는 온건파들은 1983년 아르치꿀라사웅 ('연계' 혹은 '통합')을 조직하여 1987년 5차 전국대회(Encontro Nacional)까지 룰라는 대의원 2/3의 지지를 획득하여 PT를 지도한다. 그러나 조제 제노이노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의 일부가 당원의 10∼15%의 지지를 업고 Democracia Radical(급진민주주의) 정파를 조직하여 PT 우파를 구성 룰라를 지지하면서 아르치꿀라사웅은 중도파적 입장에 서게 된다. 1993년 아르치꿀라사웅의 분열과 함께 좌파가 처음으로 당을 장악하게 되나, 아르치꿀라사웅은 1995년 미세한 차이로 PT를 다시 장악한다. 1999년에는 새로운 중도파가 등장하여 룰라의 아르치꿀라사웅 및 제노이노의 "급진민주주의" 정파와 연합하여 온건 실용주의 정파가 PT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 현재 소수파인 PT 좌파의 지지세는 30%선에 머물러 있다.

PT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이다. PT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상보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나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특히 참여는 민주사회주의의 경제적 측면의 열쇠라고 인식하는데 경제적 결정을 직접적인 참여 메커니즘에 귀속시킴으로서 시장에 사회적 지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PT가 지향하는 사회주의가 과거의 계획경제나 관료지배적 사회주의가 아님은 분명하나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실히 밝히고 있지는 않다. 다만 1차 전당대회(1991)에서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시장과 양립가능하며, 사회관계에서 자본의 중심성과 지배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정치적 측면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와 함께 시민 직접 참여의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 이론적 성격의 불명확성을 PT 스스로는 약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PT는 1968∼1978년 간의 전위정당론을 극복하고 노동자 대중과 같이 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이론의 형성은 계급적 경험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982년 2차 전국대회에서의 "미래사회는 선언에서 나오지 않는다"라는 입장은 17년 후인 1999년 2차 전당대회에서 "민주혁명은 장기적 과정이며 민주혁명은 정교한 이론이나 전위부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주의의 현실적 적실성이 의문시되는 90년대에 들어서면 PT는 더 이상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지 않다. 대신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시장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혁명론"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혁명"은 사회 구조의 폭력적 전복과는 전혀 무관한 당내 좌파의 입장을 수용하기 위한 일종의 수사로서 이용되고 있다. 

4. PT의 성공 요인

이번 선거에서 PT의 집권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객관적 조건으로는 먼저 브라질 사회의 고질적인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심화를 방치하고 있는 보수 우파의 무능 내지는 의지의 결여를 들 수 있다. 나아가 까르도소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이 고용 감소와 소득 저하로 구체화되면서 국민들이 변화를 희구한 것도 룰라 승리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PT가 지난 20년 동안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민주주의 원리의 실천을 통해 PT 스스로가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새로운, 그리고 신뢰할만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한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지적할 것은 브라질 사회는 기본적으로 보수우파가 사회적 헤게모니를 가지는 엘리트 지배 사회이나 그 폐쇄성과 불평등성이 지난 수십 년 간 거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 하위 20%의 소득이 3.8%이고 상위 20%의 소득이 54%였으나 1997년에는 하위 20%의 소득이 2.6%, 상위 20%의 소득은 63%로 소득분배는 계속 악화일로에 있었다. 

경제성장률 역시 계속 악화되어 1970년대의 성장률 8.8%에서 1980년대 2.9%, 1990년대 1.8%로 성장이 거의 정지상태에 이르렀다. 이 결과 실업이 크게 증가되어 사웅파울로 등 거대 도시의 실질 실업률은 20%에 달하고 있다. 전국 실질 실업률은 15%로 추정되고 있다. 비정규직도 증가되어 1989년 51%, 1998년에는 57%로 증가하였다. 또한 소득도 감소되어 1990년대 거대 도시지역에서 평균 8%의 소득감소를 기록하고 있으며(CUT, The Economic and Social Reality of Brazilian Workers, Aug. 2000. p.16), 1998년 법정 최저임금 혹은 그만큼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수는 전체 임노동자의 25%에 해당하는 1,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구의 반절이 빈곤층에 속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룰라 신정부가 2003년 계획하고 있는 최우선 정책이 바로 "빈곤 제로" 정책인 것을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한편 헤알(Real)플랜으로 연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를 진정시켜 대통령에 당선된 까르도소는 무역자유화와 민영화, 외국자본 유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무역수지 적자와 대내외 부채 증가는 재정악화를 초래하였고, 이로 인한 공공지출 축소는 다시 하층민의 복지 축소로 연결되었으며, 외국자본의 도피를 막기 위한 고율의 은행 이자는 산업 자본의 경영난으로 연결되면서 하층민과 중소상공인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산업 경쟁력의 약화와 이로 인한 실업 증대는 까르도소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상파울로지역을 대상으로 한 DIEESE(노동조합 통계 및 경제사회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헤알플랜이 시작된 1994년 이후 실업률은 14.5%에서 1999년 19.3%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브라질이 처음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도한 1990년 1월에서 1997년 12월 사이에 약 256만 개가 감소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적 요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PT 스스로의 변화의 주도자로서의 능력과 이미지를 정립한 점이다. 먼저 지적할 것이 폐쇄적 엘리트 정치에 물든 브라질 정치에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당의 운영이나 지자체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이다. 공식 당대회는 지역별 예비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재가만 할 뿐이며 PT 당원은 지역별 직장별 누클레오를 통해 당의 정책과 진로에 대해 토론과 정책 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가진다. PT는 이 점에서 위로부터의 지도를 중시하는 레닌주의 정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지도부 선출에서도 정파별로 출마하여 지지율에 따라 지도부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여 소수세력에게도 발언권 보장함으로써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원칙의 실천은 PT가 집권한 지방정부에서는 참여예산제로 잘 나타나 있다. 참여예산제는 부족한 예산으로 어디에 먼저 투자할 것인가를 주민들에게 묻고 주민들의 의사를 예산배정에 반영시키는 제도인데 이제는 PT가 아닌 다른 당도 시도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참여예산제가 가장 모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뽀르뚜알레그레에서는 1989년에서 2000년 사이에 기본적 위생시설을 갖춘 가구가 53%에서 85%로 증가하였으며, 유아 사망률은 40%나 감소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PT 정부의 투명성과 정직성은 주민들도 인정하게 되었으며, 이는 브라질 정계의 뿌리깊은 부패상과 대비되어 국민의 신뢰성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PT 성공의 또 다른 요인은 지방정부 집권을 통한 통치력 입증에 있다. PT의 좌파적 운동 성향에 불안해하던 일부 세력들도 이미 수 십 개의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지방정부를 이끌어 온 PT의 집권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1988년에는 사웅파울로, 비토리아, 뽀르뚜알레그레 등 3개 주의 수도에서 승리하였으며, 1992년에는 54명의 시장을, 1996년에는 115명의 시장을, 2000년에는 187명의 시장을 배출함으로서 PT의 행정능력을 과시해 왔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PT가 노동자당이면서도 광범위한 중간계급 포섭에 성공하였다는 점이다. 70년대 후반부터의 노동자 대동원에 금융노조, 공무원 노조, 교수 및 교사 노조 등 소위 중간계급이 광범위하게 노동 동원에 참여하고 CUT와 PT 창설에 참여하면서 노동에 대한 브라질 사회의 편견(노동운동은 기본적으로 하층민의 활동이며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활동이라는)이 사라지게 하는데 중간계급의 참여가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빈곤층이 집중되어 있는 북부와 북동부의 농촌지역에서 PT의 지지가 낮고 산업이 발전된 남부와 남동부의 대도시지역에서 PT의 지지가 높은 것은 PT에 대한 중간계급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CIVES(시민을 위한 브라질 기업가 연합)라는 중소기업가 단체가 적극적으로 룰라 지지 정책을 펴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왜 룰라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역설하고 다닌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5. 한국의 노동자 정당 활동에 대한 함의

PT의 성공을 가능케 한 조건의 절반, 즉 구조적 환경은 역설적으로 브라질이 더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다. 우파의 정치적 분열과 엘리트의 사회통합 의지 및 능력 부족, 경제 성장의 정체와 불평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 민주화와 노동자 동원 및 사회운동의 상승작용을 가능케 한 역사적 조건은 브라질 노동자 정치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반면 한국의 노동자 정치 세력은 브라질보다 열악한 환경에 있다. 북한의 존재로 인한 정치적 담론적 공간의 협소함, 경제 성장을 주도한 세력으로서의 보수우파의 긍정적 이미지, 민주화와 사회운동의 낮은 결합력, 이로 인한 시민적 관심의 소비 지향성과 신분 상승성 등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경제적 성공이 진보운동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PT의 경험에서 배울 것도 많다. 우선 한국의 노동자 정당 혹은 진보 정당은 집권능력에 대한 안정감과 신뢰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정당이 운동정당을 넘어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정책이 있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능력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지식인과 전문가층의 동심원 확장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운동에 관계된 좌파 지식인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평등과 개혁의 정신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수많은 잠재적 지지세력을 접촉하고 동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PT가 Perseu Abramo 재단을 설립하여 정책과 이념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를 다양한 성향의 전문가를 조직하여 논의하고 토론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영세한 정당 기구나 정책부서, 정책요원으로는 국민적 중요성을 갖는 문제에 대해 충분한 전문성과 설득력을 가진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일부 외곽의 지지세력을 동원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연구재단을 설립하여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른 사회 세력과 상시 접촉하고 다양한 성향의 전문가와 지식인들에게 노동자 정당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이들을 노동자 정당의 잠재적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음은 PT의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배우는 일이다. PT 내부의 좌·우·중도파는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전체 역량을 강화시켜 왔다. 이는 소수 정파도 지도부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내부의 지도부 선출방식뿐만 아니라 의견과 이념의 차이가 비교적 자유스럽게 공존하는 일상의 생활문화도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T는 실사구시 정책 추구를 통해 이념 갈등의 긴장성을 완화시키고 경험을 통해 이념의 내용을 충실히 꾸려내고 현실 적응성을 높여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 정당 역시 탈냉전과 북한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시각의 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이념과 정책에 대한 폐쇄성에서 개방성으로, 진리의 전유적 소유에서 다양한 관점의 공존으로의 이동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방법, 전략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존과 다양성은 노동정치에 대한 사회 일반의 편견을 없애고 다양한 사회세력을 지지세력화 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PT가 그러했듯 변화의 주도세력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두 번의 정부는 모두 개혁을 내세웠으나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교육, 교통, 주택, 복지 등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는 크게 개선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거창한 이념보다 구체적 실천을 통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도적 세력으로서의 노동자 정당의 이미지는 아직 약하다. 정치권의 변화 요구가 크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새로운 정치적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노동자 정당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이다. 이는 정당의 내부적 운영이나 당원의 활동 양태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긴요하고 절박한 문제라 하겠다.

지방자치단체에의 진출을 강화하여 지자체를 통하여 경쟁력 있는 정책상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정치적 리더쉽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PT는 시장을 배출한 지 20년 만에 집권하였다. 한국에서도 주요 지자체에서 노동자정당의 후보가 시장이나 군수 도지사로 당선되는 것은 노동자 정당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한국적 정치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스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간계급에 대한 접근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PT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선거민주주의에서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집권을 해야 하고 집권을 위해서는 중도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는 물론 상시 지지세력이 적어도 30%는 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얘기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이, 나아가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중산층 내지 중간계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정당에게 주어진 길은 노동자의 계급적 정체성과 중간계급의 가치적 정체성을 연결시키는 방법뿐이다. 이미 중진국의 대열에 들어서 있고 OECD에 가입한 사회에서 노동자 정당의 역할은 단순히 계급적 경제적 차별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사회 각 분야에서 실천하고 제도화하는 가치와 전략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정치권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가치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투명하고 개방된 새로운 사회 시스템과 다양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생활 개혁에 목말라하는 광범위한 우리 사회의 중간계급을 새로운 지지대상으로 확보하는 것은 노동자 정당의 발전에 필수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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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정영태)

저는 오박사님과 다른 각도에서 룰라의 이번 선거 약진을 평가해 보고 싶습니다. 룰라의 1위는 우연히 된 게 아닙니다. 브라질의 정치, 경제, 사회 조건과 PT의 전략이 브라질 대선에서 1위를 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습니다. 

피지배계급의 운동은 자본가의 상태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데, 우선 지배 블럭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가계급이 특히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오박사님은 보수우익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 못했다고 파악하신 것 같은데, 우리의 경우는 재벌이 적어도 경제적 헤게모니는 장악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브라질 국내자본의 위상을 봐야 하는데 아마도 오합지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브라질이 수입대체산업화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는 성공했습니다. 그 배경은 바로 민중주의(populism)이죠. 그래서, 기계수입과 차관으로 발전시키고 고임금을 줬는데, 이것이 한계에 봉착한 것 같습니다. 결국 수출주도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해 자본가는 어려움을 겪고 어쩔 수 없이 국제자본과 결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PT당의 성장과 관계 있다고 봅니다.

룰라가 1위를 하니 브라질의 자본가조차도 룰라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것은 브라질 자본가 계급도 룰라가 당선된다면 얻을 게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국제 자본의 침투에 국내 자본 스스로 대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룰라를 등에 업고 국제 자본에 저항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거죠. 

브라질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브라질은 중대선거구제입니다. 소선거구제와는 전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중대선거구제는 소수정당에게 유리하고 그래서 신생정당 등장이 수월합니다. 동시에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당이 절대 다수당이 되지 못합니다. 다당제라는 요소가 브라질의 선거정치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PT당이 올 하원에서 제1당이 되었다고 했는데, 전체 의석수 513석 중 91석에 불과합니다. 결국 1/5이 안됩니다. 20%도 안 되는데 제1당입니다. 이러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연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협의 정치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런 제도적 요소로 인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치관행들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PT당 내부에 다양한 정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매끄럽게 20년 이상 버텼다는 것은 이런 요소들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둘째는 연방제와 지방자치제입니다. 연방제와 지자체는 주정부나 시정부에 나가서 정치실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자체와 연방제가 활성화되면 지방조직이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정부가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율권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브라질같이 영토가 넓은 곳은 한가지 정책만으로 운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역조직의 자율성과 기반이 강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의 예로 봤을 때도 그렇습니다. 정리하면, 통치능력을 검증할 수 있었고, 다양한 정책실험을 할 수 있었고, 지방조직을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점이 PT당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셋째는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제입니다. 결선투표제의 1차 투표에서는 대중들이 마음대로,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게 됩니다. 하지만 결선에서는 후보들이 연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선투표제는 소수정당에게 상당히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끝나면 그냥 될 사람을 찍게 되지만, 결선투표의 경우에 어차피 한 번 더하게 되므로 첫 번째 투표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자유롭게 찍게 됩니다. 이 결선투표제가 룰라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PT당의 주체 역량을 강화시켰던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PT당의 주요 기반은 조합원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조합원 수가 상당히 많은데,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PT당의 장학금 제도, 민중은행, 사회보험도 노조가 국가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았고, 이것이 PT당과 연결된다고 보면, 노동조합이나 PT당에 대해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고 봅니다. 

다음은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노조의 활성화 시기와 국가의 정치 민주화 시기의 시계열적 순서입니다. 브라질은 노조운동이 활성화된 후 정치의 민주화가 있었습니다. 노조가 어느 정도 기반을 닦고 난 뒤였기 때문에 정치 민주화 투쟁에 비교적 적극 참여할 수 있었고 '선거 사회주의'를 일찍이 표명했습니다. 결국 타이밍이죠. 시계열상의 순서 문제와 그러한 시점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선택을 하지 않으면 의미 없이 끝나는 데, 바로 선거사회주의로 들어갔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략적 선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더해, 룰라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있었다는 점이 오늘날의 PT와 룰라가 있을 수 있었던 요인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발제자 답변>
전략적 선택에 대한 정교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정치적 제도도 중요했다는 점도 동의합니다. 연방제와 관련해서, 지방조직이 강화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것이 오직 PT당에게만 유리했던가에서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브라질 북부와 북동부의 지방 토호들의 경우 몇 세대에 걸쳐 하원과 주지사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PT가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지세력으로서의 노동운동, 즉 CUT는 초기에 더 강했습니다. 대선 후보 6명 중 군소후보 한 명이 CUT 임원 출신입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약간 사이가 멀어진 게 아닌가 싶구요. 예를 들어 금융노조는 PT와 항상 같이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브라질 노조세의 많은 부분을 CUT가 받고 있어서 CUT 입장에서 보면 노조 복수주의나 노조세 폐지 주장이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 문제는 사실 80년대부터 자본 내부의 분열 문제는 있어 왔습니다. 자본 내부의 분열이 있다고 해서 노동에 대해서 헤게모니가 약화된 것은 아닙니다. 브라질 노조체계의 기반은 지역에 기반한 산별노조인데, 작업장 안에서는 거의 힘이 없습니다. 파업을 하던 피켓팅을 하던 공장 밖에서 합니다. 공장을 들어가지 못합니다. 공장 안에서는 오히려 힘이 더 없습니다. 한참 파업수가 3천 4천 건 일어났을 때도 자본가들이 의외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파업이 일어나도 실제 자기 공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자본가는 경제적 헤게모니를 확실히 쥐고 있고, 다만 정치적인 면과 조직적인 면에서 자기네들이 원하는 것을 실천할 때 자기네들끼리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당제로 인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후견자 정치주의의 고비용 정치결정구조라는 체제의 약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좌파가 이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가자 질문·토론>

참가자: 오박사님과 같이 브라질을 갖다 왔기 때문에 보충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정치, 제도적인 면에 대해 말씀드리면 상원의원은 주단위로 3명을 뽑습니다. 임기가 8년이기 때문에 4년마다 한 번은 1/3을 뽑고, 한 번은 2/3를 뽑습니다. 이번엔 2/3를 뽑는 시기였습니다. 상원의원은 중대선거구제가 맞습니다만, 하원의원은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입니다. 비례대표 명부를 제출하면 유권자가 정당과 자기가 선호하는 의원을 선택합니다. 전자투표라 정당고유번호와 후보 번호를 동시에 선택합니다. 따라서, 비례대표의 순위를 정당이 결정하지 않고 유권자가 결정합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하원에서 무소속이 없습니다. 

결선투표제를 살펴보면 1989년 대통령 선거 때는 1차에서 16%를 얻었고 2차에서는 47%를 얻어 룰라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결선투표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브라질사회당(PSB) 후보는 사퇴압력을 많이 받았는데, PT는 이번 선거에서 룰라가 1차에서 과반수를 넘어 이기지 못한다면 2차에서 더욱 힘들어질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자금은 많이 쓰는 편입니다. 룰라가 270만불, 세하가 600백만불을 쓴다고 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니 그것보다 더 많이 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정선거운동기간도 없고 선거자금상한선도 없습니다. 텔레비전 광고를 공영제로 처리하는 등 선거공영제의 폭이 무척 넓었습니다. 또 언론과 관련해서, 부당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항의를 하면 법원이 바로 판결을 내려 시정토록 합니다. 

참가자: 경제모델이 박정희 모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정희 모델이 한국의 경제위기를 불러 왔고, 브라질이 이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박정희 경제 모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발제자: PT의 경제 모델이 엄밀히 말해 박정희 모델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성장과 수출, 수출과 똑같은 효과를 가지는 수입대체산업의 발전으로 고용 신장을 통해 노동자의 복지를 구성하겠다는 차원에서 박정희 모델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참가자: PT당의 기초 조직인 누클레오가 4가지 영역에서 구성된다고 했는데, 각각의 비중은 어떠합니다? 또 빈민은 어디에 포함됩니까?

발제자: 각각의 비중은 잘 모릅니다. PT 당원에게 누클레오가 잘되고 있는 지를 물어봤는데, 신통한 대답은 없었습니다. 자료도 부족하고 PT 당원들도 잘 얘기하지 않아 좀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빈민은 지역별 누클레오에 소속됩니다. 브라질의 지역운동은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브라질의 지역운동은 학교, 하수구, 화장실, 병원 등 가장 기본적 시설을 요구하는 운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리오데자네이로 같은 지역은 빈민가의 기초 시설을 제공하는 주체가 마피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마피아는 일종의 정당성을 갖게 되고, 이런 점들이 브라질의 후견주의적 정치를 유지하는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참가자: 브라질의 PT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브라질과 한국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틀린 점이 많습니다만, PT가 민주화 투쟁 시기에 창립되어 민주화의 주도세력이 되었다는 게 어떤 제도적 차이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과정에서 학생이 일정 역할을 했고, 그들이 이른바 '386세대'로 자라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교회공동체가 노동자 밀집 지역이 아닌 농촌 지역에서 대단히 큰 역할을 한 것이 본질적 차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PT가 활동가 중심의 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참가자: 브라질 PT의 성공이 물론 민주노동당에게 주는 교훈은 많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아닌 소위 좌파와 노동진영 세력의 집권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브라질의 성공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메커니즘 자체가 사회민주주의 세력뿐만이 아니라 브라질과 같은 좌파 세력들을 포괄해 가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토론자: 의미 있는 얘기이지만, 그런 시각은 음모론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국제 자본의 선택이 매우 전략일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논리대로라면,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자본과 룰라가 갈등이 없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국제 자본이 룰라에 반대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참가자: 이코노미스트지를 보면 룰라의 가능성을 점치면서, 룰라의 집권을 카르도소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효율성과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걸 보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사실관계라기보다는 룰라의 집권 문제를 자본가 세력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모든 대선후보가 카르도소의 경제 정책을 반대하고 있고 국민의 75%가 경제 정책의 변화를 바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국제 자본의 신자유주의 흐름과 국내의 룰라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룰라가 집권할 경우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입니다. 

참가자: 현지에서도 PT 관계자들은 스스로 매우 좁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말을 매우 아끼고 있고, 투기 자본들이 공략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중입니다. 

참가자: PT는 초기에 당원이 27만이었다고 하는데, 당이 초기에 기반을 확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발제자: 초기에 PT는 조직적으로 확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원 수도 활동가들이 국가로부터 탄압받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풀려졌습니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자는 식으로 모여졌던 측면이 있습니다.

참가자: PT 당원이 백만이라고 하는데, 당비를 내는 당원은 27만입니다. 

참가자: PT와 CUT간의 관계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발제자: 공식적으로 CUT가 룰라를 지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전에도 CUT 대의원의 90% 이상이 PT를 지지해온 게 사실입니다. CUT가 일방적으로 PT만을 지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CUT 임원 출신이 대선 후보로 나왔고 CUT 활동가들 중에는 PT가 아닌 다른 당 활동가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PT가 연합하는 정치세력이 틀리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당인 PSDB와 결합할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당들과 연합하기도 합니다. 정치 문화가 우리나라와 틀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가자: 발제자 답변에 덧붙이자면, 브라질에서 사용자들은 후보도 지지하고 돈도 지원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은 불법입니다. 법적으로 지지정당을 선언할 수도 없고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큰 제약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