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 공동투쟁의 새 장을 열다

노동사회

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 공동투쟁의 새 장을 열다

구도희 0 4,040 2015.07.08 03:19
 
 
지난 5월14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는 ‘하청노조 집단가입 공동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의 대회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역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원·하청 공동 집단가입 운동을 전개했고, 마침내 원·하청 공동투쟁의 역사를 내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단순한 집회의 자리가 아니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현대중공업의 탄압 아래 숨조차 쉴 수 없었고 충실한 노예이기를 강요당한 채 살아왔습니다. 임금은 갈수록 낮아지고 고용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2004년 2월1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서왔던 한 노동자가 분신자결하며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당시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 집행부는 이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고 영안실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리는 등의 반 노동자적 행위를 했다. 이로 인해 2004년 9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반 노동자적 행위를 한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했다. 
그 후 10년간 현대중공업 등 조선사업장의 사내하청노동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직영노동자 수보다 1.5배나 많아졌다. 이렇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한 현대중공업은 노동자의 임금은 줄이고 계열사를 늘리며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려던 많은 활동가들은 위장폐업 방식에 의해 해고되어 쫓겨나고, 민주노조를 되찾으려던 정규직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하나둘씩 지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진: 현대중공업 원하청노조 간부들이 5월14일 하청노조 집단가입 공동투쟁 결의대회에서 ‘2015 공동투쟁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현대중공업노조 민주집행부 출범으로 싹튼 새 희망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있던 2013년 10월,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민주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현대중공업노조 20대 집행부는 출범식에서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에게 연대사를 맡김으로써 하청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또한 정병모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2004년에 분신 항거한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10주기 추모식에서 현대중공업노동자를 대표해 지난 세월 노동조합이 열사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어서 원·하청이 공동으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안을 정규직 노조가 받아 요구안으로 확정하는 등의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오랜 기간 억눌려왔던 현장의 노동자들이 민주집행부에 큰 기대를 걸고 힘을 몰아주면서 현장은 역동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2014년 3~4월에 5명의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연달아 죽어 나가면서 공동투쟁의 흐름은 더뎌졌다.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가 큰 만큼 집행부도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임·단투에 매달리면서 공동투쟁의 흐름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하청노동자의 요구를 쟁취할 수 있는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연대해본 경험이 없는 터라 막연히 정서적인 당위성만 가지고 일을 도모하려 했던 것으로 이미 출발부터 한계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원·하청 공동투쟁의 기대를 안고 투쟁했던 사내하청 쟁의대책위원들이 장기 노숙농성으로 지쳐갈 무렵인 올해 초에 원·하청의 노조 대표자들이 만나 다시 한 번 투쟁의 기운을 만들어보자고 합의했고, ‘주간 정책협의회’를 통해 꾸준히 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하기로 했다. 이 ‘주간정책협의회’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조선사업장 사내하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의 집행단위도 함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우선 사내하청노조의 재정에 도움을 주고 원·하청 공동투쟁을 위한 특별예산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 그리고 각종 선전물과 교육을 통해 원·하청 공동투쟁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원·하청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등 타사의 사내하청 조직화과정의 사례를 통해 효과적인 조직화 과정을 준비하고, 정규직 노조 대의원 간담회를 통해 가입운동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사진: 현대중공업노조와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이 5월6일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서 조선업체 하청노동자 노조가입 불법탄압 감시단을 발족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하청노동자, “노조 가입 원하지만 해고가 두렵다” 
현대중공업에는 약 4만 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대법원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바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제대로 개선하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에서 내려주는 공수(工數)에 따라 차등으로 지급되고, 이 외의 각종 노동조건은 그저 하청업체 업주가 정한대로 받아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용은 매우 불안정해서 원청에서 계약해지하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불안정고용조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형편없는 후생 복지 등으로 인해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확대된 다단계 하청구조는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복잡한 고용구조로 원청이 책임져야 할 산업안전관리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고, 하청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지난 한 해 현대중공업에서는 9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어 나갔고 올해도 벌써 2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죽었으며 산재은폐 사례도 빈발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지난해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공동으로 ‘사내하청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하청노동자 78.7%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75.7%는 해고와 블랙리스트가 두려워서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임금·단체협약 체결 및 임금인상, 고용안정 보장을 꼽았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중공업노조는 지난해 임·단협 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했고, 사내하청노조도 작년에 12개 업체와 수차례의 공식 교섭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단 한 업체와도 기본적인 협약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단투 과정에서 발생한 조합원 해고와 계약해지의 탄압에 맞서 계속 투쟁해야만 했다. 
결국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문제는 노동자들의 단결로 해결해야 한다는 간명한 진리에 따라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의 3주체가 모여 하청노동자들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조가입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를 정해 집단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하여 하청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게 현대중공업노조가 나서서 보호해주기로 했다. 
 
하청노조 집단가입운동 선포와 공동투쟁의 결의
(사진: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 관계자들이 5월4일 울산시청에서 하청노조 집단가입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5월4일 울산시청 기자실에서 하청노조 집단가입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가입운동을 전개했다. 이 가입운동에는 현대중공업노조 집행간부, 대의원, 소위원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쟁대위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하청노동자가 일하는 현장과 사내식당 등을 돌며 가입을 안내하는 리플릿과 가입원서를 나눠주고 노조가입을 독려했으며,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홈페이지를 이용한 인터넷 가입창구를 열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노조의 보호 아래 노조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은 울산시 동구지역을 돌며 선전활동과 가입운동을 벌이는 등 다방면으로 노조가입운동을 전개하여 가입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그리고 5월14일 오후 6시에 현대중공업 노조사무실 앞에서 원·하청노동자가 한데 모여 ‘노조집단가입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아래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2주간의 노조집단가입운동이 수천 명의 노동자가 가입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가입할까 말까 망설이는 분위기다. 하청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원청과 하청업체 업주들이 온갖 거짓논리로 노조 가입을 방해하는 통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직영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노조가입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2차, 3차 가입운동을 통해 다수의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진: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들이 하청노동자 노조가입 운동을 진행하며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원·하청 공동투쟁의 서막이 오르다
이번 집단가입운동은 원·하청 공동투쟁의 서막으로, 대공장 노조 정규직이 공장 내 하청노동자를 조직하는 과정은 자본이 갈라놓은 차별의 장벽을 걷어내고 노동자 동질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고용과 노동조건 개선이 급선무이고, 직영노동자들은 아무리 단결력을 발휘해서 파업을 해도 절반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는 상황에서 파업의 효과에 한계를 느낀다. 원·하청 노동자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기에 서로 간의 끈을 잘 연결하면 좀 더 큰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한계점도 지적되었다. 정규직 노조간부들은 공동투쟁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정서적인 한계와 하청노동자와의 공동투쟁을 시혜적으로 보는 경향을 드러냈다. 또한 현장의 역동성을 이끌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하청노조가 주체가 되어 대중적인 지도력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향후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조선사업장의 고질적인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조건의 차별을 철폐해서 노동자 간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없애고 연대의 정서를 높여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 불안정 고용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흔들리는 삶의 구조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해서 원청과의 직접교섭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업종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사회제도 개선 투쟁 등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략을 수립해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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