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대단결과 노동조합의 과제

노동사회

진보진영 대단결과 노동조합의 과제

admin 0 2,719 2013.05.08 09:36

물이 깊어야 큰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든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도종환 시인이 쓴 '깊은 물'이라는 시 구절이다. 엉뚱한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고 얕은 이해관계에 이끌려 큰 것을 놓치고 마는 세태를 말한 것이라면 운동판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얘기가 아닌가 싶다. 조그만 차이로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다투면서 큰배가 뜰 수 있는 깊은 물을 만들지 못하는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2002년은 싫든 좋든 간에 선거와 스포츠의 해다. 지자체선거, 국회의원 보선에 대통령선거가 잇달아 예정되어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월드컵 축구경기와 아시안게임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스포츠행사들은 매스컴과 상술의 마력을 타고 강력한 환각성분을 발휘하겠지만, 정세변화의 핵심 요소는 권력재편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선거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여 벌써부터 보수 정치판은 여야 할 것 없이 난리법석이다. 민주당은 집단지도체제, 국민참여 예비경선제, 대통령후보와 당권의 분리, 상향식 공천제 등 과거에 볼 수 없던 상당히 개혁적인 계획들을 실행할 태세이고, 한나라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해도 지역패권주의의 틀 안에서 보수 양당의 나눠먹기와 이합집산이 되풀이되겠지만, 정당구조 변화 조짐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노동운동이 중심에 서야 

다가올 뜨거운 정치의 계절은 진보진영에도 커다란 변화를 촉구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도 치열하게 모색되고 있다. 진보진영의 총단결과 대통합을 위한 시도가 그 하나다. 민주노동당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재창당을 추진하겠다"며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제안하였고,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민주·민족·민중운동 단체들은 진보진영의 총단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왔다. 그 결과 지난 연초에는 6개 단체가 ▲ 노동자 민중중심의 진보정당 재창당, ▲ 반미·반신자유주의·자주통일·민중생존권 쟁취에 동의하는 진보진영의 단일화·집단지도체제 도입, ▲ 지방선거(6월) 전 재창당과 양대선거 공동대응, ▲ 6개 단체 상설실무협의회 구성 등에 잠정 합의하였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제의에 따라 사회당과의 통합도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추진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진보진영의 열망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 변화에 비춰 매우 긴박한 과제였다. 미국자본 중심의 세계화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대다수 민중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미국의 패권주의 세계지배전략 때문에 한반도정세가 다시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서로 나눠져서 고통받는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진보진영 정치세력화의 중심축으로 노력해왔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다수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진보세력을 폭넓게 끌어안지 못한데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사회당의 존재는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진보진영 대단결의 정체성을 지닐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보수 정당의 한계와 변화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정당명부제 도입 등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판국에 서로 분열하여 경쟁하는 경우 공멸하리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아무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총단결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진보진영의 정치적 진출을 바라는 모든 양심 세력의 더할 나위 없는 열망이다. 또한 무수한 단절과 깊은 좌절, 그리고 참담한 패배의 경험을 되풀이 해온 이 나라 역사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총단결이 이 같은 당위적인 바램이나 도덕적인 호소만 갖고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는 이념의 통일, 지도력의 확립 등 여러 조건이 아울러 갖춰져야 하겠지만 통합과정에서나 그 후 발전과정에서 무엇보다 긴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가장 큰 세력이며, 특히 민주노총은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출범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과제 

민주노총은 올해의 중요한 사업과제로 "권력교체기 진보진영 대단결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와 민중연대조직 건설"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지난 1월15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는 '올해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해야만 민주노총 후보로 인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방침은 진보진영의 단합을 촉진하고 민주노동당이 지닌 진보세력 안에서의 중심성을 확실히 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진보진영의 중심 축으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보다 기초적인 조건을 스스로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1997년 '민족민주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내세운 전국연합과 함께 조직적 결의를 통해 지금의 민주노동당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중심 과제로 설정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조합원들이 정치세력화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스스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합원의 54.5% 정도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했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조합원은 23.1%에 그치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체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 이전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나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조합원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 얼마나 긴박한 과제인가를 극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둘째, 진보정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당과 노동조합은 그 구조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긴밀한 동맹관계를 갖되 상호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녀야 한다. 특히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정당 지지의 자유를 제약할 경우 조직이 분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민주노동당은 아직 건설단계에 있으므로 민주노총의 일차 임무는 민주노동당을 키워내는 것이며, 아직 상호간 자주성과 자율성을 논할 단계에 있지 않다. 또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면 조직적 결의를 다시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지지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조직을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셋째, 당의 외연을 넓히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중심축으로서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발전을 다짐해왔고, 민주노동당은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착실히 성장해왔다. 당원은 2만 명에 육박하였고 227개 선거구 가운데 35.2%인 80여 곳에 지구당 또는 연락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참여도는 기대에 비해 매우 저조하였다. 민주노총 60만 조합원 가운데 겨우 1%가 조금 넘는 8천명 정도만이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계급적 관점보다는 기업 내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쉬운 기업별노조의 한계, 구조조정 공세로부터 조합원의 생존권을 지켜 내느라 정치세력화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의 틀 안에 가두려는 보수정치·보수언론의 치밀한 이념공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참여도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힘있게 추진하기에는 너무도 낮은 수준이다. 어차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란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모든 조직 단위에서 대대적인 교육과 선전이 이루어져야 하고, 선진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각급 조직 지도부의 확실한 입장과 태도는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지도부의 말 한마디 행동 한가지가 조합원의 정치적 판단과 실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진보진영 총단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모든 단체들이 그야말로 '열린 자세'로 임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자신이 지닌 이념적 지향을 내세워 다른 세력을 일방적으로 배척하거나 속내는 다른 데 두고 명분축적용으로 협상에 나섬으로써 분열과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결국은 진보진영의 기반을 허물어뜨리지 않도록 조직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개혁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김대중 정권의 말로는 보수정치의 한계를 극명하게 제시해줌과 동시에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주고 있다. 또한 정당명부제와 같은 제도적 조건도 개선되어 세력형성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주체들이 역량을 갖추고 활용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아쉬운 조건으로만 끝나고 말 것이다. 부디 큰배가 뜰 수 있는 깊은 물, 소리는 없으면서도 도도히 민중들의 희망을 실어내는 진보진영이 되는데 노동조합이 적극 분발할 것을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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