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건의료노조 투쟁의 의미와 과제

노동사회

2002년 보건의료노조 투쟁의 의미와 과제

admin 0 3,961 2013.05.08 09:33

 

 

1. 들어가는 글

2002년은 변화가 많은 한 해였다. 월드컵의 붉은 악마와 시청 앞 광장 인파, 광화문의 반미 촛불시위, 노무현의 당선, 민주노동당의 선전 등등. 이런 변화들은 낡은 정치와 사회 틀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흐름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미래가 과거를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병원 파업을 통해 살펴본 한국의 노사관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노동기본권 보장과 대등한 노사관계, 민주적 노사관계는 답보 상태다. 어느 기자는 병원 장기파업 과정에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노사가 신뢰를 가지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를 몇 번 썼다가 이 말처럼 한국 노사관계에서 공허한 것이 없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임금·단체 협상임에도 불구하고 투쟁이 반년을 넘기고, 정당한 단체행동권인 파업 자체가 죄악시되는 사회, 파업현장에 경찰이 투입되고, 업무를 방해하고 손해를 입히기 위해 파업을 하는데 그것을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청구로 탄압하는 사회,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 노동현장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장기파업 투쟁과정에서 쟁점이 된 '노사관계에서의 법과 원칙', 파업 장기화의 원인, 직권중재 제도와 정부의 역할, 의료의 공공성 강화, 산별 교섭과 교섭구조, 사학연금 제도, 가톨릭 노사관계 등은 새로운 노사관계를 열어가기 위해 노사정 각자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주제들이다.

이 글에서는 산별노조 5년차로서 산별운동의 완성을 위해 싸우는 병원 노동자들의 2002년 투쟁 경과를 소개하고, 몇 가지 특징과 의미, 그리고 성과와 한계를 정리한다. 그리고 유례 없는 장기파업에서 느끼는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과 개혁방향에 대해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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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노조는 가톨릭병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 바티칸에 원정대를 보냈다. 사진은 셍베드로 광장에 내걸린 보건의료노조 플랭카드  ▷ 출처:보건의료노조 ]

2. 2002년 임금·단체 협상 경과

1) 투쟁경과 


올해 보건의료노조 투쟁은 장기파업이 부각되고 있지만, 내용에서 가장 알찬 성과를 거둔 한 해였다. 즉, 산별의 힘을 바탕으로 투쟁력의 편차를 좁히면서 가장 많은 숫자의 지부가 동시 조정신청과 동시 총파업투쟁을 통해 애초 내걸었던 4대 핵심요구를 쟁취하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월드컵 전 타결을 목표로 5월23일 동시 파업에 돌입했다. 올해는 보건의료노조 사상 최대 규모로 9월30일 현재 교섭지부 136개 병원 중 94개 지부가 동시에 조정신청을 냈다. 대다수는 파업 전에 원만히 타결되고, 나머지 28개 지부가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에 돌입한 지부 대다수가 며칠만에 원만한 타결을 이뤄냈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 파업이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한달 가까이 진행된 지부만도 대동(19일) 부천 성가(24일) 인천사랑(25일), 경희대(119일) 제천정신(117일), 고신의료원(54일)등이 있다. 그리고 가톨릭중앙의료원 3개 병원(강남성모, 여의도성모, 의정부성모병원, 제주한라, 목포가톨릭은 이백일 넘게 파업 중이다. 

파업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측의 노조 불인정과 노조 탄압에 맞서 많은 지부가 싸우고 있다. 파업복귀이후 4명 해고와 5억 손해배상청구 등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는 부천성가병원, 위장폐업과 재개원을 하면서 교섭마저 거부하는 사측과 싸우는 새양산병원, 임금체불·부도·폐업에 맞서 8개월째 고용 승계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방지거병원, 경영진의 부도덕한 비리·횡령에 맞서 투쟁 중인 진주늘빛정신병원, 노조를 만들자마자 위장폐업하면서 노조탄압을 하는 사용자에 맞서 2년 넘게 싸우고 있는 동광주병원, 2년 4개월 동안 위장폐업 철회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진해현대의원, 폐업에 맞서 병원정상화와 고용승계, 이사장 구속을 위해 4년 가까이 천막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군산개정병원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운 대형 병원의 강경 대응과 파업 장기화, 그리고 중소병원의 위장폐업, 고용불안, 노조탄압 등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노사관계 악화가 눈에 두드러진 한해였다.

장기 투쟁이 많아지면서 '장기파업 투쟁'과 '장기 투쟁'이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장기파업 투쟁'은 올해 일어난 파업투쟁을 의미하고, '장기투쟁'은 이미 해를 넘겨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투쟁을 지칭하고 있다. 이전에는 10일 정도의 파업을 장기파업이라고 분류했으나, 이제는 그런 지부는 명함도 내밀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탄압 또한 다양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고소고발, 구속 등 형사상 탄압은 물론 해고, 징계 등 인사상 탄압과 최근 신종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는 손배, 가압류, 병원 출입금지 가처분 등 민사상 탄압까지 그야말로 노조탄압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다. 경희의료원에서는 노조투쟁 속보에 대항하여 병원 유인물 매일 발행, 인터넷상의 노조 비방전이 새롭게 가세하였다. 

올해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무노동무임금 적용으로 일곱 달 동안 한푼도 받지 못한 월급봉투와 구속 21명, 체포영장 발부 37명, 고소고발 361명, 190명 해고, 징계위회부 1,048명, 징계 188명, 손해배상 청구 34억원, 임금 및 조합비 가압류 77억, 재산가압류(차량 및 집) 107명, 그리고 3천 명의 경찰력 투입과 사설용역깡패까지 동원한 폭력테러를 겪어야 했다. 

이런 노조탄압에 맞서 병원노동자들의 투쟁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파업 지부는 흔들림 없이 강고한 파업대오를 유지하면서 병원에서 쫓겨 나와 길거리와 역, 성당에서의 천막 노숙투쟁, 27일간의 집단 단식투쟁, 여성간부를 포함한 집단 삭발투쟁(강남성모병원 한용문 지부장은 파업기간 두 번 삭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이 전개되었고, 산별노조 차원에서는 직권중재 철폐와 장기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10월16일 산별 총파업 감행, 10월21일 9명의 로마 바티칸 원정대 출발과 해외원정투쟁, 조합원 생계비 마련을 위한 연대채권 판매 및 투쟁기금 모금운동으로 수억 원 모금이 진행되었다. 

밖으로는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노동·종교·학계·민중단체 77개가 중심이 된 '직권중재 철폐와 장기파업해결을 위한 공대위' 가 구성되어 1천인 선언과 각종 연대집회를 주도했으며, 10월17일 필수공익사업장노조들과 함께 '직권중재 철폐 공대위' 구성, 11월15일 법학교수와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 140인 선언, 명동성당 경찰투입 움직임에 맞서 명동성당 지킴이 인간띠 실천단 20만명 조직운동(http://cyberact.or.kr)이 전개되었다. 국외에서는 UNI, PSI, 일본 자치노 등 국제노동단체의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 명동성당 방문 등 연대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2) 요구 측면

먼저 임금은 평균 요구율이 12.19%이었고, 타결율이 전체 평균 6.75%(134,343원), 대병원 7.45%였다. 최저임금은 5년째 요구하고 있으며 올해는 34개 지부가 합의하였다. 이는 1998년 2개, 1999년 5개, 2000년 25개로 점차 확대 중이다. 비정규직 임금인상 요구도 36개 지부에서 타결되었다(2001년 12개).

단협은 올해 본조 차원에서 4대 핵심요구와 6대 공동요구를 내걸었는데 주요 타결 내용을 살펴보면 4대 핵심요구는 △ 노동시간 단축, △ 비정규직 정규직화, △ 의료공공성 강화, △ 산별교섭 제도화였다. 이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23개 지부에서 합의되었고(2001년 6개), 법제화 후 실시하되 인력추가 확보 등을 합의해 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52개 지부가 요구해, 14개 지부가 합의했으며, 27개 지부에서 도입시 사전합의를, 17개 지부에서 차별철폐를 이뤄냈다. 의료 공공성 강화 요구는 79개 지부 중 55개 지부가 합의했으며, 의료민주화 요구는 8개 지부가 합의했다. 산별교섭 제도화 요구(노조가 산별 교섭을 요구할 시 참여한다)는 79개 지부 중 63개지부가 합의하였다.

6대 공동요구를 살펴보면, 인사승진제도는 29개 지부가 합의했고, 모성보호 출산휴가 급여 보장·임산부 야간근무 금지 요구는 어느 해보다 관심이 높았으며, 작년 모성보호 관련 법개정에 따른 단협 정비 등에 64개 지부가 합의하였다. 사립대병원은 고용보험 가입이 안되어 모성보호 측면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어 단협을 통해 고용보험 가입을 노력하기로 하였다. 노동안전 요구는 다른 해에 비해 많은 관심을 보여 산재 조사에 32개 지부가 합의하였고,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 등에 대해서도 30개 지부가 합의하였다. 노조활동 보장에 대해서는 유니온숍 5개지부 합의, 투표시간 보장, 출마시 공직활동 보장 등 정치활동 보장 40개 지부 합의, 경영투명성 확보 8개, 단협 준수 3개, 자동승진, 직제개편, 상향평가 등에도 많은 지부가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성별 병원 요구는 사립대병원의 사학연금 제도개선(연금부담율 조정, 고용보험 가입 등 연금 불이익 해소)과 국립대병원의 지정진료비 제도개선 요구, 지방공사의료원 구조조정, 중소병원 병원활성화 대책 등이 쟁점화 되었다. 사학연금 요구는 13개 지부가 합의하여 과반수 이상이 타결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사회보험, 연금제도 개선투쟁의 주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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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2년 투쟁의 특징과 의미 

신종 노조탄압과 파업 장기화


올해 파업의 가장 큰 특징은 '법과 원칙'을 앞세운 유례 없는 노조탄압과 이에 따른 파업 장기화다. 올해 파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바로 '법과 원칙'이었다. 이제는 노사관계를 기존의 잘못된(?) 관행이 아닌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이상 불법파업은 용납 안 한다.' '이면합의도 안 된다.' '무노동무임금은 반드시 지키겠다.' '해고자는 못 만난다.' '민주노총, 산별노조는 외부세력으로 대화할 수 없다'면서 손배, 가압류 등 신종 노조탄압을 총동원하였다. 몇몇 병원에서 이렇게 똑같은 논리와 태도로 나오면서 원만한 타협과 대화를 가로막았다. 이 흐름은 발전노조 파업과 이후 두산중공업, 공무원노조 탄압으로 이어지고 매경신문 노조공화국 시리즈, 노동부의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검토, 사법부의 파업간부와 조합원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 

파업하는 노조, 특히 불법 파업하는 노조에 대해서는 손을 보겠다는 일관된 흐름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은 가진 자들의 노동자 길들이기와 무력화 시도이자, 권위주의와 반민주적 태도로 이해되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런 방식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산별교섭 교두보 확보

그 동안 보건의료노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산별교섭 제도화를 모색해왔으며, 올해는 노사관계의 주요 지점인 현장에서부터 산별교섭(집단교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3월25일 국회에서 집단노사 간담회 개최, 5월7일 중앙노동위원회 집단조정신청을 통한 집단 조정시도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지방공사의료원 27개 지부는 집단교섭이 성사되었고, 사립대병원은 정식교섭이 아닌 노사집단간담회가 개최되었다. 단협에서는 결국 63개 병원에서 '노조가 산별교섭을 요구할 시 이에 응한다'는 문구로 합의하였다. 이번 합의는 한양대, 이대, 경희대 등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과 지방의 대형병원, 지방공사의료원 등 노사관계를 주도하는 병원에서 이루어져 내년부터는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2003년부터는 본격적인 산별집단교섭이 추진될 예정이다.

한편 사실상의 사용자단체인 병원협회가 10월26일부터 한 달간 노조가 조직된 전국 150개 병원장을 상대로 자체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데일리메디 2002. 12. 8), '노사분쟁 시 병원협회가 개입해야 한다'가 63% 나왔고, 또 산별교섭에 대해서는 65%가 수용거부 의사를 밝혔고, 반면 35%는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이런 조사결과는 사용자단체의 역할과 산별교섭의 필요성을 조금씩 인정해 가는 최근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직권중재 악법과 노동기본권 쟁점화

이번 장기파업을 통해 다시 한번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제도의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병원 노사관계 악화의 주범이 바로 이 제도이다. 직권중재 철폐를 위해 6월24일 국회에서 직권중재 토론회가 있었고, 10월17일 필수공익 사업장 노조들과 함께 '직권중재 철폐 공대위' 구성과 11월15일 법학교수,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 140인 선언이 이어졌다. 그 어느 해 보다 사회쟁점화, 여론화가 많이 되면서 현재 진행중인 헌재 판결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차기 대통령 당선자도 직권중재 제도 개선을 공약한 만큼 이제 조속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의료민주화에서 공공성 강화로

보건의료노조는 환자 권익보호, 진료비 내역 공개, 식사 질 개선, 병실면적 확보, 무료 주차, 의료 비리 척결 등 병원 내부의 의료민주화 요구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최근 사회의 연대성과 공공성 강화가 시대적 화두가 되고, 특히 의료의 공공성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공공병원 사유화 반대, 정부 예산 확대, 공적 건강보험 제도 강화, 중소병원 공공병원화, 의료서비스 시장 개방 반대, 지정진료비제도 개선, 의료기관 관리부처 일원화 투쟁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가톨릭 노사관계의 사회문제화

한국에서 가톨릭 이미지는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 민주주의, 인권, 노동자 및 소외된 자를 위한 종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자신들이 사용자의 위치에서 노동기본권과 노사 대등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로 노조탄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올해 가톨릭중앙의료원, 목포가톨릭병원, 부천성가병원 등의 노조탄압을 보면서 가톨릭의 본질과 노동관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전에 대전성모병원, 평화방송 노조무력화 등을 볼 때 가톨릭 내부 노사관계는 이제 감추지 말고 드러내고 토론할 때가 되었다. 더구나 경영에서도 신부와 수녀가 주요 보직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는 문제라든지, 평화방송과 신문 등 가톨릭 언론기관이 편집권 독립과 공정한 보도가 보장되는 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가톨릭 병원 사용자들은 평소 가톨릭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기관으로서 정서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서는 용인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노조 자체를 탄압하고 부정하는 식으로 나타난다면, 노조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그들은 때로는 일반 사용자로, 때로는 신부로서 이중적 태도를 취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톨릭이 노조를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보면서 노동 3권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파업도 아닌 전야제에 조합원이 모여있다고 교섭을 거부하고, 합법적인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교섭권과 연대를 부정하고, 직권중재라는 세속법(악법)에 의존하여 교황의 사회교리에도 나와 있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단체행동권을 부정하고, 급기야는 성당 안까지 경찰을 불러들여 파업을 파괴하고 조합원들을 잡아가게 하고, 장기파업 과정에서 노조가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하지만 '선복귀 후선처'라는 노조의 존재와 교섭권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심각한 반노동자성을 확인한다.

물론 어떤 이는 '가톨릭'의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문제이고 확대하더라도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문제라고 한정지으려 한다. 정의평화위원회 최영수 주교는 12월 인권주일 담화문에서 병원 파업사태는 교회와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노사간의 문제라고 강변한다. 그럼 백보 양보해서 교회와 노조의 문제가 아닌 병원 노사간의 문제라 치자. 그렇다면 이렇게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는 사용자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는 것이 교회의 올바른 모습인지 모르겠다. 가톨릭 서울대교구는 실질적인 성모병원의 사용자이고 대주교가 병원 이사장이다.

가톨릭에는 좋은 이름의 조직과 단체가 많다. 정의구현사제단, 인권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 등. 하지만 그 모든 조직들이 이야기하는 정의구현과 인권과 평화는 가톨릭 밖에서의 정의와 인권과 평화일 뿐이다. 가톨릭 안에서의 노동자를 위한 정의와 인권과 평화는 애써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일부 신부와 평신도 변호사, 교수들의 노력은 헌신적이고 이와는 별개다. 

노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차 토론회와 정책간담회를 요청하였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종교 권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노동 탄압에 나섰다는 역사적 오명을 씻기 위해서는 파업사태 이후라도 내부의 자성과 활발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파업이 7개월을 넘어가는 동안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선복귀만 주장하면서 조합원 복귀공작에 열을 올리는 그들은 결국 노조에 아무런 성과를 주지 않고 조합원들을 전원 복귀시키는 것이 큰 승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가톨릭은 조합원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얻어지는 노조 무력화가 진정한 승리인지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기타쟁점

2002년 병원 투쟁은 많은 특징을 보여 주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다만 △ 투쟁력의 편차를 좁히면서 사상 최대규모의 동시조정신청과 5월23일 시기집중 파업투쟁으로 산별의 힘을 과시했고, 특히 10월16일 5천 명이 참가한 산별 파업은 직권중재 철폐, 장기파업사태 해결이라는 최초의 단일요구를 내건 정치성 파업으로 이후 실질적인 산별 파업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 국민연금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학연금 제도의 문제점이 쟁점화 되었고, △ 제주 한라병원 비정규직 고용안정투쟁과 전남대병원 하청노조 투쟁 등으로 비정규직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갔으며, △ 제천정신, 방지거, 진주늘빛병원 등 중소병원의 노조 불인정과 탄압에 맞선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중소병원 노동운동의 방향과 기조가 고민으로 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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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들이 십자가를 메고 강남성모병원에 들어가려 하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 출처:보건의료노조 ]

4. 마무리하면서 

병원 파업 장기화는 뉴스거리이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대상으로 회자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장기적으로 싸우게 만들까? 무엇이 그들을 백의의 천사와 평범한 병원 노동자에서 거리의 투사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7개월을 넘어서면서 월급 한푼 못 받으면서까지. 병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측의 권위주의적 경영, 특히 악랄한 노조탄압 때문에 조합원의 분노가 폭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체 조건으로 보면 산별노조라는 단일조직이 있음으로 해서 여기서 밀리면 다 밀린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연대투쟁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평소 꾸준한 교육과 파업기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조합원 교육으로 높아진 의식 등이 장기파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불법파업으로 매도해도 직권중재투쟁에 대한 정당성이 있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여성노동자들 특유의 끈기와 자존심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일방적 밀어붙이기 식으로는 노동자를 굴복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정한 노사 평화가 불가능함을 깨달아야 하고, 조합원의 각성과 분노로 더 질긴 장기투쟁만 초래할 뿐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파업 장기화의 원인

첫째, 파업 초기 '대화의 실패와 수습노력 부재'가 원인이다. 직권중재라는 악법이 있기에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불법파업으로 몰아 노조 압박에만 열중하다 보니 성실한 대화와 타결 노력이 부족하다. 노사 타협보다는 악법을 빌미로 노조를 압박하다 보니 노조는 운신의 폭이 없고, 반발하면서 타결은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15일이 지나면 노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직권(강제)중재안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이후는 노사 자율 교섭을 더욱 어렵게 한다. 사측은 아예 그것만 믿고 교섭에 나오지 않는다. 

둘째는 파업 중반 경찰 투입의 문제다. 노사관계에 경찰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경찰병력을 파업현장에 투입하여 강제로 파업을 해산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사측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경찰투입을 요청하고, 정부는 투입방침을 정하면서, 결국 대화는 중단되고, 투입 이후에는 노사문제가 노정문제로 비화되면서 대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셋째는 장기화되면서부터 사측은 아예 대화를 통한 타결보다는 대화 없이 조합원 현장복귀 공작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노조가 막판 아무리 양보안을 내도 대화 거부로 타결이 안 된다. 

2002년 병원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산별노조 무력화와 산별교섭 저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법과 원칙의 강요 속에 불법파업(사실은 파업 자체)을 못하게 하기 위한 총공세에 맞선 투쟁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시도는 오히려 우리들에게 산별노조로 단결하고, 산별교섭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노동현장에서의 새로운 '법과 원칙'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김대중 정권 5년 하에서 노사관계는 혼란에 빠지고, 노정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정부와 사용자의 반노동자 정책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나아가 새 정부가 들어서는 지금이야말로 현장·산별·국가 차원의 노사관계 마스터 플랜과 정교한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할 때다. 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