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 시민사회 손으로!

노동사회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 시민사회 손으로!

편집국 0 3,843 2013.05.22 09:39

작은 정부, 기업 경영원리 적용, 사유화, 민간위탁 같은 용어들은 모두 공공 서비스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주류 담론’에 속하는 것들이다. 주류 담론이란 그 실 내용이나 타당성과는 별개로, 사회적 ‘상식’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철밥통 공무원, 공기업의 방만, 도덕적 해이, 비효율 같은 어휘들이 새끼를 치며 이러한 상식을 뒷받침한다. 일부의 반론과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현실은 일거에 뒤집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대략 십여 년간 급속히 진행되고 강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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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3일 열린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 공공연맹 ] 

공공성, 지배구조 논의와 투쟁의 전개

IMF 구제금융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제기되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경제위기와 함께 급물살을 탔다. 당시에는 비효율과 방만, 비대의 근원인 정부와 공공부문에 칼을 대는 것이 당연하고도 가장 급선무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실 공공부문 개혁은 정부로서도 자신의 권한으로 개입하기도 쉽고 가시적 결과를 보여주기가 쉬운 것이기도 했다.

이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구제금융 이후 2002년 무렵까지는 공공부문에 대한 전면적 구조조정과 외형적 경영 혁신의 단계였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법제도 정비를 통한 내부적 구조조정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즉 초기에는 ‘사유화’로 상징되는 소유구조 전환과 획일적인 인원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이었고, 이후에는 ‘자율 책임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화와 상업화의 내적 작동원리를 갖춘 일상화된 소프트웨어적 구조조정 체계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된 정부산하기관과 투자기관에 대한 경영평가와, 이에 근거한 인센티브 지급은 공공기관들이 알아서 수익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되, 예산이나 인력운영, 노사관계에 관한 정부 지침은 빠짐없이 관철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전개과정을 일단락 하는 것이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2006년 3월 입법 예고된 <공공부문 운영에 관한 기본법(안)>이다. 기획예산처는 이 법안의 취지를, “그동안 추진해 온 공공기관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에 입각하여 공공기관에 대해 일원화된 지배구조를 마련하고 효율화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적인 논자들은 이 입법이 그나마도 훼손되고 있는 사회공공성의 원리를 더욱 후퇴시키고 시장성 논리가 판치는 공공부문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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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드러나고 있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부작용을 돌아본다면, 이러한 우려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경영평가는 사회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은 도외시 한 채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시험 답안을 작성하듯 수익률과 산출 실적, 정부지침 준수 등의 ‘등수 경쟁’을 하게 만들었다. 기관의 설립 목적과 맞지 않더라도 돈이 되고 점수가 되면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기관 본연의 목적을 위한 사업임에도 돈이 안 되고 점수가 안 되면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기관 사이의 경쟁에 노동조합도 휘말리면서 공공부문 노조운동의 지도력이 위축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 추진 중인 공공기관 기본법(안)의 문제점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공공부문 기본법(안)은 이전의 기존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정투법)과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정산법)의 단순 통합을 넘어 보다 강한 관리체계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법의 기본 골격은 소유 및 지배구조를 기획예산처(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집중하고, 기관의 재분류를 통하여 지속적 경영 혁신 체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기본법(안)의 근거가 되는 것은 2005년 4월 경제개발기구(OECD)가 마련한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으로 그 주요 내용은 △통일성과 전문성이 있는 소유권 정책 추진을 위해 소유권 행사기능을 집중화, △권한과 독립성을 갖는 이사회 중심의 기관운영체제 확립(내부 지배구조), △공공기관의 전략적 목표 설정, 성과평가, 정보공개 등 책임성, 투명성 지속 강화(외부 지배구조) 등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언제부터 OECD 가이드라인을 진지하게 고려해 따르려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가이드라인의 타당한 측면들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정부의 기본법(안)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OECD 가이드라인에 의하더라도 한 부처로 경영권을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기획예산처가 경영 기능을 집중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부서인지는 더욱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둘째, 보다 본질적으로 기본법(안)은 국가 수준의 공공부문 ‘기획’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산업정책기능과 소유권기능(경영감독, 평가)을 명확히 분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기본법(안)은 공공부문의 산업정책기능을 어디서 어떻게 행사한다는 계획 없이, 자금의 수입/지출을 우선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기획예산처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그나마 소관 부처에 남아있는 각 공공기관의 전략도 기획예산처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차라리 박정희 시절의 경제기획원이 나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통신산업을 다시 국가부문으로 돌리는 것이 옳은지, 에너지산업을 분할하는 것이 좋은지 재통합하는 것이 좋은지, 이러한 ‘철학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일은 기획예산처 중심의 지배구조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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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분류기준의 문제다. 공공기관 지배구조 혁신 방안에 따르면 지배구조 혁신 대상인 94개 기관을 업무특성을 기준으로 1차 분류하는데, 상업성이 높은 기관은 국가공기업으로, 공공성이 높은 기관은 준정부기관이 된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단지 자체수입 대비 총수입 기준과 자산규모 뿐이다. 이 기준대로 재분류하게 되면, 정투법으로 관리되던 한국전력(한전)은 자체수입 비중이 높고 자산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가스공사, 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더불어 ‘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되고 시장성이 더욱 강조되며, 향후 사유화 검토 시 우선 대상이 된다. 지역난방공사나 대한주택공사도 준시장형 공기업이 된다. 한전이 시장 논리만 좆다가 국민의 에너지 기본권을 침해하고 대체에너지 개발 같은 공공적 사업을 부차화했던 사례들은 이미 낯선 경험이 아니다. 결국 기관 분류 또는 기관 성격 규정이 기관의 운영 기조에서부터 구별 사업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경영평가가 갖는 여전한 문제다. 2005년 경영평가에서도 지표가 자의적이거나 일면적인 경우, 반노조적인 경우, 오히려 국민의 이해에 반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경우들이 여럿 보고되었다. 질적 평가 방식이 부실하다거나 기획예산처에서 임의로 변경하는 문제, 100명 가까운 경영평가단이 대부분 관변 인사들로 채워지는 문제, 평가 결과로 극단적이거나 불필요한 서열화를 기관 사이에 강제하는 문제 등이 지적되었지만, 기본법(안)을 제출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위하여

개발주의 토건국가든, 약탈적 자유시장경제든, 민중 중심의 사회체제든, 이는 모두 정부와 공공부문이 어떠한 위상을 갖고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각각 만들어질 수 있는 열려 있는 길들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체제가 대략 10년을 경과하고 공공부문 기본법(안)이 제출된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갈림길 어딘가에 서 있다고 하겠다.

기본법(안)의 문제점을 논하는 최근의 한 토론회에서 노중기 교수는, “‘시장주의 관치모델’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부문 노조운동은 우선적 이해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과 태세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기본법(안)은 공공부문 노조에게 한 편으로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성찰과 쇄신의 계기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경우 적어도 연맹 차원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듯하다. 공공연맹은 지난해부터 정책적 대응과 소속 단위노조 조직화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고, 얼마 전에는 기본법(안)을 매개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공공부문 노조는 더욱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사회공공성 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추상적 공공성 주장은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연맹이나 개별 기관 노조에서도 자체적인 기관 공공성 목표와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고 알려낼 필요가 있다. 노조도 개별 기관이 받을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 혹은 기관과의 유착과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공공산별노조 추진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공공산별은 한편으로는 시민, 비정규직 등을 포함한 연대의 확대를 통해, 또 정책기획 역량과 홍보선전 역량을 대폭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문제는 단지 기본법(안)의 저지가 아니라, 보다 확대된 공공성과 제대로 민주화된 공공기관 지배구조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거버넌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정부”보다는 차라리 “기업과 시장의 원리”가 낫다는 게 국민적 통념이고 보면, 사회적 연대와 사회공공성의 원리에 주목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능동적 개입 또한 필수적이다.

시장화의 압박 속에서 공공성 엄호와 확대를 위한 정책대안 제시와 여론 형성에 분투하고 있음에도,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는 공공부문 노조운동에 새로운 의지와 힘을 실어주고 촉진하는 안내자이자 협력자로서 시민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사회공공성 강화와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민주화를 바라는 노동과 시민 양측의 노력이 빠른 시일 내에 든든한 연대로 가시화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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