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너지노조 투쟁

노동사회

서울에너지노조 투쟁

admin 0 3,532 2013.05.08 09:28

지난 11월29일, 서울 목동 및 노원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지역난방 공급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에너지(주)의 230여 명 전 직원이 사측으로부터 전원 '해고예고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로부터 3년 동안 민간위탁을 받아 사업을 수행했던 서울에너지주식회사측이 계약이 종료하는 12월말 부로 사업 철수를 결정함에 따라 직원 고용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위탁기간 종료가 임박함에 따라 이후 상황에 대비하며 비상대책위원회 농성을 진행하고 있던 노동조합은 전면 투쟁체제로 전환하고, 12월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상황이 본격화되기 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노조는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요구를 확정했다. 민간 위탁을 철회하고 공기업화를 주장할 것인가, 민간위탁 유지를 주장할 것인가 등이 쟁점이었다. 자산은 서울시 소유이고, 공기업체제로 운영하던 사업을 1998년 말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경영만 민간에게 위탁했던 것을 서울시 직영으로 운영하라고 요구할 것인지, 다시 공기업화를 요구할 것인지, 현행 체제를 유지(민간위탁경영)하라고 요구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더구나 서울시는 '민간위탁 이후 매각' 방침을 정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노동조합은 구체적인 경영 형태를 확정해서 요구하지 않고, △ 열공급 정상화 대책 제시, △ 직원 고용보장, △ 노동조건 유지를 서울시를 향한 최종 요구로 확정했다. 특히, 향후 어떤 경영구조가 되든 주민들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그럴 경우 '열공급 정상화'는 이후 안정적인 경영 대책과 관련해서 요구의 최소 요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조합원 고용안정 역시 '열공급 정상화 대책'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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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너지노조의 십여 일에 걸친 파업투쟁은 노조의 투쟁이 '주민과 연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투쟁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서울에너지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열병합발전소 운영 = 집단에너지사업)의 이후 경영 대책이 부재한 상황은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사업 시행자인 서울시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사업이 사업자를 확정하지 못해 서비스 중단 등의 위기에 놓인 것은 시정(市政)의 파탄으로 이어질 판이었다.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절기 집단에너지 공급 중단은 생존권 그 자체의 문제였다.  

당연히 노조의 파업은 주민들의 이해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노조는 파업 직후부터 적극적인 주민 홍보를 우선으로 진행했다.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는 가구에 당시까지의 상황을 알리는 홍보물을 배포하고, 서울시 당국을 집중 비난했다. 무책임한 탁상 행정이 빚은 사태라는 것이었다. 이후 사업자 선정을 포함한 '열공급 정상화 대책'은 서울시의 책임이며, 노조-주민대표의 의견을 수렴해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민간위탁의 폐해를 주장했다. 공급관로 보수, 서비스영역 확대 등을 기대할 수 없고, 실제 민간위탁 3년이 그런 우려를 입증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조심스럽게, 안정적인 서비스 공급을 위해서는 '서울시 직영체제, 또는 공기업 체제'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점 역시 주장했다. 다만 '매각' 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파업 기간 중의 열공급 문제 역시 조합원 토론을 통해 방침을 확정했다. 발전소를 끄지 않는다, 곧 '일하면서 싸운다'는 것. 열공급 유지를 위해 노동조합이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서울시 당국을 압박하는 집회 및 무기한 부분파업, 파업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경우에는 전면파업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특히 열공급을 유지하기로 하는 방침은 동절기 열공급 중단은 곧바로 공권력 투입은 물론 파업 파괴, 노조 투쟁의 사회적 정당성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노조는 주민들에게 "동절기임을 감안하여 파업 돌입 이후에도 난방공급 유지를 위한 필수요원을 사업장에 잔류시킴으로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는 "설사 사업자가 선정되지 않는 상황이 올 경우에도, 노조가 나서서 발전소 운전 및 운영을 책임질 것"임을 밝히는 한편,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대책이 나올 경우에는 비상요원 철수를 포함한 전면 파업을 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노조의 합리적인 제안을 거듭 거부해온 서울시 당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전 가구 홍보물 배포, 아파트 부녀회, 주민회, 노인회 등을 적극 접촉하고 상황 설명과 노조-주민 공조를 호소했다. 주민들 역시 '안정적 열공급 유지'는 당연한 요구였고, 이런 상황을 적극 제기하고 주민을 접촉하는 노동조합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설명회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주민 안내방송을 자청하는 등으로 호응했고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주민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지역자치단체(관할 구청 등), 자치단체 의원, 지역 케이블TV, 상인회 등 지역의 다양한 이해집단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특히 주민들의 움직임은 서울시 당국을 압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노조 파업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고, 노조는 주민들의 호응만큼 운신할 수 있는 '정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서울시 정책책임자 협의, 시의회 발언, 언론의 보도태도 등). 마침내 12월11일, 서울시는 향후 2년간 사업자로 서울시도시개발공사를 지정함으로써 공기업위탁체제를 최종 확정했다. 서울시는 현 직원 전원에 대한 고용승계, 노동조건 승계를 약속했다. 노조는 애초 설정한 최소 요구를 관철하면서 업무에 복귀했다. 복귀하면서 노조는 파업 기간 중 접촉했던 주민 홍보활동을 다시 전개해서 파업 과정, 서울시 결정의 의미, 향후 집단에너지 사업의 발전 방향, 노동조합의 요구 등에 대한 주민의 이해를 구했다. 

공공부문의 특성에 맞는 투쟁이어야 

노조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효율 증대 및 환경 친화적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집단에너지 사업이 그간 주민들의 우호적 평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고효율 저비용 공공서비스로 자리잡아 왔으며, 지역난방사업의 확대가 예상되고 주민들의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위탁·매각만을 되뇌는 서울시의 무책임한 행정을 비난했다. 또한 필수적 공공서비스사업인 집단에너지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있는 정부의 잘못된 구조조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책의 하나로 정부는 집단에너지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고, 이 사업의 민영화를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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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에게 '안정적 열공급 유지'는 당연한 요구였고, 이런 상황을 제기하고 주민을 접촉하는 노동조합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사진은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주민 서명운동 ]

이로부터 2001년에만 지역난방공사, 산업단지공단 열병합발전소, 서울에너지 등에서 노사, 노정 갈등이 계속되었다. 정부는 '집단에너지 사업 공급자로서의 책임'을 벗고, 정부가 담당해왔던 역할을 '시장(자본)'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서비스요금 인상, 서비스 악화가 우려되고, 해당 부문 노동자에 대한 비용감축 차원의 구조조정 공세가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필수공공서비스사업이 사적 자본의 지배 하에 있을 경우, 공공재 공급이 자본의 이윤논리에 지배당해 공공서비스를 통한 사회통합적 기능을 상실할 우려를 피할 수 없다. 더구나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서 서비스 확대가 절실한 사업이 자본회전율이 낮다는 사업 특성 때문에 추가 투자에 실패할 경우, 기존 서비스마저 노후화하고 악화되는 상태가 방치될 우려도 피할 수 없다. 

이에 맞서 노조는 어떤 투쟁을 벌여야 하는가. 서울에너지노조의 십여 일에 걸친 파업투쟁은 하나의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주민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조합의 투쟁에서 일반적 과제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 물론 사업의 성격에 따라 연대의 방식이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주민(또는 서비스 이용자)과의 연대'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자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그러할 때만 실제로 정책을 되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당국을 압박하는 데서도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다양한 문제제기에 대한 풍부한 토론, 민주적 의사결정 등을 통해서 노조 내부의 단결을 확고히 해야 하며, 이에 기초해서 노조 밖의 이해집단에게 노조의 결의와 합리적인 대안을 확인시켜야 한다. 집회 등을 통한 압력과 정책협의-교섭을 결합해야 하고, '관료적 결정'을 봉쇄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결의가 병행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의 조직이다. 직접적으로는 정부, 소비자와 관계하지만 정부는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소비자 역시 지역사회, 언론기관, 사회단체, 정당, 종교기관 등 다양한 사회집단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노동조합의 고립은 운신폭을 좁히고, 연대는 노동조합의 운신폭을 넓힌다. 당연히 연대를 확장하고, 노조가 반대하는 집단이나 정책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세심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서울에너지노조의 10여일간 이어진 파업투쟁은 공공서비스부문 노동조합의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이후의 경영민주화를 위한 투쟁, 조합원 고용보장 및 신규인력 확보를 통한 조직 혁신, 서비스공급체제의 안정화 등 해결과제는 많다. 조합원들은 '지혜롭게, 단호하게' 난관을 이겨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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