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한표가 희망입니다

노동사회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한표가 희망입니다

admin 0 2,857 2013.05.08 09:22

"2000년 1월 창당했으니, 이제 만으로 두 살 됩니다. 출범 초기 7천 명을 조금 넘던 당원 수가 지금은 2만 명을 넘어서고, 작년 말까지 70개가 넘는 지구당이 만들어졌어요." 속도는 더디지만 양적 발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질적 발전은 어떨까. "2년 동안 지역에 뿌리내리고, 정책 정당으로 발돋움하려 애썼지만, 갈 길이 멉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정책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지난 해 민주노동당 사업 가운데 성과가 컸던 상가임대차보호법운동의 성공은 해당 부서의 적극성과 상인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민주노동당은 이자제한법이나 경영참가법 입법청원운동도 벌였지만, 이해당사자인 서민층이나 노동계의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진보진영 통합과 당 현대화 

yoon_01_0.jpg지금 민주노동당은 재창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창당은 2000년 4·13 총선 다음 열린 임시 당대회에서 결의된 사안으로 뚜렷한 성과가 없다가, 작년 10·25 보선을 거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작년 11월 민주노동당 재창당추진위,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전국연합 진보정당특위가 토론회를 가졌고, 그 다음 세 조직과 환경운동연합, 한국노총, 자치연대, 청년단체 등 8개 단체가 참여한 간담회가 두 차례 열렸다. 이 자리에서 2002년 지방선거에 공동 대응하는 문제가 논의되었고, 구체적으로는 정책 연합, 공동 브랜드 형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재창당을 위해서는 두 단계가 필요해요. 첫 단계는 사회당과의 통합이고, 다음 단계는 더 많은 노동자, 농민을 당에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진보정당이 두 개로 나눠져 선거에 나오는 것은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예요. 진보정당의 통합은 역사적 책무라는 절박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이 되려면 농민이 참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농의 참여가 요구되고, 이 행보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라도 전국연합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한국노총 조합원의 참여와 지지가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국민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재벌경제체제 타파, 국가보안법 철폐가 필요합니다. 이걸 민주당후보가 할 수 있을까요? (진보정치) 

작년 12월14일 민주노동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당과의 통합 등 재창당을 비롯해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날 회견에서 민주노동당은 지도체제, 강령, 당헌 등 제반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지방선거에 완전개방형 예비선거제를 도입하며, 모든 민주진보세력과 연대해 공동정책개발, 공동후보선정 등 연합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민주진보진영의 단일한 대표성을 갖는 후보를 내보내기 위해 '완전개방형 대선 후보 예비선거' 실시도 제안했다. 이에 대해 12월21일 사회당은 양당 대표 단독 회담을 민주노동당에 공식 제안해놓고 있다. 

민주노동당에 속한 어느 당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정성의 반만 지역 사업에 쏟아도 당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질 거다. 우리 당은 집회에 가면 보이는데 지역에 돌아오면 볼 수 없다.' 월간『말』 편집국장은 어느 칼럼에서 '변화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진보진영의 교조주의를 질타했다. 이런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제는 아직도 당이 수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인지, 아니면 운동단체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관념적인 논쟁에 빠지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정당이 돼야 합니다. 과거 운동권의 양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지요. 당 안에서 논의 과정은 길고, 실천은 짧습니다. 논의하다가 세월 다 보내는 거죠. 당의 현대화가 시급합니다." 

마의 30만 대를 넘어야

10·25 보궐선거에서 영등포와 구로에 나간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3%도 얻지 못했고, 선거 평가를 둘러싸고 당명 개정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명 개정이 재창당의 전제 조건이냐를 논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당명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은 소모적입니다. 당명은 재창당 논의 과정에서 함께 할 당사자들이 다 모여 결정할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진영 통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죠."

민주노동당 당대회는 원래 매년 2월에 치르게 되어 있는데, 올 당대회는 3월16일로 연기되었다. "재창당을 각계에 제안한 상황에서 충분한 논의와 참가를 위해 당대회를 연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어요. 이번 당대회는 선거 대책을 마련하고 후보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사실상의 선거 대회죠. 이미 제안한 비당원들도 참여하는 후보 선출, 예비경선제 등을 제대로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1월에 중앙위원회를 열어 재창당 추진사업을 점검하고 여기서 대선 후보를 어떻게 선출할 지도 다룰 예정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울산에 두 명의 구청장과 전국에 십여 명의 지방의원을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치른 전국 규모의 선거는 2000년 4월 총선이 유일하다. 이 때 민주노동당은 '내분'으로 사실상 당선 가능했던 울산 북구를 놓쳤다. 올해 양대 선거는 민주노동당이 치르는 두 번째 전국 규모 선거다.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얻어야 합니다. 득표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후보를 전국적으로 내는 겁니다. 낼 수 있는 모든 데 후보를 내어 당의 존재를 전국에 알려야 해요. 서울시장 선거에선 의미 있는 득표를 하고, 울산광역시는 당선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야 대선에서 승산 있어요."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대선에서의 승산은 무엇을 뜻할까. "마(魔)의 30만 대를 넘어서는 겁니다." 1992년, 1997년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는 30만 표를 넘지 못했다. 더구나 1997년 선거는 권 대표 본인이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를 거쳐 '국민승리 21'의 후보로 나갔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가 받은 표는 50만 민주노총 조합원 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1997년 봄 민주노총 산하 노조 간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하면 200만 표다.' 그 해 겨울 그 사람은 '기호 4번 권영길'을 찍었을까. 

이십 년은 바라보자

yoon_02_0.jpg4·13 총선에 앞서 민주노동당은 집권 시간표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십년을 보면서 준비해야죠. 영국 노동당은 1900년 결성해 1923년에 집권했고, 대만 민주진보당은 결성 14년만에 집권했습니다. 우리가 못해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월간 말)  

2000년 원내진출, 2004년 원내교섭단체,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이 그 내용이다. "2000년 총선에서 원내진출에 실패했으니 4년씩 늦춰지는 거죠"라며 웃는다. 

"이게 허황한 게 아닙니다. 선거 일정에 매몰된 것도 아니고요. 정당이라면 집권 시간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부질없는 희망을 주자는 게 아니라 당원들의 의식을 고양하고 당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집권 시간표는 중요해요." 

권 대표의 생각으론 오히려 선거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부족한 게 문제다. 이런 일정과 계획이 정당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소 20년을 보면서 준비해야죠. 영국 노동당은 1900년 결성해 1923년에 집권했고, 대만 민주진보당은 결성 14년만에 집권했습니다. 우리는 20년이 넘는 민족민주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정치운동의 토대가 폭 넓게 존재하기에 우리가 못해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 20년이면 긴 시간이다. 더구나 21세기의 20년은 20세기의 100년과 같을 수도 있다. 1980년 창당된 브라질 노동자당(PT)은 올 하반기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브라질의 지방정치와 의회정치에서 노동자당은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정당이다. 1985년 출범한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는 1994년 민주화 이후 집권여당인 ANC가 주도하는 3자 동맹의 중요 멤버로 참여해왔다. 2000년 출범한 민주노동당,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우리라고 못할쏘냐 생각해봄직 하다. 

'비판적 지지론'의 고리 끊어야 

"97년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50년만의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하니 이번에는 DJ를 밀고, 다음에 민주세력이 힘을 합쳐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하자고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실 지난 대선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쳤던 사람들은 여전히 '미워도 다시 한번'을 노래하고 있다. '이회창-이인제' 구도면 관심 없지만, '이회창-노무현' 구도면 밀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노무현이 정치인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고 친노동자적'이지 않느냐, 이회창보다야 낫지 않느냐. 5년 전에 듣던 그 가사에 '김대중'만 '노무현'으로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DJ가 돼야 하니 진보정당은 안되고, 이번에는 이회창이 되면 큰일 나니 진보정당은 안되고, 그렇다면 이번에 민주당이 지면 다음에는 정권 탈환해야 한다고 진보정당은 안 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야말로 '비판적 지지론'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권 대표는 한국 사회의 개혁 과제로 세 가지를 제기했다. 신자유주의 반대, 재벌경제체제 타파, 국가보안법 철폐가 그것이다. 그는 국민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민주당 후보가 할 수 있을까요?"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가 아닙니다. 큰집을 짓기 위한 벽돌이죠. 벽돌을 쌓지 않으면 집을 만들 수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진보를 이뤄 가는 희망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 희망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희망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당은 반드시 희망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뻔한 질문을 던졌다 싶어 최근 들어 신났던 일이 뭐냐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기억에 없네요." 

권 대표는 어느 글에서 스스로를 '3잡(雜) 인생'이라 불렀다. 이십대 중반까지 늘 배를 곯아 아무거나 잘 먹어 잡식(雜食), 책 읽고 싶어 독서반을 할 만큼 아무거나 잘 읽어 잡독(雜讀), 이 생각 저 생각 아무 생각이나 잘 해 잡념(雜念). 이러한 잡스런(?) 삶이 언론사 기자, 프랑스 특파원, 언론노련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국민승리21 대선 후보를 거쳐 오늘의 그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니냐고 그는 썼었다. 

인터뷰 전에 만난 당 실무자가 '오늘이 대표님 환갑'이라고 알려주었다. 중앙당 상근자들과 간단한 점심식사로 환갑잔치를 대신한단다. 원내의석 하나 없는 진보정당의 당수는 나이 육십에 '진보정치'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 신나는 일은 없지만 희망의 깃발을 단단히 부여잡고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