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의 희망을 종이학에 실어

노동사회

노동해방의 희망을 종이학에 실어

admin 0 3,159 2013.05.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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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동지


20세기 노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방향은 '경제진보와 사회진보에 있어 노동계급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물어 가는 세기말에 금융노동자들의 두 차례에 걸친 투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왜 싸웠는가는 잘 모를 겁니다. 투쟁의 내용과 성격을 해고를 막기 위한 구조조정 저지 싸움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발 더 들어가서 볼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정부의 관치금융 정책을 막고, 미국의 초대형 자본들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즉 초국적자본과 미국 정부가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의 관치금융 무대에서 공연되는 매판행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20세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평화를 국가 기능으로 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정착을 들 수 있습니다. 제 말에 이견이 있더라도 레닌도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위한 가장 완전한 물질적 준비이고 사회주의의 입구'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정부의 은행자본 통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며, 국가자본주의에서 은행자본을 효율적으로 산업에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기능입니다. 그러나 관치금융이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IMF가 요구하고, 초국적자본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는 정경유착의 비리에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책실패와 정경유착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자체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공적자금 투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허나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공적자금 투입의 여론무마용 명분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가져갔고, 금융산업 노동자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관치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청사진을 'made in America'로 제시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미국 자본이 이 땅의 미국식 금융시장에 무리 없이 이식될 수 있게 말입니다. 

이 땅에 들어와 있는 해외자본이란 것도 알고 보면 대부분 탐욕스런 벌처펀드(Vulture Fund)입니다. 지금 자본시장은 외국 자본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은행들을 재편하는 촉매제로 국민·주택은행이 합병되었습니다. 합병 국민은행의 주가는 상승했고, 합병은행은 수익성을 위해 기업대출보다는 개인소매금융에 치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행 본연의 기능을 외면하는 것이며, 합병이 지금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70%에 가까운 외국인 주주들의 주가차익과 임원들의 스톡옵션의 한판 잔치에 불과합니다. 합병은 주가 관리를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러나 그 주가 관리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동원증권 사장 재직 시 주가상승이 이어지다가 퇴직 후 주가가 떨어진 것이 그 증거입니다. 미국 월가에서 신임받고 있는 주가관리자는 우리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 금융시장이 더 이상 위험한 임상실험장이 되지 않도록 금융노동자들은 싸웠습니다. 전적으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금융노동자들은 매판 관치금융을 철폐시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개별조직으로는 거대자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21세기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 부의 독점과 인간가치 상실을 막아야 합니다. 초국적자본의 횡포를 계급적 연대로 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작은 지역이나 개발사업장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겠지요. 산별이 뭉치고 총노동이 연대할 때 점점 더 승리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감옥에서 활동가들에게 꼭 당부드립니다. 21세기 노동운동의 성패는 조직 통일과 운동전선의 통합이라고 봅니다. 새롭지 않으면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없습니다. 금융노동자는 이것을 기억하며 계속 싸워나갈 것입니다. 끝으로 감옥에까지 많은 관심과 도움주신 동지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1.12.15

영등포교도소에서 이용득

추신) 
ㅂ 동지. 이 독방은 너무 춥습니다. 손이 시립니다. 이미 귀와 발은 동상에 걸렸습니다. 편지를 간단하게 썼습니다. 일상적인 내용으로 할까하다 금융에 대해 썼습니다. 손이 시리고 귀가 아파 이만 줄입니다. '2001년을 보내면서'를 첨부합니다. 

2001년을 보내면서
감옥생활은 오늘이 가고 내일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석양을 보면서 희망을 떠올리고
낙엽을 바라보며 새봄의 신록을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2001년은 사용하지 못하고 묵혀버린
달력입니다.
해묵은 달력으로 종이학을 접어봅니다.
그것으로 희망을 접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신자유주의·세계화의 깃발만 휘날리고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허공을 헤집고 있습니다.

2001년을 보내면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노동자와
힘없고 소외 받는 민중을 위해
천 마리의 종이학을 이 땅 가득히 날려봅니다.
노동해방 꿈을 싣고
2002년 하늘을 힘차게 날기 바라면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