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뉴라운드와 한국 경제

노동사회

WTO 뉴라운드와 한국 경제

admin 0 3,629 2013.05.08 09:02

 


jdpark_01.jpg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4차 각료회의는 당초 일정(2001. 11. 9∼13)을 하루 연기하는 진통 끝에 뉴라운드 출범에 합의하였다. 이로써 1999년 11월 제3차 시애틀 각료회의의 결렬로 위기에 처했던 WTO는 세계무역의 중심축임을 다시 한번 자임하게 되었다. 시애틀 각료회의가 결렬된 반면에 도하 각료회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이 뉴라운드 합의 결렬에 따른 파국을 염려하여 일정하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각료회의가 결렬된 이유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 대립, 미국과 EU의 갈등에 있었다. 특히 미국이 거의 모든 협상 분야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한 것이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도하 각료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뉴라운드의 성립을 위해 과거와는 달리 개도국에 대해 상당히 배려하는 자세를 보였다. WTO 회원국(중국과 대만의 가입으로 144개국)의 대부분이 개도국임에도 불구하고, 개도국들은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거의 무시되었고, 1995년 WTO 출범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왔다. 이에 대한 개도국의 강력한 반발이 뉴라운드 출범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WTO 도하 각료회의

도하 각료회의는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달리 뉴라운드의 명칭을 '도하 개발 의제'(Doha Development Agenda)로 정하여 개도국과 최빈국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반덤핑 규정을 협상 의제로 삼는 것 자체에 강력하게 반대하던 종래의 입장에서 후퇴하여 일단 의제 채택에는 동의하였다. 대신에 개도국이 반대한 투자, 경쟁정책 등은 1차 협상의제에서는 제외하였다. 반면에 지적재산권 협정(TRIPS)과 의약품 접근에 관한 별도 각료 선언문에서 AIDS 치료제와 같은 의약품을 개도국이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보호에 융통성을 부여했다.

WTO는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면 국가 주권을 침해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무시하고, 환경과 인간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기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애틀 각료회담의 결렬은 WTO가 초국적 자본의 이해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서는 존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도하 개발 의제'는 비록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진행되겠지만, 그것은 결코 그들만의 잔치가 될 수는 없고, 개도국과 NGO의 강력한 도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WTO 가입은 기존의 세력판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도하 개발 의제'는 2002년부터 3년간 협상을 진행하여 2005년 1월 1일까지 종료하기로 합의되었다. 여기서는 농산물, 비농산물, 서비스 분야의 무역자유화, 반덤핑 협정 및 보조금 협정 등 기존 WTO 협정의 개정, 환경의 일부 사항에 대한 새로운 규범수립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싱가포르 이슈(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및 정부 조달 투명성)에 대해서는 2003년 말에 개최될 제5차 각료회의 후 협상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도하 개발 의제'의 앞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시애틀 각료선언문 초안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에 비해 도하 각료선언문은 최대한 각국의 이해 대립을 피하여 추상적인 협상 원칙만을 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본 협상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아직 협상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도하 개발 의제'가 예정대로 과연 3년에 끝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무역주의'는 좋다?

jdpark_02.jpg뉴라운드는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부와 정부출연 연구기관, 그리고 경제인단체들은 한결같이 뉴라운드가 우리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주장한다.  

이들은 자유무역주의를 신봉하면서, 국민후생 개선, 경제성장, 물가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뉴라운드 협상 결과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 분야의 관세율이 30% 감소되는 경우 수출과 수입이 모두 증가하여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1.19% 후생은 1.91%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만, 무역수지(수출-수입)는 17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계량 모형에 의한 추정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선 계량 모형은 변수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것에는 양 또는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주의자들은 뉴라운드에 의해 값싼 농산물의 수입 증가로 농민들은 피해를 입지만 농산물가격의 하락으로 소비자들은 이익을 볼 것이므로 나라 전체로는 후생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즉 가격하락에 따른 소비자 잉여의 증대가 생산 감소에 따른 생산자(농민) 잉여의 손실을 상회할 것이므로 국민 전체로는 후생이 증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계량 모형에서는 오늘날 국제협상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 혹은 다원적 기능(식량안보, 농촌지역사회의 유지, 환경 및 국토의 보전, 문화 및 전통의 계승, 도시인의 안식처 제공 등)은 농산물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완전히 무시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나치게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농촌 인구의 과소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뉴라운드로 국내 농업이 쇠퇴하고 그로 인해 농촌지역사회가 붕괴된다면 그 엄청난 사회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3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뉴라운드로 인한 식량 안보의 위협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누가 득을 보나

자유무역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자유무역주의자들과 달리 거시경제지표의 총량적 개선 효과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늘날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세계무역체제는 국민경제의 안정적이고 지속적 성장,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즉 WTO 체제 출범 이후 동아시아 및 남미의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종속 심화와 국민경제의 불안정성 증대를 가져오고, 노동자의 권리, 인권 및 환경 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유무역의 효과가 산업부문간, 계급간에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이익 배분과 비용 부담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익과 비용이 특정 산업 및 계급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공평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국제 경제 환경이 조금만 나빠져도 곧 동반 불황에 빠지는 허약한 체질을 지니고 있는 우리 경제에게 무역 증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출과 수입 그 자체의 증대가 아니라 수입의존적 수출구조의 개선, 해외 부문과 국내 부문의 연관성 제고 등 경제 구조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뉴라운드가 한국 경제에 미칠 구체적 영향은 현 단계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도하 각료 선언문에 기초하여 추론해 볼 때 그것은 분야별, 계급별로 달리 나타날 것이다. 우선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완화로 수출 대기업의 이익은 크게 증가하는 반면, 내수 의존적이고 경쟁력이 약한 부문인 중소기업과 농업, 서비스부문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이 가운데서 농업의 피해는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료선언문이 농업 부문의 협상 목표를 시장 접근의 실질적 개선, 수출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국내 보조금의 실질적 감축으로 정한 것은 농산물 수출국의 이해를 대폭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농산물 수입국이 주장한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NTC: Non Trade Concerns)은 협상의 핵심사항이 아니라 고려 사항으로 받아들이는데 그쳤다. 각료회의 막판에 "협상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달기는 하였지만 크게 기대할 바는 못된다. 우리 농업은 자연적 제약과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국제경쟁력이 매우 낮다. 따라서 뉴라운드에 의해 농업보호 장벽이 실질적으로 낮아진다면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뉴라운드가 마치 농업부문에만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WTO 가입과 자유무역협정

한편 이번 도하 각료회의의 최대 사건은 중국의 WTO 가입이다. 중국의 WTO 가입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한국경제에 대해 기회와 경쟁의 양면성을 지닌다는 뜻에서 '혼합된 축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영향은 적어도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단기에는 수출 및 투자기회의 증대로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여 많은 산업 분야, 특히 노동집약적 분야는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농업 분야만 보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식량 작물의 수입 증대로 타격을 입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농산물의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뉴라운드는 예정대로 타결된다고 해도 2006년 이후에 발효될 것이다. 그렇지만 뉴라운드는 출범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적지 않을 영향을 주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뉴라운드와 다자간 협상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지역무역협정 체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특히 이미 정부간 협상이 진행 중인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일본, 태국,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은 이른바 국제경쟁력의 제고, 산업구조의 고도화 등을 내세워 지금까지 추진해오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이다. 이른바 '바닥으로의 질주'(race to the bottom)가 가속화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후생 수준도 전반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기업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은행의 민영화, 금융 및 통신시장의 개방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 국제경쟁력 제고를 내세워 재벌에 대한 규제의 완화(재벌규제 정책의 실질적 포기와 재벌강화) 등이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조직해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오늘날 세계사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거부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운동이 날로 힘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 개방적 사고를 하여야 한다. 세계 인류가 서로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적 교류를 확대한다는 의미에서의 세계화는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다. 경제적 교류의 확대는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과 세계의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반대한다. 우리는 인권단체, 노동조합, 여성단체, 환경단체 그리고 농민 조직의 민중적 연대에 기초한 세계화(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부분적 개혁이 아니라 WTO가 민주적이고 공평한 무역기구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WTO 뉴라운드를 빙자하여 국내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려는 지배계급의 의도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