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산별전환 대첩에서 희망 찾기

노동사회

6·30 산별전환 대첩에서 희망 찾기

편집국 0 2,339 2013.05.22 09:41

간만에 목마른 우리 노동판을 달콤하게 적셔주는 단비가 내렸다. 최근 노동운동의 위기를 걱정하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그 단비는 ‘6·30대첩’, 즉 지난 6월30일에 결행된 대공장노조들의 산별전환이다. 지난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이어진 가공할 만한 총파업의 위력을 과시한 이후, 우리 노동운동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공세에 떠밀려 침체일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산별전환의 승리를 계기로 당면한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주체적 조직기반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산별의 대세, ‘분할지배’ 방죽을 뚫다!

대공장 노조들의 산별전환은 여러 측면에서 우리 노동운동을 뒤덮었던 먹구름을 걷어내는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우선, 지난 1998년에 보건의료산별노조가 시동 걸었던 산별노조 건설의 흐름이 최근 들어 답보상태의 어려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와중에,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산하 대기업노조들이 대거 산별노조에 가세함으로써 기업별 노조운동의 오랜 굴레를 뛰어넘는 새로운 산별노조운동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도록 하였다. 특히 국내 노동운동 및 노사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차·기아차·대우차노조와 같은 대표적인 대공장 노조들이 이번 산별전환에 앞장섬으로써 여타 제조부문 대공장노조들과 공공부문과 민간서비스부문 등 다른 업종영역, 더 나아가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들에게까지 소위 ‘산별전환의 도미노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비로소 산별노조운동의 완성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금속산업을 중심으로 전개된 성공적인 산별전환을 계기로 중소공장 위주의 현행 ‘미니’ 산별노조가 대공장들을 아우르는 대산별노조로 탈바꿈될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체계에 의해 조장되어왔던 기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조직이기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실천적 기반이 형성되었다. 산별노조가 등장했음에도 지난 10년 동안 대공장들의 기업별노조가 엄연히 존재함에 따라, 우리 노동운동은 소속 기업규모와 고용상 지위에 의해 심각하게 파편화되는 소위 ‘연대성 위기’를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이 시장의 ‘분할지배’ 논리를 결연히 거부하는 산별전환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대공장이든 중소사업장이든, 그리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구분 없이 하나의 산업에 소속된 모든 노동자들이 명실공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대변될 수 있는 진정한 연대성 구현의 기반을 확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산별 조직체계의 구축을 통해 대공장 조합원들과 중소공장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해온 차별의 간극을 줄여갈 수 있는 필요조건이 확보되었다. 또한 이들 취약노동자집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미조직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소속기업과 관계없이 노조의 조직화를 보다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셋째, 대공장 노조들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산별노조체제로 이행함으로써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체계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작금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적 개방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제양극화, 산업공동화, 일자리 없는 성장, 그리고 비정규 노동의 양산과 차별 등과 같이 산적한 당면문제들이 최근 수년 동안 노동운동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업장 울타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체제에 기반하는 총연맹 조직들이 힘 있는 투쟁이나 구속력 있는 사회적 교섭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노동운동이 산별노조체제를 한 단계 진전시킴으로써 산업 또는 사회적 수준의 여러 도전들에 대해 전문적 정책개발과 초기업적인 투쟁전선으로 응전할 수 있는 전략적 토대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강력한 대산별 노조의 등장은 고군분투하는 민주노동당과 안팎으로 조응하여 당면한 노동·경제 현안들에 대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보다 힘 있게 대변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주체들의 전략적 단결과 적극적 대응 돋보여

대공장노조 조합원들이 산별전환을 선택한 배경이유로서, 그들의 위기의식을 조장한 여러 외적 여건들이 주되게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노동양극화 심각성의 공론화, 이와 관련하여 대기업노조들의 조직이기주의 행태에 대한 비판여론의 확산, 그리고 2007년 초 ‘사업장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금지’를 시행하기 위한 노사관계 제도 틀의 재편 등이 그에 해당된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이번 대공장노조들의 산별전환이라는 쾌거를 성사시킨 배경에는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그리고 대공장노조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이 보여준 혼연일체의 주체적 노력이 크게 기여하였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난 수년 동안 날로 거세지는 외부의 도전들에 맞서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실망스러웠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노동운동 위기론’이 안팎으로 드세게 제기되기까지 하였다. 구체적으로, 상급단체의 지도부는 급박하게 노동상황이 전개됨에도 효과적인 ‘전략대안’과 확고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 한 것으로 지적되었으며, 심지어 노동운동의 생명인 ‘도덕성’까지 상처받는 사건들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대공장 노조의 지도자들은 날로 거세지는 시장경쟁의 지배논리에 불안해하는 조합원들의 실리적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하여, 노동운동의 대의를 내세우는 구호와 달리 현실에서는 사업장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일상적 노조활동의 타성에 매몰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팎의 어려운 현실에 처함에 따라 노동운동 내부에 보다 강고한 단합과 일치된 결의가 요구되었으나, 상급단체나 대공장노조의 현장에서는 오히려 권력헤게모니와 주의주장에 사로잡힌 분파적 갈등이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적전분열의 뼈아픈 사태들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공장노조들의 산별전환은 그 결과 못지않게 추진과정을 통해 최근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던 패배주의와 정파분열 그리고 대중추수주의에서 탈피하는 실천적인 계기를 보여줬다는 데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 1996~97년 총파업을 연상시키듯 이번 산별전환의 추진과정에서 민주노총의 각급조직 주체들은 일사분란하게 제 몫을 다하면서 조합원 대중들의 표심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의 침체 분위기를 일소하는 값진 승리를 쟁취하였던 것이다.

민주노총 및 금속연맹의 지도부는 산별전환의 당위성과 밑그림을 조합원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개별 사업장 단위로는 각개격파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기업별 노조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총궐기 방식으로 조합원투표 일정을 전략적으로 배치·전개함으로써,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산별 차원으로 그 지지여론의 봇물을 터트리는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대공장 노조의 지도자들 역시 스스로의 기득권을 포기하였다. 게다가 산별전환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헌신적인 현장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이번 성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그 공을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이전의 지나친 분열경쟁으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여러 정파들이 이번에는 하나된 목소리로 산별전환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공동보조를 보인 것은, 산별로 가는 길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필요한 갈등을 적잖게 거둬준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희망의 나라’ 이끄는 산별노조운동이 되기 위하여      
 
6·30 산별전환의 승리는 지난 시절 정치권력에 의해 강요되었고 최근에는 시장권력에 편승하여 노동진영의 분열을 더욱 부채질하던 기업별 노동조합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우리 노동조합의 주체적인 힘으로 노동체제의 변동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역사적인 쾌거일 뿐 아니라, 세계화의 물결에 떠밀려 날로 파편화되는 세계노동운동에 비추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번 승리는 산별노조에 기반하는 새로운 노동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작은 전진’을 이룬 것일 따름이라는 점에서 지나친 승리감의 도취는 금물일 것이다.

산별노조체제로의 이행으로 현재의 노동위기가 자동적으로 해소되거나 계급적인 노동운동의 부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산별노동운동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들이 첩첩산중으로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사업장의 경계와 고용 지위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적합한 조직구조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기존 기업별 노조들에 편중되어 있던 인적·재정적 조직자원을 산별체제에 걸맞게 새로이 편재하는 것, △현장대중의 참여/동원과 산별중앙의 집중성을 민주적으로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는 조직운영방식을 개발하는 것, △산별체제의 사회적 책임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전문 정책역량을 육성·강화하는 것, 그리고 △산별교섭구조를 관행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앞두고 있다. 이에 더하여 복수노조 및 전임자 관련 노사관계 제도의 개편, 그리고 정치권력의 보수화와 경제질서의 개방 확대(예: 한미 FTA 추진) 등으로 전망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환경 여건 역시 산별노조들로 하여금 차분히 제자리를 찾아갈 만한 여유를 주지 않고 지난한 투쟁의 가시밭길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산별노조운동이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6·30 대첩은 우리에게 소중한 희망을 안겨준다. 날로 강고해지는 시장독재의 힘에 맞서 우리 노동자들이 그들의 차이를 넘어 거대한 연대의 힘으로 뭉치기 시작했다는 그 변화의 움직임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노조조직 주체들이 계급적 헌신과 단합 그리고 슬기로운 전략으로 일구어낸 그 작은 승리에서 우리 노동운동의 부활을 맛보게 된다. 이 승리의 도취감 속에서 오늘은 우리 노동진영에 햇살 같은 희망을 되찾아준 6·30 대첩의 기쁨을 만끽하고, 내일은 산별노조운동과 함께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나라를 안겨주는 원대한 꿈을 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