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일간의 한국일보노조파업

노동사회

32일간의 한국일보노조파업

admin 0 3,618 2013.05.07 11:25

지난 7월 20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한국일보노조는 파업 32일째인 8월 20일 회사측과 대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하고, 임단협 재개를 결정했다. 전사업장 직장폐쇄 속에서 지면축소와 파행인쇄를 무릅쓴 노조의 파업도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야 하는 힘든 고비가 남아있다. 임단협 결렬에서 비롯된 한국일보노조의 투쟁과정을 짚어본다.

파업 돌입까지의 경과

한국일보노조는 전체 1,100여명 중 30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국 조합원 8명을 제외하고 모두 제작국 소속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서울본사, 평창동, 성남, 경남 창원공장에서 전산제작, 윤전부, 판매, 발송, 총무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원래 편집국 조합원들이 많았으나, 지난해 초 편집국에 연봉제가 시행되면서 159명이 탈퇴하고, 8명만 남았다. 또, 노조에는 노조규약에 가입대상으로 되어있는 27명의 한국인쇄(주) 조합원들도 있다.

한국일보노조는 지난 4월부터 장씨 일가의 사재출연을 통한 임금인상과 퇴직금 원상회복, 소유와 경영의 분리, 족벌 사주일가의 즉각 퇴진, 편집권 독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임단협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경총에 교섭권 및 체결권을 위임한 사측은 6차례의 본교섭과 8차례의 실무교섭 동안 노조가 요구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회사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지난 6월 14일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15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조정기간을 10일 연장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어 2차 조정회의에서 조정결렬을 선언했다. 

한편, 노조는 이미 6월 22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파업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다(조합원 282명 중 267명(94.7%)이 참가, 254명(95.1%) 찬성, 12명(4.5%) 반대). 교섭 결렬에 따라 노조는 7월 6일 12시간 시한부 파업과 7월 10일 24시간 파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파업 후 서울노동청장이 마련한 자리를 통해 16일부터 20일까지 교섭이 재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노조는 사측이 6년 이상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다른 요구사항에서 크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회사가 10년 이상만을 고집하고, 7년 이상은 연말에 선별 수용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7월 20일 노조는 무기한 3차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의 3차 파업에 대해 회사측은 7월 22일 오전 8시부터 전산실이 있는 본사 신관과 윤전기 9대 중 4대가 설치된 성남공장에 직장폐쇄를 발표했다. 서울본사, 평창동, 성남, 경남 창원공장 등 4곳의 제작국 조합원들이 7월 23일 본사로 상경했으며, 대체근로를 투입한 성남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공장은 멈춘 상태다. 또, 7월 24일 지면축소와 파행인쇄 등이 계속되는 것을 염려한 노조가 파업참가 조합원의 업무복귀를 사측에 제시했지만 사측은 오히려 (주)한국인쇄기술 소속 조합원 27명을 해고하고, 파업에 참가한 한국일보 소속 조합원 270여명 전원이 업무복귀해도 대기 발령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측의 직장폐쇄, 해고 및 대기발령 등의 조치에 따라 제작국 차장급 이상 사원들도 노조에 가입하여 282명이었던 조합원이 8월 1일 현재 317명에 이르렀다. 

노조의 요구

한국일보노조의 4대 요구사항은 장씨 일가 사재출연 후 퇴진, 질권으로 저당잡힌 사원퇴직금 원상회복, 주주들이 대여해간 가지급금 환원, 6년차 이상 비정규직 단계적 정규직화다. 

① 장씨 일가 퇴진과 비리척결

여러 요구들 중에서도 한국일보노조의 가장 시급한 요구는 사주비리를 척결하고, 경영투명성을 보장받아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1999년 말 부채 총계가 5,590억원에 달하고, 그 중 단기차입금이 3,922억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 한국일보 회장인 장재국을 비롯한 장씨일가의 퇴진을 요구하게 된 배경은 지난 7월 5일 한국일보 주주 11명을 고발한 언론노조 고발장에 잘 나타나 있다. 언론노조는 이들을 '업무상 배임 또는 상법상의 특별배임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는데, 고발장을 보면 11명의 한국일보 주주들이 지난 몇 년간 심각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1991년부터 최근까지 계속 한국일보와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사의 재산을 단기대여금(내용상 가지급금)의 명목으로 사용했음이 나와있다. 또, 이들은 한국일보사의 회장, 이사,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일보 소유의 재산을 단기대여금이나 가지급금 명목으로 빼내 1999년 현재 이 규모가 229억6천6백여만원에 이르렀다. 

지난 6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에도 한국일보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발표에 따르면, 장재근 대표이사 등 한국일보 사주 일가는 회사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회사에 넘기거나, 회사에 근무하지 않으면서도 봉급과 해외출장비를 받았다. 회사는 마치 사주 일가가 빌린 돈의 이자를 갚은 것처럼 장부에 기재했고, 1996년∼1997년 해외유학 중인 사주 가족 2명과 사주의 할머니, 어머니, 고모 등이 마치 회사에 근무한 것처럼 해 이들에게 봉급명목으로 4억원을 지급했다. 1997년 10월에는 사주의 일본 출장비 명목으로 2300만원을 지급하는 등 사주 가족의 해외여행 경비 5억원도 회사가 부담했다. 서울지방 국세청은 한국일보사와 관련기업 13곳, 사주일가 12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525억원의 탈루소득을 적발했고, 모두 148억원을 추징할 예정이다. 

사주일가의 비리는 예전에도 드러난 바 있다. 지난 1996년에는 한국일보 장재국 회장이 미국 라스베가스 미라지 호텔에서 186만여달러를 빌려 사흘만에 다 써버린 도박사건이 있었으며, 2000년에는 장강재 전 한국일보사 회장의 아들인 한국일보사 최대주주인 당시 장중호 이사가 병무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노조는 1999년 말까지 총 부채가 43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주들이 가지급금 명목으로 가져간 회사돈 230여억원의 돈을 되돌려놓을 것을 주장했다. 

② 사원 퇴직금 원상회복과 경영정상화

사실 한국일보사 사주일가의 비리와 경영악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일보사가 교보생명에서 빌린 500억원의 부채상환을 독촉받자 사주는 1997년 연말 부채연장을 목적으로 노조 동의없이 퇴직보험에 들어두었던 230여억원에 달하는 사원들의 퇴직금을 맡겨, 퇴직금 모두를 질권으로 저당 잡히게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일보 전 사원들은 현재 퇴직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 1998년 6월 한국일보노조는 회사로부터 받지 못한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 492명의 서명을 받아 회사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내 6월 16일 법원으로부터 가압류 신청을 받아낸 일도 있었다. 1997년 말 이후 상여금 350%와 1997년 연월차 수당 등 모두 30억원의 직원임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노조는 당시 주주들이 빌려간 회사돈 126억원을 갚고, 광릉레저개발 등 관계회사에 빌려준 256억원을 찾아올 것과 저당잡힌 사원들의 퇴직금을 원상 회복하라고 요구했다. 회사 부동산을 가압류하면서까지 노조는 회사측에 경영개선을 독촉한 것이다.

노조는 장씨 일가 주주 11명이 한국일보사의 주식 중 90% 가량을 보유하고, 이들이 무책임한 경영을 계속하는 한 한국일보사가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노조는 장씨 일가가 조속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며, 질권으로 저당잡힌 전 사원들의 퇴직금을 원상회복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노조는 7월 말부터 50억씩 4번에 걸쳐 오는 2002년 연말까지 모두 200억원의 돈을 예치해 퇴직금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고 요구했다. 

③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한국일보에는 500여명의 비정규직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입사 후 6개월이 지나면 대체로 정규직원으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 10년 넘게 근무해도 비정규직에 머무는 사례가 빈번해졌으며, 5년차 비정규직 조합원의 월 평균임금은 90만원대에 불과한 형편이다. 주로 제작, 총무국, 전기, 판매 등에 종사하는 이들은 정규직과 동일한 근무를 하면서도 임금이나 복지혜택에서 차별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만 5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회사에 요구했지만, 회사는 10년 이상 직원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7년 이상 10년 미만인 비정규직은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노조가 3차 파업에 들어간 것도 회사와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이유가 크다. 노조는 20일 교섭에서 6년 이상인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한다면 퇴직금 원상회복과 임금인상률, 가지급금 환원에 대해서도 대폭 양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10년 이상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7년 이상은 선별수용이라는 기존의 안을 고집한 것이다. 
이밖에도 노조는 임금 10%인상과 편집권 독립 및 지면사유화 중단, 노조를 포함한 경영 정상화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섭재개와 앞으로의 과제

8월 20일 오후 3시, 회사측의 대화제의에 따라 임대호 위원장과 장명수 사장은 30분 동안 협상을 전개했다. 한국일보노조는 같은 날 오후 7시부터 대의원대회를 개최한 결과, 대의원 24명 중 찬성 20표, 반대 4표로 협상안을 통과시키고, 오후 9시 회사측과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 내용은 △노조의 쟁의행위 종료 및 종료 후 2주간 재파업 중지와 회사의 직장폐쇄조치 철회, △본사·평창동·창원공장 조합원은 8월 22일에 원직복직, 성남공장 조합원은 8월 28일 복귀, △1일 1회 성실교섭, △쟁의행위로 인한 징계 및 해고금지 등 4개 항목이다. 한국일보노조는 파업종료를 선언하고, 교섭재개에 들어갔다. 이제는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를 해결해야 하는 더 힘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투입을 일삼은 회사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은 상황에서 회사의 성실교섭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한국일보노조 홈페이지 http://hankook-nojo.org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