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와 민주노총

노동사회

6.4 지방선거와 민주노총

구도희 0 3,576 2014.07.08 11:30
 
정치방침 없이 치러진 선거
현재 민주노총에는 정치방침이 없다.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그 이후 이어진 합당과 재분당의 과정을 거치면서 받은 깊은 상처만 있다. 오랜 공백을 거치고,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하반기부터다.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가진 채 조심스레 논의가 진행되었다. 6.4 지방선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그 때부터 시작되었고, 여러 가지 논란을 수렴하여 겨우 선거방침만을 결정할 수 있었다. ‘정치방침 없는 선거방침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은 정치방침을 가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문구 속 정치방침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고, 전망을 함께 열어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수차례 회의 자리에서 밝힌 것처럼, 내년 즉 ‘민주노총 창립 20주년’이 되는 2015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아래로부터의 충분한 공감, 내부 논란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살아있는 정치방침’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6.4 지방선거는 애초부터 한계를 서로 인정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도출하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선거가 아니라 정치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중장기 전망 속에서 선거에 임하려 했다. 그리고 이제 선거가 끝났다. 
 
비참을 넘은 참담한 결과
예견된 결과이긴 하다. 처음 지방선거방침을 논의하면서 주체상황을 진단했었다. “민주노총은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이후 정치사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노력, 통합진보당의 창당 과정 등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거나 배제되었으며 이로 인해 노동정치에 대한 냉담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로 인해 가맹·산하조직의 정치사업이 거의 정지 되다시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들의 난립으로 인해 현장도 어수선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해도 안 된다’라는 식의 좌절이 크다. 한번 돌아선 조합원의 마음을 모으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안의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위 사업장의 정치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많은 지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인정하면서 출발했다. 
이처럼 현장 조합원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는 진보정당의 분열, 선뜻 어느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수 없었던 간부들의 상태로 보았을 때 선거 패배는 필연이었다. 조합원들인 민주노총 후보는 164명 중 27명 당선으로 16%만 당선되었다. 진보정당 후보들인 민주노총 지지후보는 모두 466명이 출마하여 32명만 당선되어 당선률은 6% 정도다. 
분열되어 있는 진보정당을 모두 합쳐도 이번에 당선된 광역·기초의원은 겨우 55명이다. 지난 2002년 갓 탄생한 민주노동당이 3회 지방선거에서 당선시킨 45명에 가깝다. 그러나 당시 2명이었던 기초단체장이 이번에는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내용은 10년 전 선거에 못 미친다. 통합진보당은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34명, 정의당은 기초의원 11명, 노동당은 광역의원 1명과 6명의 기초의원을 당선시켰다. 전국적으로 보면 광역의원은 705명 중 1명이고, 비례의원 84명 중 3명으로 0.5% 수준이다. 기초의원은 전체 2,898명 중 51명으로 1.76%다. 가히 절망적인 상태라 할 수 있다.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는 객관적으로 실종되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분노스러운 집권 여당, 기대하기 어려운 무능한 야당”이다. 
 
민주노총의 선거 방침은 어땠나
민주노총은 이번 지방선거방침으로 네 가지를 정했다. △정치위원회 복원과 지역사업의 토대구축, △통일적인 지방선거 대응 추진, △교육감 선거에 대한 전 조직적 대응 강화, △당면 투쟁과 결합한 지방선거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를 남긴 것은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이다. 전국 교육감 17명 중 13명이 진보교육감이다. 나 역시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후보의 선거본부에 파견되어 상임선대본부장 역할을 했다. 인천, 경기, 서울, 경남, 울산 등 많은 지역본부에서 이와 유사한 활동을 전개했다. 정당 소속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임 진보교육감들이 보여 준 모범적 활동이 있었기에 현장 조합원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민주노총이 기울인 교육감선거에 대한 집중이 과소평가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위원회가 각 단위에서 복원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방선거 대응을 통해 이후 지역사업의 토대를 만들어 낸 점도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적인 지방선거 대응은 전국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최소한 선거구를 조정하여 진보정당 후보들 간의 경쟁을 막아보고자 했지만 그조차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당선가능성이 높은 비례후보를 조정하는 것은 애시당초부터 불가능했다. 선거가 끝난 후 지난 6월17일 열린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서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조합원의 냉소를 확인한 선거”, “조합원들에게 누구를 찍어달라고 하기 어려운 조건”, “완전히 끝을 본 선거”, “분열과 혼란에 대한 안타까움”, “진보세력 전체의 비판과 성찰 필요” 등 이구동성의 평가가 이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된다”는 말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은 당면한 투쟁과 결합되는 선거를 추진했다. 구체적으로는 쌍용자동차의 평택을 비롯 용산, 강정, 밀양 등의 지역에 전략후보를 내는 방안을 검토했다. 결과적으로는 무산되었다. 코오롱, 상신브레이크 등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일부 후보가 출마했으나 전국적인 대응은 어려웠다. 또 철도와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투쟁주체와 결합을 모색했으나 그조차 어려웠다. 결국 선거는 선거대로, 투쟁은 투쟁대로 진행되었다. 
 
선거방침을 둘러싼 논란들
최소한 공동대응을 위한 선거방침이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논란이 진행되기도 했다. 중앙위원회에서 쟁점이 된 것은 “1명을 선출하는 선거구에 복수의 민주노총 (지지)후보가 출마하는 경우 모두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었다. 현재 진보정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과 최소한 조합원들의 혼란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되어 두 차례 회의를 거쳐야 했다. 후자로 입장정리는 되었지만 지역에 따라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곳은 울산과 전남이었다. 울산은 새정치민주연합과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로, 전남은 민주노총 후보가 다수 있었음에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한 지역본부 대의원대회의 의결을 이유로 통합진보당 후보만 홍보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또 6개 진보정치세력에 속해야 민주노총 후보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무소속 후보는 제외시킨 것도 논란이 되었다. 애초 취지야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이후 민주노총의 정치활동이 진보정당 혹은 정치세력을 통해 이뤄지도록 규제를 하기 위함이었지만,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기도 했다. 모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최소한의 선거방침’을 통해 하나의 룰을 정한 것이긴 했지만, 끊임없이 다양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가맹조직과 산하조직 간 이견이 없어야 민주노총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했지만 추천 중복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후 정치방침을 정하면서 정리해야 할 과제가 많아진 셈이다. 
 
노동자 정치 복원 및 조합원 정치활동 강화할 것
전체적으로 진보정치세력의 현저한 후퇴를 낳은 선거로 평가하고 있다. 단지 선거 결과만이 아니라 애초 목표로 삼았던 많은 부분이 숙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많은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난 선거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힘이 집중된 교육감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결정과정에 보다 많은 노력과 집중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총은 단지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해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이후 민주노총이 가져야 할 정치방침을 수립하는 중장기 과정의 일환으로 평가를 진행하려 한다. 진보정치의 좌절에 대해 반성하고,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려 한다. 2015년 민주노총 정치방침 수립, 2016년 총선에서의 통일적 대응 모색과 이를 통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단일한 대응이 목표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선거대응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자 정치를 복원하고, 조합원들의 정치활동을 강화하는 생활정치와 지역정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보여 주었다. 박근혜 정권은 끊임없이 이윤을 위한 규제완화, 민영화와 저항세력의 중심인 노조탄압을 추진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부재는 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과 고공농성 등 극한적인 투쟁을 불러오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는 먼 미래의 것이 될 수 없다. 자본의 탐욕과 보수우익세력의 기만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의 꿈은 포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전 민주노동당이 그랬듯이 단결된 노동자의 힘만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가능케 할 것이다. “비록 예견하였으나 우리는 ‘참패를 예견했다’는 쉬운 말로 방관자적 입장에 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평가가 무거운 이유다(노동․정치․연대의 6.4 지방선거 논평 중에서). 진보정당들은 진보정당대로, 민주노총은 민주노총대로 깊은 성찰을 통해 이후 길을 찾아야만 한다. 
참담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 원인과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극복하느냐 못하느냐는 온전히 주체들의 몫이다. 길을 새로 찾을 때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망가져 있는 길을 어떻게 보수하고 수선할 것인가도 알고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냉정한 지방선거 평가를 통한 이후 대안 모색을 예정하고 있는 이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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