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을 깬 부산지하철노조 간부교육

노동사회

통념을 깬 부산지하철노조 간부교육

구도희 0 5,045 2014.05.09 11:45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노조간부교육 
“2박 3일? 너무 긴 거 아냐?” 처음 2014년 간부교육계획이 알려졌을 때 간부들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인 것은 교육기간에 대해서였다. 노동조합이 집행하는 간부교육이라 해 봐야 1박 2일 수련회에서 반나절 정도 교육받은 기억밖에 없는 간부들로서는 2박 3일 동안 교육을 한다고 하니 놀랄 만도 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간부교육의 강도가 갑자기 이렇게 세진 이유는 일단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우리 노동조합은 새로운 노동조합 세대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기존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조직하려면 새로운 세대에 맞는 문화로 다가가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간부들이 바뀌어야 한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새로운 간부교육은 새로운 노동조합세대를 위한 시도인 것이다.
새로운 교육은 먼저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통념을 깼다. 낮에 몇 시간 동안 주입식 강의를 듣고 저녁에 술자리로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관례인 기존 방식의 1박 2일 수련회로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구성해도 관성적 틀을 깨기 어렵다. 따라서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통해 교육 내용을 완전히 재구성할 수 있었고, 교육에 대한 간부들의 기대도 새로워졌다. 이번 간부교육이 진행된 경주드림센터의 교육장은 지금까지 노조의 교육공간에 대한 투자 중 가장 큰 투자였다. 호텔 컨벤션센터 수준의 교육장은 간부들에 대한 노조의 기대를 표현했고, 간부들은 그에 호응해 열의를 가지고 교육에 참여했다. 
사진: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간부교육에 참가한 노조간부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토론을 통해 풀어가는 삶의 고민들
간부교육 첫날인 2014년 3월11일 오후 1시에 간부들이 교육장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문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 교육생들은 원형의 테이블에 착석했다. 높이 솟은 천장과 바닥에는 카펫이 깔린 공간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정면의 거대한 스크린에는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교육을 알리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교육위원들과 사무국이 두 달간 준비한 새로운 간부교육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교육은 입학식부터 새로웠다. 교육의 취지와 목적을 말이 아닌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동영상은 개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협업으로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효과도 컸다. 2박 3일간 집단두뇌를 가동해보자는 메시지였다.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는 사회자로부터 노동조합 조끼를 벗어달라는 주문이 나왔다. 조끼가 교육에서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프로그램인 정승호(재미있는 교육컨설팅 대표) 강사의 ‘반갑습니다’는 교육을 시작하기 전 교육생 간에 마음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정승호 강사의 사회로 가위바위보, 스티커 붙이기 등의 게임이 진행되자 교육생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2시간 뒤에는 교육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2박 3일 간 교육을 위한 예열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교육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토론시간이다.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을 통해 조합간부로서의 마음과 자세를 다지기 위한 것인데, 그 전에 공유정옥 동지와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이는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의 삶을 살아가는 공유정옥 동지와 돈벌이가 신통치 않은 마르크스 연구에 평생 몰두하는 강신준 교수의 특별한 삶에서 토론의 단초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조합간부들의 공감토론이 시작되었다. 교육생들은 제시된 다섯 개의 주제로 토론을 벌였고, 끝난 후에는 토론 결과를 정리해 무대에서 각 조별로 발표했다. 교육생에게 제시된 5개의 주제는 교육위원들의 열띤 토론을 통해 정해진 것들로, ‘노조 간부활동을 하면서 좋은 가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라거나 ‘새로운 뒤풀이 방법은 없을까요?’ 등 우리의 삶과 닿아 있는 고민들이었다. 
 
사진: 노조간부들이 '런닝맨' 프로그램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일체감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교육
둘째 날 아침 8시에 첫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의 첫 프로그램인 ‘런닝맨’은 방송사 유명 프로그램의 이름과 똑같은 것으로, 내용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각 조들이 ‘스피드퀴즈’, ‘줄넘기 10번 먼저 하기’ 등 10개의 미션을 경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교육생들은 이른 아침에 땀깨나 흘렸다. 런닝맨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생들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고, 둘째 날 교육을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점심시간을 빼고 장장 4시간 동안 ‘상상카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상상카페는 토론 프로그램이지만 전날의 공감토론과는 진행방법이 달랐다. 토론조를 고정해 토론하는 게 아니라 40분마다 조를 바꿔 총 3번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공감토론이 노동조합 간부가 직면한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이라면 상상카페는 ‘미조직 서비스지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노동자의 정치 참여가 높아진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등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넘치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었다. 
또한 공감토론 발표 시 너무 큰 무대와 스크린 앞에서 발표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상상카페 발표에서는 이 문제가 해소되었다. 발표자들은 15초 단위로 키워드만 띄운 스크린 앞에서 전날과는 달리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몇 분 안에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스크린에는 간략한 내용을 띄워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둘째 날의 강연은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의 박대용 기자가 맡았다. 얼마 전 뉴스타파에 합류한 박대용 기자의 강연 주제는 뉴스타파였다. 최근 국정원이 검찰로부터 두 번의 수색을 받았는데, 그 계기가 모두 뉴스타파의 취재로 인한 것이었다는 얘기는 새삼 놀라웠다. 현재 뉴스타파 후원은 3만 명으로, 부족하지만 기업․정부기관 광고에 손을 벌리지 않고 취재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10만 명이 후원해 100명의 기자들이 활동하는 언론사를 만들고 싶다는 박대용 기자의 포부는 교육생들의 가슴도 뛰게 만들었다. 
가장 호응이 좋았던 교육 프로그램은 마지막 시간에 배치된 ‘와락’이었다. 사회자의 말에 따라 몸을 움직이던 교육생들의 몸짓은 어느새 커져 있었고, 주변을 신경쓰지 않은 채 혼자만의 신명을 느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와락의 ‘힐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몸을 맘껏 내지른 적이 없었구나’라는 각성도 하게 해주었다. 
3월13일 오전 10시에 3일간의 교육을 마치는 졸업식을 열었다. 졸업식 전에 2박 3일간의 교육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했다. 동영상으로 시작한 교육이 동영상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교육생들은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적어 타임캡슐에 넣었다. 타임캡슐에 넣은 편지는 간부들이 임기를 마칠 때 개인별로 보내줄 예정이다. 시상식과 시상소감 발표가 끝나고, 교육생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노동가요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를 불렀다. 그 사이 교육생들의 편지가 담긴 타임캡슐이 이의용 노조위원장에게 전해졌고, 2박 3일간의 교육은 그렇게 끝났다. 
 
새로운 교육을 위한 첫걸음, 참여하는 교육
처음에는 노동조합의 파격적인 새로운 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러모로 많았다. 그러나 교육이 끝난 후 이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교육 후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평가를 압도했다. “교육의 높은 밀도에 압도당했다”는 말도 들었다. 조금의 공백도 남기지 않은 채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시나리오처럼 꼼꼼하게 채운 덕분이었다. 교육생들이 느낀 교육의 밀도는 2달간의 준비와 그 과정에서의 토론 및 꼼꼼한 리허설의 결과였다.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도 밀도 높게 활용했다. 교육생들에게 첫날 교육에서 느꼈던 점을 쪽지에 적어 강당 벽에 붙이게 했다. 또한 강당 뒤쪽과 바깥 복도에는 각 조의 토론 결과를 대자보처럼 붙였다. 테이블에서의 토론과 무대에서의 발표를 통한 ‘점과 선의 소통’에다, 쪽지와 대자보로 ‘면의 소통’까지 보탠 것이다. 
외부참여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공운수연맹에서 파견된 2명의 교육진행자가 테이블 사이를 돌며 토론의 진행을 도왔고, 타 지하철노조에서 온 조합원 몇 분이 교육에 함께 참여했다. 외부 존재는 교육을 좀 더 새롭게 느끼게 했고, 교육생들에게 교육 참여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2014년 간부교육의 성과를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한다. 처음 교육을 기획하면서 가르치려는 교육이 아닌 참여하는 교육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앞으로 참여의 측면은 더욱 강화할 것이다. 강사와 프로그램도 교육 대상자인 간부들이 주도적으로 선정하게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노동조합간부 교육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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