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생활임금에 주목하라

노동사회

6.4 지방선거, 생활임금에 주목하라

구도희 0 4,215 2014.05.07 04:23
  
생활임금이 6.4 지방선거에서 주요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공약으로 생활임금 정책을 제기하였고, 많은 야당 후보자들이 생활임금 조례제정이나 제도 도입을 공약하고 있다. 소위 ‘워킹푸어(working poor)’ 계층에 대한 선심성 공약으로 폄하하는 정치인들도 있지만, 생활임금 제도는 사회가 나아갈 경제운용 전략과도 연결되어 그렇게 가벼이 볼 수 없는 사회경제적 함의가 있다. 우리 사회는 재벌․대기업의 투자와 낙수효과에 의존하는 ‘대기업 프렌들리’ 경제전략의 실패와 참담한 부작용을 겪으면서 경제적 약자의 소득증대를 통한 내수경제 활성화와 대기업 중심 수출경제의 동반성장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내수경제 활성화와 소득주도 경제성장 전략이라는 큰 방향성 속에서 생활임금의 역할과 기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채’ 주도의 성장과 ‘소득’ 주도의 성장
신자유주의적 국가운용전략은 각종 규제완화와 시장자율을 이념적으로 지향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탈락하는 신빈곤층의 증가와 소득과 부채, 자산의 불평등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 심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시장방임 경제정책으로 인한 사회양극화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으로 생산적 복지, 맞춤형 복지 등의 복지정책을 주창하였지만, 실제로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가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주로 금융지원정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전월세난이 심각하면 전월세 대출을 수월하게 하고, 각종 투기억제 정책의 해제로 집값이 상승하면 주택담보대출을 수월하게 하여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자 신용카드 사용한도 규제를 폐지하고 신용카드 사용을 확대하여 가계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도록 한 결과,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하고 본격적인 가계부채의 급증현상이 시작된 것이 한 예일 것이다. 이렇게 부채를 통하여 가계의 소비를 늘리는 정책은 단기간에는 내수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를 늘리고 가처분소득을 줄여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장기적인 내수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이 이러한 부채주도 성장과 대비되는 소득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2015년까지 법정최저임금을 현재보다 20% 이상 높은 시간당 9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부 기업들은 이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도 2011년 3월 ‘제12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에서 내수확대를 성장 전략의 주요 축으로 설정하고, 소비증대를 내수확대 전략의 중점으로 설정했다.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임금배증(賃金倍增) 계획을 추진하여 2015년까지 노동자 평균임금을 2010년 평균임금의 2배 수준으로 인상하려 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제안하는 임금주도 성장정책(Wage-led growth)은 부채주도식 경제성장과 대비되어 내수경제 활성화를 통한 내수와 수출의 동반성장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계소득 늘리는 경제활성화 전략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려면 가계의 부담을 낮추고 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 가계의 부담을 낮추려면 1,0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원리금 부담을 낮추기 위하여 파산․회생 등의 채무조정을 활성화하고, 3대 가계부담인 주거비(월세), 교육비(대학등록금), 의료비 등의 부담을 낮추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하우스푸어(House poor)’ 계층의 채무조정을 위하여 개인회생제도에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하여 하우스푸어들이 정기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으로 10년 동안 원리금을 나누어 갚고 나머지를 면책할 수 있는 파산․회생제도 개선이나 반값등록금 정책, 통신비 원가공개와 담합구조 혁파, 임대차 계약갱신청구나 전월세 인상율 상한제,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확대 등은 이러한 가계부담 완화정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가계, 특히 저소득계층의 소득을 높이려면 최저임금 인상, 생활임금의 도입,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해소 등 다양한 고용복지정책의 추진을 통해 워킹푸어 그룹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재벌․대기업과 하도급 중소기업, 대리점, 가맹점, 대형유통점 납품업체․입점업체 사이의 구조적 불공정거래 관계를 개선하고 재벌․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상공인 적합업종과 동네상권 진출을 차단하는 중소상공인 보호정책 등을 통하여 재벌․대기업과 하도급 중소기업, 대리점, 가맹점, 대형유통점 납품업체․입점업체 사이의 구조적 불공정거래 관계를 개선하여 ‘을’의 지위와 소득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내수경제 활성화는 이러한 경제민주화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과 불공정의 해소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    
 
영미식 생활임금 운동의 역사
생활임금 제도는 공공부문 노동자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과 계약을 맺고 있는 민간기업, 그리고 지방정부로부터 조세감면이나 보조금을 받는 민간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같은 특정 그룹 노동자를 대상으로 생활임금을 관철시키는 정책이다. 생활임금 요구의 기본개념은 기업이 공공계약이나 보조금, 감세 등을 통해 지역 납세자가 내는 세금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그 회사는 종업원에게 ‘괜찮은 임금(decent wage)’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공공계약을 체결하는 민간기업에게 공공기금 사용에 따른 책임을 부가하여 공공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고 모범사용자로서 민간부문의 노동조건을 선도할 수 있다. 2002년 영국 런던시는 계약절차에 공정고용조항을 도입하였는데, 이후 런던시와 작업하는 민간계약자는 직원들에게 적어도 공공부문 임금과 동일한 보수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처음 병원에 도입되었던 생활임금은 다른 분야로 확산되어 2012년 현재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는 런던시를 비롯해 정부기관, 학교, 병원, 금융권 등 140여 개 기관이 생활임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1개 지방정부, NHS 병원 4곳, 중앙부처 1곳, 대학 14곳, 모건 스탠리, HSBC, 맥쿼리, 바클레이 등 금융기관과 소매회사 러시(Lush), 법률회사들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4년 볼티모어시에서 처음으로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되었다. 이 조례에서는 주, 시, 카운티 등의 지방정부와 거래관계를 맺고 있거나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업체는 피용자들에게 시간당 6.10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1999년까지 연방 최저임금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연방최저임금은 4.25달러였다. 그 뒤 14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되었다. 이러한 생활임금 제도를 통하여 경비원, 가사·건강 돌봄 노동자, 수위, 폐기물 관리 노동자, 주차요원, 식품 공급 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었다. 
영미에서 이러한 생활임금 운동이 확산된 것은 법정최저임금 제도가 한계에 봉착하였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최저임금 제도를 폐지했다가 1990년대 말에 부활시켰고, 미국에서는 레이건노믹스 시대에 10여 년 이상 연방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았다. 프랑스 등의 유럽국가에서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의 수준으로 지급되지만, 영미에서는 사회적 최저기준선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대학 청소부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인상투쟁을 지원하고, 각 지역의 비정규직 노조들이 지방정부와 사회적 협약을 통한 공공부분 및 공공부분과 조달관계에 있는 민간기업에 최저임금을 훨씬 상회하는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운동을 추진하게 되었다. 
 
생활임금 정책, 소득주도 경제성장의 첫 단추 
아직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생활임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상황은 아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2012년부터 서울의 성북구와 노원구에서 산하 공단과 문화재단 계약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부천시에서는 조례제정을 시도하였지만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재의요구로 아직 조례제정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활임금 제도는 법정최저임금이 노동자 평균임금의 38%의 수준에 불과해 최저임금이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임금이 아니라 사회적 최저선의 기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공공부분과 그에 관계하는 민간기업의 범주에서라도 확산될 필요가 크다. 
6.4 지방선거의 주요공약으로 생활임금 정책이 부각되고 있지만, 각 정당의 정책입안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형태의 공약이다 보니 유권자들의 인지도는 높지 않다. 생활임금 제도가 공공부분이나 공공부분과 조달계약 등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있는 민간기업 등에 대하여 적용하는 제도라서,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공약과 같이 각계각층의 공감을 얻는 공약이 되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그래서 야당 후보들도 공약을 알리거나 선거쟁점화 하려는 태도에서는 아직 소극적이다. 보수정당에서는 선거에서 임금인상으로 표를 얻으려는 선심성 공약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넘어 부채주도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가계의 소득주도 경제성장이라는 큰 방향에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대하려는 여러 시도의 하나로서 생활임금 제도의 확산은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최근 내수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고 내수경제를 살리기 위한 민간소비의 활성화, 가계 가처분소득의 증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생활임금 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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