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횡포 제지할 NCP 개편 논의

노동사회

다국적기업 횡포 제지할 NCP 개편 논의

구도희 0 5,401 2014.03.05 11:19
 

* 이 글은 지난 2014년 1월13일 민주당 전순옥 의원실이 주최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효과적 이행 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지난 1월3일 캄보디아 정부는 의류산업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무장 경찰과 공수여단을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최소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30명 이상이 다치는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노총(ITUC)을 비롯한 국제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시위 과정에서 구속된 23명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하며, 전 세계 노동조합들이 동시다발 항의 캠페인을 개최할 것을 호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10일 민주노총·한국노총 조합원들과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TNC)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남동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속노동자 석방을 촉구했으며, 기자회견 후에는 대사관을 항의 방문하였다. 
캄보디아 의류산업 노동자들이 받는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80달러이고, 인상을 요구한 최저임금은 160달러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더 놀라운 것은 캄보디아 군인과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하게 된 배경으로,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포함한 다국적 의류산업 사용자단체들의 강력한 진압 요구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더구나 한국기업들이 주도해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이나 진출 업체들의 대응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란
캄보디아 사태에서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하는 움직임이 국제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은 경제적 투자를 이유로 해당 국가에서 우월적 지위를 인정받거나 특혜를 받고, 심지어는 독재 정권과 공생하면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탄압해 국제적 지탄을 받은 사례가 많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다국적기업들의 활동에 대한 일정한 규범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였고,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 예방 및 구제에 대한 기준 마련을 위해 197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을 제정하였다. 이후 다국적기업의 무역과 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OECD 각료 이사회는 1998년에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였다.
OECD 다국적 가이드라인은 다국적기업의 활동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그 주요 내용은 크게 11개 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제1장 개념 및 원칙, △제2장 일반정책, △제3장 정보공개, △제4장 인권, △제5장 고용 및 노사관계, △제6장 환경, △제7장 뇌물공여·뇌물청탁 및 강요 방지, △제8장 소비자 보호, △제9장 과학 및 기술, △제10장 경쟁, △제11장 조세 등 광범위한 내용의 기업윤리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이후에도 몇 차례 개정 작업을 거쳤다. 2001년 개정에서는 다국적기업으로부터 노동권이나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노동자들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각 나라별로 국내연락사무소(NCP: National Contact Point)를 설치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는 어떤 특정 다국적기업이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할 때, 이해 당사자(노동조합 등)가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 것으로,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 기대됐다.
또한 2011년 5월 5번째로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비즈니스와 인권에 대한 UN의 주요 기준을 포함하고 고용과 노사관계에 관한 장을 ILO(국제노동기구) 다국적기업 선언에 맞게 조정했으며, 그 결과 OECD 가이드라인은 과거에 비해 간접고용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확대 적용될 것이라 기대됐다.
 
가이드라인이 담고 있는 내용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다국적기업이 국제 노동기준과 양질의 노동을 존중하도록 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활용할 수 있는 소수의 국제 규정 중 하나”라는 견해가 있으나, 동시에 정부가 지원하는 제소 절차는 여전히 만족할 만큼 개선되지 못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OECD 노동조합자문회의(TUAC) 자료에 따르면 2012년까지 노동조합은 모두 145건(연평균 12.4건)의 사안을 NCP에 제출하였다. 주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 위반과 관련된 사안이고 비정규직, 정보 공개, 강제 노동, 차별, 안전 보건, 환경, 부패 등 여타의 사안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노사관계 문제를 포함하는 가이드라인의 제4장 고용 및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다국적기업은 결정 권한이 있는 경영진 대표와 협의하도록 허용하고, 노동자 대표와 신의성실한 협상을 진행할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효과적인 단체협약의 진척에 필요한 시설을 노동자대표에게 제공해야 하고, 사업장의 실적이나 적절한 경우 기업 전체의 실적에 관해 정확하고 공정한 관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사업장 폐업처럼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발생할 경우는 경영진이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를 통보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 활용할 만한 가이드라인 내용으로는 “고용조건에 관하여 선의에 따른 협상을 직장 내 노동자대표와 진행 중이거나 단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 기업은 협상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단결권의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의 전체 또는 일부를 해당 국가로부터 철수하겠다고 위협하거나 다른 나라에 소재하고 있는 기업의 사업장 소속 근로자를 전보 발령하겠다고 위협해서는 안 된다”이다. 다국적기업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면서 종종 자본의 철수 위협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본다면, 위 조항들은 나름대로 유의미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최근 비정규노동자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부당노동행위나 차별, 불공정한 노동관행이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추세를 반영하여 협력업체에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가이드라인 실효성 확보를 위한 NCP
가이드라인에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의 이행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할 국내 연락사무소(NCP)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OECD 이사회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이므로 OECD 회원국가들은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내연락사무소를 설치해야 하는데, 비회원 국가들 중에서도 가이드라인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국가들이 있다. 현재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한국을 포함한 42개국(OECD 회원국 34개국과 비회원 국가이지만 수락 의사를 밝힌 브라질을 비롯한 8개 국가)이 각기 NCP를 설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3년 9월 규정 개편 이전까지는 산업부에 있는 ‘외국인투자실무위원회’를 국내연락사무소로 지정하여 운영해왔다. 산업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재부·고용부 등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각 국가별로 NCP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이유는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교육하고 홍보하며 “가이드라인 이행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가이드라인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또한 업계, 노동자대표, 기타 비정부 기구 및 기타 이해 당사자에게 그러한 시설의 이용 가능성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NCP를 어떻게 구성해야 한다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 OECD가 2012년에 발표한 정기 보고서에 따르면, 37개 국가들 중에서 NCP를 하나의 정부 부처로 구성한 나라는 20개국, 복수의 정부 부처로 구성한 나라는 8개국(한국, 일본, 브라질 등), 노사정 3자로 구성한 나라는 3개국(벨기에, 프랑스, 스웨덴)이다. 또한 독립된 전문기구로 구성한 경우는 3개국, NGO도 참여하는 4자 구조로 구성한 나라는 2개국(핀란드, 라트비아), 정부와 사용자 양자로 구성한 경우는 1개 국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 부처만 참여하는 구조를 가진 경우라도 독일이나 스위스처럼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등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보장하는 사례가 다수다. 한국의 경우처럼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의 참여를 완전 배제하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OECD 노동조합 자문회의에서 발간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노동조합 지침’ 자료에 의하면 주요 11개국 사례 중에서 브라질과 캐나다,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8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 미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NCP에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각자의 NCP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부여받고 있지만 △가시성, △접근성, △투명성, △책임성 기준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NCP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서 담당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기준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NCP를 ‘민영화’한 산업부
우리나라 NCP 활동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 및 운영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낼 정도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10월 발표한 권고에 따르면 한국 NCP는 “설립 후 11년간 8건의 이의 제기가 접수되어 1건의 권고가 이루어지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OECD 가이드라인의 홍보 및 장려에서도 그 역할을 게을리 해 왔다”고 지적받았다. 
산업부는 이러한 국가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유로 2년 후인 2013년 9월 NCP 운영규정을 개정한다고 공고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사 단체를 비롯한 이해관계인들이나 시민사회의 의견을 어느 정도 청취하였는지, 혹은 사전에 충분한 의견 전달이라도 했는지 의문이다. 새 운영규정의 주요 내용은 사무소 위원으로 민간인을 3명 포함하고 사무국을 대한상사중재원으로 이관한 것인데, 이는 국가인권위가 지적한 근본적인 개선 내용은 외면한 채 편의적으로 규정을 개정한 것에 불과하다. 
2013년 산업부는 NCP 운영규정을 개정하면서 정부와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혼합형 구조로 개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부 차관이 맡던 NCP위원장을 산업부 투자정책관이 맡도록 격하시켰고, 위원은 관계부처 과장급 공무원, 그리고 산업부 장관이 위촉하는 민간인으로 위원을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부 장관의 명령을 받는 투자정책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산업부 장관의 위촉을 받은 ‘민간위원’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산업부 설명은 이들 민간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하였기 때문에 “위원회의 독립성이 강화되었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하고 있다. 
특히 성격상 투자 정책을 주로 다루는 산업부에서 과연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담당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산업부에서 추천하는 민간위원이 과연 어떠한 위상을 갖고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인권위가 지적한 것은 첫째, 한국 NCP가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고 둘째, 노동계·기업계·시민단체·국제기구 등 민간 부분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권고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나아가 대한상사중재원을 사무국으로 지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이며, NCP의 위상과 역할을 더욱 하락시킨 것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사무를 독립성이나 책임성,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민간업체에 위탁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 업무를 외주화한 것이며, 또 다른 ‘민영화’다. 이를테면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이 어렵고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민간노무법인에 진정서 접수와 교육, 홍보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가? 대한상사중재원은 국내외 상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중재)하기 위해 민법과 산업부 허가로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그런데 OECD 가이드라인은 ‘상거래 과정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사무국의 역할도 ‘중재’가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상사중재원을 선택한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사무국을 맡게 될 대한상사중재원에서 가이드라인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누구의 입장에서 교육을 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가이드라인 위반에 따른 제소 사건은 대부분 노동조합이나 관련 시민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NCP 운영에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를 참여시키고 반영하는 것이 곧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며,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부러 이러한 방법을 외면하고 있다. 
 
노조, 가이드라인·NCP 활동에 적극 개입해야 
OECD 가이드라인의 이행을 담보할 목적으로 설립된 NCP는 그 목적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증진과 노동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위의 사례로 볼 때 개편된 NCP 시스템은 오히려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요구에 역행한 것이다. 
NCP는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등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고, 투자 정책 중심으로 사고하는 산업부 산하 기구가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증진과 노동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된 기구로 개편되어야 한다. 또한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현재보다 그 위상이 격상되어야 한다. 
NCP의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해서는 법률적 위임도 없이 산업부 장관의 운영 규정으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고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법률 제정을 통해 NCP가 정상적으로 개편되기 이전이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충분한 설명과 해설 자료 등을 공개해야 하고, 운영에 있어 관련 이해 당사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처리 절차와 관련해서는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한 때에도 사건의 개요와 판단 근거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게시해야 한다. 또한 사건을 접수한 경우 이후 처리 과정 및 진행 절차에 대해 당사자에게 적절히 통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대해 과신할 필요는 없지만 무관심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히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다국적기업들에게 그나마 국제 규범을 지키라는 적절한 압력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사회 공헌 쯤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자발성에만 의존하는 사회적 책임을 기업들에게 강조하거나 ISO 26000에 관심을 갖자고 촉구하고, 심지어 노동조합들도 사회 공헌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이제라도 OECD 가이드라인과 NCP 활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법개정 요구에 나서고 모니터를 강화해야 하며,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효과적인 개입과 평가 모니터를 위해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적절한 네트워크를 구성 및 운영하면서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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