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체제의 과거 그리고 현재

노동사회

파시즘 체제의 과거 그리고 현재

구도희 0 6,954 2014.03.05 11:14
 

*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는 2007년부터 세계의 노동운동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구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주제를 정한 뒤 매월 한 차례 외부 특강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4년 1월27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여덟 번째 특강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세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께서 ‘파시즘과 노동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아주셨습니다.

  

김세균입니다.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특강에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고 난 뒤 파시즘(fascism)은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주제로 강의를 해 달라고 한 것을 보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파시즘의 문제는 노동운동의 성장·발전 과정과 관련해 언젠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지나간 얘기가 아니고 현재의 과제이며,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노동운동하시는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국가 체제 문제로서의 파시즘
파시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체제의 문제로서 파시즘 체제를 말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적 대중운동과 이에 기초한 파시즘 정치운동이라는 두 수준에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중요한 문제죠. 독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경우는 파시즘적 대중운동에서 시작해서 합법적 방식으로 정권을 장악·집권하고, 그 다음에 국가 체제를 파시즘 체제로 바꾼 것입니다. 
우선 국가 체제로서의 파시즘과 관련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를 얘기할 때 세 가지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추상 수준으로는 국가 유형에서 국가 체제를 바라볼 수 있고, 중간 범위는 국가 형태 수준에서 국가 문제로 접근하고 이어 국가 레짐(regime: 가치, 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수준에서 국가 문제를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국가 유형 수준에서 접근한다면, 흔히 얘기하는 고대 노예제 국가, 중세 봉건제 국가, 사회주의 국가와 구분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 무엇인지를 묻는 겁니다. 
자본주의 역사는 200~300년 정도로 오래됐죠.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했잖아요. 국가는 항상 변하는데, 우리가 어떤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를 때는 그렇게 부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 일반론이죠. 그러니까 한국의 국가와 미국의 국가가 다 다르고, 100년 전의 자본주의 국가와 지금의 자본주의 국가가 다 다름에도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공통된 점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자본주의 국가의 일반론은 사회 체제를 바꿀 때 중요합니다. 체제를 바꿔야만 혁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궁극적으로 형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라는 말은 부르주아 독재라는 겁니다. 아무리 민주적 형태를 취한다 하더라도, 부르주아 계급 지배를 관철시키는 정치 체제라는 뜻이죠. 반면 어떤 국가가 노동자 국가라고 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자 독재라는 겁니다. 
국가에는 사회권력, 경제권력 등 다양한 권력이 있습니다. 국가 공적 권력은 이 두 개가 형태적으로 분리된다는 거죠. 특수한 공적 권력체의 형태로, 사회 구성원 전체를 일단 시민으로 포섭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사회권력과 형태적으로 구분됩니다. 이 특징 중 하나로 공적 권력체가 사회 강권(强權) 사용의 합법적 독점체로 드러났다는 겁니다. 중세 유럽을 예로 들면, 영주권력은 정치권력이자 경제권력이었죠. 경제권력으로서 영주는 지주(地主)고, 강권을 직접 행사합니다. 이것이 옛날에는 가능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물론 할 수는 있지만, 이는 불법적 권력행사입니다. 예를 들면 구사대의 폭력은 합법적인 폭력행사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사적 권력들은 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폭력, 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 권력뿐입니다. 
그러니까 형태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은 분리되어 있으면서, 국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을 포괄합니다. 형태적으로는 초계급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형태가 사실은 부르주아 지배를 관철시킵니다. 내용은 부르주아 지배인데, 부르주아 지배를 관철시키는 하나의 형태라는 거죠. 본질 파악을 굉장히 어렵게 만드는 핵심사항인 겁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특징은 무엇인가
그 다음 중요한 기능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됩니다. 즉 상품관계라는 거죠. 모든 상품관계는 자본주의 생산, 자본주의 착취를 매개하는 형식입니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상품관계에 매개되는 것도 자본주의 착취를 은폐하는 중요한 매커니즘입니다. 또한 상품관계의 핵심은 등가교환(等價交換)으로, 노동자들은 이 형태로 노동력을 파는 거죠. 이 때문에 노동의 대가를 받는 식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정상적 노동력의, 정상적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임금을 주면 착취를 안 하는 형태로 나타나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노동력의 정상적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임금을 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은 착취라고 하는데, 이 형태 때문에 노동자들은 노동의 재생산비를 받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이해한단 말이죠. 착취가 은폐되는 겁니다. 
이처럼 상품관계에서는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으로 봅니다. 상품관계의 핵심은 팔 수 있는 자기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소유자로 규정합니다. 노동자는 무산대중(無産大衆)으로, 재산은 없지만 팔 수 있는 노동력이 있죠. 그게 바로 노동자의 재산입니다. 
또한 상품 교환관계는 기본적으로 자유의지의 산물입니다. 서로 형식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상품을 교환하는 거죠. 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어떤 물건을 가져왔는데 마음에 든다고 힘으로 그냥 내 호주머니에 넣으면, 강권을 행사한 겁니다. 상품 교환관계라는 것은 강권을 배제한 관계입니다. 이것의 법적 표현을 사법적 관계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형태적으로 사회의 곁과 위에 서 있는 특수한 공적 권력체로 나타나고, 그 국가가 소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으로 사회 사법적 관계를 강권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제적 관계에서는 폭력을 배제해야 하므로,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폭력에 의해 사법 관계를 보장하는 공적 권리체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특수한 공적 권력체가 강권을 행사하는 형식으로, 사법 관계의 강권적 보장체가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입니다. 
 
국가 형태 수준의 자본주의 국가 체제
다음 국가 형태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질을 유지하면서 변할 수 있는 최고한도와 최저한도를 생각해보죠. 최저한도라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질을 유지하는 가장 민중 배제적인 국가 형태가 무엇이냐는 것이고, 최고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질을 유지하면서 노동자 민중을 통합할 수 있는 최고한도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가장 민중 통합적인 국가, 가장 민중 배제적인 국가에서 더 나가버리면, 그 국가는 더 이상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되죠. 자본주의가 노동력도 상품으로 출현시키는 시스템이잖아요. 대중에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죠. 그런데 노동자의 사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그 외에 모든 자유권이 없는 것이 자본주의 최저한도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독일의 히틀러 체제가 최저한도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가장 높은 한도는 스웨덴의 사민주의적 소득재분배 국가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자본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데, 물론 일시적으로 더 나갈 수는 있죠. 예를 들어 이중권력 상태로 가면, 자본주의 국가의 최고한도를 넘어섭니다. 다만 이런 이중권력 상태는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폭이 있습니다. 이것을 큰 틀에서 반으로 나눠 보죠. 국가 민주화 수준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느냐로 국가 형태를 나눠 봅시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현실에서 민주국가의 요소와 비민주국가의 요소가 항상 섞여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요소가 지배적이면 민주적 국가라고 부르고, 비민주적 요소가 지배적이면 비민주적 국가라고 부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크게 봐서 민주적 형태와 비민주적 형태의 국가 체제로 나눌 수 있어요.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민주적, 비민주적으로 국가를 나누는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첫 번째로 보통·비밀·평등 선거를 통한 주요 공직자 선거와 대의제 민주주의 보장, 두 번째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평화적 방식으로 추구하는 모든 정치 세력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을 보장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이것이 정치적 다원주의죠. 그 다음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자유주의적 시민권의 보장 여부, 그 다음은 노동3권의 보장 여부로 이 네 가지 기준이 충족되면 민주국가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비민주국가라고 부릅니다. 유의할 점은 비민주적 국가, 민주적 국가의 구분도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관점에서 말하면 앞서 궁극적으로 민주적, 비민주적 형태이든 부르주아 계급지배 체제라고 했죠. 이는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계급 국가이기에 비민주적 체제입니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체제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해 비민주국가 체제를 민주국가 체제로 형태 전환시켰죠. 유신체제가 민주적 정치체제로 바뀐 겁니다. 거꾸로 민주주의 국가 형태가 비민주주의 국가 형태로 바뀌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라는 한계 내에서는 가장 중요한 정치혁명이자, 가장 중대한 사회 변화입니다. 궁극적 입장에서는 민주적, 비민주적 형태이든 부르주아 계급 지배를 관철시키는 형태지만 그 한계 내에서는 그 속에 살고 있는 노동 대중의 정치활동 조건이라든지, 투쟁의 조건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혁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국가레짐 수준의 자본주의 국가 체제
이어 ‘국가레짐’ 수준의 자본주의 국가 체제를 보죠. 자본주의 국가는 특정 국가가 어떤 자본축적 전략과 사회갈등 규제 전략을 추구하는가를 기준으로 국가 체제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 국가를 신자유주의 정권 혹은 사민주의 정권이라고 할 때는 국가의 자본축적 전략과 계급갈등 규제 전략이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다면 파시즘은 국가 유형 수준, 국가 형태 수준, 국가 레짐 수준 중 어디에 있을까요? 보통 국가 형태상의 문제와 관련지어 얘기하는데, 파시즘 체제에 적합한 여러 가지 자본축적 전략이 있고, 계급갈등 규제 전략이 있는거죠. 이제 파시즘 체제의 성립과 특징을 봅시다. 
 
파시즘 체제를 둘러싼 두 가지 견해 
역사적으로 출현한 자본주의 국가의 비민주적 형태에는 19세기 프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 나폴레옹 3세) 독재 체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와 2차 대전 사이의 무솔리니(Benito Mussolini)·히틀러 체제가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제3세계의 신흥 공업 국가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개발독재 체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의 박정희와 칠레의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군사독재 체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루이 보나파르트의 독재 체제는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에 성립한 체제예요. 이후에 성립된 히틀러, 무솔리니 체제에 비하면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루이 보나파르트 체제가 어떻게 성립됐는지, 이 체제가 수행한 역할을 보면 이후 파시즘 체제를 분석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그리고 무솔리니와 히틀러 체제는 가장 전형적인 파시즘 체제입니다. 박정희와 피노체트 군사독재 체제는 학자들 간에 파시즘 체제로 볼 수 있는지, 없는지의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럽 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으로, 파시즘적 대중운동 등에 기반해 성립한 무솔리니, 히틀러 체제 등만 파시즘 체제로 봐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반면 제3세계의 군부 독재는 군대가 들어와서 국가 체제를 전복한 거죠. 그래서 여기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제3세계 군사독재는 군부 쿠데타로 성립됐으니 성립의 경로는 다르더라도 그 수립된 체제가 사회적으로 수행한 역할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개를 다 함께 파시즘 체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 견해에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 체제는 ‘밑으로부터의 파시즘 체제’라 부르고, 제3세계의 군부독재는 ‘위로부터의 파시즘 체제’라고 부릅니다. 저는 후자의 견해가 옳다고 봅니다. 성립의 경우는 다 차이가 날 수 있죠. 문제는 국가 체제가 어떻게 수립되었든지간에 체제가 수립되고 나서 무엇을 했느냐는 거죠. 국가가 수행한 기능이 비슷하면 그것은 같은 체제로 봐야 합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와 파시즘 체제의 성립
이제 파시즘 체제의 성립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루이 보나파르트 체제는 전(前)파시즘적 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성립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립 후 추구한 것들은 이후의 파시즘 체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합니다. 
우선 프랑스 역사를 간단히 알아보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독재가 시작됩니다. 이때 혁명이 가장 급진화한 형태로 전개됩니다. 이어 1799년에 나폴레옹(Napoleon)이 제1총통에 취임하고, 1804년에는 황제에 취임하면서 나폴레옹의 통치시대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프랑스의 제1제정이죠. 그러다 왕정 복고가 이뤄지고, 한때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가 집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납니다. 왕정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왕정 타도를 위한 민주대연합을 이뤘는데, 이 핵심 세력은 산업 부르주아와 도시 노동자 계급이었습니다. 이 두 힘이 합쳐서 왕정을 타도한 것이 바로 2월 혁명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혁명으로, 이 혁명의 성공이 유럽으로 파급돼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는 등 유럽 전체에 혁명의 파고를 다시 만드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혁명 이후 산업 부르주아 세력은 노동자들을 배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와중에 노동자 봉기도 일어나고 민주공화국이 수립됐음에도 사회 내부의 긴장, 갈등과 대립이 지속됩니다. 
그러다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세의 후광을 입고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나폴레옹 1세는 1789년 시민혁명 과정을 겪으면서 왕당파, 반혁명에 참여했던 모든 교회·지주·귀족의 토지를 몰수해 이를 전부 농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를테면 토지개혁이 이뤄진 거죠. 또한 나폴레옹 1세는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면서, 분배된 토지는 영원히 농민의 것이라고 법전을 통해 못을 박았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농민층은 나폴레옹을 지지했고, 이 후광을 입은 루이 보나파르트가 농민층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또한 루이 보나파르트 주위에는 룸펜(Lumpen: 부랑자·실업자)들, 권력을 지향하는 사회적 불만분자들이 몰렸어요. 루이 보나파르트는 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되고 난 뒤 1851년 12월 궁정 쿠데타를 감행해 민주공화국을 폐기하고, 프랑스 제2제정의 황제로 등극합니다. 1848년 혁명으로 민주공화국을 만들었는데,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통해 다시 국가 형태를 비민주적 형태로 전환시킨 것이죠. 
 
국가 체제 변화의 핵심, 경제적 불황
루이 보나파르트의 궁정 쿠데타가 어떻게 국가 체제를 변화시켰을까요. 핵심은 1840년대 이후의 경제적 불황입니다. 경제 불황에 따라 민주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이 지속됐고, 다시 부르주아 대 노동자 계급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불황이 지속되면 영세업자들, 즉 구중간층이 많이 타격을 받습니다. 중간층을 구중간층과 신중간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중간층은 소소유, 소경영 형태로 자영하는 농민층이나 도시 상공업자이고, 신중간층은 화이트칼라를 말합니다. 화이트칼라는 노동력을 판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인데, 밑에 있는 일하는 노동자를 관리합니다. 자본의 기능을 담당하는 거죠. 한편으로는 자본의 기능을 막기 때문에 계급의 사고는 완전히 노동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럽에는 화이트칼라가 별로 없었고 구중간층이 많았은데, 경제적 불황이 오면서 몰락한 민중층이 많아집니다. 이때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하니, 구중간층들이 ‘저들 때문에 더 어려워진다’며 첨예한 계급 대립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경제적 불황으로 구중간층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불만이 증대하는 것이 파시즘 증대의 한 배경이 됩니다. 
또한 당시 민주공화국의 의회 부르주아 세력들은 의회에서 권력 투쟁을 하는 반면, 사회 부르주아 세력들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를 필요로 했는데 국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한 거죠. 그래서 의회 부르주아 세력에 대한 사회 부르주아 세력들의 불만이 생깁니다. 이때 루이 보나파르트가 사회 부르주아 세력들에게 “나를 지지해달라. 나를 지지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겠다. 나한테 권력을 모아 주면 내가 일거에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니, 사회 부르주아 세력들은 의회 부르주아 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루이 보나파르트를 지지합니다. 그러면서 사회 부르주아 세력들은  “좋다. 우리가 당신을 지지할테니 강한 국가를 만들어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을 척결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이 같은 정세를 배경으로 루이 보나파르트는 1851년 12월에 궁중 쿠데타를 감행하고, 국가 형태를 바꿨습니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가 쓴 글이 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궁중 쿠데타를 통한 황제 등극을 다룬 ‘무월(霧月)’이라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면 마르크스는 그 당시 루이 보나파르트의 독재체제 수립을 가능하게 했던 계급적 역관계를 ‘부르주아지의 더 이상 능력 없음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아직 능력 없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당시 사회를 분석할 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두 계급을 중심으로 설명하는데, 당시에는 이 두 계급이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죠. 크게 보면 부르주아의 우세고요. 그런데 이 표현을 보면, 부르주아지는 더 이상 지배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프롤레타리아는 아직 능력이 없는 거죠. 그래서 두 세력이 가진 힘의 공백과 불균형 속에서 구중간층이 스스로를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조직해서, 양대계급을 제치고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간 겁니다. 이 같은 마르크스의 분석대로라면 루이 보나파르트 체제는 그 자체로서는 중간층 지배 체제가 됩니다. 제3계급 지배 체제가 되는 거죠.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 지배 체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기반으로 하는 지배 체제이므로 이 체제가 지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구조적 종속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체제로 귀속된 거죠. 저는 이 같은 마르크스 분석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과 파시즘 세력
우리가 특정 지배 정치세력을 평가할 때 출신이나, 지지 기반을 어디 두느냐를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세력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유지 재생산을 추구하는지를 봅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유지 재생산을 추구하는 세력은 부르주아 정치세력입니다. 마르크스는 룸펜들과 농민층의 지지를 받는 루이 보나파르트 체제 자체를 제3계급 체제로 봤는데 이는 잘못 본 것이고, 부르주아 정치 세력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부르주아 정치 세력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이 있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 세력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양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루이 보나파르트 체제는 그 자체로서는 제3세력이라는 마르크스의 견해대로 봐서는 안 되고, 반민주적 부르주아 세력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르크스가 말한 ‘부르주아지의 더 이상 능력 없음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아직 능력 없음’은 재해석 하면, 국가를 민주적 형태로 전환할 때 프롤레타리아가 사회 혁명을 실현시킬 능력을 지니지 못한 상태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세력이 지배할 능력을 잃었으니까, 이 형태를 비민주적 형태로 전환시킨다는 거죠. 물론, 이런 상태에서는 정치 권력을 장악할 능력을 지닌 비민주적 부르주아 세력이 있어야조. 그렇지 못하면 지속적인 혼란상태가 지속됩니다. 반면 체제를 전환시킬 정치세력이 있으면 파시즘 체제로 가는  거죠. 이런 상태에서 정치적 권력을 장악할 능력을 지닌 비민주적 부르주아 세력이 형성된다면, 그 국가 형태는 민주적 형태에서 비민주적 형태로 변합니다. 이 이야기는 무솔리니, 히틀러 체제에 적용하면 더 명료해집니다. 
 
강력한 파쇼 체제 성립한 무솔리니
이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체제를 얘기하겠습니다. 파시즘 체제는 독점 자본의 이익을 폭력적으로 관철시키는 정치 체제와 연결됩니다. 1차 대전 당시 상황을 보면, 이탈리아는 연합군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국·프랑스로부터 대접받지 못하고, ‘모욕당한 승리’를 하죠. 그리고 당시 경제적 불황으로 구중간층이 대거 몰락하고,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이 파시즘 체제 전환의 한 배경입니다. 
무솔리니는 애초 사회주의자로 출발했다가, 1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나중에는 애국주의·민족주의 의식에 경도되면서 1919년에 최초의 파쇼당을 만듭니다. 파쇼당을 만든 무솔리니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이를 진압시키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들, 기업가들의 박수를 받으며 성장했죠. 그러다가 1922년 10월에 사수대를 이끌고 '권력을 내놓으라'며 로마로 진군을 합니다. 당시 보수세력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주자고 했고, 이 같은 지지에 힘입어 왕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받고 난 이후 우익, 군부의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의회를 해산시키며, 최종적으로 국가 형태를 다시 비민주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강력한 파쇼 체제를 만들었죠. 
이 같은 등장배경은 루이 보나파트르 독재체재와 비슷합니다. 무솔리니는 정권을 잡고 난 뒤 강력한 국가 동원 체제, 즉 조직된 체제를 만들었죠. 그래서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 총동원 체제를 조직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반파쇼 전선에 의해 쫓겨납니다. 연합군에 의해 쫓겨난 것이 아니고, 내부의 게릴라 부대와 이에 호응한 노동자 총파업으로 인해 쫓겨난 거죠. 이게 히틀러와의 차이점입니다. 히틀러는 소련군이 베를린까지 진격했을 때도 독일 국민들을 장악하고 있었어요. 내부에서 대규모적 저항운동이 없었습니다. 당시 사민당이 망명해서 내부에서 조직된 저항운동이 없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국민들을 훨씬 강력하게 장악할 수 있었죠. 
 
히틀러 독재체제의 성립 배경
이번에는 히틀러 체제를 보죠. 이탈리아에 무솔리니 체제가 등장하니 독일에서는 ‘이탈리아는 독일에 비하면 후진국이다.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과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하는 독일에서 어떻게 파시즘이 성공할 수 있느냐. 독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더 과격한 파시즘 체제가 독일에서 성공합니다. 배경은 무솔리니 체제 성립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1차 대전 패배로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된 독일이 느낀 민족적 치욕감은 이탈리아보다 더 컸습니다.  
또한 강력한 노동운동이 존재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있었는데도 히틀러 체제가 성립된 결정적인 배경은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입니다. 당시 사회주의 운동은 우파, 좌파로 구분됐는데 독일 우파, 좌파의 분열은 역사가 특히 깊습니다. 또한 1차 대전이 끝날 때쯤 독일 졸병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군대가 해체돼 무력이 전무한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노동자들과 연대해 킬(Kiel)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독일 전역으로 퍼졌고, 마지막에는 베를린에도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러자 독일의 지배세력들은 비상수단으로서 독일 황제를 폐위시켰고, 이 과정에서 베를린의 노동자·병사 평의회 의장에 우파인 에버트(Friedrich Ebert)가 당선됐어요. 그래서 에버트를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고, 이들은 독일 민주공화국을 선포합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승리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파들은 당시 노동자 투쟁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면 자신들에게 전쟁에 대한 엄청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우파들은 노동자 투쟁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버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무력 재조직 작업을 시작해서 1~2개월 만에 20만 정도의 병력을 재조직하고 그 병력으로 베를린을 포위합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봉기가 일어나도록 유도한 다음 이를 진압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프랑스만 해도 인민전선 운동을 통해 좌·우파가 협력을 해서 사이가 좋은데, 독일은 좌·우파가 철천지원수와도 같거든요. 이렇게 분열된 상태가 히틀러 등장을 막지 못한 한 배경이 된 거죠. 
그리고 1930년대에 경제 대공황이 닥칩니다. 그래서 무솔리니 독재 체제와 조건 자체는 비슷하면서도 다소 다릅니다. 히틀러는 1919년 9월에 독일 노동자당(DAP)에 입당해서 이 당을 나치당으로 바꿉니다. 그러다가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하고, 독일의 실직자는 6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이 상황에서 나치당은 1929년 18.3%를 득표하고 사회 민주당에 이어 제2당이 됩니다. 이후 나치 단독당으로 1932년 선거에 출마한 히틀러는 36.8%를 득표하기도 합니다. 패배했지만 상당히 많은 표를 얻은 거죠. 이후 군인 출신인 극우주의자 힌덴부르크(Hindenburg)가 대통령이 됐고, 나치당은 7월 총선에서 37.7%를 득표해서 제1당의 지위까지 올라갑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보면 대개 조직 노동자들은 사민당과 연계되어 사민당을 지지하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나 갑자기 실업자가 된 층은 주로 나치스 정당을 지지합니다. 
이후 11월에 또 총선이 있었는데 나치당의 지지율이 소폭 떨어집니다. 당시 영국에 라스키(Laski)라는 정치학자가 있었는데, 나치당이 37.7% 득표하는 것을 보고 독일에도 파시즘의 위험이 현실적으로 도래했다며, 이를 막기 위한 전유럽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4개월 후 11월 총선에서는 나치당 지지율이 4% 정도 떨어졌죠. 대신 공산당의 지지율은 15~18%까지 올라갑니다. 그러자 라스키는 독일에서 파시즘의 위험이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글을 씁니다. 이게 오히려 공산당 세력이 커지는 것으로 보여 독일의 보수세력, 자본가 세력을 깜짝 놀라게 했죠. 당시 보수·자본가 세력은 히틀러에게 정권을 주는 것에 항상 미적거렸어요.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을 보고는 히틀러에게 정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수세력의 지지에 의해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1933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고, 아예 권력을 줘버립니다. 이후 히틀러는 총리가 되자마자, 각개격파 식으로 공산당을 해산시키고, 이후 사민당을 없애 완전한 일당 체제로 갑니다. 
 
친자본·반노동의 파시즘적 대중운동
이번에는 파시즘적 대중운동을 보죠. 몰락하는 룸펜, 불만분자들과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이들이 파시즘적 대중운동의 중심이 됩니다. 또한 사회의 계급적 대립 등에 적대적이고, 민족 지상적 성격을 지니는 프티 부르주아 세력들도 이 운동의 중심이 됩니다. 이들은 대개 처음에는 반금권, 반노동운동의 성격으로 출발합니다.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은 철저하게 사회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한편으로 지배층의 부정·부패를 참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질서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투기자본가나 금권 자본가들이 부정부패를 통해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적개심을 보였습니다. 이 두 세력이 섞여 파시즘적 대중운동을 하는데 처음에는 대중운동을 시작하고, 정치운동이 상승하면서 사회의 지배층·부르주아 세력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반금권의 계기는 줄고, 반노동의 계기가 더 많아집니다. 최종적으로 권력을 잡을 때는 친자본에다 반노동으로 성격 전환을 완료하는 거죠. 파시즘 대중운동은 대개 그런 식으로 대중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권력을 잡을 때는 성격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으로 파시즘 체제의 특징과 역할을 보면, 모든 계급이 분파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민족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당 체제를 수립하고, 사회 전체의 전면적인 감시를 합니다. 이 운동의 주 타깃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척결이예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서는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을 아무리 탄압하려고 해도 정해놓은 절차가 있어서 규제를 받잖아요. 그런데 파시즘 체제는 국가 폭력을 적나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노동운동의 강도 등을 굉장히 강제하는 정치 체제로 작동합니다. 
 
박정희와 피노체트 군사독재체제
앞서 살펴본 루이 보나파르트, 히틀러, 무솔리니 독재 체제는 사회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양대 계급의 치열한 대결을 전제로 하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체제가 등장할 때는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분단 체제로써 반북·반공을 앞세웠잖아요. 이 같은 차이점이 있는데, 체제 수립 이후에는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발독재 체제로써 독점자본주의 체제로의 조속한 이행을 촉진시켰고, 노동운동의 성장·발전을 억압했죠. 반면 칠레 피노체트의 경우는 살바도로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의 연합 정당인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하고, 선거에서 이겨서 집권을 하게 됩니다. 칠레의 공산당과 사회당이 연합해서 집권한 거죠. 이처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이 집권하는 상태면 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크게 봐서는 이중권력 상태입니다.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려는 국가 장치와 새로운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는 정치 세력이 한 국가 아래서 동거하는 시스템인 거죠. 그러면 그 안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칠레도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고 난 다음 1973년 3월에 선거를 했는데, 아옌데 정권이 처음 집권 당시 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어요. 정권의 기반이 굉장히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아옌데의 사회주의 지향적 개혁정치가 계속될 것이 분명해지자, 피노체트 등 군부가 1973년 9월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킵니다. 이후 피노체트는 ‘피의 독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강력한 독재정권을 수립했죠. 
 
파시즘 체제의 재성립은 가능한가
이제 마지막으로 파시즘 체제의 재성립 가능성을 보죠. 파시즘 대두의 일반적인 조건은 자본 축적의 위기, 계급 대립의 격화입니다. 또한 높은 인구 비중의 구중간층의 존재 및 실업층의 급증과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거부감의 증대입니다. 반면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사회 내부 계급갈등이 치열해지며 구중간층이 몰락한 곳에서는 파시즘 체제가 재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유럽의 경우도 구중간층이 몰락해 지금은 구중간층이 거의 없어요. 대신 화이트칼라인 신중간층이 많이 생겼죠. 이들은 일반적으로 파시즘의 담당층은 아니고,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흐름을 보입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아직은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구중간층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IMF 경제위기 이후에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분위기가 안 좋았죠. 이는 파시즘을 촉진시킨 요인이었고요. 
또한 박근혜 정권의 중심세력은 공안세력 등 유신체제를 지낸 우파 파시스트주의자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형식적으로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실질적 파쇼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준파시즘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박근혜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고, 국가보안법과 업무방해죄 및 집회·시위법을 활용하고 있죠. 준파쇼적으로 대중 억압을 하면서, 손해배상 소송 등 시장주의적 통제를 적극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재파시즘화를 막으려면 노동 운동, 진보 정치가 성장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구중간층에 대한 확고한 사회연대주의 전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때도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구중간층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결과, 국가 체제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잖아요. 그래서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군부 민주화 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이를 위해 적극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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