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중 얼굴 버려야 산다

노동사회

삼성, 이중 얼굴 버려야 산다

구도희 0 5,451 2014.01.03 04:56
 
21세기에 등장한 삼성가의 홍길동
 “우린 앵벌이였습니다.” 2013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위영일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늘 삼성의 전자제품을 고치러 오던 기사들이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제야 처음 알았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서비스기사들 사이에서 작은 논란이 벌어졌다. “우린 앵벌이 노예였다니까”, “아니지, 노예는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똑같이 노예잖아. 그런데 서자는 집안에서는 자식 취급 못 받고 집 밖에서는 그 집 자식으로 알잖아. 그러니 서자가 맞다니까”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대화란 말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에 또 있다니.
어쩌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얼굴 없는 기업에서 얼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소위 ‘굴뚝 없는 회사’라며 브랜드관리나 제품개발 등 소프트파워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한 기업은 세계 곳곳에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공장들은 모두 외주 하청공장들이다.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나 전자제품업체 애플의 제품을 실제로 생산하는 기업들은 이름 없는 하청기업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얼굴 없는 기업에 소속된 얼굴 없는 노동자들이다. 
삼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삼성의 제품을 만들고 수리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아니다. 기업들은 이렇게 ‘유체이탈의 마술’을 부린다. 이곳저곳의 생산 공장에서 아무리 참혹한 노동을 시키더라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생산 현장의 하드파워와 관계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설혹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저항한다고 해도, 다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그만이다. 가히 자본은 유체이탈의 마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체 드러나면 재미없는 마술
처음 마술을 접할 때의 놀라움을 기억하는가. 작은 마술이라도 그 속임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마술은 기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운 마술이라도 어떻게 속이는지를 알면 재미가 없다. 공공연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마술사가 있다면, 야유를 받거나 심하면 돌팔매질마저 당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미 드러난 속임수로 우리를 현혹하려 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미 위장도급 혐의로 노동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있다.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3년 9월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문제는 있지만 위장도급은 아니다”라고 했다. ‘범죄 사실은 있지만 범죄자는 아니다’라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더 가관인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녹취록 내용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 문제를 조사하던 노동부 관료들은 사실을 확신했음에도 윗선의 지시로 삼성전자서비스는 위장도급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 유명한 ‘삼성의 장학생’이 아마도 노동부 하급관료가 아닌, 상급관료들 속에 있는 듯하다. 삼성의 마술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법원도 같은 마술을 부릴지 두고 볼 일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위장도급을 박살내자고 외치고 있다. ©신동준 금속노조 선전홍보실장>
 
기업 키운 서비스 기사 홀대하는 삼성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철저한 애프터서비스가 있다. 외국에서 지내본 사람들은 삼성전자 제품의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때 외국에 있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작은 고장이라도 제품 수리를 받으려면 며칠이 걸리지만, 한국에서는 제품 고장으로 애프터서비스센터에 연락하면 즉각 처리해 준다. 수리 요청 전화를 하면 바로 달려오는 서비스 기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언제든 제품 수리를 받을 수 있다. 
삼성은 실질적으로 삼성전자를 키운 서비스 기사들을 홀대해서 언제까지 번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삼성전자는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한 삼성전자서비스에 애프터서비스를 맡기고, 다시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의 도급업체들에게 서비스를 맡기는 삼중의 하도급체계는 이제 그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삼중 하도급체계 말단에 있는 전국의 서비스센터가 실은 위장도급업체라는 점도 다 드러났다. 
 
삼성이라는 증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수리하기 위해 찾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건물 상당수가 삼성에버랜드의 소유라는 것이 직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사장들 대부분이 삼성 출신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삼성전자 제품 애프터서비스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교육과 훈련도 삼성이 직접 해왔다. 약간의 변동이 생겼지만 현재 일하는 상당수의 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 관리하는 교육을 받고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이 교육과정에는 고용노동부가 직접 참여했다는 증거자료도 있다. 그러니까 고용노동부도 사실은 공범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서비스 기사들은 교육이 끝나면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으로부터 직접 상장을 받으니까, 삼성에 취직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판 홍길동들은 삼성의 집에서 태어나고, 삼성이 가르치는 대로 자라고 삼성이 소유한 집에서 일해 왔다.
임금지급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도급업체에 수임료를 지급한다. 기사들은 자신이 일한 건수만큼 돈을 받는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난생처음 ‘분급임금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객의 집을 방문하기 위한 이동 시간과 제품 수리 후 이동시간 등에 대한 임금은 모두 떼고, 실제 제품을 고치는 시간만 계산해서 분당 225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도급관계를 은폐하기 위해서, 건당 수수료를 그대로 지급하지 않고 ‘세탁’을 거친다. 위장도급업체인 서비스센터의 사장들은 기사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에 건당수수료를 그냥 주지 않고, ‘기본급 얼마에 수당 얼마’ 따위로 마치 임금을 진짜로 주는 것처럼 임금명세서와 함께 준다. 그런데 이 임금명세서가 얼마나 엉망인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서 반드시 주기로 한 차량유지비를 빼고 임금을 계산할 때도 있다. 심지어 성과급을 주는데, 마이너스 성과급도 있다. 성과가 없으면 성과급을 주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마이너스 성과급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또한 실제로는 서비스센터에서 건당수수료를 주는데, 이를 임금명세서로 위장하려다 보니 별별 실수들이 발생한다. 이 문제를 제기하자, 삼성전자서비스는 서비스센터 사장들을 은밀하게 만나 임금체계의 문제를 덮기 위한 꼼수를 부리려 한다. 그런데 이런 꼼수에 대한 증거들은 넘친다. 삼성은 고용노동부나 법원의 삼성 장학생들을 통해 문제를 잘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착각인지, 사실인지는 때가 되면 증명될 것이다. 
아울러 기사들의 일상적 업무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이 결과들은 삼성전자서비스에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그 결과에 따른 관리도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생기자 삼성전자서비스가 노동자들에게 “노조에 가입하면 센터를 폐업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증거들도 수두룩하다. 또한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탈퇴시키기 위해 통상적인 감사가 아닌, 2~3년 전의 문제까지 들춰내는 조합원 대상 표적감사까지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고용관계가 없는데 삼성전자서비스가 기사에게 직접 표적감사를 한 것이다. 이런 다급한 표적감사는 자신들이 실질적인 고용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표적감사가 문제 될 것 같으니, 삼성전자서비스는 기사들을 직접 감시하는 일을 슬그머니 그만뒀다. 그렇다고 표적감사를 했다는 증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삼성은 ‘아무리 증거가 많아도 법원을 통해 묻어버리면 그만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할지도 모른다. 정말인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 드러나겠지만 말이다. 
 
경총이라는 겹바지 입은 초라한 삼성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이어지는 삼중 도급체계도 모자라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어 단체교섭을 요구하니까, 차일피일 교섭을 미루던 각 센터사장들이 갑자기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을 위임한 것이다. 참으로 놀랄 만한 동시성과 일관성이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전국의 170여개 서비스센터 사장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각자 알아서 대응하다 보면 실수투성이일 것이 뻔하다. 그러니 경험 있고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금속노조를 대적할 제3자가 재빨리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총을 낙점, 경총에게 전국 서비스센터의 교섭권을 죄다 위임했다. 실제로는 각 센터 도급업체 사장들이 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한 모양새를 취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각 센터의 사장들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노조 출범 직후 서비스센터의 사장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바지사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삼성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은 이해하나, 일상적으로 만나면 자신들이 ‘바지사장’임을 다 인정하고 있으니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각 센터 사장들이 위장도급 ‘바지사장’인데, 삼성은 맨살을 드러내는 게 뭐가 그렇게 두려워 경총이라는 겹바지까지 입었을까. 한국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 1등이라는 삼성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이대로라면 3대 세습은 실패한다
그동안 노조에 대응하는 삼성의 행태에 대해 살벌하다고 느꼈다. 무노조전략을 위해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를 납치․감금․폭행까지 했으니, 당연한 생각이다. 한동안은 돈으로 노동자를 회유하는 방법을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돈 때문에 삼성을 골탕 먹이는 사람도 꽤 있어서, 또 전략을 바꾼 듯하다. 지난 2013년 10월에는 삼성그룹의 노조파괴문건이 폭로됐는데, ‘최신버전’은 아니고 현재도 열심히 ‘버전 업그레이드’ 중일 것이다. 이처럼 수시로 전략을 바꾸고 상황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는 삼성은 참 ‘찌질’하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각종 희귀성 암으로 죽을 때도 삼성의 대응 태도는 찌질했다. 2013년 9월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임현우 조합원이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했을 때도 그러했다. 삼성은 노조와 유가족 사이를 차단하고, 일단 장례식을 치르게 한 다음 입을 씻었다. 일류기업 삼성, 세계적 기업 삼성의 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삼성은 워낙 거대한 기업이니, 작은 사례라도 철저하게 대응해야 숱한 소송이나 시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세 중소기업도 아닌 삼성이 문제를 처리하는 철학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세계일류이자 미래를 여는 창조경영을 추구한다는 기업의 철학치고는 찌질하기 짝이 없다. 
삼성의 행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하나 있다. 창조경영을 외치면서도 지극히 낡아빠진 철학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니, 이건희 회장의 자식사랑과 3대 세습을 위한 조급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위험요소들을 어떻게든 제거해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그룹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대로 가면 3대 세습은 반드시 실패한다. 낡아빠진 무노조전략을 ‘비노조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또 하나의 가족’을 내세우면서 ‘수많은 버려진 가족’을 만들고, 3대까지 기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삼성이 안타깝다. 그리고 삼성에 기대는 대한민국이 안타깝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제주도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 용산참사, 경교장 역사 왜곡, 노조 탄압, 기업 살인 등 그 어떤 사안에도 삼성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삼성은 세계 곳곳에 있고, 심지어 화장실 안에도 있다. 그래서 무노조 삼성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은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삼성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삼성 바꾸기(삼바)’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만이 아니라, 삼성에 맞서는 홍길동은 세계적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삼성그룹의 고위층이라면, 지금과 같은 철학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고 이재용 씨나 그 측근들에게 충언해주길 바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앞에는 분명한 선택지가 있다. “삼성왕국을 무너뜨릴 홍길동을 계속 만들 것인가, 미래지향적인 새 얼굴을 가질 것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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