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짝퉁 기초연금'의 9가지 문제점

노동사회

박근혜 정부 '짝퉁 기초연금'의 9가지 문제점

구도희 0 15,501 2013.11.05 11:02
 
‘짝퉁 기초연금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작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이라는 새빨간 현수막을 내걸었다. ‘노인정 스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연금 공약은 노심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9개월 만에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부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 자체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2월21일 발표한 국정과제 중 연금과 관련한 최종안인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은 가입자를 차별하는 방안’이 10월 초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가입자를 차별하는 방안’으로 바뀐 것뿐이다. 또한 정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고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인수위 방안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한 여론무마용으로 시작해, 결국 공약 불이행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덜 준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소득하위 70% 이하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약 10만원,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연금수급 전 3년간 평균소득(A값)’의 5%를 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2013년 A값이 193만 6천원이니, 여기의 5%에 해당되는 9만 6,800원이 기초노령연금 급여액이 되는 것이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70%에게만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전체 노인으로 확대하고, 급여 역시 2배(5→10%)로 인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월2일 입법예고한 정부의 기초연금 방안은 약속과 달리, 대상과 급여에서 대폭 후퇴했다. 전체 노인에게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현행과 같이 소득하위 70%에게만 지급하기로 했다. 기초연금 급여 역시 약 20만원의 정액을 주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적게 주겠다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 
정부안대로 하면, 아래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년 미만인 경우에만 약속대로 10%(약 20만원)에 해당되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초연금 급여는 줄어들게 되고, 20년 이상이면 현행과 같이 약 10만원만 받게 된다(2014년 시행기준). 
국민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즉, 사실상 거의 대다수의 국민연금 수급자가 약속보다 적은 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어쨌든 현재보다 더 주는 것이고,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항변한다. 과연 그럴까.  
 
 
기초연금이 ‘짝퉁’인 9가지 이유
정부의 기초연금이 ‘짝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국민연금 성실가입자를 차별하고 있다. 
국민연금(가입기간)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정부 주장의 근거를 간추리면, 국민연금을 받으니 기초연금은 덜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국민연금 가입자는 덜 주냐’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기초연금 뿐 아니라 국민연금까지 합친 총 공적연금액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래도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연금액이 많으니 차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선 애초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 뿐 아니라, 지난 2007년 3분의 1이나 삭감된(60%→40%) 국민연금 급여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특히 2028년까지 국민연금 급여가 40%로 매년 삭감되고 있는 것을 감안해, 이 시기까지 10%로 단계적 인상을 법 부칙(4조2항)에 명시해 놨다. 즉 기초노령연금은 애초부터 삭감된 국민연금 급여를 보완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인데, 이제 와서 국민연금 가입자를 차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과연 국민연금 가입자는 기초연금을 덜 받아도 될 만큼 기본적인 노후 소득이 보장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컨대 국민연금 가입자 중 평균수준의 소득을 버는 사람(약 190만원)의 경우, 매월 17만 1천원의 보험료를 내며 국민연금에 25년 가입해도 연금액은 약 50만 8천원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300만원을 버는 사람이 20년 동안 가입해도 약 53만원의 연금을 받는다(2013년 가입기준). 이는 2013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7만 2,168원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평균 급여수준이 2050년이 되어도 22.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국민연금의 저급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오히려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은 덜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가입자의 연금가입 유인을 저해하고, 나아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제도의 근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개악안이다.
 
2) 50세 이하 중장년 및 청년세대에겐 실제 연금 삭감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의 기초연금이 오히려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후세대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법 부칙에 따라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10% 인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의 제도가 갖는 맥락이나 취지와는 맞지 않지만, 이 부칙을 가장 보수적으로 해석해 2028년 직후부터 10%로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2028년에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가 되는 현재 50세 미만의 후세대는 원래 2배 인상된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부안대로 하면 이보다 적게 받는다. 실제 연금이 삭감되는 셈이고, 이들 입장에선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개악되는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정부의 기초연금은 현행 법 부칙의 기준마저 위반한다. 
 
3) 갈수록 기초연금의 급여와 대상은 줄어든다. 
먼저 아래 [그림2]를 보자. 2020년 중반 이후부터 정부의 기초연금방안의 지출비중은 오히려 현행 기초노령연금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보다 낮아진다. 그리고 2060년이 되면 GDP대비 0.4%(약 36.8조억 원)의 차이가 발생할 정도로 커진다. 왜 그럴까. 첫째, 전체 노령인구 대비 국민연금 수급자의 비율이 늘어나는데, 2020년 34.2%에서 2060년에는 78.6%까지 확대되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기초연금 급여가 국민연금 가입과 연계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초연금 지출비중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노인의 90% 이상이 공약대로 2배 인상된 기초연금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후 국민연금제도의 성숙에 따라 이 대상은 줄어든다. 
 
둘째, 급여의 실질가치도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는 꼼수가 숨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는 것은 ‘A값의 10%’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A값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에 물가변동환산율이 포함되어 산출된다. 즉 실질임금상승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다. 기초노령연금 도입 당시 8만 4천원(단독가구 기준)이었던 급여가 ‘A값의 5%’로 기준이 동일한데도, 현재 9만 6,800원으로 인상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소득상승은 제외하고, 물가(전국소비자물가지수)만을 반영하겠다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초연금의 실질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4) 최소연금액 규정은 없는데, 급여를 삭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포함한다.
공약에 비해 낮은 기초연금이지만, 정부는 이마저도 이후 개악할 수 있는 여지를 법안에 담고 있다. 기본연금액 및 부가연금액 등 기초연금의 급여수준을 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 부칙에 명시되어 있는 기초노령연금 인상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데, 시행령으로 위임해놓은 것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또한 ‘장기적인 재정지속가능성을 고려해 5년 마다 기초연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지금도 재정이 없다며 온갖 핑계를 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정부가 자의적으로 급여를 축소할 법적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 이전에, 정부안대로라면 오히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5) 소득수준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정부안의 기초연금 급여는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된다. 즉, 얼마를 줄 것인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만 따지면 되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실제 받게 되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기준으로 하면, 저소득 장기가입자가 고소득 단기가입자보다 기초연금을 더 적게 받는 소득역진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아래 예시에서 보듯이,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30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했어도, 400만원을 벌고 20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에 비해 기초연금을 매월 6만 7천원씩 덜 받게 된다. 
 
6) ‘소득하위 70%’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안은 소득상위 30%를 수급대상에서 원천배제하고 있다.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및 배우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노인인구 가운데 약 191만 명(2014년 시행기준 전망)이 기초연금 지급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최소한의 생활수준인 절대적 빈곤상태 이하에 있는 노인계층이 66.7%가 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노인인구의 소득상위 30%라고 해도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인해 기초연금을 부당하게 못 받는 계층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지금도 이러한 기준을 악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급대상이 법적 기준인 70%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실제 제도시행 첫해를 제외하고 기초노령연금 지급대상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2년 기준 65.8%까지 낮아졌다. 이는 신청자가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법적 기준이 아닌 전년도 수급률을 고려한 임의의 목표수급률에 따라 예산을 책정해왔기 때문이다. 낮아진 예산만큼 대상자가 줄어들면, 이듬해 다시 대상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점차 수급대상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7) 관리행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자산조사를 통해 소득인정액(소득+자산)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에 더해 연금조사(국민연금 가입기간)까지 진행해야 해서 행정과정은 더 복잡해졌다. 만약 애초 공약이나 기초연금의 일반적인 제도적 특성에 맞게 연령이나 거주지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복잡한 선정과정이나 부당한 탈락자 없이 공단에서 기본인적사항만을 가지고 국민연금과 함께 동시지급하면서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존 사회복지공무원 노동자의 과도한 업무부담(지급결정, 통지, 지급, 수급자 관리 등)을 줄이고, 업무특성상 필요한 상담과 조사, 사례 및 사후관리 등 ‘찾아가는 대민 서비스’도 확대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역시 단순한 전달체계의 역할이 아닌 종합적인 노후설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정부안대로라면 이는 불가능하다. 
 
8)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국비와 지방비 매칭사업(정률보조)으로 국비의 경우, 지자체별 노인인구 비율과 재정여건 등을 고려하여 40~90% 범위에서 차등 지원되고 있다. 정부의 기초연금 제정안에도 이 규정은 변함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기초연금액 자체의 증가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지방세입 감소와 국고보조사업, 특히 2005년 지방업무로 이양된 사회복지사업의 증가로 지자체의 재정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연금은 국가차원의 법제도로 시행하는 제도이고, 현재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가 예산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아무런 담보 없이 현행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면,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다른 복지예산 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9)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재정을 모두 꼼꼼히 봤고, 지키지 못할 공약은 모두 뺐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공약대로 기초연금을 도입하더라도 GDP 대비 지출비중은 2020년 1.2% 밖에 되지 않으며, 2060년에는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아지는데도 실제 지출비중은 4% 밖에 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외국과 비교해도 GDP 대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한 공적연금 지출비중은 2060년에 약 10.9%로 OECD(28개국), EU(27개국) 평균보다 여전히 낮다. 
노인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는 지금처럼 개인이나 가족의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할 것인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화할 것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약대로 하면 마치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호도하면서, 공약을 지키라는 상식적인 요구조차 ‘공짜 복지’나 바라는 철없는 행동인 양 몰아붙이고 있다. 이는 사적부담의 크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의 재정 부담과 책임만 줄이겠다는 의도다.
 
 
노후를 위한 연금투쟁에 나서자
정부의 기초연금은 ‘기초연금’이라는 제도가 가져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보편성’이 상실된 짝퉁이다. 오히려 국민연금 성실가입자를 차별하고, 50세 이하 중장년층에겐 실질적인 연금 삭감으로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노후빈곤 해소는커녕 기본적인 노후 보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도입해야할 보편적인 연금제도의 싹마저 제거해버리는 개악안이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신고재산만 1조9천억을 가진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어르신들에게 20만원을 주는 것조차 기초연금이 아닌 ‘노령수당’으로 하자며, 더 개악할 것을 주문한다. 다른 새누리당 의원 역시 국민연금 의무가입자의 분노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임의가입자 탈퇴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또한 공적연금이 위협받고 있는 사이, 지난 10월10일 금융위원회는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만으로는 노후보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더 정확하게는 공적연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그 빈자리에 사적연금을 넣고 이를 강화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기초연금 20만원은 적은 금액일 수 있지만 국민연금과 합하면 노년기에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노동자·서민의 노후 임금을 결정하는 논의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노후를 위한 오늘의 투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