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세계경제

노동사회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세계경제

이주환 0 5,427 2013.08.20 03:50
 
 
1. 글로벌 불확실성의 확대 재생산
 
온통 세상이 뒤숭숭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는 재정위기로 계속해서 극심한 홍역을 치루고 있고, 한동안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중국 등 신흥 경제대국들 역시 경제 전망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나아가 위기의 한 순환을 마무리 하듯, 이제 미국은 또 다시 ‘재정절벽(fiscal cliff: 갑작스런 재정 지출 축소)’이라는 새로운 악몽에 휩싸이고 있다. 가계부채 내홍에 시달리는 한국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말 그대로 세계적 차원에서 불확실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9월 미국 대형 투자은행인 리만브라더스의 붕괴로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도 벌써 만 4년을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경제 회복은 유약하고, 각종 불확실성과 결부되어 회복세가 좌초되면서 끔찍한 불황이 다시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실제로 위기 이후 전개 과정을 보면, 매번 미미한 경기회복의 ‘새순(green shoots)’이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에는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틈을 비집고 갖가지 ‘병균’들이 퍼져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과 중국의 경착륙 위험이 단적인 예다. 게다가 그 반향은 세계적이다. 오늘 날 세계경제의 주축인 ‘G3’(미국, 유로존, 중국)가 원흉인 탓이다. 여기에다 중동 불안이나 기상재해 등과 결부된 유가(油價)나 농산물 가격 불안도 덧붙이면 가히 도처에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셈이다. 
세계금융 파수꾼을 자처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이처럼 불확실성 창궐로 인한 세계경제의 취약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불확실성은 기업 설비투자는 물론 가전(家電)이나 자동차 등과 같은 내구재 위주로 소비를 위축시키고 투자나 채용 계획을 지연시키는 한편, 금융권의 위험회피 심리를 부추겨 금리 상승이나 대출 축소 등을 통해 투자와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IMF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심각한 침체와 유약한 회복이 불확실성의 이례적인 심화와 결부되어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특히 선진국 경기변동의 3분의 1 정도가 이러한 불확실성에 좌우되며, 신흥국 경기변동은 아예 절반가량이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IMF는 지금 세계 각국의 정책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크다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최근 들어 글로벌 불확실성의 핵심 원천으로서 ‘정치’가 쟁점이 되고 있다. 가령 유럽의 반복적인 위기는 통합유럽 차원의 적절한 정책대응 부재 혹은 지체에 따른 영향이 크다. 또 미국 재정절벽 위험도 대선과 맞물려 정쟁(政爭)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 정치권의 교착상태, 즉 ‘정책 마비(policy paralysis)’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역시 10년 만에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정치적 불확실성이 성장체제 전환에 따른 복잡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제 정신을 차리면 뾰족한 답이 나오리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처럼 정치 위기 혹은 정책 마미로 인한 불확실성들 탓에 세계경제는 위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2. 세계경제의 흔들리는 미래, 뉴노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환경의 변화를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전형)’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한때 유행이었다. 부채에 기반한 인위적인 신용창출 메커니즘, 즉 ‘올드노멀(old normal: 과거의 전형)’이 무너지면서 세계경제가 대대적인 지각 개편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어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면서 생계를 꾸려온 가계의 파산을 의미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유럽 재정위기는 위기에 맞서 정부 빚으로 대응하던 방식이 파탄이 났음을 뜻한다. 일종의 거간꾼으로서 금융기관들의 탐욕도 가세했다. 신용의 수요만이 아니라 신용의 공급 역시 문제였던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세계경제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경제성장의 동학’이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각종 금융혁신과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확대 일변도 성장세를 구가하던 세계경제가, 이제는 광범위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축소)’, 즉 빚에 쪼들린 경제 주체들의 무차별적인 부채 줄이기의 영향으로 인해, 평균 이하 빈사 상태 저성장 혹은 축소 지향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현재의 부채위기를 “뒤죽박죽 세상(a world of topsy-turvy)”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거시경제의 일상적인 규칙 중 상당수가 뒤집혀진 세상”이라는 뜻이다. 부채 축소에 치중하다 보니 정상적인 경제운용, 가령 물가관리나 고용안정 등 책무는 뒷전으로 내몰리기 일쑤다. 대신에 부채 이면에 놓인 자산(資産)이 중요한 변수로 부각된다. 빚으로 투자한 부동산이나 각종 금융상품과 국채 등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면 부채 문제에 시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디레버리징의 다른 한편에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 등과 같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통해 ‘자산 리플레이션(asset reflation: 자산가격 부양)’에 정책 에너지가 쏠리는 것도 이런 연유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응급처방은 될지언정 지속적인 회복을 보장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축소 균형조차도 제대로 된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기저에서 끌어 왔던 성장의 동력들이 소실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거시경제 변동성이 증대되면서 경제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사실 경제안정이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높은 경제성장률이 아니다. 관건은 ‘예측 가능성’이다. 즉, 국내총생산(GDP)이나 물가 등 전반적인 거시경제 환경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익숙한 방식으로 사업 계획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반면 경제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갈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시기가 되면 정상적인 비즈니스는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우리에게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악몽이 크지만, 세계경제 전반의 시각에서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1990년대~2000년대 중반이 경제의 안정성이 높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은 전후 호황기인 1950~60년대만 못했지만, 그래도 세계경제는 잘 굴러갔다. 이를 주류 경제학에서는 흔히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정기를 초래한 핵심 동력으로서,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춘 통화정책의 기량 향상’을 꼽는 게 정론이다. 지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벤 버냉키 이전의 앨런 그린스펀이나 폴 볼커와 같은 사람들의 기여였던 셈이다. 한동안 물가안정의 중요성, 또 세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수행 역량에 계속해서 기대가 쏠렸던 것도 상당부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물가안정에 초점을 둔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지는 그간 외견적인 물가안정에 지나치게 치중함으로써 금융안정의 위험, 즉 ‘금융불안’을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최근 각광받는 ‘거시건전성’은 이처럼 거시경제 차원에서 금융안정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건전성에 대한 집착은 역설적으로 부채 디레버리징 혹은 그 이면에서 위기관리라는 명목으로 자산 리플레이션을 초래함으로써 경제적 변동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사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성이야 말로 매년 세계 각국 정부나 전문가들의 경제 전망이 실제와 크게 괴리를 보이는 주 이유다. 
 
3. 신자유주의의 좌절과 실속경제의 위험
 
글로벌 금융위기는 단순히 시스템상 위기(systemic crisis)가 아니라 아예 ‘시스템의 위기(crisis of system)’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시스템에 심각한 충격을 미칠 정도의 위기를 넘어서는, 시스템 자체의 내재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된 위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경제, 즉 현대 자본주의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불린다. 그러나 이것이 항간에서 유행하던 ‘시장 맹신론’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성장 정체와 인플레이션의 결합)으로 1980년대 시장원리주의적인 보수주의, 즉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과 같은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사조의 부흥에 맞선, ‘근대적 자유주의(Modern liberalism)의 자기 변신’인 셈이다. 다시 말해, 이미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에 입각하여 고전적 자유주의를 수정 보완한 근대적 자유주의, 혹은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신)케인스주의의 한계를 파고 든 신보수주의의 도전을 흡수한 결과다. 
케인스의 얼굴을 띠면서도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나 루카스 등의 새고전파(New Classicals) 문제제기를 적극 수용한, ‘새케인스주의(New Keynsian)’가 사실상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버냉키는 물론 부시 정부 시절 경제고문을 역임한 그레고리 맨큐나 오바마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던 로머 부부 등이 대표적 학자들로서, 현대의 주류 경제학을 이룬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대외 경제정책 강령이라고 할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케인스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에서 만든 것이다. 1980년대 말 남미 경제개혁 방안의 일환으로서 워싱턴 경제학자들의 중지를 모은 것인데, 신흥시장 위기나 체제전환국 정책 처방으로서 IMF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전반에 확산되었고, 나아가 서방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근대적 자유주의가 강조한 정부의 능동적 역할, 즉 강력한 재정 운영 원리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중앙은행의 점진적인 금리 조절을 통한 미세조정(fine-tuning)’으로 재편됐다. 이른바 ‘금융 세계화’로 인해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관리의 목표와 대상이 변하면서, 성장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 또 완전 고용보다는 유연성 제고와 위험 관리를 중시하는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시장 친화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새고전파(혹은 통화주의)와 새케인스파 간 동맹의 축은 능동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 즉 ‘리플레이션’이었고, 핵심 경로로서 ‘자산가격 상승 혹은 안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리플레이션 정책은 본래 케인스주의의 유산이다. 1950~60년대 세계경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과잉부채, 이를 통한 소비 증대가 대표적이다. ‘신용사회’가 주요한 경제적 테마가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의 리플레이션, 즉 신용에 기반한 소비 부양은 더욱 독특한 메커니즘에 의존했다. 채무가 바로 소비로 이어지기보다는 자산을 경유해서 소비로 연결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자산 가격 케인스주의(asset price Keynesianism)”로 부르기도 한다. 실물경제의 수익성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그동안 축적되어 온 부(富) 자체를 자산 가격 변동을 통해 재분배하고 부양함으로써, 시스템을 지탱해 온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산 가격 부양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금융시장의 변덕스런 속성에 실물경제가 무방비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과거의 부채 버블과는 달리 물가는 안정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더 큰 불안과 불균등성을 초래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 체제, 즉 신자유주의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계기였다. 아직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다른 패러다임이나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 대가는 세계경제 변동성 심화 혹은 불확실성 증대일 뿐이다. 혹자는 이를 “실속(stall-speed) 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비행기가 날다가 속도를 잃고 자유낙하 하는 상황 말이다. 항로 재조정은 물론 연착륙도 자신하기 어려운 처지다. 
 
4. 쿼바디스(Quo vadis), 2013년 세계경제!
 
최근 들어 세계경제 향방과 관련해 유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작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역은 미국인데, 대서양 건너 유럽에 대형 참사가 번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에 관련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많은 손실을 본 이들이 바로 유럽 금융권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종자돈이 실은 많은 부분 미국의 단기 금융시장에서 빌린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위기로 투자는 날리고, 자금 확충에 여념 없던 미국계 은행들로부터 상환 독촉에 시달리면서 유럽 금융권이 초토화됐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대규모 외화 차입 상환 압력에 시달리면서 격렬한 충격에 시달린 바 있는데, 그 주역이 유동성 확충에 안달이 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었다. 또 이러한 금융기관들의 부실을 메워주다 보니 정부 재정이 바닥난 것이 유럽 재정위기의 발단이었다. 
다음으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통합유럽체제, 즉 흔히 ‘유로존(Euro-zone)’이라고 불리는 유럽통화동맹(EMU) 체제의 취약성이 문제였다. 사실 유럽통합은 역사적으로 잦은 내전은 물론 1~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거치면서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진작시키려는 범(範)유럽 민주주의의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성급한 통합 추진으로 인해 통화와 시장 차원에서만 통합이 이뤄지고 말았다. 이처럼 제약된 통합은 각국 경제 여건에 걸맞지 않는 금리와 환율의 왜곡을 낳아, 역내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가 경상수지 적자와 신용 과잉, 재정 여건 악화로 범벅된 ‘남유럽 재정위기’였다. 
문제는 이러한 남유럽 일부 국가의 취약성이 통합체제 틀을 깨트릴 파괴력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일부 우량국들이 통합유럽 체제의 안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위기국 문제가 통합유럽 자체의 붕괴 위험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10년 그리스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2011년 포르투갈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심지어 프랑스까지 아우르는 범유럽 차원 재정위기로 확산되는가 했더니, 2012년에는 아예 유럽통합체제의 “실존적 위험”으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다행히 통합유럽의 재건에 역내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신(新)재정협약 체결, 은행동맹 등의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재정이나 정치 통합 부재라는 한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직도 스페인 구제금융 등을 두고 논란이 크지만, 대체로 유럽위기는 수습 과정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재정 및 정치 통합과 관련해 여전히 역내 공통의 뚜렷한 비전이 모색되지 못한 가운데, 통합체제의 취약성에 따라 단속적으로 불안이 지속될 공산은 크다. 또한 역내 전반에 걸쳐 강요된 재정긴축 바람은 유럽경제 회복에도 계속해서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럽발(發) 충격의 대외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또 유럽위기 등락과 맞물려 매번 우리나라를 위협했던 유럽계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자금회수는, 이미 많은 돈(특히 외자 차입)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더 이상 충격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세상은 점차 유럽위기에 둔감해지고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의 진원지 미국은 물론 중국 등 대형 신흥경제국에서 발생할 위험이다. 우선, 미국은 이미 6,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강제적인 재정긴축, 즉 ‘재정절벽’이라는 신형 폭탄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대선 이후에는 재정절벽 회피를 위해 다시 초당적인 합의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 유예에 기반한 처방은 도리어 미국을 재정위기의 새로운 타깃으로 내몰 소지가 크다. 그 직접적인 효과는 미국 국채금리 상승이다. 사실 미국 국채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큰 시장임을 감안하면, 미국 국채금리 상승은 세계 금리 상승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라면, 저금리를 통해 겨우 억누르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할 개연성이 큰 대목이다. 
중국 역시 심각한 내홍을 치루고 있다. 사실 중국은 지금 이중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수출이나 투자에 의존해 온 불균형 성장을 내수나 소비의 균형 성장으로 바꾸는 한편, 시진핑 주도하에 5세대로 지도부 교체를 맞고 있다. 당연히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대외 환경도 악화되면서, 도통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물론 과거처럼 정부 주도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기대되지만,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막대한 돈을 퍼부은 후유증, 즉 지방정부 재정 악화나 부동산 버블, 나아가 사회 양극화 심화 등에 따른 위험이 여전히 크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펴더라도 그 효력에 대한 의구심이 큰 가운데, 일종의 정책 실기 위험도 부각되고 있다. 
유럽에 이어 미국이 세계 금융시장에 격렬한 충격을 초래할 잠재적 복병이라면, 실물경제 차면에서는 중국경제의 급속한 하강에 따른 위험이 더 크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주요 동력으로서 금융 세계화에 많은 관심이 쏠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생산 혹은 가공기지로 삼은 국제적 수직 분업체계, 즉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의 위기는 이러한 공급사슬에 큰 구멍을 초래하여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연쇄충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제와 연관성이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게다가 이미 각국이 자국 부양에만 초점을 맞춘 가운데, 이른바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글로벌 공급사슬의 향방에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5. 패러노멀 시대 디스토피아의 위험
 
이처럼 꼬리를 물고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뉴노멀 정도만으로는 세계경제가 직면한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제대로 포착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테마가 ‘패러노멀(paranormal)’이다. 패러노멀의 사전적 의미는 ‘과학적으로 알 수 없는’ 정도인데, 이러한 규정이 기존 패러다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불확실성들을 꿰뚫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불확실성의 일상화, 즉 ‘꼬리위험(tail risk: 확률 분포상 극단치)’이 두터워지고 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팻테일(fat tail: 두툼한 꼬리)’인데, 이런 꼬리가 양극단으로 치우치면서 확률 분포상 양봉(兩峰), 즉 양 방향의 큰 위험을 낳고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꼬리는 양적 완화에 의존한 리플레이션(통화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의 가능성인데, 동시에 심각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내포한다. 아마도 너도나도 경쟁적인 양적 완화에 따른 국제적인 환율 전쟁 가능성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꼬리는 신뢰 붕괴에 따른 금융시장 내파(implosion)로서, 그 함의는 대공황을 방불케 할 디플레이션 충격이다. 물론 그동안 위기가 진화를 거듭해 왔고 또 각종 불확실성이 창궐한 상태지만, 아직은 세계경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럭저럭 버티고(muddling through)”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평균 개념으로 보면 ‘적절한 균형’인지 모르지만, 본래 사람 머리는 냉장고에 넣고 발은 난로에 올려도 평균 온도는 적당한 법이다. 즉, 극히 불안정하고 취약한 균형인 셈이다. 
본래 이와 같은 양극단의 고(高)변동성 환경에서는 더욱 더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이 커진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최근에는 선진국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안전망의 체계적인 후퇴에 대해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를 비롯해 남유럽 위기국 사례에서 보듯, 대중정치는 뒷전이고 이른바 금융시장의 명령하에 국제금융기구 출신 전문기술관료들, 즉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이 국가 행정과 정치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富)의 불평등은 물론 손실의 불평등마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아랍의 봄’은 정치적 민주화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이어 유럽 청년들의 ‘분노의 여름’, 나아가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로 집약되는 ‘미국의 가을’은 모두 이러한 ‘디스토피아(distopia: 反유토피아)’의 위험을 겨냥하고 있다. 
사실 ‘아랍의 봄’ 역시 금융위기 충격이 세계 경제 주변부에 집중된 결과이며, 런던 등지에서 터져 나온 유럽 청년들의 ‘분노의 여름’도 금융위기 이후 고강도 긴축의 영향이 서민층에 고스란히 응축된 탓이다. 나아가 ‘미국의 가을’은 현 위기의 작동 혹은 수습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의 생산성을 제고하려는 노력 없이 단지 ‘금융혁신’으로 황금 알을 낳으려던 시도가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위기는 거품 붕괴 책임을 그 주범에게 지우기보다는 서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결국 ‘월가를 점령하라’는 이처럼 실물과 유리된 금융정상화의 본질을 문제 삼고 있다. 경제는 망가지고 서민들은 고용불안과 주거박탈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민생안정 대신에 이른바 ‘시스템 안정’에만 정책 에너지가 쏠리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망가진 패러노멀 세상에서 정치 위기를 비집고 테크노크라트들이 부상하고 있다. 또 시민권이나 노동권 보장 혹은 민생안정 같은 절박한 현안들은 “위기의 일상화”에 대한 경고에 가려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거나, 기껏해야 생색내기용 선심성 행정에만 의존하고 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성큼 다가선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