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산업역군을 빈곤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노동사회

늙은 산업역군을 빈곤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이주환 0 4,878 2013.08.20 11:16

우리 사회는 반만년 역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풍요를 처음으로 누리고 있다. 사회는 풍요하나 그 구성원의 일부는 빈곤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이 계층별로 대량 발생하면 문제가 된다. 특히 노인계층에서는 사회보장이 미흡하면 대량 빈곤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의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우리 선조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저주와 축복을 받아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특이한 경로를 겪고 있다. 앞으로 노인이 될 베이비붐 세대나 연령이 낮은 젊은 계층들도 현재의 노인계층과 같은 경로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노인은 젊은이들의 미래 모습이라는 말이 딱 맞다.
현재의 노인들은 어린 시절에는 식민수탈, 전쟁과 보릿고개라는 지옥을 살았다. 그러나 이들은 가난하지만 교육열 높은 부모로부터 보편교육이라는 축복을 받았다. 산업역군으로 압축 고도성장을 이룩하였고 주택을 마련하였다. 자신의 부모처럼 자녀를 위해 사교육비 지출에 ‘올인’하였다. 이들은 노인이 되기 전에는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천국에서 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한 노인이 된 즉시 소득부족은 현실이 되었고, 국가의 복지지원이나 노후준비를 하지 못한 노인들은 빈곤이라는 질곡에 빠져 죽을 때까지 벗어날 희망이 없다. 노인자살률이 세계적으로 특이하게 높은 이유이다. 

한국 노인빈곤의 특징, 대량발생과 만성화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특징은 대량 빈곤발생과 만성빈곤의 지속이다. 2013년 613만 명으로 추정되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연금 원천별로 보면,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받는 노인이 25만 명(4%),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이 184만 명(20%, 이 중 20만 원 이상 110만 명, 20만 원 미만 74만 명, 평균 연금수준 28만 원), 국민연금을 못 받는 노인은 404만 명(66%)으로 분류된다. 이것으로는 빈곤여부를 알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노인소득빈곤율이 2000년대 중반 45%라고 발표한 바 있었고, 신문에서도 이를 주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통계연보에 의하면, 노인(농어가구 제외)의 상대소득빈곤가구율(공적이전이 발생하기 전의 시장소득 기준, 중위소득 50%의 상대빈곤선 적용)은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3년 이후 계속 상승하여, 2011년 현재 60%를 넘고 있다. 농어가구를 포함하면 빈곤노인 수가 400만 명을 넘는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없거나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적게 받는 노인들로 구성될 것이다. 이는 돈이나 연금이 두둑한 상위소득 노인들과 최저생계비 수준(중위소득의 50% 빈곤선은 대략 75만 원이다)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인들 간의 양극화도 다른 인구계층에 비해 가장 심하다는 뜻이다. 
노인들이 걱정하는 것 중 가장 큰 문제가 건강과 경제다. 경제적으로 벗어날 희망이 없는 만성빈곤에 대처하는 방법은 첫째, 노동시장에 들어가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고, 둘째, 노인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도록 국가에게 투표로 요구하는 것이다. 차례로 어떤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OECD 최고의 한국 노인 노동시장 참여율


한국의 고령자들은 일자리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나이는 물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가 최근 발표한 <고령화와 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65∼69세)의 2011년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수)은 41%로 OECD 32개국 평균(18.5%)에 비해 2배를 넘었다. 일본(36.1%)은 물론 미국(29.9%)·캐나다(22.6%)·영국(19.6%)·독일(10.1%) 등 주요 선진국들을 크게 앞섰다. 실질은퇴연령에서도 한국은 남성 71.4세, 여성 69.9세로 멕시코(남성 71.5세, 여성 70.1세)와 함께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선두권에 있다. 
통계청의 2012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남자 중 취업을 원하는 사람은 전체의 72.5%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노후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노인회 취업지원본부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7.7%가 낮은 임금에도 취업을 지속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취업을 지속하려는 것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함”이라는 경제적인 이유가 76.5%로 나타나, 노인들을 위한 노동시장 확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노인들의 노동시장 참여 욕구는 상당히 높지만 실제로 노동시장은 노인들의 취업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1쪽 [표]를 보면, 60세 이상 노인 취업자는 2000년 196만 3천 명에서 2012년 310만 8천 명으로 약 1백만 명이 늘었다. 그러나 고용률로 보면 2012년의 고용률은 IMF 외환위기 직후 2000년의 고용률 수준을 겨우 회복한 데 불과하다. 취업자 수 변화를 인구변동요인과 고용률변동요인으로 나누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취업노인의 증가 1백만 명 중 93%가 노인인구변동요인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신규 고용기회에 의한 고용요인의 영향은 7%로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서재만, 2012. 고령자 일자리 현황과 정책과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현안분석 제78호.) 

노인을 위한 고용정책은 없다

노인들의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하다. 취업범위는 주유, 경비 등 단순노동의 임시직에 한정되고, 저임금은 물론이고 고용보험도 65세 이상이면 적용이 제외된다. 2012년 처음 결성하려는 노인노조는 노조신고서가 반려되었다. 정년 연장은 아직 말뿐이다. 노인들의 고용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노인고용정책은 사회적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이것도 용이하지 않다. 현재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월 5만 원 내지 20만 원)로 제공하는 노인일자리를 연간 25만 명 수준 이하에서 더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노인들의 자조노동그룹이 형성되어야 하고, 노인청의 설립이 요망된다. 
노후보장에 대한 정치적 요구에 대해 살펴보자. 2012년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고 한다. 박 후보의 득표요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노인복지 분야에서는 박 후보가 상대적으로 좋은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령연금이든 기초연금이든 20만 원으로 지원금을 높이겠다는 점은 문재인 후보나 박근혜 후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 후보는 전 노인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고, 문 후보는 노령연금만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노인빈곤 제로’라는 핵폭탄을 제시했지만 아쉽게도 중도 하차하였다. 기초연금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공약 이행에 대한 신뢰도’에서 박 후보가 더 높았던 점이 있었고, 이는 국민연금을 적게 받는 노인들에게도 어필하였을 것이다. 노인들의 박 후보 지지는 불문가지였다. 인구 비중이 높은 노인들이 투표무기를 드디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기초연금제도 넘어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로 가야

그러나 노인을 포함하여 국민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최근 기초연금은 우여곡절을 거쳐 1인당 20만 원을 최고 지원금으로, 국민연금의 여부와 2인 노인부부가구 여부에 따라 차등지급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은 노인빈곤의 핵심인 대량발생과 만성빈곤을 해소하고자 하는 정책목표에서 벗어나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월 20만 원의 기초연금 지급으로는, 노인빈곤 문제를 소득 부분에서는 좀 완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노후보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직도 요원할 뿐이다. 
보편적인 기초연금제도 도입은 노후보장의 첫 단계일 뿐이다. 1인 독거노인인 경우 월 20만 원의 지원으로는 60만 원 수준에 이르는 실질 최저생계비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이에 더하여 노인빈곤은 생계빈곤뿐 아니라 주거와 의료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 노후의 기초생활보장에 대해서는 박 당선자나 인수위에서 한마디의 말도 없는 것을 국민들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가진 투표무기는 아직도 제대로 행사되지 못한 것이다.
노후보장은 어느 사회에서나 최고의 정책목표가 되어야 한다. 노후보장은 젊은 세대를 포함하여 전 국민의 바람이고, 사회신뢰와 사회통합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노동시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인의 고용률을 높이는 데 본질적으로 제약이 있다. 노인고용정책으로서 사회적 일자리를 대량 공급하더라도 노후보장의 보조수단에 그치게 된다. 기초연금제도는 그 지원액의 제약으로 노후보장에는 턱도 없다. 마지막 남은 수단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재의 운영 상태를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과 같은 장애물 때문에 실제 부양받지 못하고 있으며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소득을 벌고 있는 약 1백만 명의 노인들을 복지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또한 월세 같은 주거비를 현금급여의 20%로 제한하여 실제 월세비의 3분의 1 수준 만을 급여함으로써, 기초수급자들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최저생계비 책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OECD는 이를 딱하게 보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 노인들이 복지제도 밖에 방치되는 현실을 개선하라고 지적해왔다. 
노인빈곤 제로를 넘어 노후보장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노인복지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한국의 2009년 노인인구 비율은 10.7%였지만 2009년 노령부문 사회복지지출은 31조 원(연금, 퇴직금 등 포함)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9%에 불과하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 노인인구가 15%일 때 노인복지로 GDP의 10%를 지출했다. OECD 국가들은 2009년 사회복지지출 중 40% 정도를 노인에게 썼지만 한국은 25%로 낮은 편이었다.
서구 복지국가들과 같이 노인인구 비중에 걸맞게 노령부문 사회복지지출을 했다면, 2009년 우리나라의 노령부문 사회복지지출은 GDP의 약 7%인 70조 원에 이르러야 했다. 이러한 추정에 따른다면 우리 사회는 노인들을 40조 원 만큼 사회보장에서 배제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력 7위인 우리나라는 GDP 대비 복지국가 수준으로 노인들의 노후보장을 감내할 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다. 

국가의 최우선 정책목표여야 할 노후보장

노인복지정책의 방향은 전면적인 노후보장체제를 갖추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생활을 할 만큼 충분치 않은 데다, 생계를 잇지 못하는 노인들을 복지사각지대로 떠미는 체제다. 현재의 노령연금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도 주는 대신에 현금급여에서 공제한다. 수급자가 아닌 노인들이 가진 소득에 더하여 받는 것에 비하면 부당한 처리다. 
기초연금제도는 국민연금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면서 노인빈곤을 소폭 완화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러한 점에서 노인의 소득, 주거, 의료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노인특별부조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정의 확보를 위해서는 연금을 받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과세하는 등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