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그 이후를 준비하라

노동사회

노동시간 단축 그 이후를 준비하라

이주환 0 3,376 2013.08.20 11:08

2013년 3월4일 현대자동차는 밤샘노동을 중단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의 전면시행에 들어간다. 아직 주말 특근시간 문제 등 노사 간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존재하지만, 선 시행 후 보완이란 큰 원칙 속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기에, 전면시행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현대자동차 노사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이라는 원칙에 합의한 후 8년 만의 일이다. 
‘생산량의 유지’를 주장하는 사측과 ‘임금의 보전’을 주장하는 노측의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주간연속 2교대제의 문제는 어쩌면 사측뿐만 아니라 노조의 집행부에게도 부담스러운 사안이었는지 모른다. 매년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의 주요 요구사항으로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이 다루어지고 노사가 위촉한 전문가그룹의 연구도 진행되었지만,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심야노동으로 인한 수면장애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산재 승인 활동)가 커지면서, 금속노조의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노력 등의 영향 속에 현대자동차 노사 역시 2013년 시행할 것을 마침내 합의했다. 

‘일-술-잠’ 사이에 틈새가 생기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3월 전면시행을 앞두고, 그에 따른 문제점 파악과 보완을 위해 지난 1월 2주간의 시범실시를 시행하였다. 조식으로 제공된 식사의 질과 통근버스 문제, 식당 공간 부족으로 인한 식사시간의 부족 등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큰 마찰 없이 2주간의 시범실시를 마치고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해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은 울산 지역의 자동차 산업계뿐 아니라(부품업체의 경우도 부품의 종류에 따라 주간연속 2교대제의 전면시행과 순차적 시행 등으로 나뉜다),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범실시 기간 지역의 언론이 주목했던 것은 현대자동차 주변 상권 변화였다.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간 부서 회식과 술자리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던 자동차 인근 지역의 식당가와 나이트클럽 등의 유흥업소가 울상이 된 반면에, 스크린 골프장과 당구장 등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1조 근무(오전 7시~오후 3시 40분)를 마친 시간은 노동자들이 술자리를 시작하기엔 너무 이르고, 2조 근무(오후 3시 40분~새벽 1시 30분)를 마친 노동자들에게 술자리는 부담이 되는 상황 속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여가시간은 늘어났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부족하고, 그간의 주야 맞교대의 노동 속에서 익숙해져 온 ‘일-술-잠’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새로운 여가문화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 보면 불가피한 단면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늘어난 여가시간이 새로운 여가문화로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이 누구의 주도로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향후 노조운동이나 지역운동 전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니, 현대자동차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이나 정치집단,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분에 대한 준비는 상상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늘어난 여가 주체적으로 통제할 준비가 돼 있는가


심야노동 폐지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주장했던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노조 주장의 핵심은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와 삶의 질 향상’으로 표현된다. 건강권 확보 문제는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의 질 문제는 어떠한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맞교대 장시간 노동(특근과 철야)의 대가로 얻어지는 임금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의 반열에 올라있지만, 그들의 삶의 질이 담보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도적인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은 장시간 노동과 술자리, 그리고 잠자리로 이어지는, ‘일-술-잠’의 반복이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는 겉돌고 사회생활 역시 직장 동료 이외의 다양한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으로 인한 삶의 질 향상에서 핵심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얻게 되는 여가시간의 활용을 통해, 조합원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주체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여가시간이 늘어난다고 삶의 주체로 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따른 다양한 준비들, 이를테면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의 마련과 다양한 취미․교양 동아리 활동에 대한 지원과 보장,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인문학적 가치를 세울 수 있는 교육의 마련 등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여가선용특강, 교육, 문화행사 등 3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실행하고 있고, 거기에 따르는 공간 마련을 위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늘어나는 여가시간도 회사라는 공간과 계획 속에서 포괄하여, 종업원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간 대기업 노동자들의 종업원의식의 강화와 건강한 노동자 연대의식의 부족 등을 비판해왔던 지역의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진영은 이에 대한 준비가 거의 백지에 가까운 상황이다.
물론 알리바이는 존재한다. “회사와의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에 따른 제반 사항에 대한 교섭에 집중하기 위해”, 혹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투쟁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기 위해”, 아니면 “각 단체의 내부를 추스르기도 버거운 상황” 등 할 이야기는 정말 많다. 그렇지만 어쨌든 노조도 시민사회도 주간연속 2교대제로 늘어나는 여가시간을 지역과 함께 공유하자는 추상적인 목표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인간다움’ 회복 위한 첫걸음 돼야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진단과 시민사회 진영 침체에 대한 오래된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출구로 대기업노조의 사회적 연대활동 강화와 비정규직운동 강화,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시민사회 활성화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쩍 강조되고 있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일을 누구와 함께, 누구를 대상으로 진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기 공장 내 비정규직노동자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현대자동차 정규직조합의 현재 상황, 이런 조건 속에서 이야기되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연대활동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은 이미 1987년 이후 형성된 노사관계를 통해 ‘단결을 통한 문제해결’의 구체적인 성과를 누려왔다. 이들에게서 건강한 연대의식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울산형 협동조합운동’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1987년 노동자투쟁에서 터져 나온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외침이 갈수록 경제투쟁에만 몰두해온 노조운동의 잘못으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은 장시간 노동과 그에 따른 경제적 성과에 파묻혀 잊고 있던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먼 훗날, 제대로 준비 못했음을 한탄하지 않기 위하여

그렇다면 당장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 실현을 위한 교섭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늘어난 여가시간을 통한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구체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지역의 시민단체들 역시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에게 ‘늘어난 여가시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전에 그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그 실행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먼 훗날, ‘그때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음’을 쓴 소주를 마시며 한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