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를 잘 타는 10가지 방법

노동사회

'그네'를 잘 타는 10가지 방법

이주환 0 7,128 2013.08.20 10:01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춰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민주노조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한 글을 요청받았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특별히 민주노조운동의 전략과 전망을 다시 얘기할 이유가 있을까? 워낙에 민주노조운동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과 전망은 정권의 변화라는 상황 요인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5년은 피할 수 없고, 어차피 이 기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신임 대통령의 이름(근혜=그네)을 빗댄 은유적 방식으로 이 얘기를 해보려 한다. 

하나, 줄부터 확인

그네를 타다 줄이 끊어지면 크게 다친다. 그러니 먼저 줄이 튼튼한지 확인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는 시장의 논리가 득세하고 기업권력이 강해진 시기였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장 대신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는 시장 중심의 시대에서 국가 중심의 시대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시장과 국가, 즉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권력이 왕복운동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시장(기업논리) 프레임과 국가(정치) 프레임 사이의 왕복운동에 눈을 뺏기면, 정작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배제된 시민과 노동자 등의 권리와 역할을 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노동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현재 상태에서 국가 프레임이 강화되면서,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것 같지만 노동은 오히려 더욱더 주변부를 맴돌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할 수 있다. 
그네는 본질적으로 왕복운동을 한다. 과거 국가주도 개발시대에서 시장 중심의 재벌권력의 시대로 갔다가, 다시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로 돌아온 것은 이러한 왕복운동을 잘 보여준다. 박근혜 시대를 잘 보내려면, 즉 그네타기를 잘 하려면, 우선 그네가 매여 있는 줄이 튼튼한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지금까지 왜 이 꼴인가, 왜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중요하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숱한 비판과 평가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를 맞는 지금이야말로 이는 가장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과제다. 

 

 

둘, 재밌게 타자


그네 타기는 놀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노동의 상태는 심각해졌다. 정권 교체가 가져다줄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줄줄이 자살한 것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자살에 대하여 분노하고 한탄하기 전에 근본적 인식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양극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워킹 푸어 등 빈곤층의 증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비롯하여,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너무나 자주 들려왔다. 궁핍, 빈곤,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넘친다. 궁핍, 빈곤, 불안이 민주노조가 투쟁하고 활동하는 동기인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 운동의 주체는 늘 궁핍하고, 빈곤하며, 불안한 주체라는 것일까? 
청년들은 시장의 경쟁논리가 중심 프레임이 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를 ‘루저’(loser=패배자)로 인식하고, 노동조합도 실패자들의 집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루저들은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저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동학혁명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신념, 즉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자기존재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기반했다. 근대시민혁명도 천부인권설 등 자신을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사상들이 배경이 되었다. 사회주의혁명에서는 노동이 세계를 창조하기에 역사의 주체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전적 노동운동의 주장은 빛을 잃었다. 노동한다는 것이 노동자에게 자존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열등감만 준다. 그래서는 운동이 활성화될 수 없다. 이제 자존감을 가진 긍정적 주체의 탄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천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현실은 이미 비극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현실만 반복 강조하면 찌질해진다. 절망은 사람이 움직이는 동기가 아니다. 희망론, 대안론에 기초해야 움직인다. 너저분하고 구리면 같이 놀고 싶지 않다. 

셋, 자르면 욕먹는다 

어린 시절 짓궂은 장난을 한 추억이 있다. 고무줄 끊기를 비롯해, 그네 줄을 거의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해지게 만들기도 했다. 장난치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에 그네타기를 즐길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규정하다 보니, 지난 선거가 마치 박정희와 노무현의 싸움처럼 되었다는 평가들이 있다.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은 본질적으로 자본가 정권”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가들이 그렇게 규정한다고 다수의 시민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오히려 박근혜는 50%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기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 스스로 진리를 미리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마치 그네 줄을 잘라놓고 욕먹는 철없는 장난꾸러기와 같은 행동이 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스스로의 개선된 활동을 통해 설득력을 얻어가는 용의주도한 선택을 해야 한다. 

넷, 주변 장애물 살피기

그네를 타다 주변 장애물이나 친구와 부딪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재미를 위한 놀이가 갑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사고로 바뀐다. 

박근혜 정부는 그저 주변 장애물 하나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자유로운 그네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맹위를 떨친 기업권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상황을 봐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벌과 기업들은 끊임없이 경제민주화를 공격하면서 정책을 후퇴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계속 후퇴하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경제민주화를 5대 국정목표에서 빼고 하위정책수단으로 바꾸었다.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경제민주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기업권력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재벌에 납품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그들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재벌의 압력에 의해 언제든 중소기업 살리기를 위한 재벌통제정책의 반대자가 될 수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는 현재의 경제권력 행태가 근본적으로 독재임을 전제한다. 특히 기업권력 아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최악의 상태다. 노조 조직률 10.1%는 여전히 기업이 독재의 영토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총액출자제한제도, 금산분리 등 경제민주화의 핵심정책들은 현장노동자들에게 외계인의 언어처럼 멀다. 
노동자가 권리를 가진 주체가 되어 조직되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또다시 “모피아의 권력에 밀렸다”, “권력은 시장에 있다” 따위의 얘기들이 반복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바로 이런 점에서 사회의 일반화된 프레임들을 정확히 포착하고, 이를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어내야 한다. 

다섯, 적절한 타이밍에 힘

그네가 자연스럽게 왕복운동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올라 탄 사람이 적절한 타이밍에 힘을 줘서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그네가 최저점에 이를 때에 몸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것을 타본 사람들은 다 안다.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좀 복잡해진다. 그네의 운동은 최저점과 최고점을 반복하여 움직이는 단진자 운동이다. 그네 타기에서 운동에너지는 위치에너지로 바뀐다. 최저점에서 운동에너지가 클수록 최고점에서의 위치에너지도 커져서 높이 올라간다. 질량 중심을 낮추면 줄어든 위치에너지만큼 운동 에너지는 커진다. 따라서 최저점에서 몸을 낮추면 그네는 더 높게 올라간다.

어설프게 알면 병이 된다. 제대로 알면 힘이 된다. 경제민주화나 복지에 대해 개량주의니 혹은 자본주의를 연장시키려는 술책이니 따지는 자칭 좌파들이 없지 않다. 그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근본적으로 비판해야 할 위험한 정책들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런 논의를 활용하여 노동권 강화와 노조에 대한 지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최근 진보적인 사람들이 임금주도형 성장(wage-led growth) 모델 등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을 주장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이 아니라, 내수 중심으로 임금을 더 많이 줘서 경제를 활성화하자고 얘기한다. 경제민주화도 크게 보면 이런 맥락에 속한다. 임금 좀 많이 주라고 하면 알아서 회사가 그렇게 하겠는가? 임금주도 모델을 하려면 노조가 강하고 튼튼해야 한다. 
좌파 논리를 엉뚱하게 밀고나가다 보면, 자칫 재벌과 똑같은 위치에서 경제민주화를 비판할 수도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독자적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면 몰라도 현재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다. 그네가 높이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적절한 위치에서 몸을 최대한 낮춰 운동에너지를 높이는 지혜 즉, 사회적 담론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섯, 무리하면 위험

제대로 탈 줄도 모르면서 무리하게 그네를 높이 흔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떨어져 다친다. 

민주노조운동은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왔다. 노동조합을 넘어서 국회 진출은 물론, ‘진보집권 시대’라는 권력 장악의 꿈까지 꿨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위한 노력은 참담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안으로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 간부들과 활동가들이 서로 갈등하고 분열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상층 간부들이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당들을 지지했다. 밖으로는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이권노조’로 낙인찍히면서 노조의 사회적 고립화를 낳았다. 
지금은 노조의 정치화보다 ‘사회화’를 위해 힘을 기울일 때다. 무노조 재벌회사나 중소기업에서, 혹은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려면 잘릴 것을 각오해야 하고 수백 수천 일을 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정치화를 통해 튼튼한 정당을 가지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조건이 아니다. 국회의원 몇 명 정도에 불과한 정당은 무노조 재벌회사의 노조탄압을 막아내는 튼튼한 방패가 될 순 없다. 특정 정당의 지지를 넘어서 시민사회의 사회적 지지와 보편적인 노동자 연대를 튼튼하게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결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곱, 잘못 밀면 떨어진다

서로 그네를 타겠다고 싸우면 놀이는 싸움이 된다. 만약 둘이라면 사이좋게 쌍그네(맞그네)로 타면 된다. 그보다 많아도 차례를 지키면서 즐겁게 탈 수 있다.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람을 타이밍을 잘 맞춰 정성껏 밀어 준다면 더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미는 사람이 잘못 밀면 그네가 꼬이거나 타는 사람이 떨어진다. 

너무나 많이 얘기되어온 정파의 문제들에 대해 이제는 한번쯤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를 둘러싸고, 너무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지 통합지도부 구성에 대한 논의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정파 간의 연합이나 암묵적 동의에 의해 이뤄지는 통합적 선거전술은 정파의 문제를 극복하는 본질적 방법은 아니다. 
배타적 지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 배타적 지지의 실체인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으로 재통합, 통합진보당의 문제 폭발 등의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정파들은 서로 다른 주장들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운동의 정치화가 곧 ‘운동의 권력정치화’가 되었고, 제한된 권력이자 배타적인 권력에 대한 경쟁이 극대화되고 승자독식이 구조화됐다. 이제는 노조와 정당의 관계, 노동정치와 정당정치의 독립성과 상호관계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재정립해야 한다. 

 

 

여덟, 떨어질 때 대비


놀이터 그네 주변에는 모래가 깔려 있거나 부드러운 소재들로 바닥마감이 돼 있다. 혹시 사람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혼자서만 재밌게 그네를 타면 욕먹기 십상이다. 그네를 타다가 만약 사람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솔선해서 모래를 깐다면 칭찬받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복지를 계속 늘리는 것이 이제는 민주노조의 정신에 입각한 실천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다. 사회복지를 위한 노력을 함께 쏟아야 한다. 
그렇지만 정당에 대한 지지나 입법 활동만을 사회복지 확대를 위한 민주노조의 역할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현재 대기업노조들이 가진 자원들을 지역사회와 공동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노조의 조합비, 대기업노조의 높은 임금을 활용하여 새로운 노동조합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중요하다. 대기업이 가진 시설들을 창조적으로 지역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미 유사한 사업들을 하는 사례도 있다. 
나는 진화심리학에서 나오는 ‘할머니 가설’을 이용해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역할을 설명한 적이 있다. 폐경기를 맞은 이들이 손자 손녀나 이웃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훨씬 종족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인류는 폐경기 이후에도 오래 사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할머니 가설이다. 폐경기 여성에게 출산을 요구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공장 정규직노조에게 ‘전투의 선봉’을 기대하기보다, 새로운 역할을 찾아서 제시해보자는 얘기다. 그렇지만 물론 폐경기 여성에게 손자 손녀를 돌보는 것만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생 이모작의 제2청춘기를 개척하기 위한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는 단지 사례 몇 개를 만들어서 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할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즉, 민주노조운동이 사회복지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운동의 사회화를 통해 정치적 힘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아홉, 멈출 곳 분명히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엔진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브레이크가 좋아야 빨리 달리 수 있다. 그네를 움직여 높이 올라가려면 멈추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운동신경과 기술이 좋은 친구들은 그네를 타다가 멀리 날아서 착지한다.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를 피해서 잘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지점에 멈춰서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화두에 붙잡혀 있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문제로 싸운다. 현대차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런 투쟁의 원인들은 하나하나가 신자유주의의 산물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고용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지표에도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가 있다. 보수나 진보나 똑같이 일자리를 제1의 문제처럼 떠든다. 과연 그래야 하고 그것이 맞는 것일까?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시대에서 비정규직 중심의 시대로 이동한 지 오래 되었다. 이제 재벌기업들은 경직성과 유연성을 넘어서 ‘스마트 워킹’을 주장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미래 전망을 고려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 잡힌 채 다가오는 문제로 인해 이중압력을 받을 것이다. 

열, 다른 놀이도 있다 

그네 타기는 세계적으로 오래된 놀이다. 단순한 왕복운동을 하는 그네는 재미가 없다. 요즘에는 그네가 ‘바이킹’ 등 매우 복잡한 운동을 하는 현대적 놀이기구로 발전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라는 두 지점을 오가는 그네를 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산별노조나 정치세력화 모두 즐거운 상황이 아니다.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단순한 왕복운동만 가능한 그네가 왕복운동과 원운동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바이킹과 같은 새로운 놀이기구로 발전한 것처럼, 민주노조운동도 산별노조나 정치세력화를 과거와 같이 똑같이 주장하지 말고, 전혀 질이 다른 것으로 창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산별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른바 ‘양 날개론’을 폐기하고 전혀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노조의 정치화보다 사회화를 강조하는 대안노조운동도 그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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