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과 양질의 일자리를 국가정책의 핵심에!”

노동사회

“노동기본권과 양질의 일자리를 국가정책의 핵심에!”

편집국 0 3,610 2013.06.06 04:52

지난 5월28일,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신음하던 전 세계 노동자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스위스 제네바로부터 들려 왔다. 사상 최초로 노동계 출신인 가이 라이더(Guy Ryder) 전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이 국제노동기구(ILO) 신임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191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법률 전문가, 정부 및 국제기구 관료 일색이었던 ILO 사무총장에 노동계 출신이 진출한 데 대해, 수많은 국가의 노동자들은 진심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고, 노동기본권 향상을 위한 ILO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국제기구 감시기능을 부정한 사용자그룹의 오만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희망도 잠시, 선거 직후 개최된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에서는 노동자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전면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ILO 전문가위원회의 연차보고서에 기초해 각국의 비준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이 위원회에서, 사용자그룹이 파업권과 관련된 모든 국가의 사례 논의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협약 이행에 대한 ILO 감시기구가 작동하기 시작했던 1926년 이후 처음 있는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더욱 노골화된 사용자들의 공세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사용자 주장의 요지는 “올해 글로벌 리포트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협약 제87호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파업권을 언급한 점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용자그룹은 이 협약에는 파업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는데도 전문가위원회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파업권을 거론한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했다. 또한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결정기구는 전문가위원회가 아니라 총회라는 점, ILO 헌장 제37조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ICJ)만이 국제노동협약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그 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파업권이란 결사의 자유에 반드시 수반되는 권리이므로 제87호 협약에 파업권이 포함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파업권이 없다면 노동자들은 단체교섭에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권리로서의 파업권을 의문시하는 것은, 사실상 다른 모든 권리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태도라 할 것이다. 또한 전문가위원회는 독립성, 객관성, 공정성 원칙을 준수하는 전문기구로, 노사 어떤 그룹의 압력이나 이견에 의해 판단이 좌우되는 기구가 아니다. 

이렇게 ILO 감시기구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면서 극심한 노동탄압으로 고통을 받는 국가들의 사례 검토를 전면 거부함으로써 교착상태를 초래한 사용자들의 독선적 태도에 대해, 대부분의 정부 대표도 깊은 실망을 표하였다. ILO 사무국 역시 ILO 헌장, 사무국 규정, 직원 규정, 국제공무원 규율 등을 언급하며 사용자그룹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사용자그룹은 글로벌 리포트의 파업권과 관련된 전문가위원회의 언급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오는 2012년 11월 이사회 이전에 비공식 노사정 협의를 개최하며 이사회가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노동자그룹은 ILO의 감시기능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올해 예비 의제에 포함된 정부가 차기 총회에서 검토될 전문가위원회에 보고서를 보낼 것을 요구하였고, 이 두 타협안이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 이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러한 사용자의 위험한 정치적 게임은 90년이 넘는 ILO의 역사에 심각한 오점을 남긴 것은 물론, 경제위기 아래서 노동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정부와 사용자의 노동탄압 의지를 드러낸 불명예스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해, 스스로 비준한 국제기준도 지키지 않고 자의적 해석으로 노동탄압을 일삼는 정부로 인해 고통 받는 한국 노동자, 작년 한 해 동안 29명의 노조간부가 살해된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콜롬비아 노동자, 민주화의 기로에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집트 노동자와 민중들의 극한적 상황을 국제사회가 외면한 결과를 초래됐다는 점은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보호 최저선 권고와 작업장 기본원칙 액션플랜 제시돼

그러나 이러한 오점에도 올해 총회에서 몇 가지 진전은 있었다.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취약계층이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보호 최저선을 제공하기 위한 권고’가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사회보호 최저선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기초소득 보장, 기본적 의료에 대한 접근권, 기타 사회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규정된 일련의 기초적 사회보장”을 뜻한다.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찬성 452표로 통과된 이번 권고는 사회보호가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의 기초라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결과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적정한 사회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50억 이상의 민중에게 기초의료와 기본소득 보장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비공식・공식부문을 망라해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명시하고 있는 이 권고는, “지속적 경제위기에도 사회보호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는 1998년 채택된 ‘작업장의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에 대한 후속조치가 논의되었다. 그 배경은 ‘권리 선언’ 이후의 괄목할 만한 진전에도 아직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의거, 향후 행동 방향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의 실현을 위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작업장의 기본원칙과 권리에 대한 실질적이고 보편적 존중과 촉진을 위한 액션 프레임워크가 제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위원회는 ILO에 대해, △기본협약 비준과 적용 확대를 통해 노동기본권과 권리 실현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 이행, △이에 대한 인식 제고 캠페인 착수와 각국에 대한 지원 강화, △정확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최신 정보 수집과 제공을 통해 기본원칙과 권리의 적용에 대한 진전 상황 평가, △8개 핵심협약이 모든 국가에서 비준될 수 있도록 새로운 추동력 제공 등을 요구하였다. 이와 관련해 특히 비공식부문,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원주민, 농촌노동자, 가사노동자, 수출가공지역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기본권을 강조함으로써, ILO가 특별한 조치를 강화하도록 한 요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 청년과 함께하는 고용정책 수립돼야 

이와 함께 세계 경제위기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일반논의도 이루어졌다. 청년고용위원회는 2012년 현재 세계적으로 약 7천 5백만 명의 청년이 실직 상태에 처해 있으며, 2007년에 비해 그 숫자는 4백만 명이나 늘어났다는 점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였다. 또한 구직을 포기한 청년층도 6백만 명 증가하였으며, 하루 2달러 미만을 벌고 있는 청년노동자가 2억 명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러한 지속적인 청년실업과 불완전고용은 매우 높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고 경고하였다. 

이에 따라 청년고용위원회는 고용과 경제정책, 고용가능성, 노동시장정책, 창업, 청년권리 등 5가지 주제 아래 광범위한 논의를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2005년 ILO 총회의 ‘청년고용 결의문’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골자는 △각국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다면적이고 일관된 정책 대응 마련, △완전고용을 거시경제 정책의 핵심목표로 설정, △경제 및 고용 정책, 교육 및 훈련 정책, 사회보호 정책 간의 효과적인 정책 일관성 수립,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개발에 사회적 파트너의 참여 확대, △청년일자리 마련을 위한 투자 확대, △모든 프로그램과 정책에서 청년 노동자 권리 존중과 성인지적 관점 구축, △청년일자리와 기술 간의 불일치 시정 등이다. 

이 논의는 협약이나 권고를 채택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청년을 ‘문제’가 아닌 ‘해결책’의 일부로 상정하고, 청년고용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이들이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연설, 그리고 미얀마 제재 유보 

이번 총회가 개최되기 2개월 전, 강제노동과 인권탄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한 몸에 받았던 미얀마에 희망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2012년 4월1일, 민간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당(NLD)이 45개 선거구 중 43곳에서 승리를 거두며, 기나긴 군사독재 정권의 역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이러한 승리로 그동안 미얀마의 강제노동과 노동탄압 문제에 깊이 관여해 온 ILO 내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ILO는 1998년 미얀마 내에 강제노동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실사위원회의 결론에 따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수많은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특히 2000년 총회에서는 미얀마 정부가 이러한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각국 정부에게 미얀마에 대한 투자 등 외교관계를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1999년 이후 ILO는 미얀마에 대해 강제노동 철폐 활동 이외의 어떠한 실무협력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ILO의 각종 회의나 행사에 미얀마 정부를 초청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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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전체회의 연설 후 화답하는 아웅 산 수치 여사

 

그러나 올해 총회에서 ILO 회원국은 전체회의의 투표를 통해 미얀마에 대한 주요 제한을 철폐하거나 유예하는 데 동의했다. 미얀마와의 관계를 재고하라는 각국 정부에 대한 요구도 1년간 유예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미얀마 정부와 ILO는 강제노동 철폐를 위한 공동 전략에도 합의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6월14일에 있었던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ILO 전체회의 연설 하루 전에 내려져 더욱 의미가 있었다. 수 치 여사는 전체회의 연설을 통해 그동안 ILO의 헌신적 노력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정치 민주화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투자 유치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당부하였다.

미얀마에 대한 낙관론은 시기상조지만, 향후 미얀마 정부가 강제노동 철폐와 인권보호에 대해 ILO라는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전 회원국이 주시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을 외면하면서 미얀마에 투자해 국제적 비난을 샀던 일부 한국기업들의 전향적인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ILO의 미래를 위한 협약의 실질적 이행 조치 마련

ILO는 국제연합(UN) 내 유일한 노사정 3자기구로, 1919년 설립 이후 세계 각국의 노동기본권 수호와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그러나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 1969년 노벨평화상 수상, 1998년 작업장의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이라는 중요한 업적에도 ILO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는 물론 ILO의 협약과 권고가 구속력이 없어 각국 정부의 자발적 비준과 이행에 기초하고 있다는 내재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아가 이번 총회에서 ILO의 근간인 노사정 3자 주의가 뿌리째 흔들릴 정도로 사용자의 공세를 받은 ILO는, 이제 조직과 기능을 새로이 정비하고 협약과 권고가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하기 위해 더욱 강화된 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ILO의 협약과 권고 등 각종 기준과 해석은 전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띠고 있어, 각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에 대한 ILO의 방침을 정부에 유리하게 해석해 노동탄압의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ILO가 이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UN기구와의 차별성조차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오는 10월부터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 당선자가 이끄는 ILO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최초의 노동계 출신 사무총장 당선은 전 세계 노동자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기준적용위원회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불미스런 사태는 향후 가이 라이더 체제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끝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사용자들의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 후안 소마비아(Juan Somavía) 사무총장이 80%라는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3선 연임에 성공했던 데 비해, 가이 라이더 당선자는 6차례의 투표 끝에 최종적으로 56표 중 30표의 찬성표로 당선되었다. 그만큼 앞으로 새 사무총장이 노사정을 아우르며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이 라이더 당선자는 ILO의 향후 방향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반드시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ILO 기준을 ILO의 중심 권한으로 회복시키고, ILO 회원국이 납부한 단 1달러의 의무금도 낭비하지 않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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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라이더 ILO 신임 사무총장 당선자(왼쪽)와 후안 소마비아 현 사무총장

 

가이 라이더호의 순항을 위하여

또한 핵심협약이 모든 국가에서 비준되도록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ILO 회원 185개 국가 중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 등에 관한 제87호 협약과 제98호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각각 151개국과 161개이다. ILO의 핵심협약이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ILO는 각국 정부가 이를 비준하도록 모든 실무 지원과 제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끝으로 ILO는 선진국, 특히 유럽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개발도상국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칠레 출신의 후안 소마비아 사무총장을 제외하고 역대 사무총장이 모두 벨기에, 프랑스, 영국, 미국, 아일랜드, 프랑스 등 선진국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판은 일리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출신의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 당선자가 어떻게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관계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국가 간 격차를 축소시켜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가이 라이더 당선자의 노동운동 경력과 ILO 사무차장이라는 배경을 통해 쌓아온 폭넓은 실무 경험이 ILO를 보다 강화할 것이라는 전 세계 ILO 회원국 노사정의 기대를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는 2012년 10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ILO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더욱 중시하고, 고용과 노동기본권을 국제경제의 중심에 두는 데 필요한 동력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