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귄리 보장을 위한 ‘지혜’를 주세요”

노동사회

“약자들의 귄리 보장을 위한 ‘지혜’를 주세요”

편집국 0 3,534 2013.06.06 04:33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전혀 새로운 위치로 갑작스레 발을 내딛은 은수미 의원은 다소 긴장한 듯한 인상이었다. 이른 아침,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사무실이 인터뷰 장소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다루는 대상은 ‘노동 정책’이지만, 이전의 그의 역할이었던 정책 전문가로서 이를 다루는 것과 국민 대표자가 된 후 이를 다루는 방식이 현격히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동일한 사람들을 만나도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이 달라졌고, 무엇보다도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달라졌다. 그래서 그는 종종 “지혜를 주세요”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한 ‘간절함’은 프로페셔널을 갈망하는 개인적인 소명의식을 넘어, 이상적인 꿈을 좇던 청년기 사회운동가 시절부터 그가 변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는 ‘지혜’는 갈등의 사회화를 원하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고, 약자들을 울타리 밖으로 미끄러뜨리는 사회구조를 고치는 데 쓰일 터였다. 

eun_01.jpg- 사회운동가, 연구자를 거쳐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준비된 변화라기보다는 급작스러운 이전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제는 정치인이 된 게 실감나십니까? 
“실감할 수 있는 계기들이 종종 생기네요. 예전에는 노동 문제 연구자로서 파업 현장을 일일이 따라다니느라 힘들었어요. 현장으로 들어가기도 쉽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이제는 파업 노동자들이 직접 찾아오십니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 당신은 국민의 일원이자 약자인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가 있다’는 메시지를 저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방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괜히 제가 미안하고 송구스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하고 제대로 정치를 하자는 다짐을 합니다. 그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고통에 공감하면서, 국민의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지나치게 미안해한다든가 하는 아마추어적인 태도는 고치려고 합니다.” 

국민의 대표로서 ‘균형’은 약자 목소리를 사회화하는 것

- 연구자로서 현장에서 얻는 통찰과 에너지를 자주 강조했습니다. 노사 갈등 현안에 대한 정치인의 개입은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국회의원은 국민 ‘모두’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사회에서 ‘균형’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반문하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약자일수록 갈등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 사회화 하려 하고, 강자일수록 갈등을 은닉해 사유화 하려 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는데요. 국민 모두를 대변한다는 것은, ‘국민 평균’이 아니라 국민 중에서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까지도’ 대변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약자들이 갈등을 사회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찾아가 듣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 균형 잡힌 태도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이를 통해 정부와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각이 가진 힘의 차이에도, 협상테이블에 동등한 주체로서 앉도록 한 후에야, 국회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한편, 국회의 역할은 이러한 사회 갈등의 조정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은 그러한 갈등과 관련된 제도적 미비점과 국가 책임의 문제점 등을 헌법과 노동법에 기초해 문제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대표로서 갖춰야 할 균형적 태도란 조정자라는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는 것이 아닌, 자기 역시도 주체로서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라 보는 거죠.”

- 19대 국회에 입성해서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쌍용차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쌍용차 의원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어떠한 문제의식과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쌍용차 문제에 연구자로서 시민으로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쌍용차 의원 모임은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데요. 다만 정치인으로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죠. 즉, 쌍용차 사태를 ‘정치적 문제’로 해석하는 겁니다. 노사 간 문제를 넘어서, 국가가 일정하게 책임져야 하는 산업정책의 문제, 헌법과 노동법의 보장 의무 불이행의 문제 등이 관련돼 있다고 제기하는 거죠. 그럼에도 정부가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으니 국회가 나선 겁니다. 
한편으로, 저는 쌍용차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치부들이 다양하게 집약돼 있는 상징적이고 매우 고통스러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권력 문제, 산업정책 문제, 자동차산업의 전망, 회계 조작의 문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자살과 사회적 공동체의 붕괴, 가족 붕괴와 아이들의 문제 등등이 다 걸려 있어요. 때문에 국회의원이라면 이러한 사건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저는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바뀐 정권의 첫 번째 과제는 쌍용차 문제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쌍용차 의원 모임이 이를 위한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진상조사를 해서 책임을 정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누가 어떤 일들을 했고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지 분명히 하자는 거죠. 특히 거기서 정부의 책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방향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겠죠. 나아가, 이어지고 있는 자살의 책임이 만약 ‘사회적 타살’이라면, 이에 대해서 배상을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와락’ 같은 치유 프로그램을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어야죠. 마지막으로, 공권력의 책임에 대해서 별도의 규명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들이 ‘불법 폭도’가 아니었다면, 국가가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시켜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 2009년 정리해고가 무효가 된다면, 그 사태 이후에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그룹이 이를 수용할까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 정부가 부탁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 펼쳐놓고 해결책을 만들어 가야죠.”

민주당의 정체성 변화는 ‘시대정신’에 부응한 결과 

-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노동 관련 공약은 90%가량 같습니다. 그렇지만 노동계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않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야당들의 노동 정책 수렴 현상은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0년대 중반부터 연구자로서 이 당 저 당 불려가서 강의와 토론을 해왔거든요. 그러면서 노동 정책이 수렴돼 가는 것을 피부로 느꼈고, 특히 작년 민주통합당이 비정규직 관련 노동계의 입장을 수용하면서는 거의 차이가 없게 됐다고 봅니다. 사회가 그만큼 고통스러워졌기 때문에 노동이 시대정신이 된 것일 테고, 그 시대정신에 부응해서 민주통합당이 움직여 온 것이죠. 즉, 압도적 다수가 고통을 호소하고 이를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이 중심이 된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이 되었고, 민주통합당이 이에 부응한 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변화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할지, 민주통합당이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초선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노동 문제 관련해서 다른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간부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수밖에 없겠죠. 그것이 어디까지 담보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 현재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정책이 이른바 민주정부 10년간 기초가 닦였다는 점에서, 민주통합당이 변화를 말하려면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세계화를 곧 자유화로 봤다는 점에서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차이가 없었죠. 그에 대해서 당 차원의 반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진행된 서울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의 공약을 통해 민주통합당은 바뀐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그것 이상으로 어떤 반성을 할 수 있을지, 왜 반성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의 정체성 논쟁이 필요한가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주의를 표방해온 정당이 사민주의적 정책을 내세우는데, 정당의 근간에서 정체성 변화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 아니냐, 단지 시대정신을 유행처럼 좇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이는 정치적 문제입니다. 지금 당의 정체성 논쟁을 크게 해서 대선에 승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어쨌든 정체성 논쟁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때문에 지금 민주통합당에게는 과거를 반성하라고 하는 것보다, 시대정신에 맞게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정강을 철저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동정책, 시혜가 아니라 권리, 그리고 현실적인 설득력 

- 새누리당이 <국민행복 5대 과제> 12개 우선 입법안을, 민주통합당이 
<7대 민생 과제 20개 우선 입법안을 내놓았습니다. 모두 노동을 중심에 두고 있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노동과 관련해 양당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이를 테면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일자리의 양이 문제고, 그렇다보니 어떤 일자리가 늘어나도 좋다고 합니다. 다만 ‘허드레 일자리’에 대해서만 안전망을 치자는 것이죠. 이쪽 입장에서는 일자리의 질이 문제이고, 성장을 해도 허드레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때문에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더 나아가서 복지, 사회 안전망, 일자리 등을 새누리당은 ‘시혜’의 틀에서 본다면, 민주통합당은 대체적으로 ‘권리’의 틀에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권리보장 1・2・3・4’를 주장해 왔는데, 이는 국민주권의 헌법 1조, 근로의 권리를 보장한 헌법 32조, 노동 3권과 관련된 헌법 33조, 사회복지와 관련된 헌법 34조에 입각해서 노동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 지난해 노동연구원에서의 마지막 연구가 사내하도급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극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은, 누가 도둑질을 해서 마련된 재산일지도 모르는데 이게 장물인지 아닌지는 일단 덮어두고 그 재산의 가치를 인정하자, 다만 그 도둑질한 결과로서 재산을 사회적으로 좀 더 공평하게 분배하자, 이런 거죠. 반면 민주통합당의 입장은 이게 도둑질인지 아닌지와 앞으로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도둑질이 아닌 경우에만 제도적 보호를 하자는 겁니다. 즉, 불법파견과 합법도급을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불법은 엄단해야 한다는 거죠. 직업안정법, 파견법, 근로기준법, 노조법, 근참법(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의 일부 조항을 개정함으로써 그런 기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의 사내하도급 고용관계가 실제로 얼마만큼 불법파견으로 판정이 날지는 법 개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겠죠.” 

-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와 노동자 보호라는 목표는 같지만, 민주통합당은 파견법 개정을, 통합진보당은 파견법 폐지를 주장합니다. 
“저는 현장에서 법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파견법 개정 혹은 폐지가 목적이 아니라, 간접고용을 규제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이런 입장 차이가 정말 중요한가, 실효성 차이가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주장하는 계획보다 파견법을 폐지하자는 입장이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에 있어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하는 납득할 만한 주장을 들어보질 못했어요. 목표는 같지만 방법상 차이라면, 그런 부분에서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민주통합당은 ‘파견법 개정’에 간신히 동의한 상황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입장을 ‘파견법 철폐’로 다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또 새누리당이 다수인 국회 상황에서 파견법 개정만도 무척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만약 통합진보당이 파견법 철폐가 더 사내하도급 보호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려면, 이러한 조건을 넘어서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는 근거와 주장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거죠.”

세계적 장기 불황 시대, ‘소득 주도 성장’ 기획해야

- 노동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법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노력은 이전 국회에서도 있었지만 영향이 미미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18대 국회에서 노동 문제 관련해서 무척 애쓰신 홍영표, 이미경 의원 등이 ‘정말 힘이 없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야당이, 그 안에서도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한계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지만 어쨌든 이번 선거를 통해 야당 세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잖아요. 저도 친한 동료 의원들이 조금씩 늘고 있고요. 이런 관계 속에 있는 분들이 모두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협력해서 함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결국 영향력을 발휘하는 길이라는 점을 이전 국회의 경험에서 배웁니다. 그런데 한편,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잖아요. 아시다시피 대선 시기에는 국회 가동 자체가 힘듭니다. 그래서 올해는 국회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정확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 정도가 가능할 테고, 대선이 끝난 후 내년부터 새 정부와 함께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경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일자리 문제는 정책 과제이면서, 성장과 분배라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기도 한데요. 이와 관련해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십니까?
“이제는 성장과 분배 담론보다는 ‘어떤 성장이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ILO에서도 이윤 주도 성장(profit led growth)이 아닌 소득 주도 성장(wage led growth)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죠. 또한 보편적 복지의 문제도 ‘어떤 복지냐’가 더 중요한 것 같고요. 나아가 이 양자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아무리 장기 불황이라고 하더라도 생산은 계속되거든요. 그렇게 생산된 결과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의 임금 소득으로 돌아가도록 기획할 것인가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부분에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불황이 지속되면 일자리가 줄 텐데, 일을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정부 재정 지출로 소득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도 가동해야 하고요. 정부의 사회정책과 산업정책 초점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성장의 성격과 방향이 달라질 거라 봅니다.”

- 심각한 노동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10%의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곱지 않습니다. 이른바 ‘정규직 노조운동 이기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저는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것의 실체는 껄끄러운 상황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얻어내는 작은 이익 정도입니다. 10%도 안 되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었다거나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일부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죠. 다음으로, 한국 사회는 중심-주변이 극단적으로 분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심마저도 너무 취약한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규직의 지위조차도 너무 불안정하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한국 사회를 ‘미끄럼틀 사회’라고 표현해요. 중심에 있는 정규직마저도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는 사회에서 살다보면, ‘내 자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아등바등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조건에서 정규직들이 임금 양보를 한다면 얻을 것은 노동소득 분배율 악화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는 방안이 아니라 아래를 위로 올리는 방안, 미끄럼틀 사회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방안입니다. 위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은 불로소득뿐입니다.” 

의정활동 제1의 원칙과 기준은 ‘사회권의 전면적 보장’ 

-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잘 준비된 초선 의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준비 없이 자리에 앉은 국회의원입니다.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까? 혹시 ‘롤 모델’이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급하게 국회의원이 돼서 롤 모델이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어요. 오히려 되고 나서 지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회화된 갈등의 모든 당사자들이, 가장 힘이 약한 자들까지도, 협상테이블에 앉도록 조건을 만드는 국회의원, 모든 국민이 시민권과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가고 싶습니다. 정치에는 나름의 문법이 있는데, 지금 제가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가급적이면 기존 정치의 문법에 저를 맞추겠지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원칙과 어긋날 때는, 특히 ‘사회권의 전면적 보장’이라는 원칙과 충돌할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4년 후에는, 제가 국회의원이 된 직후 표방했던 가치와 목표를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하려 노력했던 국회의원, 협력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필요하다면 무릎을 꿇어서라도 원칙과 목표를 위해 나아가려 했고, 그 성과를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려주려 노력했던 국회의원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은 입법 의제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만 꼽아주십시오.
“우선, 파견법 개정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문재인 의원이 발의했지만 최저임금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노조법 제2조입니다. 사회권과 관련된 기본적인 부분들을 꼭 바꿔냈으면 좋겠습니다.” 

- 사회인으로서 지위와 역할이 계속 변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변화한 것과 변화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은 우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약자들의 권리 보장’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근로자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거고, 이 분들의 노동권과 시민권 보장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고자 노력해 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꿈꾸는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도 한때 미래 세대로서, 즉 20대로서 ‘이상적인 꿈’을 꿨었거든요. 20대들이 5년 내지 10년 정도는 현실의 압박을 적게 받고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꿈꾸는 젊은 세대로서 ‘486 세대’가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죠. 지금 20대가 이를 넘어서는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변한 것은, 이러한 관심과 지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는 ‘운동가’로서, 즉 약자의 일원으로서 갈등의 사회화를 통해서 이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 15년 동안은 ‘연구자’로서 사회화된 갈등 현장의 목소리들을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의제를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들과 의제들을 ‘제도화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청년 세대의 꿈에 대한 관심을 구현하는 방식이 바뀌어 온 것이죠. 한편, 어떠한 방식을 선택하든,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가장 프로페셔널하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늘 갖고 임해왔습니다. 앞으로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도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략 15년을 주기로 삶의 방식이 변해온 것인데, 15년이 긴 것 같지만 짧기도 해요.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사실 많이 힘듭니다. 국회의원으로서도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텐데, 좀 더 적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요즘 버릇처럼 ‘지혜를 주세요’라고 혼자 중얼거려요. 매일 저녁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좌절했다가, 아침이면 잘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북돋는 하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5호